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64
“아, 예…….”
짐 언브레이커블 자신조차도 스스로 무식한 건 알고 있었구나. 새삼 깨달으며 레펜하르트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내가 마법사란 것까지 아시면 기겁하시겠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라드는 바나텔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어 레펜하르트가 마법 쓰는 광경까진 보지 못했다. 뭐, 그렇다 해도 결국은 들키겠지만. 그때는 어떤 핑계를 대야 하나 레펜하르트가 고민하던 참이었다.
제라드가 그를 살펴보더니 갑자기 씨익 웃었다.
“쪼그매서 걱정했는데 이젠 제법 사내다운 티가 나는구나. 그래, 우리 무문이 그렇게 조그마할 리가 없지.”
만족스럽다는 듯 웃고 있는 사부를 보며 레펜하르트는 인상을 썼다.
결국, 요 몇 년 사이 그의 신장은 2미터를 돌파해 버렸던 것이다! 현재 2미터 하고도 5센티미터 정도 더 큰 상태다. 근육도 더 커진 바람에 체중도 불어서, 슬슬 150킬로그램 가까이 나가고 있었다.
“휴우…….”
“잉? 왜 한숨을 쉬느냐?”
“네? 아, 아뇨! 아직도 이것밖에 안 컸나 싶어 슬퍼서요.”
잽싸게 딴소리를 하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제라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왔느냐? 나 찾았다고 하던데?”
그제야 용건이 떠오른 레펜하르트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 ☆ ☆
검성 바나텔과 타국 오러 유저의 침략은 레펜하르트에게 크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제플린 해방 작전은 세인의 추측처럼 무턱대고 뒷생각 없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각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현 안타레스 백국의 힘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서 시행한 일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대륙 각국은 카를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았던가? 바슈탈론 제국이나 세이어 교단이 적으로 돌아설 것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대륙 정세상 당장 어떻게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계획대로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분명 바슈탈론 제국은 군대를 움직여 전쟁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군대나 다름없는 존재인 검성 바나텔과 열 명의 오러 유저라는 패를 꺼내 들었다. 이쪽에서 제라드라는, 스스로도 예상 못 했던 조커가 있지 않았다면 일격에 털려 버렸을 강력한 패다.
역시 강력한 힘의 존재는 어떤 모략도, 정치도 뛰어넘는다. 당장 전생의 레펜하르트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었던가?
후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역시 검성 바나텔과 동급의 강자인 권황 제라드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제라드라는 강력한 무력 억제력이 있다면 10서클의 힘을 되찾을 때까지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그래서, 안타레스 백국이 안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사부님이 여기 좀 머물러주시면서 보호해 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레펜하르트의 말에 제라드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저것들을 지켜 달라고?”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한쪽 눈을 치켜떴다.
“내가 뭐하러?”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사부를 보며, 레펜하르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짐 언브레이커블의 특성상, 제자가 뭔 일에 처하건 무관심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자신을 지켜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하들 좀 보호해 달라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길 줄은 몰랐다.
‘그래도 워낙 제자를 아끼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줄 줄 알았는데.’
티 안 나게 표정 관리를 하며 레펜하르트가 제라드를 달랬다.
“새 제자 찾느라 바쁘신 건 압니다만…… 새 제자 찾는 것보다 있는 제자 잘 간수하는 것이 짐 언브레이커블의 무맥을 잇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레펜하르트는 당황했다.
어째 상황이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제라드는 귀찮다거나 쩨쩨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왜 그러야 하는지 이해조차 못 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하산해 놓고 다시 사부 찾는 건 좀 쪽팔리지 않느냐? 사내새끼라면 응당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지!”
“그런 문제가 아니라…….”
박수도 반대편이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이를 상대하고 있자니 이쪽의 사고가 마비되는 기분이다.
“아, 그러니까 그게…….”
뭐라 말해야 할지 애매해하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카를이 고개를 저었다.
“쯧쯧…….”
그의 주군은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계자면서도, 아직도 자신의 무문에 대해 저리 모르나? 카를이 한 발 나서서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권황이시여.”
“오, 카를 재상!”
카를이 말을 걸자 제라드가 반색을 했다. 안 그래도 그는 ‘문관’ 주제에 몸을 단련하는 카를을 대견하게 여기고 있었다. 뭐, 짐 언브레이커블에 비하면 여전히 수수깡 같은 몸이지만 그래도 됨됨이가 기특하지 않은가?
