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52
그래도 리카본 같은 비참한 꼴을 당하지 않은 것이 어딘가?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정중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네, 젊은이.”
나이 쉰이 다 되어 가는 그를 누가 감히 젊은이라 부르는가? 나스단이 미처 의문을 품기도 전에 강렬한 충격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꽝!
방어는 물론 심적 대비조차 하지 않은 때 허용한 일격이라 그 한 방으로 정신이 흐릿해진다. 눈을 감으며 나스단이 애써 고개를 돌렸다.
‘누, 누구…….’
흐릿해지는 시선 속에서 나스단은 보았다. 코끼리처럼 긴 어금니를 지닌 거구의 트롤이 겸연쩍은 얼굴로 단봉을 들고 있는 것을.
☆ ☆ ☆
“상아어금니! 이 사악한 마물이!”
아틸카를 상대하던 왈그란 경과 웨를 경이 치를 떨었다. 둘을 상대하던 아틸카가 갑자기 몸을 빼더니 떨어져 있던 나스단을 기습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바로 아틸카의 뒤를 쫓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아틸카가 트롤 주술로 커다란 식물 줄기를 키워 내 그들의 발을 묶어 버린 탓이었다.
“제길!”
블레이드 오러로 간단히 줄기를 끊을 수 있었지만, 그 틈에 이미 아틸카는 나스단을 공격해 버렸다.
혀를 차며 왈그란과 웨를이 다시 아틸카에게 덤비려는 찰나였다. 아틸카가 두 자루 단봉으로 땅을 찍으며 또다시 그 괴이한 술수를 부렸다.
“마파람에 새싹이 혀를 빼물고 자란다!”
땅이 꿈틀대며 또 두 사람의 다리를 두꺼운 식물 줄기가 휘감아 버렸다. 잽싸게 오러로 줄기를 끊었지만 이미 아틸카는 펄쩍펄쩍 뛰어 이니야와 레펜하르트에게 합류한 후였다.
쓰러진 나스단을 보며 게블릭 경이 신음을 흘렸다.
“으음, 나스단 경마저 당하다니…….”
그래도 한 방에 유명을 달리한 리카본과 달리 나스단은 기절했을 뿐 죽지는 않았다. 딱히 그가 리카본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막 살수殺手를 펼치려는 아틸카를 레펜하르트가 메시지 마법으로 말린 덕분이었다.
바슈탈론 제국이야 어차피 좋은 관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제국의 기사인 리카본에게는 상대의 전력도 줄일 겸 부담 없이 살인기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나스단은 그저 본의 아니게 제국에 끌려 나온 신세인 것이다.
침략당한 입장에서 열은 뻗치지만, 그렇다고 후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왕의 입장. 잠정적인 적을 늘리지 않으려면 나스단처럼 제국 외의 오러 유저들은 역시 함부로 목숨을 앗을 수가 없다.
뭐, 그렇다 해도 현재 나스단이 전력에서 제외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카메룬 경이 이를 갈았다.
이건 뭐, 몇 번 손을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써 리카본과 나스단, 두 명의 오러 유저를 잃었다!
“크으…… 자신의 상대도 아닌 이를 기습하다니! 이 무슨 비겁한 짓이냐, 권왕!”
카메룬이 분노하며 외쳤다. 레펜하르트가 헛웃음을 흘리더니 마주 소리쳤다.
“일대일 대결도 아닌데 내가 누굴 패건 뭔 상관이냐?”
이니야도 한껏 비아냥을 담아 말을 받았다.
“여럿이서 덤벼들면서 잘도 비겁을 그 입에 담는구나!”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여럿이서 덤비는 주제에 자기 상대만 공격하라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애당초 명예를 먼저 무시한 것은 저쪽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종자가 논리대로 말이 먹히는 대상이면 세상은 참으로 평화로웠겠지. 당연히 각국의 오러 유저들은 저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들 저 명예도 도리도 모르는 이들의 작태에 분노를 터트렸다.
왈그란 경이 고함을 질렀다.
“권왕 레펜하르트! 그대는 무인의 자부심도 없는가! 방심한 상대의 뒤를 노리다니! 권왕씩이나 되는 자가 이런 치졸한 짓을 계속 할 셈인가?”
“응.”
참으로 간략한 대꾸가 더욱 화를 돋운다. 왈그란 경의 안색이 수시로 변색되었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계속 동료를 잃을 판이었다. 저들은 눈앞의 상대에 연연하지 않고 눈치껏 몸을 빼 서로 힘을 합쳐 하나하나 각개격파할 셈인 것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수적 우세도 그리 의미가 없다. 오러 유저끼리 손을 합쳐 본 적이 없어, 설마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레펜하르트를 상대하던 바실리 출신 오러 유저, 크로아틀이 동료들을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이대로 멍청한 짓을 계속할 셈이오?”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전력을 다했다면 저들도 몸을 뺄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오러 스킬만 쓰고 있으니 안심하고 등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얼마든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방심한 다른 이의 뒤를 칠 수 있다!
