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62
☆ ☆ ☆
심연의 전당 밖의 커다란 광장.
그곳에서 거구의 오크와, 더 거구의 인간 노인이 서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허허, 오크 녀석이 제법 칼질을 할 줄 아는구나!”
제라드가 껄껄 웃으며 펀치를 날린다. 육중한 일격이 대검, 마그눔의 검면을 강타한다. 칼켄이 뒤로 10여 미터 넘게 주르륵 밀려났다.
“허억, 허억!”
숨을 헐떡이면서도, 칼켄은 감탄해 마지않는 눈으로 눈앞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평생 최강자로만 살아온 그였다. 같은 오크 중에는 누구도 그의 상대가 없었다. 유일한 적수가 소꿉친구로 어릴 때부터 티격태격해 온 스탈라였다. 결국 부부가 되었지만 아내는 여전히 그의 훌륭한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스탈라는 어쩔 수 없는 여인이었고, 칼켄보다 근력이며 파워가 떨어진다. 그녀의 오묘한 기술은 존경할 만하지만 역시 칼켄보다는 약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노인은 모든 면에서 그를 압도한다!
일단 덩치부터가 달랐다. 칼켄은 평생 자기보다 큰 사람은 처음 보았다. 예전 황야에서 만났던 오우거랑 비슷해 보인달까?
파워도 스피드도, 압도적이었다. 펀치며 킥이 스칠 때마다 ‘뱀들의 왕’이라는 엘더 스네이크의 꼬리치기를 맞은 듯한 충격이 느껴졌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조차도 제라드에게는 기술이 아니란 점이었다. 짐 언브레이커블 특유의 비기를 쓰지 않고 그냥 손발만 놀리는데도 상대가 안 된다!
“굉장하다! 늙은 인간 투사여! 그대야말로 투신鬪神이다!”
경외 가득한 눈으로 칼켄이 제라드를 바라보았다. 제라드가 허허 웃으며 손가락질을 했다.
“네 녀석도 보통이 아니다. 좀 어렸으면 데려다 가르쳤을 텐데, 아쉽게도 너무 나이를 먹었구나.”
저 ‘데려다 가르친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몰라 칼켄은 눈만 껌뻑거렸다. 하지만 묘하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말이었다.
‘이상하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어쨌거나 이 정도로 초월적인 강자를 만나는 것은 투사로서 최고의 영예다. 칼켄이 마그눔을 들고 스피리츠 웨폰을 발동했다.
“나의 맹우, 마그눔이여!”
대검이 찬란한 오러를 뿜으며 그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 떠오른다. 그 상태로 칼켄이 양손에 수도 형태의 블레이드 오러를 생성시켰다.
“이것이 나의 최고의 공격! 받아 주겠는가? 위대한 투사여!”
제라드가 흐뭇해하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오너라, 음미해 보자꾸나.”
백발을 휘날리며 칼켄이 기합과 함께 몸을 날렸다.
“타아앗!”
양손의 수도가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허공에서 합일된다. 합일된 블레이드 오러가 마그눔과 결합해 불규칙적인 뇌전을 그려 낸다. 그의 필살기인 벼락 떨구기, 칼켄은 요 몇 년간 고련을 통해 그것을 한층 더 강한 궁극기로 심화시켰다.
“날벼락 떨구기!”
오크답게 기술 이름이 좀 단순하긴 하지만, 어쨌건 이 오러 스킬은 벼락 떨구기의 몇 배나 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푸른 전격이 제라드의 가슴을 후려갈겼다.
제라드가 가슴을 늠름하게 폈다.
“더블 스파이럴 가드!”
우르르릉!
빛이 터지며 대지가 진동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레펜하르트가 감탄했다.
‘허, 칼켄 저 양반 그동안 더 세졌네.’
처음 만났을 때 레펜하르트는 칼켄과 동수를 이룬 적이 있다. 5중첩 캘러미티 혼을 터득하고 모든 면에서 무인으로서 강해진 지금은 확실히 칼켄을 능가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붙으면 승부를 장담 못 하겠는데?’
