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07
레펜하르트는 고민했다. 이대로 계속 두들기다 보면 뭐, 질 리야 없겠지만 그는 갈 길이 바쁜 몸이었다. 여기서 계속 스테반을 상대하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캘러미티 혼을 써? 하지만 테스론을 두고 이런 놈을 상대로 오러를 낭비하고 싶지는 않은데…….’
게다가 이래저래 무인다운 마음가짐이 된 터라, 저런 놈을 상대로 진지하게 최강의 기술을 날리는 것은 어째 치욕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렇게 잠시 레펜하르트가 갈등하는 사이, 스테반이 다시 기이한 신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죽어, 레펜하르트…… 죽어…….”
스테반이 칠흑의 검을 치켜들었다. 검은 갑주로부터 시꺼먼 어둠이 풀풀 흘러나온다.
검은 어둠이 검에 맺히며 점점 거대해졌다. 뭉치고 뭉치고 또 뭉쳐 10여 미터가 넘는 거대한 칼날로 화한다.
“죽어 버려…….”
가공할 기운이 칼날 가득 넘실거린다. 레펜하르트가 입맛을 다셨다.
“또 저 짓거리냐?”
아까 저러다 한 방 거하게 맞은 주제에 또 시도하다니 참 학습 능력도 없다. 뭐, 미친놈에게 학습 능력을 기대하는 것도 웃기지만.
‘하지만 제로 임팩트도 버텨 내는 놈이니 어지간한 건 날려 봤자 반격할 테고.’
결국 캘러미티 혼을 써야겠다며 레펜하르트가 막 자세를 잡을 때였다.
순간 머릿속에 섬광처럼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가만? 그걸 써 볼까?’
캘러미티 혼의 자세를 풀고 레펜하르트가 대신 양 주먹을 허리로 가져갔다. 그리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델 파라 아케인 포스, 흐름은 힘이 되고 바위를 부수어 강이 되리니…….”
마력이 양 주먹에 응집되며 희미하게 백열했다. 그 상태로 레펜하르트가 오러를 끌어 올렸다. 황금빛 오러가 마력과 뒤섞이며 더욱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스테반이 포효를 터트리며 몸을 날렸다.
“카아아악!”
칠흑의 대검이 어둠과 동화되어 거대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온다. 순간 레펜하르트가 양 주먹을 마주 때렸다.
쾅!
마력과 오러가 부딪히며 파문을 일으켰다. 일어난 파문이 빛의 고리가 되어 오른 주먹에 맺혔다. 레펜하르트는 계속 양 주먹을 서로 두들겼다.
쾅! 쾅! 쾅!
웅웅웅웅웅!
마력과 오러가 뒤섞인 빛의 고리, 그것이 연달아 생성되며 오른 주먹에 휘감겼다. 네 개의 빛의 고리를 오른 주먹에 떠올린 채 레펜하르트가 히죽 웃었다.
“뇌전권 만들다 떠올린 건데 되는구먼.”
코앞까지 다가온 스테반이 고함을 지르며 검을 내리쳤다.
“슈팅 크로스!”
칠흑의 검이 세상을 가를 듯 레펜하르트의 정수리를 노리고 쏟아졌다. 레펜하르트도 마주 몸을 날렸다.
“타아아앗!”
동시에 그가 주먹을 뻗었다. 마력의 고리가 오러와 충돌하며 중첩, 또 중첩되었다. 백색의 고리와 황금빛 오러의 파문이 연달아 융합하며 연쇄 폭발을 일으킨다. 그 폭발력을 모조리 한 방향으로 유도하며 레펜하르트가 시동어를 외쳤다.
“하이브리드 캘러미티 혼!”
콰아아아앙!
백색과 황금색의 빛이 서로 얽혀 소용돌이가 되며 스테반의 전신을 강타했다.
☆ ☆ ☆
마법과 무술을 융합하는 한편, 레펜하르트는 본연의 짐 언브레이커블 기술에 대한 훈련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몸을 단련하고 특히 캘러미티 혼의 다음 단계를 위해 계속 수련, 또 수련했다.
