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05
“맡겨 주시죠, 형님!”
말로이드도 걱정 말라는 듯 손짓을 했다.
“걱정 말고 먼저 가 계시오, 구원자 양반!”
“이 자리를 부탁하네!”
짧은 외침을 남긴 채 레펜하르트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황금빛 오러의 잔상을 밤하늘 가득 남기며 그의 거구가 시가지 지붕을 연달아 밟으며 제플린 시내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예상 외로 유서스는 굳이 레펜하르트의 뒤를 쫓지 않았다. 그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띠운 채 흐릿한 잔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쉽긴 하지만, 권왕은 테스론 경에게 양보해야겠군.”
애초에 유서스가 테스론과 합류하게 된 이유는 바로 레펜하르트와의 전투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유서스는 그에 대한 원한이 상당히 희박해진 상태였다.
그날 이후, 레펜하르트는 전장을 오가며 계속 명성을 높여 갔다. 당대의 권왕 레펜하르트의 이름이 대륙 전역에 자자하게 울린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 보니 이젠 레펜하르트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큰 수치가 아니게 된 것이다. 여전히 원한이야 품고 있긴 하지만, 지금의 유서스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증오의 대상이 존재한다.
러스를 향해 유서스가 마검 엘드란을 겨누었다. 살기를 흘리며 그가 안광을 흘렸다.
“지금은 더 중요한 용무가 있으니까 말이야.”
유서스의 살기를 받아 흘리며 러스도 마주 자세를 취했다. 양손을 모아 검을 쥐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테네스 가문 특유의 내려치기 자세였다.
휘이이잉!
두 형제 사이로 살기가 아지랑이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황금의 검, 엘드란을 들어 올리며 유서스가 살기 어린 외침을 터트렸다.
“목을 내놓아라, 더러운 사생아 놈! 이번에야말로 네놈을 단죄하겠다!”
살기를 정면으로 받으며 러스도 걸음을 옮겼다.
“단죄라…… 대체 내가 무슨 죄가 있고 당신이 무슨 자격이 있어 나를 단죄하겠다는 건지는 굳이 따지지 않겠어. 어차피 말이 통할 것 같지도 않으니까.”
블레이드 오러를 유서스에게 겨누며 러스가 입가를 비틀었다.
“그냥 여기서 끝내 버리겠어, 유서스. 이젠 더 이상 당신 얼굴 보는 것도 지겨워.”
3
레펜하르트는 연달아 제플린 시내의 지붕들을 건너뛰며 달렸다.
몸을 날리는 내내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상하게 불안한 기분이 가슴 언저리를 떠나질 않았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별문제는 없을 텐데.’
이미 레펜하르트는 현생의 테스론과 한번 맞붙어 보았다. 테스론의 강함에 대해서 대충 파악해 놓은 상태다.
분명 현재의 테스론은 강했다. 하지만 그 실력은 결코 이니야의 윗줄은 아니었다.
어째 다시 만난 이니야가 워낙 멍하게 굴어서 별로 실감은 못 하고 있지만, 사실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엘프족 최강의 전사이자 오러 유저다. 칼켄이나 스탈라, 아틸카 혹은 오크 대전사 시절의 타시드와 맞먹는 강자인 것이다.
실전이라면 짐 언브레이커블 특유의 몸뚱이 탓에 레펜하르트가 유리하겠지만, 대련이라면 그조차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이니야의 실력이었다..
거기에 정령술이 월등히 강해진 시리스도 함께 있으니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테스론이 그들을 습격한다 해도 충분히 대처할 힘이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유서스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뭔가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면 유서스가 세 명의 오러 유저를 상대로 그리 태연한 태도를 보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유서스가 수작을 부렸다면 테스론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지…….’
그렇게 레펜하르트가 다급하게 지붕 하나를 뛰어넘던 중이었다.
갑자기 건물 아래쪽 거리에서 증오를 가득 담은 음성이 길게 늘어지며 그의 이름을 외쳤다.
“레~펜~하~르~트!”
증오와 환희가 동시에 담긴, 마치 미치광이의 포효를 연상케 하는 섬뜩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검은 빛무리가 몸을 날린 레펜하르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건?”
당황하며 레펜하르트는 허공에서 몸을 뒤틀었다. 저 검은 섬광에 담긴 기운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등 언저리가 저릿저릿할 정도로 가공할 힘이 그를 덮쳐 왔다!
