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89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비단 교역 도시 자루드뿐만이 아니었다. 전 국민의 수에 비하면 비록 소수지만 여전히 이종족을 고깝게 보는 시선은 존재했다. 국법이 지엄해 감히 드러내질 못할 뿐이다. 홀로 다니거나 소수로 다니던 이종족 행인이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주로 오크와 드워프가 그 대상이었다.
아무래도 엘프는 인간이 보기에도 아름다워 크게 반발심을 느끼지 않는다. 트롤은 워낙 수가 적고 자신들의 마을에서 잘 나오지 않으며, 돌아다니는 이들은 강력한 힘을 지닌 구루뿐이니 딱히 습격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비교적 수가 많으면서도 인간과 확연히 다른 외모를 지닌, 게다가 그리 부러워할 외모가 아닌 오크와 드워프에 대한 차별은 엄연히 존재했다.
인간인 이상 외모에 구애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무리 이종족이라고 해 봤자 머리 굳은 이들에게 오크는 못생긴 괴물이고 드워프는 못생긴 난쟁이일 뿐인 것이다. 크로방스와 안타레스 관청에서 추가 인원까지 보충하며 차별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모든 지역에 국가의 손이 닿지는 않았다.
그리고 차별이 일어나는 것은 오색의 도시, 아라난 그라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 ☆ ☆
아라난 그라드의 거리를 한 연인이 걷고 있었다. 젊은 인간 청년과 아리따운 미모의 엘프 여인이었다. 사이좋게 손을 잡은 채 인간 청년이 엘프 여인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꿈만 같아, 질레인. 당당히 널 내 아내라 말할 수 있다니.”
“저도요, 헬바트 님.”
감미로운 음성으로 엘프 여인이 대꾸했다. 인간 청년이 쯧쯧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헬바트 님이라니? 이젠 여보라고 불러야지?”
“……여보.”
그들은 탄압을 피해 이곳 아라난 그라드로 이주해 온 이들이었다. 이곳에선 두 사람의 사랑을 당당히 인정해 준다. 이미 그들은 필라넨스 신전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꿈에도 그리던 떳떳한 부부가 되었다.
“사랑해, 질레인.”
인간 청년이 엘프 여인의 뺨에 키스하며 즐거워했다. 엘프 여인도 행복해하며 남자에게 달라붙었다. 그렇게 거리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복면 쓴 이들이 나타났다. 흠칫 놀라 청년이 여인을 감싸며 물었다.
“응? 뉘시오?”
복면을 쓰고 있지만 뾰족한 귀가 확실히 드러났다. 즉, 이들은 엘프 남자들인 것이다. 당황하며 인간 청년이 재차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제일 앞에 선 엘프 청년이 호통을 쳤다.
“비열한 인간 놈! 언제까지고 그런 더러운 수작질을 할 셈이냐!”
“수작질이라니, 그게 무슨…….”
당황한 인간 청년을 엘프들이 모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쓰러져 인간 청년이 비명을 질렀다.
“억! 어억! 살려…….”
연신 발길질을 하며 엘프 청년들이 이를 갈았다.
“천벌이다! 인간 놈아!”
“아직도 엘프가 네놈의 더러운 노리개로 보이나 본데…….”
“그 썩은 머릿속을 뜯어고쳐 주마!”
두들겨 맞으며 인간 청년이 신음을 흘렸다.
“아, 아니오! 나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해서…….”
엘프 여인, 질레인이 울상을 지으며 동족 청년들에게 매달렸다.
“하지 말아요! 제 남편이란 말이에요!”
짝!
엘프 청년이 질레인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여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더러운 창녀 같으니!”
“수치도 모르는구나!”
“인간들과 놀아나고도 선조께 부끄럽지 않느냐?”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결국 인간 청년이 혼절해 버렸다. 엘프 여인이 엉엉 울며 다시 소리쳤다.
“그러지 마요! 정말 제 남편이란 말이에요!”
그러자 이번엔 엘프 남자들이 여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시 따귀가 날아갔다. 여인이 뺨을 감싸고 쓰러졌다.
“수치도 모르고 다리를 벌린 벌이다!”
“교훈을 얻었기를 바란다. 창녀 같은 년!”
걸레처럼 널브러진 인간 청년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낸 뒤 엘프 청년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말했다.
