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14
신성군 배후를 기습하기 위해 이니야는 이백의 스티리아 일족 정병에 대륙 각지에서 모인 다양한 엘프 일족의 전사 오백을 이끌고 전장 좌측의 숲에 매복하고 있었다.
칠백이나 되는 병력이 매복하고 있음에도 전혀 적들의 정찰에 걸리지 않은 이유는 바로 스티리아 일족이 자랑하는 북해의 정령술 덕분이었다.
스티리아 일족은 주로 물과 어둠의 정령을 이용해 냉기를 다루는 부족.
이들은 어둠의 정령을 이용해 완벽하게 몸을 숨길 수 있다. 시각은 물론 마법이나 기감조차도 속이는 완벽한 은신술이다.
실제로 이니야가 처음 안타레스와 접할 때, 오러 유저인 칼켄이나 그토록 기감이 좋은 러스조차도 계곡 위에 숨은 스티리아 일족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다. 고작 해야 5서클의 정규 마법사가 띄운 옵저버 정도로는 저들을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몸을 숨긴 채 이니야는 카를의 말대로 기습할 타이밍만을 재고 있었다.
-안타레스는 적들에 비해 병력이 적지요. 그러니 제대로 기습의 묘리를 살려야 합니다.
일만의 신성군에 대비해 카를이 운용할 수 있는 부대는 오천이 한계였다. 현 안타레스의 국력상 그 이상은 무리였던 것이다.
수적 열세를 뒤엎으려면 절묘한 작전이 필수, 그래서 카를은 단순한 포위 공격 대신 기습에 의한 전세 역전을 노렸다.
-반드시 아스레일과 하다툼 부대가 몰아치거나, 혹은 완전히 밀리는 상황을 맞춰야 합니다. 그냥 전투가 시작되었을 때 배후를 노린다면 평범한 양면 공격이 될 뿐. 그래서는 적측도 간단히 반격합니다. 병력에서 우위에 있으니 전방 부대는 전방을 상대하고 후방 부대는 후방을 상대하면 그만이니까요. 상대 진영의 의식이 몽땅 한쪽으로 쏠리는 바로 그때를 노려야 하는 겁니다.
현명한 이니야는 바로 이해했다.
-무술의 카운터 같은 이치로군?
카운터 공격은 단순히 상대의 힘에 이쪽 힘을 실어 두 배로 돌려주기에 그토록 강한 일격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상대의 의식, 공격에 전념하느라 방어에 소홀해진 마음의 틈새를 노리기에 일격에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이다.
이해한 이니야를 향해 카를은 기습해야 할 정확한 타이밍도 알려 주었다.
-가장 좋은 시기는 오크 라이더들이 기사들을 몰아치며 적진을 와해시킬 때입니다만, 아마도 그런 좋은 기회는 오지 않을 겁니다.
똥고집 오크들이 끝끝내 스피리츠 웨폰을 쓰겠다 우겼으니, 카를은 오크 라이더들이 전투를 개시하자마자 바로 밀릴 것임을 예측하고 있었다.
-아마도 초반에 꽤 당황하며 밀리겠지요. 신성군 쪽은 승기를 잡았으니 신 나서 몰아칠 테고. 바로 그때 기습을 하십시오. 아무리 대기하고 있는 부대가 있다 해도 그런 상황에서는 의식이 전방에 쏠리게 됩니다. 거기서 갑자기 배후 부대가 나타나면 반응이 쉽지 않지요. 지휘관도 당황할 테고, 만약 지휘관이 당황치 않고 제대로 반격 명령을 내린다 해도 따르는 병력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을 테니까요.
군사학에선 초보적 수준인 매복, 기습 작전이지만 카를은 성공을 확신했다.
너무나도 매복하기 좋은 위치의 숲을 신성군이 미리 정찰하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후에는 반드시 방심하게 되는 것이다. 스티리아 일족의 은신술은 그만큼 반칙적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작전이었고, 그래서 이니야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계속 기습할 기회를 노렸다.
문제는 여기서 카를조차도 예상 못한 사태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저 무식한 종자들이 설마 무기 회수할 생각도 안 하고 맨주먹으로 덤빌 줄이야?’
이니야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분명 카를 말대로 오크 라이더들이 일순 무기를 제압당하긴 했다. 그런데 또 밀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맨주먹 붉은 피, 뜨거운 열혈로 대뜸 기사단과 붙어 버렸다.
천하의 카를이라도 설마 오크가 저토록 무식할 줄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들은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고 저게 몰아치는 것인지 아니면 밀리는 것인지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이니야도 이게 맞는 타이밍인지 아닌지 헷갈려 배후 공격을 시도할 타이밍을 놓쳤다.
