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10
아스레일 경이 문득 웃었다.
“나도 두렵다.”
웃으며 그가 신성군 쪽에 턱짓을 했다.
“저들의 갑옷은 우리보다 두껍고, 저들의 숫자는 우리보다 월등히 많다. 저들의 전투 경험 역시 우리보다 월등히 높겠지!”
기병들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전투 직전에 지휘관이 힘 빠지는 소리를 한다냐?
“하지만 저 두꺼운 갑옷이 우리 갑옷보다 튼튼한 것은 아니다!”
아스레일이 망토를 걷었다. 경장기병과 똑같은 갑옷이 드러났다.
“믿어라! 그대들의 갑옷은 쓸데없이 무겁기만 한 저들의 갑옷에 비할 것이 아니다!”
아스레일이 부관에게 눈짓을 보냈다. 부관이 석궁을 준비하더니, 이내 아스레일에게 쏘았다. 병사들이 흠칫하던 찰나였다.
티잉!
놀랍게도 석궁의 화살이 가죽과 사슬을 엮은 아스레일의 가슴 갑옷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자랑스레 아스레일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인간의 손으론 결코 이런 갑옷을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저들과 마찬가지로 튼튼하며, 또 저들보다 몇 배나 가볍고 빠른 것이다!”
현재 그들이 입고 있는 경장갑은 일반적인 갑주가 아니었다. 바로 오크와 드워프의 기술력이 총동원되어 제작된, 새로운 형태의 갑주였다.
오크의 가죽 갑옷은 질기기 이를 데 없어 어지간한 강궁으로도 쉽사리 뚫리지 않는다. 하지만 베기 공격에는 가죽인 이상 취약할 수밖에 없다.
드워프의 사슬 갑옷은 그 강도가 인간의 것과 비교가 안 되어, 어지간한 명검으로도 썰리지 않는다. 하지만 사슬인 이상 찌르기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두 종족이 함께 어울리게 되며, 드워프 대장장이와 오크 무기아비는 서로 기술 교류를 나누었다. 장인 정신은 종족조차도 초월하는 것, 두 종족의 명장들은 새로운 기술 앞에 기꺼이 손을 합쳤다.
그래서 나온 것이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운신에 전혀 제약이 없는 이 신형 경장 갑주였다.
아스레일의 시위에 기병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신성군과 안타레스 기병들의 실력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그러나 신성군과 안타레스 기병들의 말은 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보다 가벼운 쪽이 월등한 기동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병사들의 공포가 점점 사그라졌다.
“어차피 안타레스는 신흥 국가! 고작 생긴 지 몇 년 되지도 않는 나라에 충성심을 다해 목숨을 바치라는 소리 따윈 하지 않는다!”
곧 전투를 앞둔 지휘관 치곤 꽤나 개성 넘치는 연설이라 하겠다. 국가의 녹을 먹는 이가 충성하지 말란 소릴 하다니?
그때 아스레일이 검을 들어 신성군을 가리켰다.
“그대들 모두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겠지? 저놈들에게 우리가 패하면 그땐 우리 친지, 가족이 모두 죽는다!”
병사들의 얼굴에 투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알겠느냐! 저놈들은 세이어의 광신도다!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보지도 않는다 말이다! 세이어의 법에 따르면 이단자는 죽이고 강간해도 전혀 죄가 아니다! 명심하라! 놈들은 분명 그럴 것이다!”
신흥 국가다 보니 다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긍심은 그리 없는 편이다.
하지만 가족, 친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감정은 어느 나라 사람이건 다를 바가 없다.
병사들의 안색에서 공포가 완전히 사라졌다. 아스레일이 검을 뽑아 높게 쳐들었다.
“그대들은 그대의 가족이 그런 꼴을 당하게 두겠는가?”
기병들이 일제히 호응했다.
“결코 아니오!”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안타레스!”
“안타레스를 위하여!”
☆ ☆ ☆
한편, 오크 투사 하다툼은 아스레일의 저 연설을 감명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 씨발, 폼 난다.”
오크들에게도 전투에 앞서 일장 연설을 하는 전통은 있다. 특히나 대족장 칼켄은 오크 중에서도 말발이 받쳐 주어, 그의 연설을 들으면 가장 겁쟁이 오크도 광전사처럼 날뛰게 된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비록 일족의 족장이긴 하지만, 그리 말발이 없는 편인 하다툼에게는 항상 부러웠던 점이었다.
