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292
간수들도 그녀에겐 지극히 정중하게 대했다. 그녀가 왜 이곳에 들어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설사 죄수를 막 다루는 성질 더러운 간수라도 감히 이니야를 해코지하진 못했다.
지금 이니야는 그냥 비무장 상태로, 평범한 돌 감옥 안에 갇혀 있었다. 오러 유저의 힘이라면 맨손으로도 간단히 벽을 허물거나 창살을 휘고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간수 목 서너 개쯤은 쉽게 딸 수 있는 죄수에게 누가 감히 함부로 대하겠는가?
정말 오러 유저를 감금하려면 최소 감옥 주위에 삼중의 결계 마법진을 치고, 죄수의 목에도 오러에 반응해 바로 독침을 꽂는 마법의 형틀 정도는 채워야 한다. 현재 이니야의 처우는 이 감금 생활이 어디까지나 형식적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게 아무런 제약 없는 감옥 생활을 하는 이니야는 지금, 얌전히 쪼그려 앉아 수를 놓고 있었다.
“아, 이거 어렵네.”
아무리 편한 감옥 생활이라지만 감옥은 감옥. 문제가 있긴 있었다.
너무너무 심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스티리아 일족으로부터 수놓는 도구 받아서 깨작깨작 시간을 때우는 이니야였다.
원래 엘프는 전통적으로 직조에 강하다. 특히 엘프들의 자수는 인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아름답고 정교하기로 유명한데, 이는 엘프 특유의 긴 수명과도 연관이 있었다.
자고로 시간 때우는 데는 자수가 제일인 것이다! 군대에서도 고참 병사들은 할 일 없을 때 빈둥빈둥 자수나 하면서 시간 때우지 않는가?
워낙 오래 사는 양반들이고 또 천성적으로 격한 성품이 아니다 보니 엘프는 남녀 할 것 없이 자수에 익숙했다. 마찬가지로 오래 사는 드워프들이 건물에 쓸데없을 정도로 장식을 붙이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랄까?
하여튼, 엘프 여인이라면 아름다운 수를 놓을 줄 알아야 훌륭한 여성으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이니야는 무술에 너무 치중하느라 그동안 여인의 덕목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껏 굳이 저런 것에 신경 써야 할 만큼 마음에 든 남자가 없었던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니야는 레펜하르트를 만나기 전까지 세상 모든 남자들에게 절망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사기 칠 순 없잖아? 마침 시간도 남아도는데 이때 연습이나 해야지.’
정신을 집중하며 이니야가 연신 바느질을 했다.
너무 집중한 탓일까? 살짝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는지 바늘이 툭 부러졌다. 저래 봬도 무쇠를 담금질해 만든 바늘인데 참 쉽게도 부러져 버린다.
“앗! 또 부러졌어! 웬 바늘이 이렇게 약한 거야? 드워프한테 부탁해서 미스릴로 만들어 달라고 해 볼까?”
구시렁대며 이니야가 바늘을 옆으로 휙 던졌다. 옆에는 부러진 바늘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바늘 산을 보며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오러는 밀리미터 단위로도 운용할 수 있는데 바느질은 왜 이리 힘든 걸까? 앞으로는 수놓는 여인들은 모두 존경해야지.”
새 바늘을 꺼내 들고 이니야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듣자하니 시리스는 요리면 요리, 가사면 가사, 바느질이면 바느질 할 것 없이 모두 능통하다 했다. 거기에 질 수는 없다!
“흠흐흠…….”
콧노래까지 불러 가며 이니야는 계속 들고 있는 천에 수를 놓았다.
처음엔 장갑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짐 언브레이커블의 권사는 장갑 따위 안 끼고 살았다.
그래서 목도리로 바꿀까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레펜하르트가 추위 타는 건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언제나 웃통 까고 반쯤 벗고 다니는 양반이다. 물론 이니야 보기에 매우 좋긴 했지만, 막상 선물을 하려니 옷을 고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건 뭐, 일상적으로 입고 다니는 게 있어야지?
물론 국왕답게 예를 차릴 때야 근사한 예복 입고 다니지만, 솔직히 그 정도의 고급품은 지금 그녀의 솜씨로는 턱도 없었다.
그래서 이니야는 결심했다.
“팬티 만들어 드려야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레펜하르트가 언제나 입고 다니는 건 팬티 정도밖에 없다.
그렇게 깨작깨작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간수 한 명이 다가와 정중히 말을 건넸다.
“이니야 님,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어마? 레펜하르트 님이?”
화들짝 놀라며 이니야가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는데 통로 저편에서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레펜하르트였다.
이니야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세요, 레펜하르트 님.”
감옥을 둘러보며 레펜하르트가 한탄을 흘렸다.
“내가 미욱해 이런 꼴을 당하게 해 미안합니다.”
