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22
‘에잉, 쓸모없는 작자들…….’
여태 남의 기술 신 나게 훔쳐다 써 놓고 참으로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하겠다. 배은망덕하다는 유서스의 발언도 아주 근거가 없진 않은 것 같았다.
유서스가 점점 더 거리를 좁혀 왔다.
엘드란이 머리 위로 치켜 올려졌다.
“죽어라, 비천한 놈!”
강렬한 마력이 대검 끝에 맺히며 빛을 발한다. 퍼지는 빛이 마치 안개 속의 달빛처럼 흙먼지를 통해 직선으로 뻗어 간다.
그래, 안개 속의 달빛처럼…….
‘……안개?’
갑자기 러스의 두 눈동자가 몽롱하게 변했다.
주위가 느려졌다. 모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환영이 떠올랐다.
퍼져 가는 새하얀 냉기의 안개,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그 이해 불가했던 이니야의 오러 스킬.
‘북해의 숨결…….’
어지간한 건 전부 몇 번만 보면 이해할 수 있었던 러스지만, 저 오러 스킬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냉기를 깃들게 하는 것이야 정령술의 힘이니 차치하고라도, 그 무수한 오러 입자를 만들어 내 광범위하게 흩뿌리는 방법은 아무리 연습해도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니야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원래 엘프는 드워프나 오크완 달리 비의를 아무에게나 전수하는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레펜하르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는지 이니야도 흔쾌히 가르쳐 주었다.
단지 문제는…….
‘어떻게 하냐고요? 음, 물은 얼음도 될 수 있고 수증기가 되어 보이지 않게도 되잖아요? 만물은 변화하는 것이니 그 변화를 몸에 담아 그대의 삶 속에 녹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심상을 오러로 구현하면 돼요.’
본인 딴에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건데, 남이 듣기엔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었다.
뭐, 러스도 이해는 했다. 그 역시 팬텀 블레이드의 용법을 남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니까. 깨달음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시도를 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오러를 입자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대한 오러를 잘게 나누어 봤자 그 한계는 모래알 정도, 도저히 입자화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컨트롤하는 것도 모래알 대여섯 개 정도에 불과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러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입자화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경지인데, 안개가 될 정도로 무수히 많은 오러 입자를 일일이 컨트롤한다고? 설사 신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니야는 분명 그 불가능한 짓을 하고 있다,
말이 되질 않는다.
‘그래, 말이 되질 않아. 북해의 숨결은…….’
문득 의아해졌다.
왜 기술 명칭이 ‘숨결’일까? 오러 입자를 움직이는 기술이라면 가루나 먼지 쪽이 어울리는 이름일 것 같은데. 그냥 겉모양만 치더라도 안개란 이름이 더 어울릴 텐데.
“아!”
갑자기 꽉 막혀 있던 것이 무너지며 머릿속에 폭포처럼 뭔가가 쏟아졌다. 영감의 폭포가 흐릿하던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알았다.
이니야는 입자를 하나, 하나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런 무시무시한 짓은 불가능하다.
‘그래, 그녀는 오러를 잘게 나누어 입자화한 것이 아니었어.’
그 기술의 명칭은 바로 북해의 ‘숨결’.
세상 모든 사람들은 숨을 쉰다. 숨을 들이마시며 삶에 필요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필요 없는 공기를 내뱉는다. 들이마실 때의 공기와 내뱉을 때의 공기, 그것은 호흡을 통해 전혀 다른 공기가 되어 세상으로 돌아간다.
숨결을 마시고 내뱉는다는 것은 곧, 세상의 공기 일부분을 전혀 다른 성질로 바꾼다는 것.
‘그녀는 오러라는 현상을 안개라는 현상으로 바꾸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러스는 전율했다.
이니야의 오러는 물질 변환이 된다!
입자 하나하나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생명기, 오러라는 기운 형태를 안개라는 형태로 물질 변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개라는 거대한 덩어리를 찰흙 놀이 하듯 이리저리 매만지는 것이 바로 그녀가 냉기의 안개를 다룰 수 있는 비법이다.
