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20
“필레나, 쟤 머리가 분명 저렇게까지 좋지는 않았거든?”
이론이야 레펜하르트 본인이 가르쳐 주었으니 당연히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 이론을 5서클에까지 적용시킬 정도로 필레나의 술식 연산력은 뛰어나지 않았다.
물론 열심히 연습하다 보면 마법 연산력도 어느 정도 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결코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냥 노력해서 해결될 문제였다면 왜 현생의 레펜하르트가 엘류시온의 목소리를 구하려 그리 난리를 쳤겠는가?
‘그런데 다시 만난 필레나는 엘류시온의 목소리라도 쓴 양, 연산력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가 있단 말이지.’
그가 아는 한 마법사의 연산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엘류시온의 목소리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 아티팩트는 현재 자신이 지니고 있었다.
레펜하르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
머릿속이 복잡해 정리가 되질 않았다.
필레나의 일도 그렇고 저 정체불명의 아티팩트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이 시대로 회귀한 이후 처음으로 전혀 알지 못하는 일이 생겨 버린 것이다.
“테스론이 무슨 짓을 했나? 하지만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저런 일이 생기는 거지?”
☆ ☆ ☆
이니야는 한참 뒤에야 레펜하르트에게로 돌아왔다.
필레나야 테스론이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있는 마력 없는 마력 다 동원하며 허겁지겁 날아왔지만, 이니야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레펜하르트가 승리했음이 명백했으니까.
그래서 뒤를 쫓지 않고 일단 그 자리에서 오러를 운용해 상처 회복에 열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육체가 회복되고 나서야 다시 합류한 것이다.
다가오는 이니야를 보며 레펜하르트가 안부를 물었다.
“몸은 괜찮습니까, 이니야?”
“예,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을 정도는 돼요.”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 사과를 건넸다.
“죄송해요, 그 여자 마법사를 해치우지 못했어요.”
“부상이 심하셨잖습니까? 괜찮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레펜하르트는 이니야를 달랬다. 그때, 그녀가 문득 눈매를 날카롭게 치켜 올렸다.
“그런데…….”
이제는 폐허가 되어 버린 제플린의 성벽 일부, 테스론과 필레나가 있던 그 무너진 자리를 노려보며 그녀가 싸늘하게 물었다.
“어째서 그자를 바로 해치우지 않으신 건가요, 레펜하르트 님?”
“예?”
당황하며 레펜하르트는 이니야를 바라보았다.
“제가 마법사를 놓치지 않았다면 그들을 놓칠 일도 없었겠지요. 그 일은 전적으로 제 잘못이에요.”
차분한 목소리로 이니야가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을 건넸다. 그리고 바로 언성을 높이며 질문을 이었다.
“하지만 레펜하르트 님이 그 사내를 바로 해치웠다면 그 여마법사가 구출할 틈도 없었을 겁니다. 왜 바로 숨통을 끊지 않으셨나요?”
레펜하르트는 당황했다. 혹시 적을 놓친 것에 대해 탓하는 것인가?
하지만 그 일에는 이니야 역시 책임이 있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러니 그런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니야의 눈동자가 레펜하르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언제나 부드러웠던 그녀의 눈빛은 지금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다. 전생 때 자주 보았던 바로 그 눈빛이었다.
과연, 이니야가 진정으로 화낸 이유를 입 밖으로 꺼냈다.
“혹시, 상대를 회유하기 위해 그런 것인가요?”
“아, 그게…… 죽이기엔 재능이 너무 아까워서…….”
이니야의 표정이 더더욱 차가워졌다.
“카를 재상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그 역시 적이었고, 지금은 마음을 바꿔 우리의 동료가 되었지요. 그래서 혹시나 레펜하르트 님이 그런 생각을 하신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네, 뭐 그랬지요…….”
어깨를 움츠리며 레펜하르트는 슬쩍 이니야의 눈치를 보았다. 카를 때처럼 테스론의 재능이 아까워 회유하려 한 것이 대체 왜 저리 화를 낼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 이니야가 나직하게 뇌까렸다.
“그는…… 카다마이트를 죽였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역시 그에게 죽을 뻔했지요.”