밝게 웃으며 이니야가 오히려 그를 달랬다.
“괜찮아요, 전혀 불편한 점 없는걸요?”
빈말이 아니고, 정말로 불편한 점이 없었다.
렐하드가 특별히 넣어 준 침상은 물론 감옥답게 겉으론 수수하지만, 매트리스며 이불의 재질이 엘븐 실크로 만들어 안락하고 따듯한 물건이었다. 바닥에는 사죄의 의미라며 하다툼이 특별히 보낸 가죽 카페트가 깔려 있어 돌바닥의 온기를 확실하게 차단하고 있다. 식사도 카를이 특별히 챙겨 왕실 요리사가 직접 조리한 것이 제공되었다.
운신의 자유가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냥 휴양 생활이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심심하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것도 이제는 해결했고!’
진심으로 한 답변이니 당연히 상대에게도 전해진다.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고마운 말씀이군요, 이니야.”
창살을 사이에 둔 채,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안에 갇혀 사는 이니야에게 세상 돌아가는 일을 전해 주는 것이다.
그러던 중, 오늘 있었던 처형식 이야기가 나왔다.
“그 오크들은 오늘 오후에 처형되었습니다.”
“그런 것치곤, 별로 표정이 밝지 않으신 건 같네요?”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에 레펜하르트가 무심코 한숨을 쉬었다.
“과연 잘한 짓인지 의문이 듭니다.”
중범죄를 엄히 다스리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사형은 한번 저지르면 돌이킬 수 없는 제도였다. 지금이야 범죄 사실이 명확히 하니 별문제가 없지만, 만약 앞으로 계속 이 제도를 유지하며 만약 억울한 이가 생겨나면 어떻게 되는가?
레펜하르트의 말에 이니야가 어리둥절해했다. 그의 말은 인간뿐 아니라 이종족에게조차 너무 생소한 감각이었다.
세상은 어차피 억울한 법이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최대한 법에 여유를 둬 버리면 그만큼 범죄자가 늘어나지 않겠는가? 그러니 억울한 자가 생긴다 해도 무시하고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현 시대의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말도 일리는 있지요. 만약 내가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다면, 비록 노예로 살지언정 그들은 죽지 않았을 겁니다. 범죄를 저지를 일도 없었겠지요.”
말하다 말고 문득 레펜하르트는 실소를 흘렸다. 원래 이렇게까지 깊은 속내를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분위기가 그렇게 흘렀다.
“아니, 신경 쓰지 마세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 버렸군요.”
이니야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녀 역시 일족을 이끄는 자, 사람 위에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이 아는 여인이었다. 비록 규모는 다를지언정 레펜하르트의 고민이 이해가 갔다.
“올바른 말씀이긴 한데…….”
눈의 여왕이 되어,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옳은 말씀은 아니네요.”
어리둥절해하는 레펜하르트를 향해 그녀가 말을 이었다.
“올바름과 옳음, 그릇됨과 틀림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같지 않지요. 레펜하르트 님은 분명 좋은 분이시지만, 세상일은 좋은 의도로도 얼마든지 추악한 결과를 낳더군요.”
레펜하르트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의도로 낳은 추악한 결과? 그런 거라면 레펜하르트를 따라갈 이는 고금을 통틀어 몇 없을 것이다. 마왕으로 군림하던 그 때문에 죽어 간 이가 몇십만 명이던가?
“순서를 지키세요, 레펜하르트 님. 당장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을 다스리는 일은 마법 같지 않습니다. 정령과 달리 사람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지요. 마법도 그렇겠지요? 잘은 모르지만 술식을 짜고 마력을 흘리면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오겠지요? 하지만 사람은 마법과 다르지요.”
“그렇긴 하지요…….”
이니야가 눈웃음을 쳤다.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격려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 올바른 일은 아닐지 몰라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레펜하르트 님은 잘하고 계신 거예요.”
레펜하르트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잠시 실소했다. 이게 무슨 꼴인가? 감옥에 있는 그녀를 위로하러 왔다가 도리어 위로를 받다니?
레펜하르트가 몸을 일으켰다. 할 일이 많으니 언제고 이니야와 수다만 떨고 있을 순 없다.
“조금만 더 참아 줘요, 이니야. 곧 나가게 될 테니.”
“어마? 전 좀 더 여기 있어도 되는데요?”
마음의 짐을 덜어 주는 그녀의 대답에 레펜하르트는 포근함을 느꼈다.
뭐, 이니야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 진심이었지만. 아직 익혀야 할 자수가 많아서 솔직히 ‘일주일쯤 더 있다 나갈까?’란 생각도 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니야. 훨씬 기분이 나아졌군요.”
이니야의 눈빛이 빛났다.
