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77
앞에서 막는 놈들은 테스론의 블레이드 오러에 척척 썰려갔다.
그렇게 주위의 악령들을 날파리 취급하며 두 사람은 계속 복도를 따라 추격전을 벌였다.
“어디까지 도망칠 셈이냐, 테스론!”
“도망치다니? 어디까지나 반대쪽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내달린 후였다. 드디어 복도가 끝나고 거대한 공간이 나왔다. 새하얀 벽면으로 사방이 뒤덮인, 높이만 족히 수십 미터에 달하는 넓은 전당이었다.
틈새 여기저기서 용암이 흘러내리고 바닥 일부는 무너져 밑으로 흐르는 마그마의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끝에 위치한 것은 용도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조형물이었다. 파이프 오르간과 테이블, 왕궁의 옥좌를 뒤섞으면 저런 형태가 아닐까 싶다.
전당에 들어서자 테스론이 눈을 빛내며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레펜하르트도 속도를 늦췄다.
“흥! 더 이상 도망치는 건 관뒀나?”
“아니, 이 정도 공간이면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
테스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레펜하르트도 더 이상 거리를 좁히지 않고 경각심을 높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8서클까지 돌파한 모양인데, 그래 봤자 권마합신을 터득한 그의 적수는 못 된다.
“아다만드릴 슈트라 했던가? 그것도 박살 났는데 뭐로 상대할 셈이지?”
“확실히 그 아티팩트는 더 이상 없지. 하지만!”
테스론이 갑자기 품에서 작은 보석 하나를 꺼내 허공에 던졌다.
“소환!”
빛이 터지며 복잡한 마법진이 허공에 그려졌다. 이내 육중한 황금빛 덩어리가 마법진을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또 아다만드릴 슈트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전장 3미터 정도의, 웅크린 마수를 조각한 듯한 괴이한 형태였다.
레펜하르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또 뭐야?’
기물도 기물이지만, 저 소환 방식이 더 흥미롭다. 공간 이동? 아니다. 멀리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 보석을 매개체로 공간을 접어 아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사물을 넣는 방식이다.
아공간을 다루다니, 은의 시대 유물 중에서도 극히 보기 드문 권능이다.
‘저런 기물이 또 있다니!’
그렇게 잠깐 마법사의 호기심에 정신이 팔린 사이, 테스론이 조각상에 손을 뻗었다. 아차 싶어 레펜하르트가 주먹을 들었다.
“그렇게 놔둘 것 같으냐!”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 보아하니 아다만드릴 슈트와 비슷한 계통일 터였다. 그렇다면 장착하게 놔두는 것은 바보짓이다. 레펜하르트가 바로 기격탄을 날려 허공의 조각상을 후려갈겼다.
꽝!
조각상이 그대로 밀려나가 저만치 바닥을 나뒹굴었다. 텅텅 깡통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히죽 웃으며 레펜하르트가 테스론에게 덤벼들었다.
“아무리 강력한 아티팩트라도 입지 않으면 무용지물!”
폭풍처럼 치달리며 바로 펀치를 내뻗는다. 테스론이 검을 던지고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오러 실드를 만들고 그 위에 강력한 마법의 역장을 드리운다!
“포스 배리어!”
황금빛 오러가 분출하며 테스론의 광막을 두들겼다. 광막이 이내 깨지며 테스론의 몸이 뒤로 날려 갔다. 레펜하르트가 후속타를 위해 재차 몸을 날리려던 순간이었다.
콰앙!
저만치 날아가 뒹굴던 조각상이 갑자기 폭염을 분출하며 날아올랐다. 제 멋대로 허공을 날더니 대뜸 레펜하르트를 향해 수십 개의 섬광을 뿜어 댔다.
“엥?”
아무런 조짐도 없이 저 혼자서 움직였다? 당황한 레펜하르트가 스파이럴 가드로 공격을 막았다. 폭발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동안 조각상이 어느새 테스론에게 근접했다.
날려간 테스론이 차갑게 웃으며 사지를 활짝 펼쳤다.
“와라! 드래고닉 발러 아머!”
위이잉!
금속음이 울리며 조각상이 일순 산산이 분해됐다. 흩어진 조각상의 파편이 스스로 테스론의 전신으로 날아가 달라붙었다. 조각끼리 서로 연결되고 이음새를 메우며 거대한 형상으로 화했다.
충격에서 벗어난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들었다.
이미 그 자리에 테스론은 없었다.
있는 것은 전장 4미터가 넘는 거대한 금속 거체. 전신이 금빛으로 빛나는 괴수의 형태뿐.
바닥을 내디딘 네 다리에 섬뜩한 발톱이 빛을 발한다. 커다란 동체엔 황금색 껍질이 두껍게 뒤덮여 있다. 긴 목 위에 달린 것은 뱀의 머리, 하지만 양쪽으로 난 커다란 뿔은 그것이 단순한 뱀이 아님을 보여 준다.
