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0
뭔가를 각오한 얼굴로 실란이 시리스에게 소리쳤다.
“시리스! 날아오는 단검 막을 수 있어?”
“예? 한 번쯤은…….”
왜 묻는지 의아해하며 시리스가 무심코 대꾸했다. 그러자 실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게!”
그리고는 대뜸 기도에 들어가 버렸다!
“필라넨스시여!”
당연히 로마드가 놀라 대거를 던졌다. 아니, 이미 필 자 나오는 시점에서 이미 대거는 날아가고 있었다. 육중한 대거가 실란의 머리통을 노리고 똑바로 날아갔다. 저것에 꽂히면 연약한 실란의 머리쯤은 바로 두 쪽이 날 것이다.
“실란!”
시리스가 기겁하며 몸을 날려 단검을 ∞자 형태로 휘둘렀다. 막을 수 있다곤 했지만, 그건 시미터나 롱 소드를 들고 있을 때 이야기였다. 원래는 장도로 펼치는 소드 패링을 단검으로 펼치니 그녀 역시 제대로 막을 것이란 자신이 없었다.
탕!
운이 좋았는지 대거가 단검에 부딪혀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실로 운이었다. 절대 두 번 할 자신은 없었다.
‘무슨 짓을!’
사색이 되어 시리스는 실란을 돌아보았다. 그는 대거가 날아오건 말건 꿋꿋하게 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엄청난 강심장이다. 하긴, 구울의 손톱을 눈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았던 실란이었다.
“……저 썩을 놈에게 매타작을 신명 나게 가하소서!”
뭔가 개인감정이 담뿍 담긴 기도문이 완성되었다. 신관다운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어휘력이었다. 저러고도 신성 주문이 발동되다니? 필라넨스께서 사랑과 미의 여신이라더니 과연 미소년에 대한 총애가 지극한 모양이었다.
우우웅!
분홍빛 철퇴가 수두룩하게 실란의 주위로 떠올랐다. 동시에 철퇴가 로마드 일행을 노리고 무섭게 날아들었다. 탈카타가 놀라 검을 휘둘렀지만, 실란의 가공할 신성력이 담긴 저 성광 철퇴의 힘은 과연 대단했다. 순식간에 검을 놓치고 탈카타의 전신을 철퇴가 두들겼다.
퍼퍼퍼퍽!
“끄으으윽!”
탈카타조차도 비명을 지르며 버틸 수밖에 없는 위력이었다. 다른 이들은 뭐, 더 할 말이 없었다. 다들 여기저기 두들겨 맞고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주랑, 기둥들이 나란히 세워진 곳이다. 다들 허겁지겁 기둥 뒤로 피해 간신히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 틈에 실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원래 신성력은 악마나 언데드 계열에겐 강해도 생명체에겐 위력이 반감되는 법이다. 게다가 고위급이라곤 해도 실란은 순수 신관이라 공격 쪽은 취약한 면이 있었다. 거기에 대부분 기둥 뒤로 숨어 치명타를 피했으니, 여전히 저쪽이 수적으로 우세했다. 이틈에 도망가야 했다.
“젠장, 어디로 도망가지?”
사방이 건물이다 보니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유일한 입구를 바로 저 로마드 일행이 점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시리스가 대뜸 탈카타가 떨어뜨린 롱 소드를 발로 차 올렸다.
“타앗!”
그리고 허공에 뜬 롱 소드의 자루를 향해 돌려 차기를 가한다. 휘익! 롱 소드가 날아가 건물 벽면에 깊숙이 박혔다. 시리스가 소리쳤다.
“실란!”
“응?”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실란은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고 비명을 흘렸다.
“우엑!”
시리스가 실란의 허리를 감싸 안고 벽으로 뛰고 있었다. 원체 가벼운 실란이다 보니 아직 소녀인 그녀의 힘으로도 충분히 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상태로 시리스가 몸을 날렸다.
“타앗!”
도움닫기한 힘을 모두 실어 몸을 날려 박힌 칼자루를 쥐고, 그 기세를 살려 탄력을 붙이며 몸을 돌린다. 공중제비를 넘어 몸을 반전시킨 시리스가 다시 칼자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빙빙 도니 실란이 연신 신음을 흘렸다.
“으에에에~.”
그렇게 단숨에 2층 난간으로 올라간 뒤, 시리스는 바로 창문을 깨고 안으로 돌입했다. 도망가는 둘을 보며 탈카타가 입을 쩍 벌렸다.
‘빠, 빠르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리 엘프들이 몸이 가볍다고는 하지만 이 긴박한 순간에 저런 아크로바틱한 묘기가 가능하다니? 저 시리스란 소녀의 실력은 예상보다도 더 높았던 것이다. 아마도 단검만을 지니고 있어 그 정도였지, 제대로 무기를 들고 있었다면 탈카타라 할지라도 승부를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워메…….”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로마드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 찬 제비처럼 움직이는 시리스의 동작에 어안이 벙벙해 있던 로마드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쪼, 쫓아!”