마법으로는 결코 제어 불가능하다는 3대 요소, 시간과 공간과 물질.
이니야는 오러의 힘만으로 그 3대 요소 중 하나인 물질 변환의 일부를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렇구나…….’
이해의 영역을 넘어 직관이 벼락처럼 뇌리 여기저기를 널뛴다.
과정을 건너뛰어 해답을 깨친다.
러스 역시 3대 요소 중 하나인 공간 제어의 일부를 오러의 힘만으로 구현하고 있다. 일단 깨달음을 얻고 나니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저절로 이해가 갔다.
바보짓을 하고 있었다.
팬텀 블레이드라고?
애당초 명칭이 잘못되었다.
기술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기술의 이미지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그 기술을 연마하면 할수록 이미지가 굳어지며 위력도 강해진다.
그런데, 과연 러스가 원한 것이 환영의 검이었나?
아니다.
그가 원한 것은 환영처럼 눈을 속이는 검이 아니라 진정으로 공간을 희롱하는 검.
‘내가 바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과도 같은 공허한 검.’
바라는 순간 베어 버리고 바라지 않으면 그저 빛처럼 통과해 지나가 버리는 마음의 검.
러스가 검을 고쳐 들고 눈앞의 유서스를 바라보았다.
“죽어라, 비천한 놈!”
생각은 길었지만, 사실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유서스가 검을 내려쳤다. 검이 휘둘러지며 강대한 마력이 요동쳤다.
빙그레 웃으며 러스도 마주 검을 들었다.
뇌리 속의 심상이 언어로 규정되며, 그동안 생각해 본 적도 없던 기술 명칭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허공검, 호라이즌…….”
그래, 입 밖으로 꺼내고 보니 알겠다.
이게 옳다.
이게 바른 명칭이다.
아득한 수평선은 분명 눈에 보이면서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무리 다가가고 또 다가가도 그 끝에는 또 다른 머나먼 수평선이 존재할 뿐.
허공을 뛰어넘어, 공허한 검을 들어 존재하지 않는 것의 존재를 벤다!
파아앗!
러스의 블레이드 오러가 사라졌다. 동시에 유서스의 양 무릎에 섬광이 번뜩였다. 두꺼운 갑옷 속에 선혈이 가득 차 쏟아졌다.
투구 속에서 처절한 절규가 희미하게 들렸다.
“……크아악!”
4
유서스는 피 웅덩이 위에 쓰러져 있었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격통 속에서 신음하며 유서스는 애써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았다.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분명 이 갑옷은 러스의 모든 공격을 받아치는 절세의 무구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의 두 다리를 감싸는 황금 갑옷에는 조금의 흠집도 없었다.
하지만 그 갑옷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그의 육체는 달랐다. 무릎 아래가 깔끔하게 잘린 것이 보이지 않아도 고통이 되어 여실히 느껴진다.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술 중에는 분명 갑옷 위로 타격을 가해 충격을 뚫어 내부를 파괴하는 기술이 있긴 하다. 벽돌을 여러 장 쌓아 놓고 중간의 벽돌만 부순다든가 하는 식으로. 레펜하르트의 제로 임팩트가 바로 그런 식이다.
유서스의 새로운 갑주, 엘드릴 기간투스는 그런 류의 기술까지 대비해 모든 충격을 갑옷 자체로 해소하는 기능이 있었다. 안 그랬으면 아무리 갑옷이 단단하다 해도 여태 유서스가 그렇게 멀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러스의 공격은 그런 식이 아니었다. 지금의 일격은 아예 갑옷 자체를 무시하고 그의 본체만을 잘라 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무릎 아래로부터 격통을 느끼며 유서스는 연신 비명을 토하고 또 토했다.
“크으으윽!”