덕분에 상당한 아군의 피를 흘린 후에야 합공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도 아주 효과가 없진 않아!’
늦기는 했지만, 어쨌건 이니야는 분명 안타레스군이 밀리는 타이밍에 뛰쳐나왔다. 덕분에 전방의 기사들도 배후 기습에 당황해 집중력을 잃었으니 그럭저럭 기습의 묘리는 살렸다 할 수 있으리라.
후방의 신성군은 암살자처럼 신출귀몰하게 전장을 날뛰는 스티리아 일족의 빠른 기동력에 휩쓸려 일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니야는 순록의 머리를 돌렸다. 이 틈에 저쪽을 도와야 했다.
‘일단 저자를 처리해야지.’
저 멀리서 날뛰는 황금기사 유서스, 저 강력한 마검사를 막으려면 역시 오러 유저가 아니면 안 된다. 하다툼이 덫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는 지금 그녀만이 유서스를 막을 수 있는 존재다.
“세르펠, 지휘를 맡기겠다!”
“예, 족장님!”
부관에게 명을 내리며 이니야가 막 오러의 순록을 달리려 할 때였다.
“타아아앗!”
우렁찬 기합과 함께 적진 중심에서 보라색 블레이드 오러가 허공을 꿰뚫었다. 동시에 눈부신 백마를 탄 중년 기사가 뛰쳐나오며 고함을 터트렸다.
“당황하지 마라, 세이어의 용사들이어! 저 마녀는 이 몸이 상대한다!”
☆ ☆ ☆
난전 속에서 이라나드 공작은 연신 말을 달리며 좌우로 참격을 날렸다. 오러 유저의 능력은 과연 가공해, 날렵한 스티리아 일족조차 채 반응도 못 하고 목이 날아갔다. 순식간에 십여 명의 엘프들을 학살하며 공작이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흥분하지 마라! 이미 예상했던 것 아닌가! 훈련받은 대로 움직여라!”
그제야 기사들도 냉정을 되찾고 반격에 나섰다.
매복 공격이 있을 것임은 이미 공작의 말에 따라 예상했다. 그저, 아무리 정찰해도 보이지 않는 적이 어찌 매복을 하냐 싶어 정신적으로 방심했을 뿐.
일단 냉정을 되찾고 나니 기사들도 미리 준비한 작전대로 엘프 병력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경험 많은 기사들이 사방에서 소리 질러 후학들을 일깨웠다.
“저들에게 현혹되지 마라! 그저 움직임이 기묘하고 공격 범위가 넓은 것뿐, 공격 자체는 강하지 않다!”
“하피들을 상대한다는 기분으로 싸워라! 그럼 별것 아니다!”
정신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격하는 하피와 점프력으로 상대의 뒤를 노리는 엘프의 전투 방식은 비슷한 데가 있다. 물론 기술의 교묘함에서 크게 차이가 나니 하피 따위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좋아! 슬슬 보인다!”
“잠깐 날뛰었지만 끝이다! 어딜 감히 엘프 따위가!”
일단 상대하는 감각을 되찾고 나니 엘프의 빠른 몸놀림도 아주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다. 피 흘리는 기사들의 수가 빠르게 줄었다. 동시에 스티리아 일족의 피해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거 유서스 잡으러 갈 때가 아니었다. 당황한 이니야가 검을 휘둘러 다시금 오러 스킬을 발휘했다.
“북해의 숨결!”
냉기의 안개가 혼란한 전장 전역을 뒤덮어 갔다. 그녀의 오러 스킬, 북해의 숨결은 강력한 냉기로 적의 움직임을 제어하며 그 범위 또한 대단하다. 게다가 적아가 섞인 속에서도 적군만 골라 얼리는 놀라운 제어력 또한 갖추고 있다.
사아아아!
안개가 퍼지며 다시 기사들의 기세가 꺾였다. 세이어의 신관들이 신성 주문을 발동하며 막으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으윽! 어찌 세이어의 가호가 먹히지 않는단 말인가!”
“마법의 안개라면 모두 막을 수 있거늘!”
이라나드 공작이 혀를 찼다.
‘끄응, 역시 저 수법은 어떻게 대처법이 없군.’
이니야의 저 초월적인 오러 스킬에 대해선 이미 그 정보가 공작에게도 알려져 있다. 차탄 공국 등 여기저기서 막 써 댔으니 몸소 당한 이들도 꽤 많았다.
