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13
“사부님이 보면 무덤에서 통곡하시겠군.”
“응? 그 양반 아직 안 죽었을 텐데?”
“아, 실수. 나도 모르게 내심이 흘러나왔다.”
나이도 많은 양반, 슬슬 천수 다 하지 않았으려나 라는 생각을 매일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저런 말이 나온 것이다. 머쓱해하며 레펜하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변모한 테스론을 보고 있자니 기가 찬다.
“용케도 그런 몰골을 하고 있구나, 테스론.”
도구를 써 육체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치졸한 도피이며 부끄러움이라 여기는 짐 언브레이커블의 무인이 그냥 무기 정도가 아니라 도구로 온몸을 도배해 버리냐? 확실히 제라드가 보면 기가 막혀 거품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테스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실 그도 어느 정도 부끄럽긴 했던 것이다.
하지만 테스론은 이내 표정을 풀었다.
“모든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작은 수치쯤은 감당할 수 있다.”
테스론이 손을 들어 다시 안갑을 썼다. 매끈한 금속 얼굴 위로 눈동자만이 드러나 빛을 발한다. 자세를 잡으며 테스론이 말했다.
“이제 악몽을 끝내겠다, 마왕!”
레펜하르트도 로브를 벗어 던졌다. 두꺼운 근육이 달빛 아래 여실히 드러났다. 레펜하르트가 등 뒤로 지시를 내렸다.
“이놈은 내가 맡겠다! 다들 동족들을 이끌고 제플린을 빠져나가라!”
그러자 이종족 전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카다마이트의 시체를 수습하고, 시리스를 부축하고, 노예들을 다독이며 레펜하르트와 테스론을 피해 성문 쪽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이니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다친 몸을 이끌며 레펜하르트 곁으로 와 선다.
레펜하르트가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도 피하도록 해요, 이니야.”
이니야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있는 것은 저 괴물뿐이 아닙니다.”
그녀는 성벽 위의 마법사, 필레나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레펜하르트는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과연,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강력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렇군…… 죄송하지만 부탁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저 마법사가 도주하는 탈주 노예 무리를 향해 마법이라도 난사한다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누군가는 남아서 저 마법사를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카다마이트도 시리스도 쓰러졌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부상을 입은 이니야에게 그런 일을 맡겨야 하다니…….
걱정 어린 레펜하르트의 표정에 이니야가 애써 웃으며 남은 한 팔로 알통을 만드는 시늉을 해 보였다.
“걱정 마세요. 저, 보기보다는 튼튼하답니다.”
미소를 남기며 이니야는 등을 돌렸다. 레펜하르트를 스치고 지나가며 그녀가 귓속말을 건넸다.
“조심하세요, 갑옷도 문제지만 저자는 마법을 씁니다. 그것도 어지간한 고위 마법사 수준이에요.”
그 마법이 아니었다면 그녀도 이렇게까지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부분은.”
이니야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평소에 비하면 느려 터진 움직임이었지만 그래도 오러 유저는 오러 유저였다. 마치 평지를 걷듯, 성벽 위를 빠르게 타고 올라간다.
성벽 위에 서 있던 필레나가 당황한 목소리로 메시지 마법을 날렸다.
“어쩌지, 테스론? 저놈들 도망가는데? 그리고 엘프 오러 유저는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고.”
잠깐 고민한 테스론이 빠르게 대꾸했다.
“오러 유저를 상대해라. 오합지졸보다는 강자 하나를 해치우는 쪽이 나아. 상대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긴 하지만 부상이 심하니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다.”
“아, 알았어.”
이니야의 모습이 성벽 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것은 테스론과 레펜하르트, 둘뿐.
레펜하르트가 두 발을 넓게 벌려 안정된 자세를 취하며 주먹을 겨누었다. 테스론도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마치 거울로 비친 듯한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며 입을 열었다.
“잘도 이런 짓을 해 주었구나, 테스론! 네놈에게 죽은 카다마이트의 원혼을 달래 주마!”
“더 이상 옛날의 내가 아니다, 레펜하르트! 진정한 짐 언브레이커블의 힘을 맛보여 주마!”
두 거구가 동시에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두 사람의 기합이 허공에서 겹치며 메아리처럼 제플린의 밤하늘을 떨쳐 울렸다.
“타아아앗!”
3
강철의 육체가 포효한다. 치솟는 오러를 휘감고 대기를 찢으며 한 줄기 섬광이 되어 허공을 격한다.
“타앗!”
고함과 함께 테스론이 펀치를 내질렀다. 흠 잡을 데 없는 깔끔한 스트레이트, 한 치의 낭비도 없이 모든 힘이 한 점에 뭉쳐 레펜하르트의 안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 정도쯤이야!”