하지만 캘러미티 혼 5중첩의 관문은 생각보다 쉽게 열리지 않았다. 뭔가 될 듯 말 듯 하면서도 아주 작은 무엇인가, 아주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마지막 조각이 없어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답답해하면서도 레펜하르트는 꾸준히 캘러미티 혼을 연습했다. 그리고 문득 아쉬움을 느꼈다.
‘캘러미티 혼, 이거 위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너무 힘 소모가 크단 말이지? 위력 조절도 안 되고.’
캘러미티 혼은 상황에 따라 힘 조절이 가능한 기술이 아니었다. 4중첩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상황 따라 1중첩이나 2중첩만 쓸 수 있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는 의미다.
일단 오러를 정해진 흐름대로 끌어내면 경지에 따라 자연스레 파동이 따라오는 방식이기 때문에 위력 조절이 불가능한 것이다.
‘뭐, 역대 권왕들은 힘 조절할 생각도 안 했겠지만.’
역대 권왕들이야 뒷생각 같은 것은 안 하고 일단 지르고 보는 호쾌한 작자들이라 주변에 민폐가 되건 말건 있는 힘껏 캘러미티 혼을 날려 대곤 했으니 딱히 보완할 생각을 못 했겠지.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마법사이기도 했고, 그렇다 보니 힘 조절이 안 되는 이 캘러미티 혼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 이미 그는 위력 조절 함부로 못 하면 어떤 꼴 당하는지 겪은 바가 있었다. (그놈의 뉴클리어 버스트 한번 잘못 날렸다가 대륙 공식 마왕으로 찍힌 사태는 지금도 떠올리면 후회막급일 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보완책을 강구했다. 하지만 고작 4중첩에 불과한 레펜하르트의 현 깨달음으로 이미 완성된 기술인 캘러미티 혼을 뜯어고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신 구상한 것이 이 기술, 뇌전권 방식을 응용해 마력을 주먹에 모으고 물리력으로 바꾸는 주법을 통해 ‘인공적인 오러-마력 파문’을 끌어내는 마법 술식, 하이브리드 캘러미티 혼인 것이다.
“자고로 하이브리드가 출력은 낮아도 효율은 좋은 법이지, 후후후.”
제플린의 거리 한복판에 움푹 파인 크레이터를 내려다보며 레펜하르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이브리드라곤 해도 엄연한 캘러미티 혼, 그 위력은 스테반의 검은 블레이드 오러를 박살 내고, 버서커 아머를 부수고, 제플린 도로를 파헤쳐 직경 5미터의 크레이터를 새성할 정도로 충분히 강력했다.
“소모되는 오러양은 연환 기격탄 정도인가? 시전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체력을 보존하며 파괴력을 유지하기엔 적당한 수준이군. 하지만 역시 파괴력은 오리지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네. 이래저래 보완할 점이 많군. 그래도 오리지널과 마력 융합 캘러미티 혼을 함께 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투의 폭이 상당히 넓어지니…….”
그렇게 머릿속으로 술식을 정리하며 레펜하르트는 몸을 돌렸다. 어쨌거나 상황 종료했으니 어서 시리스 쪽에 합류해야 한다.
그렇게 막 자리를 뜨려는 참이었다. 문득 크레이터 안에 널브러진 시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완전히 숨이 끊어진, 비참한 몰골로 죽은 스테반의 시체였다.
어쩌니저쩌니 해도, 저 마갑을 걸친 스테반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과연…… 자신만만해할 만했지, 저 갑옷의 위력은…….”
그리고 유서스 역시 스테반처럼 이상하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었다.
‘역시 그 작자도……. 이거, 러스 쪽은 괜찮을라나?’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러스에게 돌아갈 수도 없었다. 유서스가 스테반처럼 예상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면 테스론은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을 테니까.
레펜하르트는 굳은 얼굴로 몸을 날렸다.
‘일단은 계속 시리스 쪽으로 가 봐야겠군. 지금은 그저 러스와 말로이드를 믿는 수밖에…….’