“에, 나도 저런 거 해 볼까……?”
뻐드렁니를 매만지며 하다툼도 어슬렁어슬렁 오크 전사들 앞으로 다가갔다. 자기도 뭔가 아스레일처럼 폼 나는 연설 하고 환호받고 싶었다.
주먹을 쥔 채 하다툼이 고함을 터트렸다.
“위대한 오크의 전사들이어!”
오크 전사들이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하다툼이 머리를 굴렸다.
‘자, 일단 시선은 잡았는데…….’
역시 안 하던 짓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막상 뭔가 말을 하려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실제로 오크 전사들도 ‘저 양반, 뭐 잘못 먹었나? 갑자기 왜 저래?’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우 씨…….”
에라,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떠오른다.
결국 하다툼은 포기하고 하던 대로 나갔다.
“씨발, 싸우는 데 무슨 이유가 있어? 그냥 싸우는 거지!”
그러더니 대뜸 자신의 애병을 뽑아 들고 전사의 포효를 터트린다.
“크아아아! 가자! 피의 축제다!”
“우와아아아!”
검을 든 채 오크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사실 하다툼 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의 이 호쾌한 ‘세 마디 연설’은 대족장 칼켄만큼이나 오크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가슴 속의 호기를 부르는 외침이란 말인가?
아스레일이 손을 아래로 내저었다.
“전군 돌격!”
요란한 굉음과 함께, 사천의 기병이 일제히 고원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3
정면 돌격에 나선 사천의 안타레스군, 그들을 상대로 신성군은 중장갑을 두른 기사들을 앞세웠다. 그라임과 할라인, 그리고 테이칸 왕국에서 명성을 떨치는 전통의 기사들이 거창을 내세우며 마주 돌격했다.
기사도 전투의 꽃, 랜스 차징이었다.
“저 어리석은 이단자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다!”
제일 선두에 선 그라임의 기사, 제폴드 경이 호기로운 고함과 함께 아스레일 경과 격돌했다. 서로 랜스 차징을 하며 스치는 그 순간!
“커억!”
놀랍게도 노련한 제폴드 경이 아직 젊은 아스레일에게 쓰러져 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안타레스 기사단 거의 전원이 랜스 차징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보고 있던 이라나드 공작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어떻게 저런 경갑주로 저런 안정감이?”
안타레스 기사단의 경장갑은 분명 신성군의 중장갑 못지않은 강도를 자랑하는 제품이다. 하지만 그래도 틀림없는 경장갑, 무게에 있어서는 뒤떨어진다. 동시에 부딪친다면 보다 무거운 쪽이 이기는 것이 세상 이치일진대 어째서?
일제히 낙마하는 신성군 기사단을 지나치며 안타레스 기사단조차 너무 쉬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뭐 이래?”
“이거 할 만하네?”
“가볍잖아!”
“뭐야? 이름만 높았지 붙어 보니 별것 아닌데?”
다른 기사단들처럼 안타레스 기사단도 평소 열심히 수행을 쌓았다. 특히 기사도의 꽃이라는 랜스 차징을 열심히 수련했다.
……오크 울프 라이더들이랑.
애당초 체급이 다르고 근력이 다른, 본격적으로 붙으면 열 명이서 한 명 감당하기도 힘든 것이 바로 오크 라이더들이다. 상대적으로 체중도 근력도 심각하게 뒤떨어지는 안타레스 기사단이 오크 라이더를 상대로 랜스 차징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통 솜씨로는 무리였다.
상대의 균형을 일격에 흩을 수 있는, 바늘구멍을 꿰뚫을 정도로 정확 무비한 차징.
몇 배의 체중 차이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자세.
몇 초 사이의 허점을 정확하게 노릴 수 있는 빈틈없는 안력과 판단력.
이 모든 것이 갖춰져야 겨우 울프 라이더에게 랜스 차징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타점이 빗나가거나 랜스를 찌르는 타이밍이 어긋나면 바로 울프 라이더는 균형을 회복할 뿐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워낙 가혹한 수행 환경이었다.
항시 괴물들만 상대하던 나날이었다.