“이니야…….”
“검을 든 무인으로서, 그자에게 패한 것이 분할지언정 억울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카다마이트 역시 그랬겠지요. 그 또한 긍지 높은 전사였으니까.”
이니야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자를 회유하려 했을 때, 레펜하르트 님의 머리에 카다마이트의 죽음이 과연 들어 있었는지.”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무심코 카다마이트가 쓰러져 있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 자리에 카다마이트의 시체는 없었다. 이미 다른 이들이 시신을 수습해 성 밖으로 빠져나갔으니까.
그래, 카다마이트의 시신을 본 순간, 분명 분노했다. 그리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는 드워프 최강의 전사이며 오러 유저였으니까. 뜻을 함께하는 소중한 동료, 아까운 인재를 잃었으니 당연히 안타깝고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 슬픔을 느꼈던가?
레펜하르트는 그렇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전생에서 너무나 많은 죽음을 보고, 너무나 많은 슬픔을 겪었다. 그래서 카다마이트의 죽음 앞에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너무 쉽게 슬픔을 뒤로하고, 냉정하게 전투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래, 그 상황에서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도 없잖아?’
카다마이트는 분명 소중한 동료였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처럼 잃는 순간 슬픔이 벅차오를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이다.
‘동료나 수하가 죽을 때마다 일일이 눈물을 보일 정도로 여리다면 오히려 우두머리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레펜하르트가 인상을 쓰며 반박하려던 차였다.
무뚝뚝한 이니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만약 죽은 이가 시리스 양이었다면, 그래도 레펜하르트 님은 똑같이 행동하셨을까요?”
“…….”
레펜하르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표정이 수시로 뒤바뀌었다.
잠깐 발끈했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니 결국 이니야의 말이 옳았다.
어떤 핑계를 댄다 한들, 방금 동료를 죽인 자를 오히려 회유하려 한 것은 분명 도리가 아니다.
가식적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는 아니라 해도, 최소한 카다마이트의 죽음은 존중해 주어야 했다. 그의 죽음이 의미가 있도록 합당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그것이 올바른 일일 터다.
“후우…… 제가 어리석었군요, 이니야.”
레펜하르트가 한숨을 쉬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의외로 순순히 실수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이니야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화가 난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 미움 받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건넨 말이었다.
다행히 레펜하르트는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그녀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심으로 카다마이트의 죽음을 안타까워해서인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도리를 어겼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
상식적인 감성을 지닌 인간의 반응이 아니다. 엘프인 이니야가 보기에도 거슬릴 정도로.
‘……이 사람, 뭔가가 어긋나 있어.’
사실은 이후 추궁할 부분이 남아 있었다. 저 검은 머리의 사내와 여마법사, 그들과 레펜하르트의 관계에 대해서.
‘어째 잘 아는 사이처럼 보이던데…….’
레펜하르트가 발끈하면 계속 따져 볼 생각이었는데, 분위기가 이렇게 되고 나니 그러기도 좀 어색하다. 둘은 그렇게 잠시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화는 풀렸다지만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까지는 쉽게 가시지 않는 것이다.
“어쨌건, 우리도 어서 빠져나가죠. 앞선 이들을 따라잡아야 하니”
현 상황이 느긋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을 때는 아니다. 슬쩍 눈치를 보며 이니야가 분위기를 전환했다.
“아, 그러지요.”
그제야 레펜하르트도 정신을 차리고 제플린 성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 모두 땅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성벽 위로 날아오르던 이니야가 문득 등 뒤를 돌아보았다.
채 밤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흐릿한 제플린의 시가지.
지금도 다른 이들은 저곳 어딘가에서 열심히 동족들을 이끌고 탈출 중일 것이다. 그리고 개중 누군가는 그들처럼 인간의 군세에 가로막혀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겪었던 위기를 떠올리니 다른 이들 역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쪽은 괜찮은지 모르겠네……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3
제플린 남부의 반파된 시가지.
그곳에서 황금의 기사가 푸른 검사를 상대로 광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하하하핫!”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유서스는 계속 대검을 휘둘렀다.