“하압!”
반쯤 무의식적으로 레펜하르트가 오러를 끌어 올렸다. 황금빛 오러가 그의 전신을 비호하며 섬광과 맞부딪쳤다. 폭음이 울리며 레펜하르트의 전신이 뒤로 튕겨 나갔다.
콰앙!
육중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한다. 뻐근한 통증이 가슴께를 타고 올라 뇌를 두들겨 댄다.
자세를 바로잡아 착지하며 레펜하르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크윽?”
스파이럴 가드를 구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짐 언브레이커블의 황금 오러는 그 자체로 금강석 같은 방어력을 자랑한다. 그 오러를 정확히 펼쳐 대부분의 힘을 해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검은 섬광은 여력을 채 잃지 않고 그의 가슴을 정확히 강타한 것이다.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닌 자가 제플린에 남아 있었던가?’
신음을 흘리며 레펜하르트는 고개를 돌렸다. 섬광이 날아온 곳에서 한 청년이 칠흑같이 새까만 검을 든 채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드디어 만났다! 크하하하하!”
칠흑의 검을 든 채 청년이 발을 굴렸다. 가벼운 발놀림만으로 3층 높이의 지붕 위를 가볍게 뛰어올랐다. 레펜하르트는 눈가를 찌푸렸다.
‘으음…….’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적어도 상식적인 인간의 한계는 가볍게 뛰어넘은 능력이었다.
지붕으로 올라온 청년이 레펜하르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미친놈처럼 낄낄대기 시작했다.
“레펜하르트! 젠장! 만났어! 만나 버렸어! 좋아! 아주 좋아!”
아니, 말하는 걸 보면 그냥 미친 게 맞는 것 같다.
청년을 빤히 바라보며 레펜하르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째 낯이 익기는 한데…….
“……누구더라?”
그러자 청년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악귀처럼 안면 근육을 뒤틀면서 청년이 고함을 질렀다.
“레펜하르트! 레펜하르트! 네놈이 나를 못 알아봐? 네가? 네놈이! 으아아아!”
처절한 절규가 청년의 목구멍을 통해 사방을 울렸다. 어찌나 처절한지 일순 미안하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상관없지! 네놈을 베고 나면 싫어도 기억하게 될 테니까!”
청년이 칠흑의 검을 지붕에 꽂았다.
“오라! 나의 분신이여!”
칠흑의 검에서 암흑이 쏟아져 나왔다. 터져 버린 둑처럼 암흑이 밀려와 청년을 머리부터 집어삼켰다.
그 속에 담긴 어둠의 기운에 레펜하르트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찼다. 흑마법, 그것도 상당히 지독한 계열의 흑마법이다.
암흑을 움켜쥔 채 청년이 처절한 외침을 터트렸다.
“광기의 영혼으로 내 몸을 감싸라!”
어둠이 물질이 되어 현세에 구현되기 시작했다. 암흑이 투구가 되고 건틀렛이 되며 플레이트 아머가 되어 청년의 사지를 뒤덮어 간다.
잠시 후, 그 자리에 더 이상 청년의 모습은 없었다. 전신에서 불길한 검은 투기를 풀풀 풍기는 흑기사의 모습만 남아 있을 뿐.
그 모습을 보고서야 레펜하르트가 손바닥을 쳤다.
“아, 저 갑옷.”
뭔가 했더니 저거, 예전 테스론과 조우했을 때 보았던 그 버서커 아머인가 하는 마갑이 아닌가?
“스테반인가 하던 그 친구였구먼.”
얼굴 보곤 모르다가 갑옷 보고서야 겨우 알아채다니, 레펜하르트에게 저 스테반이란 존재가 얼마나 희미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였다.
스테반 역시 그 사실을 바로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던 살기가 더더욱 짙어졌으니까.
“으아아! 레펜하르트으으으!”
☆ ☆ ☆
레펜하르트는 생각했다.
‘하긴, 유서스가 여기 있으면 저놈도 있을 수 있겠군. 저놈도 테스론을 따라다니는 듯했으니.’
이것이 스테반과 조우한 감상의 전부였다. 애당초 레펜하르트에게 스테반이란 존재는 그냥 테스론을 따라다니는 졸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기억나는 부분은 실란 만났을 때 옆에서 재수 없게 굴던 놈, 그리고 타시드가 오러 유저로 각성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었다 정도?