“갑시다, 동지들! 아직도 인간의 세뇌에 빠진 동족의 여인들이 많소. 그들에게 교훈을 내려야 하오!”
“물론입니다!”
“아직도 우리 종족을 노리개로 보는 더러운 인간 놈들이 많으니, 결코 쉴 수 없지!”
그때 저 멀리서 호각 소리가 들렸다. 엘프 청년들이 당황했다.
“윽? 도시 경비대다!”
“도망쳐!”
쓰러진 인간 청년의 머리를 한 번 더 걷어찬 뒤, 엘프 청년들이 우르르 거리 너머로 사라졌다. 질레인이 엉금엉금 기어가 남편에게 다가갔다. 펑펑 울며 쓰러진 남편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여보, 일어나세요! 여보오……!”
도시 반대편에서는 가판대를 차린 트롤 행상 하나가 한 인간 중년인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이거 사 간 그날 깨졌단 말이오! 어디서 불량품을 팔아!”
“인간! 그것은 불량품이 아니다! 감히 내 솜씨를 모욕하려는 거냐!”
“아니, 모욕이고 뭐고 집에 들고 간 그날 깨졌다니까?”
사실은 중년인의 실수로 깬 것이 맞았다. 집에 들고 가 장식해 놓았는데, 어린 아들이 실수로 가지고 놀다 깨 먹은 것이다. 비싼 돈 주고 사 온 것이 하루 만에 깨지니 돈이 아까워 이리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이 인간이 진짜…….”
말다툼이 격해지자 트롤의 표정도 점점 일그러졌다. 사실 트롤은 그리 격한 성품이 아니며, 꽤나 인내심이 강하고 평화로운 종족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진상 떠는 중년인을 보고 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잠시 울컥했다. 그래서 무심코 손을 휘둘렀다.
휘익!
인간으로 치면 멱살을 잡는 정도의 가벼운 행동이었다. 단, 그것은 트롤 기준에서나 그렇다. 중년인의 오른팔이 싹둑 잘려 나갔다.
“아?”
순간 멍해진 중년인이 비명을 터트리며 주저앉았다.
“으, 으아아악!”
트롤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트롤들은 다툼이 있으면 팔다리 하나쯤 자르는 것은 예사였다. 재생력이 있으니 그 정도는 그리 심한 부상이 아닌 것이다. 그냥 멱살 잡고 시위하는 것과 같은 감각이다.
하지만, 다른 종족에게는 생사가 오가는 심각한 부상이었다.
트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잠시 후 레단티의 신관이 달려와 부상자를 돌봤다. 치안대도 달려와 트롤을 체포해 갔다.
“실수요! 그냥 실수일 뿐이라니까!”
억울하다며 트롤이 하소연했지만, 멀쩡한 팔 잘라 놓고 억울하다 소리쳐 봐야 설득력이 없었다. 팔 잘린 중년인의 비명이 하늘 위로 아우성쳤다.
“으아아악!”
안타레스 공국의 한 지방 도시.
한 무리의 오크 청년들이 술집으로 들어오며 왁자지껄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다들 노예로 살다 이번 정책으로 인해 해방된 이들이었다. 우락부락한 오크들이 술집으로 들어오자 다른 인간들이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시끄러운 것도 시끄러운 것이지만, 그들 몸에서 너무 냄새가 났던 것이다.
오크 사내 중 하나가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부라렸다.
“인간들! 왜 보나?”
오크답게 단순한 어휘, 하지만 워낙 목소리가 살벌하다. 술을 마시던 인간들이 움찔거리며 눈을 피했다.
오크들이 자리를 잡고 자기들끼리 신 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서빙 하는 웨이트리스의 치마도 마구 걷어 올렸다.
“흐헤헤!”
“여자다!”
“꺄아악!
웨이트리스가 울상을 지은 채 도망갔다. 오크들의 횡포가 너무 심하니 중년인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그가 점잖게 한마디 건넸다.
“조용히 술이나 먹을 것이지, 그게 무슨 횡포인가?”
딱히 천시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나이 많은 이로서 청년에게 할 법한 말투였다. 하지만 오크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꺼져라, 인간!”
오크 하나가 대뜸 중년인을 후려갈겼다. 비명이 터지고 술집 안이 순식간에 소란해졌다. 오크들이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오크어로 으르렁거렸다.
“흥! 아직도 우리가 노예인 줄 아는 거냐!”