“바보가 아니라면 당신들도 슬슬 힘을 쓰라고!”
크로아틀이 블레이드 오러를 넓게 퍼트렸다. 회색 블레이드 오러가 톱날처럼 변하며 강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고유의 오러 스킬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자기도 같은 짓 한 주제에.’
타박하는 크로이틀을 보며 몇몇이 불만을 떠올렸지만 애써 삭였다. 어쨌거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확실히…….”
“지금 밑천 아끼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 같이 밑천 까발리는 거면 손해 볼 것도 없으니까.”
무기를 고쳐 쥐며 오러 유저들이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비슷하게 흐르던 각자의 오러가 저마다 고유의 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불길처럼 타오르고 안개처럼 흐르고 어둠처럼 은밀히, 산처럼 굳건히.
저마다 고유의 오러 스킬을 숨기지 않으며 진정한 힘을 보인다. 이니야가 긴장하며 중얼거렸다.
“이젠 아까처럼 쉽지는 않겠네요.”
레펜하르트가 아쉬워하며 주먹을 매만졌다.
“쩝, 두어 놈 정도는 더 조지고 싶었는데…….”
저들이 전력을 다하면 레펜하르트 일행도 감히 상대하다 말고 등을 돌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기습으로 재미 보는 기간은 지난 듯했다.
아틸카가 두 자루 단봉을 역수로 든 채 눈빛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두 분 다 조심하시오.”
☆ ☆ ☆
그린드 왕국은 할라인 왕국과 바슈탈론 제국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산악 왕국, 험한 산세로 인해 다량의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린드 왕국의 기사들은 주로 순수한 검보다는 몬스터와 대항하기 편한 중병기를 쓰는 쪽을 택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린드 왕국의 오러 유저, 르카완 역시 그런 기사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자신의 모닝 스타를 빙빙 돌리며 레펜하르트에게 접근했다.
보통 모닝스타의 추椎가 성인 장정 주먹만 한 데 비해, 르카완의 모닝스타는 그 철구가 족히 사람 머리통만 한 사이즈였다. 저만한 쇳덩어리가 강렬하게 회전하고 있으니 그 기세가 실로 무시무시했다.
“받아라! 권왕!”
르카완이 돌진하며 모닝 스타를 휘둘렀다. 사슬에 달린 쇠공이 블레이드 오러를 뿜으며 레펜하르트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철구에 담긴 오러를 ‘블레이드’ 오러라 하기는 좀 어폐가 있겠지만, 원래 대륙에서는 무기를 통해 발현하는 모든 오러를 관용적으로 블레이드 오러라 부른다. 그리고 르카완은 모닝스타의 쇠공 위에 돋아난 뾰족한 송곳을 통해 절삭력이 담긴 오러 또한 구현하고 있었으니, 그리 틀린 명칭인 것만도 아니었다.
쌔애액!
원심력이 실린 모닝 스타가 오러를 한껏 머금고 대기를 가르며 파공음을 낸다. 고유의 오러 스킬을 쓰기 시작한 탓인지 아까와는 파괴력이 전혀 다르다. 감히 방심하지 않고 레펜하르트가 신중히 라이트 펀치를 뻗었다.
“헙!”
강철의 추와, 강철의 주먹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오러 파문이 퍼져 나갔다.
둘의 대결은 레펜하르트의 압승이었다. 그는 충돌 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은 반면, 르카완은 반발력 때문에 신체 중심선이 흔들려 버렸다.
“윽!”
그 틈을 타 레펜하르트가 미들 킥을 날렸다. 나무를 뿌리째 뽑아 휘두르는 듯한 위력적인 킥이 르카완의 좌측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르카완이 허겁지겁 왼팔을 들어, 오러 실드를 펼쳤다.
“진철벽眞鐵壁!”
찬란한 빛이 명확한 방패의 형상으로 구현되며 레펜하르트의 정강이와 부딪쳤다. 폭음이 울리며 오러 실드가 미들 킥을 막아 냈다.
‘단단하군.’
레펜하르트가 속으로 감탄을 흘렸다. 아까와는 달리 오러 실드가 부서지지 않았다.
모닝 스타를 다루는 대부분의 무인들이 그렇듯, 르카완의 원래 전투 스타일은 커다란 방패로 몸을 보호하며 모닝 스타를 휘둘러 진격하는 중장보병 타입이었다. 오러 유저가 된 후론 굳이 거추장스러운 방패를 들고 다니지 않았지만 대신 오러 실드를 강화하는 특유의 스킬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런 르카완만의 오러 방패, 진철벽은 평범한 오러 실드와는 방어력의 차원이 달랐다. 레펜하르트의 미들 킥을 막아낼 만큼 충분히 견고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격은 막았어도 그에 실린 힘까지 모두 흘릴 수는 없었다.
“크윽!”