“갓 오러를 각성했던 타시드에게도 졌던 놈이 뭘 믿고 이렇게 자신감 과잉이 돼서 설치지?”
어이없어하며 레펜하르트가 펀치를 날렸다.
“스트레이트 캐논!”
황금빛 오러의 정권이 스테반의 정면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황금의 장막이 스테반의 눈앞을 가득 메웠다. 스트레이트 캐논이 막 스테반을 직격하려는 찰나, 스테반이 칠흑의 검을 휘두르며 괴성을 질러댔다.
“으아아아아!”
칠흑의 검, 그 새까만 칼날에서 검은 섬광이 솟구쳤다. 묵빛의 광채가 검날을 휘감고 황금빛 장막을 가른다. 가로로, 세로로, 사선으로, 섬광이 장막을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파괴의 여파를 날려 댔다.
콰아아아앙!
폭풍이 불며 지붕 일부가 사정없이 날려 갔다. 레펜하르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라?”
깨졌다. 스트레이트 캐논에 실린 그의 황금빛 오러, 그것이 너무도 간단히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단순히 가로막혔다거나 흘린 게 아니라 분명히 파쇄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오러?”
스테반이 이글거리는 어둠의 검을 치켜들고 자랑스레 소리쳤다.
“보아라! 이것이 나의 오러다! 나도 이제 오러 능력자란 말이다!”
레펜하르트는 눈을 껌벅였다. 도무지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자는 분명 오러 유저가 아닌데?”
기감으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러 유저 특유의 존재감, 그리고 발산된 오러의 흐름과 기세는 같은 오러 유저라면 결코 못 알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오러 유저로서 레펜하르트는 단언할 수 있었다. 스테반은 절대 오러 유저가 아니었다.
“하지만 저건 분명 블레이드 오러…….”
스테반이 광소를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크하하하하!”
칠흑의 검이 레펜하르트의 요혈을 노리고 연달아 찔러 왔다. 단순한 찌르기라면 피할 필요도 없겠지만…….
“스파이럴 가드!”
레펜하르트가 허겁지겁 오러를 회전시켜 전신을 휘감으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펑! 펑펑!
검은 오러와 회전하는 황금의 오러가 스쳐 지나가며 연이어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오러와 오러가 반발하며 일어나는 특유의 모습이다.
틀림없었다.
저 검은빛은 블레이드 오러였다.
‘이해할 수가 없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레펜하르트는 바로 역공에 들어갔다. 지붕을 박차 몸을 날리며 단숨에 스테반의 정면으로 돌진한다. 전신의 탄력을 주먹에 싣고서 레펜하르트가 연거푸 펀치를 날렸다.
“타아앗!”
수십 발의 펀치가 스테반의 마갑 여기저기를 강하게 두들겼다. 단순한 원투 스트레이트를 연달아 날린 것뿐이지만 일격, 일격이 공성추에 맞먹는다는 짐 언브레이커블의 펀치다. 타격음이 쉴 새 없이 울리며 스테반이 뒤로 밀려났다.
“크윽! 크윽! 크으……으하하하하!”
순간 레펜하르트는 소름이 돋아 주먹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투구 사이로 흘러나오던 스테반의 신음이 도중에 자연스럽게 광소로 바뀌었다?
‘뭐, 뭐야? 이 새끼?’
자고로 맞으면서 즐거워하는 놈과는 절대 상종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미친놈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더니, 그 격언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레펜하르트였다.
스테반이 자신의 갑옷을 내려다보더니 통쾌하게 웃었다.
“으하하! 버틸 수 있어! 버틸 수 있다고!”
레펜하르트는 식은땀을 흘렸다. 저 자의 광기도 광기지만, 능력 자체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오러 유저 이상의 움직임과 괴력을 보이는 데다가 그의 정권을 정면으로 맞고도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을 정도라니?
‘엘드라드 같은 특급 마도구인가? 아니, 마법에 의한 강화가 아니야.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이 파괴력은 도대체…… 게다가 마법으로는 오러를 구현할 수가 없는데……?’
마법의 원천이 되는 원소, 마나는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힘이다. 쉽게 말해서 무생물적인 속성을 띠고 있다.
그 무생물을 생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생명기, 오러.
속성이 비슷한 신성 주문으로는 오러와 비슷하게 효과를 낼 수 있지만―세이어 교단의 신성검이 대표적인 사례다― 마법으로는 절대 오러를 구현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