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60
바슈탈과 타세랄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러 유저를 암살하는 법은 물리적인 방법뿐이 아니다. 은의 현자가 보유한 아티팩트 중에는 강력한 저주를 건다거나 치명적인 독을 형성하고, 또 강철 같은 의지를 지닌 현자라도 미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정신계 마법을 담은 마도구들도 많았다.
상대가 오러 유저건 대마법사건 신의 화신에 가까운 성직자건 간에, 모든 대상에 전부 통용이 될 만큼 다양한 아티팩트를 보유하고 있기에 여태껏 은의 현자가 인류를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물리력 때문이라면 오러 유저에게 밀릴 수도 있겠지만 어찌 마법이 있는데 안 통한단 말인가?
루디움이 한 번 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인들 저런 시도를 안 해 보았겠는가? 물론 다 해 봤다.
하지만 저 권황 제라드는 상식을 초월한 괴물이었다.
강력한 저주는 기합으로 떨쳐 내고 고래도 녹이는 독은 으적으적 씹어 먹고 정신계 마법은 불굴의 근성으로 그냥 버텨 내는데, 대체 어쩌란 말인가?
벌써 제라드를 노리다 죽어 간 은의 암살자만 두 자릿수였다. 은의 현자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이렇게 기가 막힌 암살 대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설명하자니 참…… 자신도 이 상황이 납득이 안 가는데 남을 이해시킬 자신도 없고…….
루디움이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바꿨다.
“그냥, 그렇게 되었소. 아무래도 특급 금기 물품 사용을 허락해야 할 것 같소만…….”
타세랄이 혀를 찼다.
“여기서 뭘 더 내 달라고? 벌써 몇 개를 잃었는데?”
그러자 루디움도 인상을 쓰며 신경질적으로 말을 받았다.
“아니, 안 통하는 물건만 갖다 쓰니 그런 거 아니오? 아예 화끈하게 센 걸로 들이붓자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씩씩거리다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슬그머니 눈치만 보고 있던 은발의 작은 소녀, 세렐라인을 향해서였다.
“그리고 수호자 세렐라인! 그대는 무엇을 했소? 권왕을 암살할 수 있다지 않았소?”
루디움이 버럭 성을 내며 비난의 화살을 슬쩍 그녀에게 돌렸다. 바슈탈과 타세랄도 가세했다.
“그러게 말이오! 외인이었던 현자 레스틴에, 노출 위험까지 각오하며 그의 협력자마저 동원했거늘!”
“심지어는 아다만드릴 슈트마저 내가지 않았소? 그건 금단의 기물 중에서도 특급 중의 특급품이오!”
그 귀한 아다만드릴 슈트 날려 먹고 온 세렐라인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울상을 지었다.
“아니,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훌쩍거리던 세렐라인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혼나니까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기는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것들 전부 그녀보다 연하年下다. 10대 소녀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엄연히 여든 살이 넘었다.
“아니, 근데 이것들이 어디다 대고 눈을 부라려? 특히 레어폴, 너! 넌 내가 기저귀 갈아 가며 키웠어!”
50~60대의 노인들이 움찔했다.
세렐라인이 제국의 황제를 노려보며 눈에 쌍심지를 켰다. 지상 최강의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바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 수호자 바슈탈에서 레어폴 1세로 돌아가 눈을 껌뻑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친다.
나이 먹을 대로 먹은 흰 수염의 노인이 새파랗게 어린 소녀의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아니, 지금은 수호자 회의 아닙니까? 왜 여기서 속세의 일을…….”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얼떨결에 언성을 높이긴 했는데 저 세렐라인이라는 소녀는 무려 60년도 전, 그가 아기일 때 자신을 돌봤던 ‘보모 누나’였다. 감히 호통을 칠 대상이 아닌 것이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수호자 타세랄이 헛기침을 흘리며 화제를 바꿨다.
“험험, 지금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서 무엇하겠소?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오.”
바슈탈도 얼른 세렐라인의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어쨌건, 이제 공식적으로도 권왕 레펜하르트를 향해 속세의 전력을 동원할 수 있소. 제국이 나설 수 있으니 곧 해결이 될 거라 보오.”
루디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일단 권황 제라드를 노리는 것은 관두고 타깃을 바꿔 보겠소. 권황이 아니더라도 말살해야 할 대상은 적지 않으니까.”
타세랄이 달래듯 세렐라인에게 말을 건넸다.
“수호자 세렐라인, 그대는 계속 권왕의 제거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 좋겠소. 어쨌거나 아직 현자 레스틴은 건재하고, 그의 힘도 여전하니까.”
세렐라인도 진정하고 다시 수호자의 말투로 돌아왔다.
“그럴 생각이에요. 대륙에 무수한 오러 유저가 있지만, 은의 기물을 쓸 자격이 있는 오러 유저는 현자 레스틴을 제외하면 현자 브렉티스와 RX 시리즈 뿐. 아직 현자 레스틴에겐 이용 가치가 있어요.”