러스는 반개한 눈으로 쓰러진 유서스를 바라보았다. 비록 눈은 유서스에게 향해 있지만 그의 의식은 여전히 각성의 여운에 빠져 있었다.
‘이것이 진짜 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것…….’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검, 그의 블레이드 오러가 공간을 뛰어넘는 것을.
팬텀 블레이드처럼 단순히 공간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가 바랐던 부분만을 잘라 버리는 것을.
아무리 강력한 갑옷으로 몸을 보호해도 이 검 앞에선 의미가 없다. 갑옷을 무시하고 내부의 본체만을 벨 수 있으니까. 지금은 다리를 통째로 베었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근육과 힘줄을 놔둔 채 뼈만 잘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깨달음에 러스는 전율했다.
‘이 검을, 완벽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그의 검은 세상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필살의 검이 된다!
러스의 입꼬리가 좌우로 올라갔다. 그의 두 눈이 오만하게 빛났다.
“공간을 뛰어넘는 검을 과연 누가 당할 수 있을 것인가? 휘두르면 무조건 명중할 텐데! 으하하하하!”
러스의 마음이 자만으로 가득 차 광소를 막 터트리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뇌리로 누군가의 모습이 영상이 되어 스쳐 지나갔다.
두꺼운 대흉근을 불끈거리며 창칼을 태연하게 받아치는 근육질 거인, 레펜하르트였다.
“어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해 보니 이거, 레펜하르트에겐 여전히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조건 명중하는 기술이라고?
지금은 뭐, 명중을 못 시켜서 레펜하르트에게 맞고 다니던가?
아무리 베어 봐야 안 먹히니까 문제 아닌가?
갑옷을 무시하고 본체를 베는 것도 의미가 없다. 본체가 곧 갑옷인데 어쩌라고?
뼈와 근육을 무시하고 내장만 베는 것도 저 끔찍한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예에겐 소용없다. 위장과 십이지장으로도 오러 가드를 펼치는 해괴망측한 무문이니까.
본인의 기량이 통째로 올라가 블레이드 오러만으로도 저 가공할 육체에 치명타를 줄 수 있을 정도가 아니면, 그저 기교뿐인 허공검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머리가 차갑게 식고 나니 그제야 현실이 보였다.
‘형님에게 통하지 않는다면 칼켄 공에게도 그리…….’
짐 언브레이커블 정도는 아니지만 오크 특유의 강건한 육체를 지닌 칼켄의 육체는 보통 단단한 것이 아니다. 허공검이 명중한다 해도 특유의 파괴력으로 충분히 밀어붙일 수 있겠지.
스탈라도, 이니야도, 아틸카도…… 여전히 그보다 높은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경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피시식…….
자만심이 풍선 바람 빠지듯 사라져 버렸다. 러스의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니, 이거 잘났다고 웃을 정도는 아니구나, 나…….’
러스 본인은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이는 꽤나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대부분의 오러 유저들은 각성을 통해 새로운 경지에 들어서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 경지를 답습하는 법이다. 그 놀라운 깨달음에 흥분해 기껏 들어선 경지를 잊고 희열에 몸을 맡겨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문이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을 추스르는 가르침을 내리지만 러스는 워낙 타고난 천재다 보니 그런 쪽은 영 취약했다. 아마도 그대로 자만심에 몸을 맡겼다면 기껏 붙잡은 허공검을 다시 익히는 데 몇 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흥분이 사라지며 다시 허공검을 휘둘렀을 때의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러스는 차분하게 그 감각을 되새겼다.
어리석은 짓을 할 뻔했다.
‘나는 아직 오만할 자격이 없다.’
러스는 유서스 쪽으로 신경을 돌렸다. 두 다리가 잘린 그는 땅 위에 엎드린 채 애써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크윽, 크으윽, 내가 저런 놈에게…… 저런 비천한 놈에게…….”
비참한 몰골로 땅 위를 기면서도 눈빛만은 여전히 증오로 불타오른다.
‘마무리를 할 시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