엘드란이 연달아 섬광을 뿌린다. 빛의 궤적이 스치는 곳마다 도로가 녹으며 후끈한 증기를 피운다.
벌써 스무 번도 넘게 날아오는 엘드릴의 빛을 보며 러스가 치를 떨었다.
“아오! 저놈의 마력은 대체 언제쯤 고갈되는 거야?”
러스 역시 테네스 가문 출신, 마갑 엘드라드에 대해 제법 알고 있었다.
원래 엘드라드의 마력 저장량으로 엘드릴의 빛을 구사하는 것은 다섯 번 정도가 한계.
‘그래서 계속 피하다 보면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는데…….’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엘드릴의 빛을 풋워크로 피하며 러스는 계속 도망 다녔다. 섬광이 러스가 있던 자리를 직격하며 폭음을 울려 댔다.
유서스가 비아냥을 던졌다.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셈이냐, 러스!”
“쳇!”
조소를 받으면서도 계속 러스는 몸을 빼는 데 집중했다.
유서스의 움직임 자체는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니 공격 자체를 적중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파괴력을 모아 블레이드 오러를 날려도 저 두꺼운, 숫제 공처럼 보일 정도로 두터운 황금 갑옷이 모든 충격을 흡수해 버린다.
아무리 반격을 해도 먹히질 않으니 달리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또다시 엘드릴의 빛이 러스의 좌측을 스치고 지나간다. 공격을 비껴 내며 러스가 검을 연속으로 찔러 댔다.
“세븐 스타즈!”
일곱 개의 오러가 유성처럼 날아가 유서스의 가슴에 별이 되어 박힌다. 일곱 개의 별이 연동되며 폭발을 일으키는 바로 그 순간, 러스가 곧바로 공격을 이었다.
“기간틱 블레이드!”
청색의 블레이드 오러가 길게 늘어나며 유서스의 흉갑을 노리고 날아든다. 세븐 스타즈의 폭발에 기간틱 블레이드의 파괴력을 중첩시켜 몇 배나 되는 파괴력을 낼 속셈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러스의 기대대로 흘러가 주질 않았다.
가슴에 푸른 오러의 별이 박힌 채 유서스가 계속 앞으로 나섰다. 허공에 대검을 휘두르며 또다시 섬광을 날린다.
“울부짖어라! 엘드란!”
엘드릴의 빛은 유서스가 지닌 궁극기, 비록 스파이럴 가드를 펼치지 않았다곤 해도 일격에 레펜하르트를 중상에 빠지게 했던 무시무시한 기술이다. 도저히 기간틱 블레이드 정도로는 상쇄가 불가능, 어쩔 수 없이 러스는 혀를 차며 옆으로 몸을 던졌다.
콰아앙!
폭발의 연기 속에서 애써 시야를 확보하며 러스는 툴툴거렸다.
‘아, 진짜 틈이 안 나네.’
일격의 파괴력으로는 도저히 유서스의 갑옷을 부술 수가 없다. 그래서 강타의 연타로 파괴력을 쌓아 부술 생각이었는데, 그조차도 영 계획대로 되지를 않는다. 한 방 날리고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사이 바로 저 엘드릴의 빛이 날아오는 것이다.
‘차라리 예전처럼 다양하게 공격해 오면 틈이 날 텐데…….’
원래 유서스는 온갖 다양한 마법을 병용하며 화려한 연속 공격을 날리는 스타일이었다.
화려한 공격이란 것은 구사하는 입장에서도 꽤 허점이 생기는 법이다. 그리고 러스의 현 실력이라면 충분히 유서스의 복잡 다양한 공격의 틈새를 찾아 파고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유서스의 전법은 아주 단순했다. 평생 익힌 검술이며 마갑 활용법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그저 달려들면서 엘드릴의 빛만을 연달아 날릴 뿐이다.
단순한 마법이나 블레이드 오러의 연속타 정도면 러스도 회피와 동시에 반격을 노릴 수 있겠지만, 아예 최강기만 뻥뻥 때려 버리니 피하기 바빠 도저히 반격할 틈이 없다. 일격의 파괴력이 너무 높아 그 여파만으로도 상당한 피해를 주니까.
공격을 피하며 러스가 악을 써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