은의 현자가 간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오러 유저나 마법사 자체는 많다. 속세의 권력을 이용해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금지된 아티팩트마저 내줄 만큼 은의 현자 내에 깊이 소속되어 있는 오러 유저는 얼마 없는 것이다. 비밀 유지는 은의 현자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니까.
비록 실패했지만 테스론은 여전히 은의 현자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인재였다.
결론이 나자 모인 수호자들이 저마다 유사 공간을 떠나 현실로 돌아갔다. 세렐라인도 손가락을 튀겼다.
딱!
그녀의 모습이 빛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순백의 빛이 사라지며 다시 주위가 통상 공간으로 돌아왔다. 새하얀 신전 대신 화려한 카펫이 깔린 근사한 응접실의 정경이 눈에 들어온다.
응접실 창문 밖으로 험준한 산세가 보였다. 이곳, 아스티노플 공작가의 여름 별장이 위치한 퍼틴 고원의 정경이었다. 세렐라인의 옷차림 또한 어느새 순백의 로브에서 귀족가 영양다운 드레스 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방을 나섰다. 복도로 나서자 마침 지나가던 하녀들이 세렐라인을 보더니 조신하게 허리를 굽혔다.
세렐라인이 하녀들을 손짓해 불렀다.
“테스론 경은 어디 있지?”
30대의 나이 든 하녀 한 명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금역禁域에 가셨습니다, 에렌드 아가씨.”
세렐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발길을 옮겼다. 하녀들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그녀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세렐라인의 모습이 사라지자 하녀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저분은 왜 저런 젊은 나이에 이런 산속에 계시는 걸까요?”
다른 하녀들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모두 아스티노플 공작가의 본 저택에서 근무하다 두어 달 전, 별장으로 온 하녀들이었다.
그녀들에게 있어 저 ‘에렌드 아가씨’는 참으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신성 바슈탈론 제국의 명문 중의 명문가, 아스티노플 공작가의 영애로 태어나 한창 피어나는 꽃 같은 나이의 소녀다. 그런 미소녀가 황도의 화려한 무도회며 사교계에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이런 깊은 산속에 살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없다.
말로는 지병이 있어 몸이 허약하기 때문에 요양 중이라는데, 솔직히 옆에서 모신 하녀들 입장에서는 별로 허약한 것 같지도 않았다.
평소에도 움직이는 것 보면 건강 그 자체인 데다가 가끔 몇 달씩 별장을 비우고 여행도 다닌다. 그때마다 생생하게 돌아오는 소녀가 지병이 있다면 그것도 웃긴 소리다.
하녀들이 목소리를 낮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런 산속에서 살면 멋진 남자를 만나지도 못할 텐데 말이지.”
“그렇지? 에렌드 아가씨 정도의 미모라면 황도에서도 남자들이 줄을 설 텐데.”
“어쩌면 황태자님을 만날 지도 모르지!”
“황태자께서 올해 마흔이 아니시던가? 그분이 결혼한 지가 언젠데…….”
예순이 넘은 레어폴 1세가 여전히 정정하게 제국을 통치하고 있기에, 후계자인 길리우스는 마흔이 다 되도록 아직 황태자 신세였다.
“그, 그럼 황태손!”
“그건 좀 가능성 있겠다, 얘.”
화려한 귀족들의 삶은 하녀들에게 있어 영원한 동경이다. 일단 수다가 시작되니 바로 왁자지껄해진다. 30대의 나이 든 베테랑 하녀, 메를렌이 혀를 차며 어린 하녀들을 꾸짖었다.
“쓸데없는 소리군요! 높으신 분들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메이드의 덕목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할 일만 성실히 하면 되는 거예요!”
혼난 하녀들이 입을 다물고 다시 자기 할 일을 하기 위해 저택 안쪽으로 총총 뛰어갔다.
☆ ☆ ☆
아스티노플 공작가의 여름 별장 뒷산.
그곳에 제법 커다란 건물 하나가 세워져 있다. 저택이라 하기엔 너무 투박한, 그저 돌로 올린 건물과 그 주위로 높은 담장이 둘러싸인 이곳은 하녀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공작가의 금역이었다.
담장 안쪽, 포석이 깔린 연무대 위에서 흑발의 아름다운 청년이 가부좌를 튼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후우우…….”
숨을 잔잔하게 몰아쉬며 청년, 테스론이 눈을 떴다. 체내에서 맴도는 마력을 느끼며 그가 중얼거렸다.
“7서클 대부분을 터득해 버렸군. 역시 마왕의 두뇌인가? 일단 작정하고 덤벼드니 진도가 빠르네.”
레펜하르트의 권마합신 캘러미티 혼에 크게 당한 후, 테스론은 자신의 목표를 조금 수정했다. 마왕을 노리지 않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직 무술에만 매진하고 마법은 어디까지나 보조로 익히던 마음가짐을 고친 것이다.