오지의 유명한 마물, 드레이크와 같은 형상이었다. 하지만 드레이크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으니 바로 등 뒤로 돋아난 두 장의 커다란 날개였다. 박쥐 날개를 연상케 하는 두 금속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크아아아!”
전설 속의 마수, 드래곤의 형상이 레펜하르트의 눈앞에서 포효하고 있었다.
☆ ☆ ☆
거대한 황금의 드래곤이 된 테스론이 높은 곳에서 두 눈을 반짝였다.
“자, 레펜하르트! 이제 네놈도 끝이다!”
레펜하르트는 놀란 눈으로 테스론을 올려다보았다. 전설 속 드래곤처럼 몇 백 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저 4미터가 넘는 거체는 위압감이 있었다. 신장 2미터의 그에게조차도.
‘저건 또 어디서 구한 거야? 진짜 신기하네.’
두렵다는 듯 레펜하르트가 질문했다.
“……설마 네놈이 방금 크아아아~라고 울부짖은 건 아니겠지, 테스론? 짐승 갑옷 입었다고 머릿속도 짐승이 됐냐?”
드래곤의 이빨 사이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이건 그냥 드래고닉 아머 시동 소리다! 내가 낸 소리가 아니라고!”
이를 갈며 테스론이 움직였다. 여기서 마왕의 심리전에 휘말리면 자신만 손해였다. 드래곤이 입을 벌리더니 이내 불길을 토해 냈다.
콰콰콰콰!
시뻘건 화염이 일직선으로 레펜하르트에게 날아갔다. 살짝 옆으로 뛰어 간단히 공격을 피하며 레펜하르트도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그가 핀잔을 던졌다.
“이 유치한 공격은 뭐냐?”
위력은 둘째 치고, 그냥 직선으로 불길을 내뿜을 뿐이니 피하기가 너무 쉬운 것이다. 레펜하르트가 바로 드래곤의 동체에 앞차기를 꽂아 넣었다.
콰앙!
폭발이 일어나며 레펜하르트가 뒤로 튕겨 나갔다. 그 순간 테스론이 오러 가드를 펼쳐 타격 부위를 감싼 것이었다. 스파이럴 가드는 아니었는데도 간단히 레펜하르트의 킥이 막혔다.
“아다만드릴 슈트보다 더 단단하군!”
역시 같은 재질이더라도 구조상 인간 형체인 아다만드릴 슈트보다 저 짐승 형태가 더 튼튼하다. 테스론이 바로 반격에 들어갔다.
“죽어라! 마왕!”
앞발을 휘두르며 테스론이 레펜하르트의 좌우를 후려갈겼다. 두 팔을 들어 공격을 막자 이내 꼬리를 휘둘러 추가타를 날린다. 튼튼한 육체를 믿고 레펜하르트가 그대로 공격을 받았다. 꼬리가 가슴을 때리며 그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크윽!”
강철 같은 육체인데도 충격이 있다. 살짝 신음을 흘리며 레펜하르트가 바로 몸을 날렸다. 낮은 자세로 빠르게 파고들며 긴 목을 향해 강렬한 훅을 날린다!
“제로 임팩트!”
드래곤을 관통해 내부의 테스론에게 충격을 가할 셈이었다. 하지만 아다만드릴 슈트처럼 이 드래고닉 아머도 충격 흡수 능력이 있는 모양인지, 타격이 갑옷 전체로 퍼져나가며 드래곤의 거체가 흔들렸다.
“소용없다! 마왕!”
“흠, 기본은 아다만드릴 슈트랑 비슷하군. 갑옷 상대하는 감각은 안 되나?”
냉철히 상대를 분석하며 레펜하르트가 공격을 이었다.
“타아아앗!”
연달아 좌우 훅과 스트레이트 펀치를 연계하며 폭풍처럼 돌진한다.
텅텅텅텅!
덩치에 비해 속은 꽤나 비었는지 쇳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테스론이 허둥지둥 앞발을 휘두르고 꼬리를 날리며 날갯짓을 했다. 사방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공격이 들어왔다.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쉽게 그 모든 공격을 계속 피하며 반격했다.
“뭐냐? 이 쓸모없는 아티팩트는?”
공격이 너무 단순하다. 이래서야 그냥 보통 골렘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도대체 왜 굳이 안에 기어들어 간 거야?
“차라리 그 아다만드릴 슈트가 더 강했다! 테스론!”
아다만드릴 슈트를 걸친 테스론은 확실히 대단했다. 왕년의 힘을 모두 되찾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짐 언브레이커블의 모든 기술을 구사하며 강렬한 위력을 보였다.
반면 이 드래곤 형태는 아무 짝에 쓸모가 없는 것이다!
겉보기엔 강해 보이고 위압적일지 모르겠는데, 그래 봤자 네 발 짐승에 날개 달아 놓은 형태다. 제일 중요한 테스론의 경험, 짐 언브레이커블의 체술은 하나도 쓸 수가 없다. 그저 아티팩트의 힘과 내구도만 믿고 억지로 휘둘러 대는데 그런 단순한 공격에 맞기엔 현재 레펜하르트의 체술 수준이 너무 높았다.