카를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아라난 그라드에 머무실 동안 백왕궁 호위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는 권왕 레펜하르트가 아닌 안타레스 백국의 이름으로 드리는 의뢰입니다.”
레펜하르트가 눈을 껌뻑였다. 아까 자신이 부탁한 거랑 같은 소리잖아, 저거?
그때 카를이 한마디 더 이었다.
“숙식 제공에 일당 금화 백 닢입니다.”
일당 금화 백 닢이면, 월 삼천 닢.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제라드가 벙그레 웃더니 바로 대답했다.
“좋다!”
제자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사부로서 행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무맥을 잇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이미 하산한 제자 계속 돌보는 건 제자의 앞날에도 도움이 안 되고 또 어미가 다 큰 자식 치마폭에 감싸는 것처럼 ‘남자답지 않은 과보호’다. 사나이다움을 강조하는 짐 언브레이커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수치다!
하지만 일국의 의뢰를 받아 ‘약한 자’를 보호하는 것은 오히려 남자답고 멋진 일인 것이다.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제라드가 카를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 계약서나 가져오게. 몇 달 계약으로 할까? 계약금은? 선불로 오천은 땡겨 줘야겠는데?”
뭐랄까, 사내다움을 강조하는 주제에 또 보통 무인들이 기피하는 돈 문제는 철저히 챙긴다. 하지만 이것이 제자 키우는 데 떼돈 드는 짐 언브레이커블의 상식이었다.
“기껏 힘쓰면서 제 몫도 못 받으면 그게 무슨 남자냐? 호구지. 남자라면 자고로 자기 밥그릇은 철저하게 챙겨야 하는 법이다! 그나저나 녀석, 진짜 돈 많이 벌었구나? 참으로 대견하기 그지없다, 하하하!”
레펜하르트 등을 두들기며 제라드는 호탕하게 웃었다. 캑캑대며 레펜하르트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저 무문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내 숙소를 어디로 할까? 이왕이면 널찍하고 광장 가까운 방 잡아야지. 그래야 저 오크 녀석들 재롱부릴 때마다 가르침 주기가 편하겠지? 등을 중얼거리며 제라드가 황궁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레펜하르트가 슬그머니 카를을 보며 향상된 메시지 마법을 썼다. 제라드의 가공할 청력이면 아무리 귓속말을 해 봐야 다 들을 것이 빤하니 아예 마법을 쓴 것이다.
‘그런데…… 우리 예산이 그 정도가 되오?’
매월 금화 삼천 닢이면 족히 군대 오천 명을 한 달 동안 유지할 거액이었다. 실제로 크로방스 내전의 판도를 바꿨을 때 레펜하르트가 쓴 액수가 저쯤인 것이다. 뭐, 당시엔 인플레 효과를 크게 봤었지만 어쨌건 결코 작은 액수는 아니다.
카를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향상된 메시지 마법은 쌍방 통행이라, 카를의 목소리도 마법으로 레펜하르트에게 전달되었다.
‘그 정도 예산은 빼낼 수 있습니다. 검성 바나텔에게 바슈탈론 제국이 매달 내리는 액수가 금화 천 닢이라 들었습니다. 권황 제라드 정도 되는 초인을 고용하는 비용으로는 결코 비싼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매월 금화 삼천이라니, 족히 군대 오천 명은 유지할 거액 아닌가?’
‘네, 고작 병사 오천이지요. 엄청 싼 거잖습니까?’
‘어,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네.’
안타레스 백왕성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생긴 호수를 떠올리면, 확실히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시종 하나가 잽싸게 양피지를 들고 왔다.
카를이 즉석에서 일필휘지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제라드가 사인한 뒤 자기 측 계약서를 품에 챙겼다.
이걸로, 권황 제라드는 한시적이지만 공식적으로 안타레스 백국의 호위 무장이 되었다.
“좋아, 이 기회에 인간 말고 딴 놈들 중에도 쓸 만한 애 있나 찾아봐야겠군. 내 이제껏 대륙 돌아다니면서 이종족들은 신경 써 본 적이 없거든. 이거 참 색다른 기회로구먼.”
휘적휘적 회랑을 떠나며 제라드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멀어지는 사부를 향해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숙였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사부.”
“오냐, 걱정 마라! 일단 맡은 이상 책임은 다 한다!”
손을 흔들며 제라드가 회랑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허리를 펴면서 레펜하르트는 굳게 결심했다.
‘빨리 사방신의 유물부터 찾으러 가야겠다. 저 양반 계속 고용하다간 백국 재정이 거덜 나겠어!’