그의 육체를 가진 레펜하르트는 결국 권왕다운 힘을 손에 넣고, 전생의 경지까지 융합해 새로운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테스론이 그렇게 못할 이유는 뭐가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바뀐 육체의 우월성은 오히려 테스론 쪽이 더 높다.
“그래, 누가 뭐래도 이 육체는 고금 제일 마법사의 것이 아닌가? 그런 무기를 쥐고 있으면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또다시 떠오른다. 캘러미티 혼에 당하던 바로 그 순간이.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바로 그때 테스론은 마법의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
모든 마나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히 느껴졌다. 그토록 이해가 안 갔던 모든 마학 이론의 글귀들이 영혼에 각인되듯 속속 익혀졌다. 무인의 각성과 비견되는 마법사의 깨달음, 정신 고양情神高揚이었다.
그토록 다룰 수 없던 마왕의 두뇌가 드디어 테스론의 영혼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때의 감각을 바탕으로 테스론은 결국 7서클을 돌파할 수 있었다. 그 후 마법 수준은 계속 무섭게 늘어, 지금은 은의 현자로부터 받은 7서클 주문 거의 전부를 터득한 상태였다. 이 정도면 당장이라도 8서클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작 몇 달 만에 이루어진 거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진보였다. 전생 때 레펜하르트가 고작 서른의 나이에 9서클을 입문한 것이 납득이 갔다.
문득 테스론이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생각해 보니…… 차라리 육체가 바뀐 것이 다행이었어.’
전생의 레펜하르트는 테스론을 비롯, 대륙의 모든 강자가 한꺼번에 덤벼서야 겨우 상대할 수 있었던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만약 서로의 육체 그대로, 동시에 왕년의 힘을 되찾는다면 테스론은 감히 마왕을 건드리지도 못한다.
‘그나마 육체가 바뀌어 이 정도 수준 차라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겠지…….’
고개를 저으며 테스론이 다시 명상에 들어가려던 차였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렐라인이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곁에 오자 테스론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어떤 처벌이 떨어졌습니까?”
아다만드릴 슈트는 은의 현자 내에서도 손꼽히는 귀한 물건이었다. 그걸 날려 먹은 테스론의 죄는 결코 작지 않았다. 내심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세렐라인이 빙그레 웃었다.
“일단은, 그대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상대의 강함을 정확히 측정 못 한 수호자들의 잘못도 있으니까요.”
테스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제 겨우 마법 쪽으로 레펜하르트를 상대할 길이 보였는데 여기서 은의 현자의 지원이 끊기면 기껏 잡은 희망도 흐려진다.
그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아쉽군, 아다만드릴 슈트가 건재했다면 좀 더 승률이 높았을 텐데…….”
아무리 마왕의 두뇌를 제대로 써서 대마법사가 될 수 있다 해도, 역시 오러와 마법을 융합해 쓰는 레펜하르트는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놈의 권마합신!’
솔직히 정신 고양을 이룬 지금도 저건 어떻게 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 테스론은 분명 마왕의 두뇌를 소화해 냈지만, 그래 봤자 전생의 마왕과 겨우 같은 시작점에 섰을 뿐인 것이다. 레펜하르트야 태어날 때부터 이런 상태였을 테니까.
역시 권왕으로 살아온 그 시절의 경험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실망한 듯한 테스론의 얼굴을 보며 세렐라인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제가 어떻게 해 볼게요. 아직 확답을 드릴 순 없지만…….”
테스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세렐라인은 설명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분들은?”
“유서스 경은 일단 테네스 가문으로 돌아갔고, 크리스틴 양과 필레나는 옆에서 수련 중입니다.”
세렐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상황을 마저 점검하기 위해 테스론 곁을 떠났다.
연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
크리스틴은 메사이어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성광검 메사이어를 쓰고도 레펜하르트 일행은커녕 정체도 모르는 조그만 트롤 소녀에게 당한 그녀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아무리 실란의 가공할 신성력이 뒤를 받쳐 주었다 해도 일개 몬스터에게 밀렸으니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별장으로 돌아온 크리스틴은 현재 메사이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매진 중이었다.
입자마자 아다만드릴 슈트에 적응해 버린 테스론, 애당초 자기가 써 오던 엘드라드를 강화했을 뿐인 유서스, 뛰어난 전투 센스를 타고 태어난 필레나는 아티팩트를 받은 즉시 그 힘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었다.
반면 크리스틴은 당시 메사이어의 힘을 절반도 제대로 못 꺼냈던 것이다. 똑같이 업그레이드 버서커 아머 받고 제대로 다룰 줄도 몰라 비명횡사한 스테반의 예도 있으니, 사실 운이 좋아서 살았지 제대로 된 오러 유저 만났으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