4
“프리즌 블레이드!”
“에어 블래스트!”
“익스플로전!”
제플린의 마법 기사들이 저마다 시동어를 외치며 마검의 힘을 끌어낸다. 냉기가 맺힌 검이 말로이드의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놈들, 칼 든 주제에 뭔 마법질이야?”
툴툴대며 말로이드가 대검을 횡으로 베어 갔다. 진홍색 블레이드 오러가 쇄도하는 냉기를 가볍게 흩어 버렸다. 프리즌 블레이드는 꽤나 강력한 냉기 주문이었지만 역시 오러와 상대하기에는 손색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검째로 베어 버리려는 찰나, 강렬한 풍압이 말로이드의 좌측을 덮쳐 왔다. 다른 제플린 나이츠가 발동시킨 풍계 주문, 에어 블래스트와 폭발 주문 익스플로전이었다.
폭압으로 인해 돌진하던 말로이드의 움직임이 살짝 균형을 잃었다. 그 틈에 얼음의 검을 든 자가 다른 마법을 발동시켰다.
“린포스 실드!”
아무리 블레이드 오러라도 타격점이 빗나가면 위력은 극감하기 마련, 살짝 타점이 어긋난 진홍빛 오러가 마법 방어막에 의해 가로막혀 버렸다. 그 틈에 상대가 뒤로 빠지고 다른 두 명의 제플린 나이츠가 공세에 나섰다.
“스트렝스 부스트!”
“그리스! 홀드! 슬로우!”
일순간 근력을 강화하는 마법을 걸고 좌측의 마법 기사가 검을 길게 찔러 왔다. 말로이드가 인상을 쓰며 대검을 옆으로 뉘여 공격을 막아 냈다. 대검과 마검이 충돌해 쇳소리를 울렸다.
타앙!
오러 유저인 말로이드의 기량이라면 여기서 충분히 방어를 하며 동시에 반격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 찰나에 절묘하게 마찰 제어 주문과 두 종류의 신체 억제 주문이 들어온 탓에 타이밍을 잃었다.
“이, 이거 참…….”
반격을 포기하고 말로이드는 오러를 운용했다. 진홍빛 오러가 회오리치며 전신을 뒤덮어 순식간에 제어 마법들을 깨트렸다. 저 제어 주문들은 비교적 낮은 서클의 마법, 전신의 오러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쉽게 파훼할 수 있다.
그 틈에 이미 저 다섯의 제플린 나이츠들은 다시 안정적인 진형으로 돌아가 다음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마법이 깨져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바로 공격이 이어진다.
“블리저드!”
“에어로 봄!”
눈보라와 공기 압축 폭발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공세를 피하며 말로이드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차라리 화염이나 전격 공격을 날리면 오러의 방어력을 믿고 육탄 돌격이라도 시도해 보겠는데, 쩝.’
가장 보편적인 파괴 마법이라면 역시 화염계나 뇌전계, 혹은 섬광계인 법.
하지만 제플린 나이츠는 철저하게 빙계 마법이나 풍계 마법만으로 말로이드를 상대하고 있었다.
빙계 마법은 화염계처럼 순간적인 파괴력은 없지만 지속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풍계 계열의 폭발 마법은 설사 파괴력을 감당하더라도 그 풍압만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니 바로 반격할 수가 없다.
몇 번 공방을 나누고 나니 바로 알 수 있었다. 스텝을 밟아 연신 마법 공세를 피하며 말로이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들, 오러 유저 상대하는 수법에 아주 도가 텄군.”
제플린 나이츠 넷이 모이면 오러 유저 하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소리는 미리 카를에게 들었다. 그리고 그때만 해도 말로이드는, 그것을 그저 단순하게 제플린 나이츠가 오러 유저 바로 밑의 강자라는 소리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냥, 상황 맞춰 각개격파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붙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물론 저들 개개인의 기량은 감히 그와 비교할 수 없다. 일대일 대결이고 전력을 다한다면 1분 안에 쓰러트릴 자신이 있다.