칼켄 역시 그동안 계속 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칼켄의 나이는 이제 마흔다섯, 오크로서는 중년이 지난 나이지만 여전히 청년기의 굴강한 육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성기의 육체에 노숙한 경험, 타 종족 오러 유저와의 만남과 온갖 전투로 이해 그의 기량은 더더욱 높아진 상태였다.
‘뭐, 그래 봤자 사부님에겐 안 통하지만.’
날벼락 떨구기는 분명 강력한 기술이었지만 제라드의 더블 스파이럴 가드에 막혀 정작 육체에 닿지도 못하고 가로막혔다. 하긴, 제라드로 하여금 더블 스파이럴 가드를 쓰게 한 것부터가 저 기술의 위력이 경천동지임을 증명하고 있다. 어지간해서는 그냥 스파이럴 가드만으로 막았을 테니까.
잠시 후, 한 대 거하게 맞은 칼켄이 허공에서 세 바퀴 돌며 얼굴부터 착지하는 서글픈 광경이 보였다.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쯧, 한 방이구먼.’
대련을 옆에서 보고 있던 푸른 곰 부족이며 다른 부족 출신 오크 전사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터트렸다.
“오오오오?”
“칼켄 족장님이 한 방에!”
“과연 투신이시다!”
“역시 백왕님의 스승다운 무위다!”
존경하는 족장이 개같이 날려 갔는데도 구경하는 오크들 중 분하다는 표정을 짓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제라드를 향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끝없는 존경과 경외의 시선만을 보일 뿐이었다. 주인 바라보는 충견도 저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날벼락 떨구기마저 안 통하다니? 진정 대단하도다!”
심지어는 맞고 날아간 칼켄조차도 전혀 분노한 표정이 아니었다.
“역시 오크…….”
레펜하르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오크는 강자를 숭상한다.
또한 무조건 큰 걸 미덕으로 치며, 단련된 육체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여긴다.
그런데 제라드는 ‘크고 아름다운 강자’다! 어찌 경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더구나 오크들에게 큰 은인인 레펜하르트의 스승인 만큼, 딱히 제라드에게 패한다 해도 자존심에 상처 입을 것이 없는 것이다.
덕분에 현재 오크 전사들 대부분은 제라드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스승의 파워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잘 패거라 빠르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의 육체는 강철이시다
아아, 부러워라 스승의 근육
아아, 본받으리 스승의 주먹
등의 괴상망측한 노래까지 불러 대며 한 수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무슨 신흥 사이비 종교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었다. 제라드도 그런 반응이 싫지 않은지 기분 내킬 때마다 친절하게 한 수씩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대씩 두들겨 팼다는 소리다.)
“하여튼…… 사부가 와서 정말 다행이었지.”
새삼 당시의 사투를 떠올리며 레펜하르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검성 바나텔의 힘은 굉장했다. 지금의 그는 감히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제라드가 없었다면 기껏 얻은 또 한 번의 생을 그대로 접을 뻔했다.
‘용케 도망칠 수 있었다 해도, 러스와 타시드는 잃었을 테고.’
문득 레펜하르트는 품을 뒤져 작은 은빛 엠블렘 하나를 꺼냈다. 제이드를 쓰러뜨렸을 때 발견했던 물건이었다.
“흐음.”
옅은 신음을 흘리며 레펜하르트가 마저 품을 뒤졌다. 이번에는 저 은빛 엠블렘 십수 개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이 수많은 은빛 엠블렘을 보며 그는 사부와 재회했을 당시를 떠올렸다.
3
쓰러진 지 하루 뒤, 제라드는 다시 깨어났다. 그때 레펜하르트 일행은 지원군의 호위를 받으며 아라난 그라드로 향하고 있었다. 숙영지의 모닥불을 앞에 두고 레펜하르트는 대뜸 질문부터 던졌다.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사부?”
따지듯 묻는 것은 아니었다. 제라드의 등장은 분명 기적이나 다름없는 행운이었다. 그가 없었으면 입을 피해는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다. 당연히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그저 순수한 의문이었다.