‘오잉?’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펜하르트의 눈빛이 대단히 부드럽다? 예전과 달리 애정도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내가 뭘 했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이니야는 슬쩍 수놓던 천을 꺼냈다. 기회가 왔으니 이때 선물 건넬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이거…… 부끄러운 솜씨지만…….”
아리따운 미녀가 몸을 꼬며 부끄러운 듯 팬티(!)를 내민다. 레펜하르트는 당황했다.
‘하는 짓과 선물이 매치가 안 되잖아! 아니, 부끄러워하고 있으니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거랑은 좀 다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당혹하면서도 레펜하르트는 일단 팬티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수놓인 무늬를 보며 다시 한 번 당황했다.
워낙 삐뚤빼뚤이라 알아보기 참 난해하긴 한데, 대충 보니 보랏빛 갈기를 휘날리는 괴상한 마수의 그림인 것 같았다.
‘이건 어디 사는 몬스터인가?’
이니야가 부끄러워했다.
“제 얼굴이에요.”
레펜하르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입 밖으로 꺼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잠깐, 그럼 자기 얼굴을 엉덩이로 깔아뭉개라고?’
전생 때도 느낀 거지만 역시 이니야는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거나 선물은 선물이니 고마움을 표하며 받아 들었다. 이니야가 손가락을 꼬면서 말을 이었다.
“혹시 부여 마법 거실까 싶어서 특별히 마력과 궁합이 좋다는 아플린 초로 뽑은 실로 수를 놓았어요. 인간 중에는 팬티에 안티 임포텐츠라는 마법을 걸어 효과를 높인 마법사도 있다기에…….”
은근슬쩍 야한 말을 끼우며 레펜하르트의 반응을 의도하는 이니야였다. 슬프게도 레펜하르트는 야한 쪽이 아니라 마법 쪽에 반응했지만.
‘엥? 안티 임포텐츠?’
뭔지는 아는 마법이다. 성 불구가 되도록 거는 저주를 역행해 발기부전을 치료하도록 하는 부여술 계열 마법.
‘그런데…… 그걸 팬티에 거는 게 의미가 있나? 어차피 거사 치르려면 벗어야 하잖아?’
아무래도 그 마법 구상한 마법사가 경험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선물받았으니 인사는 해야 한다. 레펜하르트가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안녕히 가세요!”
감옥을 나서는 레펜하르트 뒤로 이니야가 환하게 손을 흔들었다. 죄수라기엔 지나치게 해맑은 표정이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이니야가 신 나라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미움 안 받았어! 선물도 건넸어!’
☆ ☆ ☆
짙은 어둠이 깔린 한밤중, 제라드는 가이라크의 정원을 걷고 있었다.
딱히 정원의 아름다움을 견식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짐 언브레이커블에 그런 ‘계집’ 같은 취미를 지닌 이는 없는 것이다.
그가 이쪽으로 온 이유는 진짜 단순하게, 숙소를 향해 빙 돌아가기 싫으니 그냥 직선으로 횡단하자는 의미일 뿐이었다.
중간에 있는 건물이 안타레스 공국의 왕, 레펜하르트의 집무용 궁이라는 것은 그에겐 전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왕이니 공작이니 해 봤자 제라드에게 있어서는 ‘제자’일 뿐이었으니까. 실제로 경비병들도 감히 그를 제지하진 못했다.
그렇게 정원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저 위쪽 탑의 테라스에서 제자의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뭐, 평소라면 신경 끄고 숙소 가서 잤겠지만 어째 오늘따라 제자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집무실 테라스에 나온 레펜하르트가 의자에 걸터앉아 와인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표정도 영 칙칙한 것이 아무래도 기분이 꿀꿀한 모양이었다.
‘저 녀석, 날씨도 좋은데 왜 청승이지?’
제라드는 의아해했다. 좋은 술 마셨으면 기분이 좋아야지, 왜 저런 표정을 지어? 호기심에 제라드가 발끝에 힘을 주었다.
휙!
제라드의 거구가 가뿐히 허공으로 날아올라 테라스에 안착했다. 200킬로그램 가까운 거구가 날아오르는데 먼지 한 톨 일지 않았다. 참으로 가공할 몸놀림이었다.
사부의 모습을 본 레펜하르트가 기겁해 사레가 들렸다.
“켁! 사, 사부! 어쩐 일로?”
“네놈 여기서 뭐 하냐?”
그 웅장한 체구로 쪼그려 앉은 채, 제라드가 눈알을 굴렸다. 레펜하르트가 술병을 들어보였다.
“뭐 하긴요? 술 먹죠.”
“취하지도 않는 걸 왜 굳이 먹어?”
짐 언브레이커블의 가공할 육체는 오크 특산의 독주조차도 물처럼 마시게 만든다. 와인 따위는 포도 주스와 동일어인 것이다.
“아, 좀 취하고 싶은 기분이어서…….”
레펜하르트가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그도 지금 ‘내가 무슨 뻘짓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