하지만 제플린 나이츠는 다섯이서 마치 한 명의 마검사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것도 단순한 합공 정도가 아니라 톱니바퀴처럼 철저히 짜인 연수 합격이었다.
명색이 기사라면 여럿이서 한 명을 상대하는 것에 수치를 느껴야 정상일 것이다. 실제로 타국의 다른 기사단은 집단 대 집단의 전투는 연습할지언정 절대 다수 대 일의 전투를 상정하고 수련을 쌓지는 않는다.
하지만 차탄의 기사들은 원래 기사도 따위 서임 받을 때 한번 외우고 바로 까먹어 버리는 작자들이다. 기사의 명예나 도리보다는 월급과 뇌물에 더 관심이 많은 이들이 바로 차탄의 기사들, 그렇다 보니 썩기도 썩었지만 이렇듯 쓸데없는 허례허식 따위 신경 끄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에도 그리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차탄 기사들의 정점이 바로 이들 제플린 나이츠, 이기기 위해서라면 합공이면 기습이건 뒤통수 때리기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이들이다. 당연히 다수 대 일의 전투 정도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시행할 수 있다.
“아이스 포그!”
“에어 웨이브!”
“소닉 바이브레이션!”
제플린 나이츠들이 계속 말로이드를 공격해 갔다. 마법을 연달아 쏘아 대고 조금만 상황이 위태로워지면 바로 자리를 교체해 위기에서 탈출한다. 가끔씩 몰래 독침이나 암기를 날리는 등의 치사한 짓도 마다하지 않으니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으으음…….”
말로이드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공방을 주고받으며 그는 힐끔 주변 상황을 살폈다.
‘러스 경은 아직도 그자와 싸우는 중인가?’
조금 떨어진 광장의 한편, 그곳에서 황금빛과 푸른 섬광이 연달아 격돌하고 있었다.
☆ ☆ ☆
“기간틱 블레이드!”
포효를 터트리며 러스가 검을 찔러 넣었다. 고도로 압축된 푸른 오러가 빛의 창이 되어 유서스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앙!
폭음이 울리며 유서스가 뒤로 10여 미터 이상 날아갔다.
하지만 유서스는 쓰러지지 않았다. 뒤로 날아간 상태로 허공에서 자세를 잡더니 가볍게 공중제비를 넘어 착지한다.
러스의 인상이 구겨졌다. 분명 정통으로 기간틱 블레이드가 먹혔는데, 투구 속 유서스의 얼굴에는 조금의 고통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태연한 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것이다.
“하하핫! 고작 이 정도냐, 러스!”
통쾌하다는 듯 웃으며 유서스가 자신의 마검, 엘드란을 허공에 휘둘렀다.
엘드란의 검신이 빛나며 눈부신 금빛의 문자를 떠올린다. 아로새겨진 문자 위로 마력이 흐르며 복잡한 술식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검을 내리치며 유서스가 시동어를 외쳤다.
“울부짖어라! 엘드란!”
금빛의 섬광이 광장을 파헤치며 러스에게 쏘아졌다. 스치는 곳마다 벽돌이 부서지며 파편이 튀어 오른다. 실로 엄청난 파괴력, 하지만 러스는 옆으로 몸을 날리는 것만으로 간단히 공격을 피했다. 섬광의 스피드는 물론 엄청났지만, 현재 러스라면 피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흥!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코웃음을 유서스가 허공에 계속 검을 휘둘렀다. 마치 채찍이라도 된 듯, 엘드란이 내뿜는 금빛 섬광이 계속 러스를 쫓아가며 광장 여기저기 파괴의 손톱을 긁어 댔다. 건물이 반으로 쪼개지고 거대한 석재 조각이 광장 바닥에 떨어져 육중한 굉음을 흘렸다.
자욱한 파괴의 향연, 그 속을 뚫고 지나며 러스는 연달아 땅을 박찼다.
탁! 탁! 탁!
세 번 뛰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유서스와의 거리가 좁아진다. 날아오르는 매처럼 날쌔게 광장을 가로지르며 러스가 검을 길게 뒤로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