“연환 기격탄!”
꼬리치기를 피해 날아오른 레펜하르트가 드래곤의 전신에 오러를 쏘아 댔다. 공격을 채 피하지 못하고 모조리 맞은 채 드래곤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테스론이 신음을 터트렸다.
“크, 크윽!”
신체 형태가 다르니 아무리 일체화되었다 해도 스파이럴 가드를 쓸 수가 없다. 감각이 너무 다른 것이다. 밀린 테스론을 보며 레펜하르트가 비아냥을 던졌다.
“쯧쯧, 그냥 아다만드릴 슈트나 들고 오지 그랬나?”
드래곤이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으드득 인간이 이 가는 음향이 흘러나왔다.
‘젠장! 누군 몰라서 이러는 줄 아나? 있었으면 나도 그거 들고 왔지!’
아다만드릴 슈트를 대신해 은의 수호자가 내린 기물, 드래고닉 발러 아머.
이는 아다만드릴 슈트처럼 고대에서 연구한 장착형 골렘 중 하나였다. 기본적으론 아다만드릴 슈트와 같은 계통의 물건이다. 솔직히 테스론도 은의 시대 고대인이 왜 이 따위 장착형 골렘을 만들었는지는 이해 못 하고 있었다.
‘아니, 개한테 입힐 것도 아니고 사람 쓸 물건인데 뭐하러 사족 보행체를 만든 거야? 그 재료로 아다만드릴 슈트나 하나 더 만들지!’
여기서 일반인과 엔지니어의 감각 차이가 나온다. 일반인은 쓸 만한 물건 하나 만들면 그거나 계속 만들면 된다고 여기지만 엔지니어의 마인드는 다르다. 괜찮은 거 하나 만들면 그걸 응용해서 어떻게든 새로운 걸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고대나 지금이나 엔지니어의 사고방식은 그리 큰 변화가 없다.
어쨌거나, 아쉽게도 은의 현자는 개발자가 아닌 수탐자다. 입맛대로 적합한 무구가 척척 나오는 게 아니란 소리다. 아다만드릴 슈트는 하나뿐이라 날아간 시점에서 끝이었다. 그래서 대신 비슷한 무구인 이 드래고닉 발러 아머를 받은 것인데…….
“이런 쓸모없는 아티팩트를 믿은 거였나, 테스론?”
의기양양하게 호통을 치며 레펜하르트는 계속 테스론을 공격했다. 온갖 펀치와 킥, 오러와 마법이 화려하게 드래곤 형태의 테스론을 두들겨 댔다. 움직임이 둔하니 때리는 족족 다 맞아 준다. 참 신 나는 샌드백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워낙 단단하다 보니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갑옷에 금 정도나 갈 뿐 치명타를 가하긴 힘들다.
‘그래도 반격당할 걱정이 없으니 두드리다 보면 부서지겠지?’
레펜하르트는 느긋하게 계속 연타를 날렸다. 테스론은 여전히 드래곤 형태로 허우적대고 있었다. 기다란 주둥이 사이로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윽! 이거 이렇게 하는 거였는데? 그때 한번 연습해 봤는데?”
레펜하르트는 어리둥절했다.
‘뭐 하는 거야, 도대체?’
아까부터 계속 저런 식으로 중얼대는데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러던 중이었다. 갑자기 테스론이 쾌재를 외쳤다.
“아, 이거군!”
“응?”
휘이이잉!
갑자기 드래곤이 크게 날갯짓하며 광풍을 일으켰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오러가 깃든 것이라 레펜하르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싯누런 오러 바람에서 잽싸게 그가 자세를 가다듬는 동안이었다.
위이이잉!
또다시 기계음이 들렸다. 동시에 드래곤이 일어섰다!
개나 고양이가 먹이 받아먹듯이 뒷다리로 땅을 디딘 채 상체를 들어 올린 것이다. 또한 갑옷 전체가 기이하게 뒤틀리고 부품 여기저기가 변환하며 형태 전체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뭉툭하던 몸체가 압축되며 가늘어진다. 앞다리가 긴 팔로 변하며 손가락이 길어져 인간의 손 형태로 변한다. 앞으로 늘어졌던 목이 척추를 따라 꼿꼿이 선다. 엉덩이 쪽이 들어가고 뒷다리가 직선으로 뻗어 전신을 받친다.
레펜하르트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변신했어?”
이미 더 이상 테스론은 드래곤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과 드래곤을 합친 듯한, 용인의 형태가 되었다.
테스론이 소리쳤다.
“됐다! 드라칸 모드!”
신장이 3미터가 넘는 거대한 용인이 되어, 테스론이 자세를 취했다. 짐 언브레이커블의 기본자세로 그가 주먹을 내밀었다.
“스파이럴 가드!”
우우웅!
용인의 전신으로 싯누런 오러가 회오리쳤다.
“좋아! 되는군!”
테스론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껄껄 웃었다.
“후후, 잠깐 기분 좋았겠지, 레펜하르트? 하지만 장난은 여기까지다!”
레펜하르트가 허탈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