“이젠 네놈들을 두들겨 패도 우릴 혼낼 주인이 없다 이거야!”
“더 이상 인간들에게 빌빌댈 필요가 없어! 우리 세상이 왔다고!”
죄 없는 이를 폭행하고도 오크들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도로 술집에 주저앉아 빨리 술 내오라며 소리만 지를 뿐이었다.
잠시 후, 도시 치안대가 들이닥쳤다. 겁먹은 주인이 재빨리 연락한 것이다.
선두에 선 것은 치안대장 차발타, 검투사 출신의 오크였다. 동족을 체포하려는 그를 보며 오크들이 화를 냈다.
“왜 우리를 잡아가나?”
“저들도 이랬다! 우리도 그럴 거다!”
묵직한 펀치를 한 방씩 날리며 오크 보안관이 인상을 썼다.
“시끄러워, 이 병신들아!”
그는 백국 초기, 타시드에 의해 구출된 검투사 중 한 명이었다. 그 후 오크의 전통을 이어받아 스피리츠 웨폰을 터득하고 전사의 자격까지 얻었다.
자부심 있는 차발타에게 이 오크들은 같은 동족이지만 정말 쓰레기였다. 긍지도 명예도 모르고, 그저 자유로워졌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며 짐승처럼 굴 뿐이다.
잠시 후 오크들이 줄줄이 묶여 끌려 나갔다. 그 와중에도 그들은 억울하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 한심한 광경을 보며 차발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비록 동족이라지만, 오크는 그가 보기에도 너무 무식하고 난폭한 놈들이 많았다. 이래서야 노예로 살아도 싼 놈들이 아닌가?
“이런 놈들이 점점 늘고 있으니…… 윗분들도 고생이 많으시겠군.”
☆ ☆ ☆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받으며 카를은 머리를 싸맸다. 역시 아무리 법을 공표했어도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끙, 골치 아프군요.”
여전히 이종족을 노예로 보는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종족을 학대했다.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지 못하는 풀려난 이종족들은 대놓고 인간에게 자기들이 당한 것처럼 똑같이 대하려 했다.
“그러게 말일세, 카를 재상.”
카를 앞에 마주 앉은 마켈린도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
인간을 대표하는 카를 재상.
드워프뿐 아니라 모든 이종족들의 존경을 받는 하이 프리스트 마켈린.
이 둘은 안타레스 공국을 지탱하는 양 기둥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이 둘이라도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카를이 서류를 손가락으로 넘겼다.
“인간과 이종족의 불화는 예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현재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은 학대한 인간과, 학대받는 이종족들뿐이 아니었다.
똑같이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다지만 엘프와 드워프, 오크와 트롤은 엄연히 다른 종족이고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다. 서로 다른 이들이 서로 얽히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로워진 엘프들은 오크며 드워프, 트롤들을 무식하고 야만적이며 난폭하다 여겨 멸시했다.
자유로워진 드워프들은 딱히 다른 종족에 대한 편견은 없었지만, 사는 환경이 너무 달랐다. 드워프의 특성상 그들은 소음 공해라 할 정도로 시끄럽게 무기를 제련하며 마구 연기를 피우고 살았다. 드워프 말고 다른 종족은 도저히 함께 살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트롤과 드워프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드워프는 대장장이 일을 위해 석탄과 목재를 마구 땐다. 자연을 사랑하는 트롤들로서는 기겁할 파괴 행위인 것이다. 같은 의미로 엘프도 드워프를 좋아하지 않았다. 문화적 차이로 인한 작은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오크들은 특유의 난폭함 때문에 모든 종족과 사고를 종종 일으켰다. 특히 검투사 출신이나 오지의 자유로운 오크 중에는 노예 출신 오크들을 같은 동족으로 여기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인간처럼, 아니 인간보다 더 천시하며 학대하기도 했다. 오크는 어디까지나 강자를 숭상한다. 그런 이들에게 ‘약자’는 학대해도 좋은 존재인 것이다.
문화와 인식 차이로 사고가 나고, 노예 출신과 자유로운 오지 출신의 차이로 싸움이 벌어지고, 인간과 이종족의 역사로 또 문제가 생긴다.
카를과 타시드. 시리스, 아틸카와 마켈린이 열심히 중재하고 동족들을 교육했지만 이는 단시간에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카를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