회귀한 이래 이토록 전생의 힘이 그립긴 처음이었다.
근검절약을 위해서, 어서 10서클의 힘을 되찾아야 한다!
4
안타레스 백왕성이 아라난 그라드로 천도한 지도 어언 한 달째.
슬슬 백왕궁 가이라크는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미비한 서류를 모두 보완한 카를의 행정 업무도 다시 궤도에 올라섰고 틸라를 비롯한 내궁부의 여인들도 새로운 왕궁 생활에 적응했다.
백왕궁 가이라크의 내부 공사 역시 급한 대로 숙소부터 먼저 건축한 덕에 더 이상 천막생활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직 여기저기 미완공된 부분이 남아 있지만 왕궁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은 갖추게 된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러스와 타시드도 병상을 털고 일어났다.
“자, 갑니다! 형님!”
백왕궁 서쪽에 마련된 거대한 연무대, 그곳에서 레펜하르트와 러스가 오러를 끌어 올린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옆에선 타시드가 참마도, 다카르를 든 채 둘의 대결을 유심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늦여름이지만 장마철이라 그런지 날씨가 꽤 선선했다.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흐릿한 회색 구름이 서서히 흘러갔다.
레펜하르트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대꾸했다.
“좋아, 준비됐다! 덤벼 봐!”
며칠째 누워 있다 겨우 완치된 러스와 타시드는 우선 근질근질한 몸부터 풀었다.
이미 백왕성에서 오러 유저의 ‘난동’을 뼈저리게 겪은 카를이다. 그래서 가이라크에 마련된 이 ‘오러 유저 전용 연무대’는 그들의 위력을 정확히 계산해 온갖 마법 결계와 아티팩트로 충격 흡수가 가능하도록 만든 곳이었다. 덕분에 여기서는 마음껏 날뛰어도 틸라에게 구박받을 일이 전혀 없었다.
뭐, 그 대신 카를이 바가지를 좀 긁히긴 했지만.
-아직 개간할 데 많이 남았는데! 카를 미워요!
솔직히 카를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개간한답시고 오러 유저 전부 수도 비웠다가 그 타이밍에 적이라도 쳐들어오면 어쩌란 말인가? 되도록 아라난 그라드에 오러 유저들을 상주시켜야 급습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반월참! 잔월!”
러스가 길게 횡으로 베어 가며 블레이드 오러를 뿌렸다. 반달 형태의 오러 참격이 뿌려지며 허공에 머물러 레펜하르트의 사방을 점유한다.
푸른 블레이드 오러를 내리그으며 러스가 기술을 완성했다.
“굉천월광!”
할라인 왕국의 오러 유저 카메룬 경의 고유 오러 스킬, 굉천월광이 완벽하게 그의 손에서 재현되었다. 푸르른 섬광이 레펜하르트를 직격했다. 그가 두 팔을 앞으로 모으며 방어 형태를 취했다.
“스파이럴 가드!”
콰콰쾅!
폭음이 울리고 흙먼지가 피었다. 스파이럴 가드를 펼쳤음에도 레펜하르트의 거구가 뒤로 10여 미터 이상 밀려났다.
잠시 후, 레펜하르트가 팔을 털며 흡족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기간틱 블레이드보다 더 센데?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었군, 러스.”
“그래도 형님의 스파이럴 가드는 못 뚫네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겸손을 떨면서도 러스의 얼굴에는 싱글벙글 웃음기가 돌고 있었다.
몸이 낫자마자 러스는 타시드와 함께 연무대로 달려가 새로 ‘훔친’ 기술 터득에 열정을 불살랐다.
이번 사태로 건진 오러 스킬이 대체 몇 개던가?
검성 바나텔의 오러 스킬이야 있으나 마나 하니 제외하더라도, 열 종류나 되는 새로운 오러 스킬을 대거 입수한 것이다. 열심히 베껴다 자기 스타일에 맞게 변환하고 타시드에게도 가르쳐 주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원 주인이 보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었다.
그리고, 러스는 새로 얻은 기술 외에 원래 있는 기술을 심화시키는 것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럼 형님, 이번엔 조심하시길. 이건 피할 수 없는 공격입니다.”
“대비하고 있어. 해 봐.”
“좌측 허벅지로 가겠습니다!”
미리 공격 위치까지 알려 준 뒤, 러스가 검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길게 횡 베기를 날렸다.
“허공검, 호라이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