괴물들만 상대하다 같은 인간을 만나니, 이건 뭐 수련 기사를 상대하는 기분이다.
타타타탕!
또다시 한 무리 기사단이 안타레스 기사단과 충돌했다.
또다시 신성군 기사단이 일제히 랜스에 부딪혀 낙마해 버렸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신성군 진영까지 파고드는 안타레스 기사단의 기세에 이라나드 공작이 혀를 찼다. 오러 유저의 안목으로도 감탄이 나올 만큼 철두철미하게 기본에 충실한 랜스 차징이었다. 저래서야 중장갑을 믿고 있는 신성군 기사들이 상대가 될 리가 없다.
“아니, 저놈들은 밥 먹고 저거만 연습했나…….”
반감탄 반황당을 담아 이라나드 공작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이라나드 공작은 핵심을 꿰뚫은 셈이 되었다.
두 번이나 돌파당하며 안타레스 기사단은 순식간에 신성군 본진까지 도달했다. 속도를 줄이며 물러나려는 안타레스 기사단을 대기하고 있던 신성군 기사들이 뛰쳐나와 포위망을 구축했다.
아무리 돌파력이 강해도 워낙 상대 병력이 많았다. 안타레스 기사들이 뛰쳐나온 신성군 기사들과 뒤섞이며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으윽!”
“젠장, 역시 강하군!”
일단 난전이 벌어지자, 랜스 차징에는 달인급 경지를 보이던 안타레스 기사들이 검투에는 그리 신성군을 누르지 못했다. 사방에서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개중에는 밀리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상황을 지켜보며 아스레일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크으, 역시 랜스 차징에 비해 다른 쪽은 아직 부실한가? 하긴, 랜스 차징 수행하기만도 벅차 하루가 다 가곤 했으니…….’
……정말로 안타레스 기사단은 랜스 차징밖에 연습하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일 모두 장단점이 있다. 가혹한 수행 환경은 거꾸로 말하면 하나 제대로 하기도 벅차다는 의미도 된다.
일단 랜스 차징이라도 우위에 서야 검투를 하건 창술을 익히건 하지? 울프 라이더를 상대하던 안타레스 기사단은 랜스 차징 외 다른 기량까지 키울 만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예술적이기까지 한 안타레스 기사단의 랜스 차징에 기겁한 신성군 기사단도, 일단 상대의 검술 솜씨를 보고 나니 도로 기가 살았다. 용맹하게 무기를 휘두르며 맞서기 시작했다.
“뭐야, 이놈들? 발 멈추니까 별것도 아니잖아!”
“모조리 썰어 주마!”
돌진할 때는 대륙 그 누구보다 용맹해 보이던 안타레스 기사단은 일단 적진에 도착하고 나니 도로 평범한 기사단이 되어 사방의 칼질에 허우적대게 되었다.
물론, 카를은 이것까지 예상하고 부대를 꾸렸다. 타이밍 좋게 경장기병이 기사단의 뒤를 따랐다.
“가자! 기사 분들을 도와라!”
안타레스 기사들과 달리 이 경장기병대는 모두 용병이나 수행 중의 검사, 혹은 페틀랜드에서 항복한 유목민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창 돌격에는 전혀 솜씨가 없지만 마상 검술에 있어서는 오히려 안타레스 기사들보다 월등한 솜씨를 지닌 이들이다.
챙챙챙!
전장 곳곳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틈에 안타레스 기사단이 적진에서 이탈했다. 신성군 기사들도 열심히 쫓아갔지만 애초에 입은 갑옷의 무게가 너무 다르다. 말을 아무리 달려도 점점 거리가 벌어진다.
그렇게 다시 거리를 벌린 안타레스 기사단이 크게 회선하며 도로 돌진을 시작했다.
일단 거리가 벌어지면 다시 랜스 차징을 쓸 수 있다!
“크어억!”
“크아악!”
랜스 차징‘만’ 달인인 안타레스 기사단의 거창 돌격에 뒤쫓던 신성군 기사들 수십이 목숨을 잃었다. 사방에서 혈화가 피고 혈향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적들을 쓰러뜨리고 스쳐 지나가며 안타레스 기사들이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크, 이래서 가벼운 갑옷 입힌 거였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