팔을 휘둘러 레펜하르트가 펀치를 걷어 냈다. 동시에 왼발을 길게 뻗어 미들 킥을 날렸다. 테스론이 재빨리 무릎을 올려 옆구리를 방어했다. 강철처럼 단련된 육체와, 정말로 강철을 능가하는 금속의 육체가 서로 맞붙었다.
터텅!
미들킥을 막은 테스론이 킥을 걷어 내며 양팔을 번갈아 휘둘러 댔다. 좌우 훅이 회전을 타며 레펜하르트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레펜하르트가 왼팔을 들어 방어하며 동시에 오른 주먹을 뻗었다. 황금빛 오러가 실린 붕권이 테스론의 명치를 향해 뻗어 갔다.
테스론이 눈을 빛냈다. 각도도 자세도 타이밍도 완벽한 일격이었다.
역시 자신의 육체다. 마법사의 손에 들어가고도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이다니!
“제법이구나, 마왕!”
테스론이 몸을 비틀어 타점을 흘렸다. 레펜하르트가 손등치기를 날리며 후속 공격을 노렸다. 테스론도 마찬가지로 팔을 휘둘러 반격에 나섰다.
펑!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의 팔이 교차하며 부딪쳤다. 팔뚝과 팔뚝이 맞붙으며 뻐근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레펜하르트는 인상을 썼다. 충격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반면 똑같은 충격을 받았을 테스론은 인상을 쓰긴 커녕 오히려 유쾌해하고 있었다.
“크크큭! 이 느낌이다! 이 느낌이야!”
얽힌 팔을 걷어 내며 테스론이 킥을 뻗었다.
“가스트리젠!”
하필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을 노린 터라 피하거나 공격을 흘릴 틈이 없었다. 레펜하르트는 당황했다. 하지만 이성과는 별개로, 혹독한 수행을 쌓은 그의 육체는 자연스럽게 반격에 나서고 있었다.
피하지도 막지도 못할 때 짐 언브레이커블은 이렇게 가르친다.
-이왕 맞을 거면 같이 때려라! 그래야 덜 억울하다!
“가스트리젠!”
레펜하르트 역시 앞차기를 마주 질렀다. 서로의 명치에 서로의 발끝이 정확히 꽂혔다.
양측의 등 뒤로 금빛과 적황색의 오러 파문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신음을 흘리며 레펜하르트가 뒤로 날려 갔다.
“크윽!”
그래도 마주 앞차기를 날린 덕에 공세의 위력이 상당히 감소되었다. 설사 피하지 못한다 해도 마주 공격을 하면 충분히 상대의 돌진을 막아 낼 수 있으니까.
짐 언브레이커블의 가르침이 일견 단순 무식할 뿐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꽤나 합리적인 면이 있는 것이다. 그저 무식하기만 했을 뿐이면 어찌 역대 후계자들이 대대로 권왕의 자리를 독점했을까?
통증을 애써 참으며 레펜하르트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느새 테스론이 발을 구르며 코앞까지 쇄도해 있었다.
“가르침은 잘 받았군! 반응이 괜찮아!”
날카로운 수도가 레펜하르트의 정수리를 찍어 왔다. 몸을 틀어 어깨로 수도를 받아내며 레펜하르트도 마주 펀치를 날렸다.
“스트레이트 캐논!”
황금빛 장막이 테스론의 전신을 뒤덮어 갔다. 하지만 테스론은 오히려 비웃음을 흘렸다.
“스트레이트 캐논은 다수의 적을 상대나 유용한 수법! 파괴력이 일점에 집중되지 않으니 막기도 쉽다!”
테스론의 주위로 누런 오러가 소용돌이치며 오러의 장막을 산산이 찢어발겼다. 스파이럴 가드로 스트레이트 캐논의 기세를 모조리 날려 버린 것이다.
레펜하르트가 욕설을 흘렸다.
“제길!”
비웃음을 던진 주제에, 이번엔 테스론이 같은 기술로 응수했다.
“스트레이트 캐논!”
똑같은 형태의 오러 장막이 레펜하르트의 전신을 덮친다. 당연히 레펜하르트도 스파이럴 가드를 펼쳐 방어하려 했다.
그 순간, 테스론이 스트레이트 캐논에 실린 오러를 회전시키며 또 한 방의 펀치를 날렸다.
“스트레이트 캐논, 스파이럴!”
첫 번째로 날아온 오러 장막이 스파이럴 가드와 부딪치며 서로 상쇄되어 버린다. 레펜하르트가 구사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다. 뒤이어 날아온 두 번째 스트레이트 캐논이 정통으로 레펜하르트를 덮쳐 갔다.