무심한 눈으로 탈카타가 로마드를 돌아보았다.
“탈카타, 묻습니다. 무슨 수로?”
아무리 그가 베테랑 검투사라지만, 저런 흉내는 내지 못한다. 로마드도 그걸 깨달았는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천한 노예에게 자신의 실수를 드러낼 순 없다.
“크윽! 아, 뒤에 계단 있잖아! 계단으로 쫒아가란 말이다!”
그렇게 로마드가 있는 신경질, 없는 신경질 다 내며 길길이 날뛰고 있을 때였다.
그들이 들어온 입구를 통해 한 50대 중년인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정원 안 상황을 둘러보더니 낄낄 웃었다.
“뭐야, 네놈들 실패했냐?”
“……란타스 경.”
굴욕에 찬 얼굴로 로마드가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중년인은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으이그, 등신들. 고작 엘프 암컷 하나 못 잡고 이 난리야?”
“그, 그게 예상보다 더 강해서…….”
그저 계급이 깡패다 보니 속으론 열받아도 겉으론 설설 길 수밖에 없다. 로마드가 쩔쩔매며 변명을 했다. 그 뒤에 말없이 선 오크 검투사를 보며 중년인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탈카타로도 못 잡았어? 초짜 슬레이어 주제에 그렇게 센가?”
그의 상식으로 엘프 슬레이어가 베테랑 오크 검투사와 자웅을 결하려면, 어지간히 경험 많고 노련하지 않으면 힘들었다. 하지만 분명 이제 갓 팔린 노예라 하지 않았던가?
중년인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가 물었다.
“밥값은 해야겠지. 어디로 갔냐?”
“저쪽입니다.”
“그래?”
잠시 그쪽을 노려보더니 중년인이 바로 날아올랐다. 그것은 도저히 점프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볍게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 새처럼 날아올라 정원을 가로지르는 그 움직임은 중력의 법칙조차 거스르는 것 같았다.
초인적인 몸놀림으로 2층에 도달한 중년인이 바로 깨진 창문 사이로 사라졌다. 그토록 더러운 기분이었음에도 그 모습을 보니 절로 감탄이 나왔다. 로마드가 부러움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것이 오러 능력자…….”
제6장 단죄의 자격
1
여관 2층으로 올라간 시리스는 곧바로 실란을 데리고 복도로 나섰다. 짐짝처럼 들려 다닌 실란이 어지럽단 얼굴로 비틀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시리스가 엘프다운 몸놀림으로 일시 거리를 벌리긴 했지만, 저들도 바보는 아니니 금방 계단을 통해 쫓아올 것이다.
실란이 의견을 내며 뛰기 시작했다.
“일단 방으로 돌아가서 무장을 하자.”
따라 달리며 시리스가 고개를 저어 반대했다.
“그쪽에도 사람이 있을 거예요.”
엘븐하임은 슬레이어에게 전투 기술 외에도 각종 상황에 대한 대처법 역시 착실히 가르친다. 그래야 제대로 주인을 충실하게 보필할 수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며 그녀가 실란을 말렸다.
“게다가 쫓아오는 이들도 바로 우리 객실부터 찾겠죠. 너무 위험해요.”
역시 어려서 뭘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것인데 의외로 실란이 고개를 저었다.
“그쯤은 나도 알아. 그래도 지금은 무장부터 찾는 게 더 중요해. 시리스 실력이면 우리 객실 지키는 놈 한둘은 처리할 수 있을 거 아냐? 설마 거기에까지 오크 검투사를 세워 놓았을 리는 없을 테니까.”
복도를 달리며 실란이 빠르게 설명을 이었다.
“어차피 저놈들은 우릴 쫓아올 거잖아? 그러면 단검 하나만 들고 도망치는 것보단 조금 지체하더라도 무장을 제대로 하는 쪽이 나아.”
“그, 그런가요?”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뒤를 따르며 시리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실란을 바라보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귀여운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위기 상황이 닥치자 놀라운 판단력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실란은 어린 나이에 비해 세상을 돌아다녀 본 경험이 풍부했다. (사실은 별로 어리지도 않고.) 엘븐하임 안에서만 살며 이론만 익힌 시리스보다 실란이 오히려 현실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객실로 향했다. 예상대로 사내 하나가 객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사내가 놀라 막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시리스가 뛰어올라 벽을 박차고 삼각 뛰어차기를 날렸다.
“어? 뭐여? 크에엑!”
그렇게 간단히 상대를 쓰러트린 뒤 시리스와 실란은 잽싸게 객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실란이 허겁지겁 자신의 법복과 성물을 챙겨 들었다.
그동안 시리스는 옷장을 열고 레펜하르트가 사 준 옷가지를 꺼낸 뒤, 무기도 챙겨 들고, 옷을 펼쳐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명색이 실란도 남자애인데 그 앞에서 옷 갈아입어도 되나? 라는 속 편한 생각도 잠시 했다.
쫓기는 주제에 참 느긋한 모습이었다. 실란이 기막혀하며 외쳤다.