신음을 흘리며 르카완이 뒤로 길게 밀려났다. 막 그를 쫓으려던 레펜하르트가 문득 인상을 썼다. 승기를 잡은 김에 계속 르카완을 몰아치고 싶었지만 상황이 그리 편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타앗!”
긴 기합을 터트리며 그라임 왕국의 오러 유저, 게블릭 경이 레펜하르트의 뒤를 노린 것이다. 돌진력을 담아 사선으로 연속 베기를 날리니 두 줄기 블레이드 오러가 십자의 형상을 띠며 레펜하르트의 등으로 날아왔다.
“오러 크로스!”
몸을 돌리며 레펜하르트가 두 팔뚝을 들어 방어했다.
“스파이럴 가드!”
파지지직!
황금빛 전격이 튀며 스파이럴 가드가 게블릭의 오러 크로스를 갈아 버렸다. 게블릭이 인상을 썼다. 훨씬 강화한 오러 스킬을 썼는데도 저 황금빛 회오리를 뚫지 못했다.
“쳇!”
브로드 소드로 연달아 소드 패링을 펼치며 게블릭이 반격에 대비했다. 그때 떨어져 있던 르카완이 모닝 스타를 맹렬히 돌렸다.
블레이드 오러가 모닝 스타의 회전에 실리며 거대한 광륜光輪으로 화한다. 르카완이 모닝 스타를 아래로 떨치며 소리쳤다.
“샛별의 고리!”
회전하는 광륜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왔다. 순간 레펜하르트는 실소했다. 저 흉악한 무기로 구사하는 기술답지 않게 참 명칭이 운치 있다. 아마도 그냥 모닝 스타로 쓰는 기술이라 저따위 이름을 붙인 듯하다.
명칭이야 어찌 되었건, 그 위력은 결코 비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레펜하르트가 다시 스파이럴 가드를 펼쳐 광륜과 충돌했다.
순간, 레펜하르트의 안색이 다급해졌다.
‘윽?’
광륜이 아무런 저항 없이 스파이럴 가드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똑같이 회전을 이용한 오러 스킬, 스파이럴 가드와 샛별의 고리.
르카완은 광륜의 회전수와 방향을 절묘하게 조절해 레펜하르트의 스파이럴 가드와 완전히 동조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스파이럴 가드의 기세에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흐름에 휩싸인 채 안으로 파고든다!
르카완의 광륜이 가드를 뚫고 제대로 직격했다.
콰아앙!
레펜하르트의 거구가 수 발자국이나 뒤로 밀렸다. 가슴에 길게 자상이 생겨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레펜하르트가 혀를 내둘렀다.
‘이런 식의 기술도 있나? 오러 스킬을 제대로 쓰니 장난이 아닌데?’
비록 적이지만 실로 놀라운 기술이었다. 솔직히 감탄할 만했다.
물론, 르카완은 전혀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지만.
“아니, 정통으로 맞았는데 그걸 맨몸으로 버텨?”
짐 언브레이커블이 흉악하다는 소린 누누이 들어 왔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가 찼다. 이게 안 통하면 대체 저 괴물을 무슨 수로 베란 말인가?
게블릭 경이 고개를 저으며 르카완의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상대는 짐 언브레이커블의 권왕이오. 저 정도는 예상했어야지.”
레펜하르트에게 돌진하며 게블릭이 브로드 소드를 십자 형태로 베었다. 또다시 오러의 십자가가 허공에 그려졌다.
하지만 게블릭의 움직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미 오러 크로스로는 스파이럴 가드를 뚫지 못한다는 걸 확인한 그였다.
오러 십자가 가운데 찌르기를 날리며 게블릭이 소리쳤다.
“크로스 펜타곤!”
날아가는 십자의 블레이드 오러 가운데 날카로운 창이 솟구친다. 창이 달린 오러 십자가가 레펜하르트의 정면을 뒤덮었다.
허공을 가르며 오러 십자의 네 끝이 휘더니 가운데 달린 창날을 향해 모여들었다. 마치 꽃봉오리가 아무는 듯한 형상과 함께 다섯 개의 블레이드 오러가 한 점에 모여 강력한 관통력으로 화했다.
콰아아악!
한 점에 집중된 관통력이 스파이럴 가드의 회전력마저 뚫으며 쇄도해 온다. 그냥 몸뚱어리만 믿고 있다간 꼬치가 될 판이다. 레펜하르트가 재빨리 몸을 비틀어 타점을 흘렸다.
파지지직!
게블릭의 찌르기가 레펜하르트의 가슴을 스치며 지나갔다. 또 선혈이 튀었다.
‘어차피 찰과상일 뿐!’
무시하며 레펜하르트가 길게 팔을 뻗어 손등 치기를 날렸다.
부웅!
공기가 떨리며 커다란 주먹이 반원을 그린다. 손등 치기의 궤적이 돌진하는 게블릭과 정확히 겹쳐졌다. 돌진 도중이라 도중에 멈출 수 있을 리 없었다.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