콰콰콰쾅!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며 레펜하르트는 수십 미터나 뒤로 날아가 버렸다. 어찌나 강력한 위력이었는지 충격파만으로도 도로가 파헤쳐지고 가로등이 몇 개나 꺾여 분질러진다. 강타를 맞은 레펜하르트의 육체가 건물 깊이 파묻혔다. 굉음과 함께 3층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며 무수한 먼지와 파편이 비산했다.
“으으윽…….”
레펜하르트는 신음을 흘리며 돌더미를 파헤치고 몸을 일으켰다. 이 육체로 건물 한두 개쯤 뚫는 거야 일도 아니니 등 쪽은 그리 아프지 않다. 하지만 스트레이트 캐논에 정통으로 당한 부위는 상당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테스론이 다가오며 껄껄 웃었다.
“스파이럴 가드는 같은 스파이럴 가드끼리 서로 상쇄된다. 사부로부터 이런 것도 안 배웠나?”
그는 첫 번째 연타에 스파이럴 가드를 섞어 레펜하르트의 방어를 깨부순 뒤 두 번째 스트레이트 캐논을 날렸던 것이다.
몸을 일으키며 레펜하르트가 안면을 구겼다,
‘배운 적 없어, 그런 거…….’
실제로 제라드는 저런 건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스파이럴 가드는 오직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예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대대로 짐 언브레이커블은 후계자 구하기 힘들어 한 세대에 하나 구하면 다행인 무문이었다. 스파이럴 가드끼리 부딪칠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과연, 테스론도 그 사실은 금방 깨달은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건 그냥 내 스스로 깨친 거였군.”
역시 같은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예라도 레펜하르트와 테스론의 경지는 차이가 심하다. 한쪽은 비록 기억뿐일지언정 권왕으로 수행해 온 수십 년의 경험과 경지가 있는 반면 레펜하르트는 순수하게 20대의 테스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지 테스론의 육체가 워낙 부실한 탓에 예전엔 레펜하르트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는데…….
‘대체 저 아티팩트는 뭐지?’
이를 갈며 레펜하르트는 테스론, 정확히는 그가 걸친 갑주를 바라보았다. 저 갑옷을 걸친 테스론은 완벽하게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계자가 되었다. 모든 기술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모든 방어법을 완전하게 소화해 버린다.
‘완전히 예전의 권왕이 되어 버렸잖아? 뭐, 전생 때 마지막으로 보았던 테스론의 육체에 비하면 그래도 여전히 손색이 있지만…….’
문득 레펜하르트는 전생의 테스론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저 갑옷, 이름이 아다만드릴 슈트라고 했던가?
확실히 저 아티팩트의 강도나 위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왕으로 대륙의 최강자 자리를 양분하던 테스론에 비하면 아직 약했던 것이다. 멀쩡히 맨몸뚱이로 고대의 아티팩트조차 능가했었다니, 새삼 짐 언브레이커블이라는 무문이 얼마나 무식한 것들인지 실감이 난다.
갑자기 레펜하르트가 피식거리자 테스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 공격이 아직도 우스운가 보지?”
“아니, 그래서 웃은 것은 아닌데…….”
쓴웃음을 지으며 레펜하르트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래, 확실히 테스론의 경지는 그보다 위였다. 무인으로서,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예로서.
하지만 레펜하르트 역시 전생에 놀고만 있지는 않지 않았는가? 그는 고금 제일의 마법사, 그가 이룩한 마법의 경지는 테스론과 비할 데가 아니다.
비록 마력이 모자라 지금은 빌빌대고 있지만 그는 한때 테스론뿐 아니라 대륙의 최강자 5인을 동시에 상대했던 최강의 마법사다!
레펜하르트가 눈을 빛냈다. 짐 언브레이커블의 자세 그대로 그가 주먹을 뻗었다. 익숙한 공격에 테스론이 코웃음을 치며 반격하려는 참이었다.
주먹을 뻗음과 동시에 레펜하르트가 마법 스펠을 토했다.
“나는 포효하는 노래, 래디언스 송!”
테스론은 눈을 크게 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펀치가 붕권의 형태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만이면 전혀 놀라울 것이 없겠지만 문제는 그 뒤로 다섯 줄기의 섬광 주문이 따라오는 게 아닌가?
“엥?”
당황하며 테스론은 상대의 붕권을 회피함과 동시에 스파이럴 가드로 섬광 마법을 걷어 냈다.
마법이 튕겨 나는 순간 레펜하르트가 점프해 크게 공중제비를 넘었다. 몸을 반회전시키며 발꿈치로 테스론의 정수리를 노린다.
이것 역시 그냥 흔한 발차기 기술 중 하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