레펜하르트가 아는 짐 언브레이커블은 제자가 위험에 처했다고 구하러 온다거나 하는 그런 소심한 문파가 아닌 것이다.
딱히 제자의 생명을 신경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계자라면 그 어떤 위험이 닥쳐도 굳건히 헤쳐 나갈 것이다!’라는 굳은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볼일이 아니고서는 제라드가 자신을 찾을 리가 없었다.
“음…….”
제자의 질문에 제라드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숙영지 내에는 오크와 드워프, 인간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저마다 불을 피우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라드가 수염을 쓰다듬더니 감탄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네 소문은 오가며 들었다. 제법 희한한 짓을 하고 다닌다고 하더구나? 노예 것들 모아다 사람 취급 하면서 왕국도 세웠다며?”
“아, 예…… 그냥 어쩌다 보니…….”
레펜하르트가 뜨끔한 표정으로 제라드의 눈치를 보았다.
생각해 보니 아무리 그의 사부라지만, 제라드는 엄연히 이종족에 대한 편견 속에서 살아온 이 시대의 인간이었다. 상식인이라면 분명 노예들을 데려다 희한한 짓 하며 질서를 어지럽힌다고 화를 낼 것이었다.
그렇다. 상식인이라면.
“잘했다!”
짝!
제라드가 호쾌하게 레펜하르트의 등을 두들겼다. 그리고 캑캑대는 제자를 향해 흡족한 미소를 보냈다.
“암! 짐 언브레이커블이 사고를 치면 이 정도 스케일은 되어야지! 허허허!”
레펜하르트는 멍하니 그의 사부를 바라보았다. 어째 전혀 화를 내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꽤 기분 좋아 보이기까지 한다?
“어, 사부…… 혹시 사부도 이종족들을 사람으로 느끼게 되셨습니까?”
레펜하르트가 은근 기대를 하며 물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혹시나 제라드도 그의 사상에 감화된 것일까?
물론 그것은 짐 언브레이커블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였다. 제라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사람?”
어째 표정이 뭔 소리 하는지 도통 못 알아듣겠다는 듯했다. 레펜하르트가 풀어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혹시 사부도 엘프나 오크 들을 인간처럼 사람으로 대하게 되셨나 해서…….”
얼토당토않다는 듯 제라드가 대꾸했다.
“무슨 소리냐? 어차피 다 똑같이 약한 것들 아니냐? 인간이나, 이종족이나 그게 그거지.”
그렇다.
제라드는 이종족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도 사람으로 안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딱히 제라드가 약자를 사람 취급 안 하는 흉악한 인간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에게 있어 짐 언브레이커블 수준의 강자가 아니면 죄다 거기서 거기인 허약한 존재인 것이다. 레펜하르트와는 다른 의미로 그는 모든 종족을 평등하게 대하고 있었다.
“자고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최소한 맨몸으로 칼날 정도는 튕겨야지!”
“음, 그렇군요…….”
레펜하르트는 반성했다. 제라드를 상대로 상식을 떠올린 것이 잘못이었다. 원래 그의 사부는 저런 인간이었다.
어쨌거나 제라드는 현재 안타레스 백국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뭔 짓을 하건 통 크게만 하면 되는 거야! 우리 무문이 오랫동안 권왕이니 권황이니 불리긴 했는데, 실제로 왕 된 놈은 너밖에 없다. 장하다, 제자야!”
“아, 감사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레펜하르트는 고민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 그런데 진짜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설마 저 보고 싶어서 왔을 리는 절대 없을 테고.”
“응? 내가 네놈을 왜 보고 싶어 하느냐?”
과연, 역시 저런 인간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갑자기 제라드가 안색을 굳히더니 물었다.
“제자야.”
“네, 사부.”
“너 요새 이상한 데 원한 진 것 있느냐?”
레펜하르트는 잠시 신음했다.
“원한이라…… 좀 많이 지긴 했죠?”
대륙 각지에서 노예 훔쳤지, 연금술사 길드마다 털어 가며 트롤 빼냈지, 차탄 공국의 수도를 깡그리 불태우고 멀쩡한 협곡도 하나 뭉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