“시리스! 지금 한가하게 옷 갈아입을 시간이 어디 있어?”
“예? 그럼 어쩌라고…….”
엘븐하임에서 습격에 대한 대비는 가르쳐 줬지만 도망치는 와중에 무장 챙기는 것까진 알려 주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무심코 평소처럼 무장을 하려던 시리스였다.
“당연히 들고 뛰어야지…….”
이 시리스란 엘프, 굉장히 차갑고 성숙해 보이는 인상인데 은근 꺼벙한 구석이 있다. 한숨을 쉬며 실란이 어서 손으로 들라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아차 하며 시리스가 무기며 재킷을 대충 뭉쳐 들었다. 그동안 실란이 기도를 올렸다.
“필라넨스시여, 우리의 자취를 지워 위기로부터 구하소서.”
흔적을 지우는 신성 주문을 자신과 시리스에게 씌운 뒤 재차 기도문을 외운다.
“필라넨스시여, 당신의 숨결을 우리에게 깃들게 하소서.”
핑크빛 입자가 살랑살랑 일어나 두 사람의 발치를 감쌌다. 그 상태로 실란이 객실 창문을 벌컥 열고 대뜸 뛰어내렸다. 시리스가 놀라 외쳤다.
“실란!”
아니, 쟤가 왜 갑자기 투신자살을? 당황해 창밖을 내다보니 실란이 마치 깃털처럼 사뿐히 지상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방금 실란이 외운 것은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몸을 지키는 기도문이었다. 마법으로 치면 페더 폴과 비슷한 효과라 하겠다. 착지한 실란이 어서 뛰어내리라는 듯 손짓했다.
“아…….”
이해한 시리스도 바로 밖으로 몸을 날렸다. 한겨울인 데다가 저녁때가 지난 늦은 시간이라 거리엔 그리 행인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2층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딱히 시선을 집중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제 어쩌죠?”
무슨 그런 뻔한 걸 묻느냐는 얼굴로, 실란이 대꾸했다.
“튀어야지.”
☆ ☆ ☆
50대의 중년인, 란타스는 느긋하게 복도를 걷고 있었다. 추적자라기엔 지나치게 느긋한 모습이지만 그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란타스는 위대한 검의 경지, 오러를 각성한 검사였다. 오러 능력자의 감각권은 실로 가공하다. 그는 이미 이 반경 30미터 내의 모든 생명체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히 감지하고 있었다.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뻔히 아는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음, 뭐야, 저것들? 방에 들어가서 숨을 셈인가?’
엘프와 소년의 기척이 2층 여관 객실로 향하는 걸 느끼며 란타스는 실소했다. 당장 이 여관을 벗어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자기 방으로 기어들어 가다니, 정말 애송이는 어쩔 수 없는 애송이다. 한껏 상대를 무시하며 천천히 인기척을 따라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란타스의 표정이 굳었다.
‘뭐지?’
인기척이 사라졌다! 분명 2층 객실에 생생히 느껴지던 그 기척이 어느 순간 소멸해 버린 것이다.
란타스는 당황했다. 이런 경험을 그는 해 본 적이 있었다. 고위 마법사나 위계 높은 성직자의 경우, 특유의 술법으로 자신의 자취를 감출 수 있다.
‘뭐야? 그 애송이가 기척 제거의 술을 쓸 정도로 고위 성직자였어?’
이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중년인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느긋하던 란타스의 몸이 파공음을 남기며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복도를 지나쳐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간 란타스가 안을 살폈다. 객실은 텅 비어 있고 창문은 활짝 열려 차가운 겨울바람이 쌩쌩 불고 있었다.
“이, 이런…….”
자신만만하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애송이들이라고만 들었는데 이런 재주가 있었을 줄이야.
그는 혹시나 싶어 기감을 끊고 오러를 청력에 집중했다. 혹시 기척을 지운 뒤 방 안에 숨어 있지 않나 해서였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믿는 이들이 가끔 이런 식으로 추적자를 따돌리곤 하기에 대비한 것이었다.
아무리 기척을 지우고 숨을 멈춰도 심장 고동 소리마저 숨기진 못한다. 아무리 강력한 마법이나 신성 주문도 뛰는 심장을 멈춘 채 살 수 있게 해 주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리에 귀 기울인 것인데…….
“젠장, 밖으로 튄 게 맞구먼.”
방은 확실히 텅 비어 있었다. 그때 로마드와 수하들이 뒤늦게 객실로 들어왔다. 열심히 계단 오르고 복도 달려가며 이제야 란타스를 따라잡은 것이었다.
“놈들은 어디 있습니까, 란타스 경?”
로마드가 주위를 둘러보며 질문한다. 평범한 어조였지만, 왠지 힐난하는 것처럼 들려 란타스는 더더욱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놓치신 겁니까?”
“시끄럽다! 이 근처일 테니까 애들 풀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란타스는 창가로 걸어갔다. 그냥 가볍게 몸이나 풀고 생색이나 낼 생각으로 따라온 것이었는데 이쯤 되니 열이 올랐다. 그가 새처럼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