문제는, 알면서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신성 가호도 통하지 않고 마법적인 방어도 안 통한다. 정령술은 마법과 다른 원리, 다른 차원의 기술이라 디스펠이나 안티 매직 계열의 대마법 방어에 전혀 가로막히지 않는 것이다. 오러와 정령을 융합해 현세의 물질적 현상으로 바꾸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저 오러 스킬에 편법 따윈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사들 몸에 불을 지를 수도 없고…….’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전자 본인을 처리할밖에!’
연신 말을 박차며 이라나드 공작은 엘프 진영을 그대로 돌파했다. 보랏빛 블레이드 오러를 길게 뻗어 내며 공작이 소리쳤다.
“안타레스의 엘프 오러 유저! 그라임의 이라나드가 그대를 상대한다!”
2
쌔애애액!
블레이드 오러가 파공음을 울리며 쇄도한다. 예사롭지 않은 기세, 다른 데 신경 팔면서 상대할 만큼 만만한 공격이 아니었다. 북해의 숨결을 거둔 뒤 이니야도 정신을 가다듬어 반격했다.
파아앙!
보라색과 은색의 오러가 허공에 충돌해 파문을 일으켰다. 그 파문 사이로 이라나드 공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니야를 노려보며 이라나드 공작이 조용히 백마에서 내렸다.
보통 하마下馬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
하지만 오러 유저의 대결에서 말을 포기하는 것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말에 올라타서는 모든 기량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오러 유저라는 초인의 숙명, 이제부터 전력을 다하겠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으음…….”
이라나드 공작의 강함을 느낀 이니야도 표정을 굳히며 순록에서 내렸다. 오러로 이루어진 영수가 허공에서 녹아들듯 사라졌다.
‘신기한 수법이군.’
그 모습에 잠시 감탄한 이라나드가 차분한 눈으로 이니야를 바라보았다.
“그라임의 이라나드라 하오.”
“스티리아의 이니야다.”
오만한 표정으로 이니야는 존대조차 없이 대꾸했다. 하지만 공작은 방약무인하다 느끼지 못했다.
차가운 빙벽처럼 유유하면서도 굳건히 흐르는 저 오러는 이니야가 얼마나 강자인지 증명하고 있다. 저 싸늘하면서도 놀라운 미모에는 역시 저 도도한 모습이 극히 어울린다.
‘과연, 눈의 여왕이라 불릴 만한 기세로다.’
하지만 이라나드 공작 또한 그라임 왕국 최강의 오러 유저로 오랜 세월 명성을 떨쳐 온 몸이다!
“내 그대를 존중해 예의를 갖췄거늘, 그런 반응인가? 역시 엘프는 어쩔 수 없는 천한 것들이군!”
오만하기로는 공작 역시 조예가 깊은 것이다. 바로 태도를 바꾸며 공작이 자세를 잡았다.
이니야가 코웃음을 켜며 마주 검을 노렸다.
“서로 죽일 처지에 예의는 얼어 죽을? 그 심장에 구멍 뚫은 후엔 마음껏 예의를 차려 주지!”
투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이내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불어 닥쳤다.
“죽여 주마! 엘프!”
“흥! 누구 마음대로?”
두 오러 유저가 살기를 띤 채 서로에게 돌진했다.
☆ ☆ ☆
하다툼은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었다.
“어림없다, 오크 놈!”
“세이어께서 보고 계신다!”
“우리가 물러설 것 같으냐!”
선두의 방패 기사들은 아무리 오러로 후려 패도 처맞으면서 끝끝내 버티고 있었고, 뒤에 선 치사한 것들은 기사도 부르짖는 주제에 마음껏 활이며 창이며 그물이며 끈끈이 등을 던져 대고 있다. 그렇다고 위로 점프하면 마법이 날아와 격추시켜 버린다.
“씨발! 이 짜증 나는 놈들!”
아까부터 몇 번이나 터트린 욕설을 재차 터트리며 하다툼은 초조해했다.
이들의 포위진은 단단했지만, 날카롭진 않았다. 공격 자체는 부실해 딱히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가 아니다.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이 오크 전사의 전통이라지만 이런 치사한 놈들을 ‘상대’로 여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하다툼은 아까부터 힐끔힐끔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니야가 이끄는 스티리아 일족이 합세하며 전황은 다시금 바뀌었다. 오크 라이더야 원래 아군이 밀리건 말건 항시 사기충천한 놈들이니 별 효과가 없었지만, 인간은 달랐다.
분위기에 오락가락하는 것이 인간이란 종자의 특징인 바, 사기가 떨어지면 지닌 실력의 반도 못 발휘하다가도 사기가 오르면 실력의 두 배도 우습게 발휘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니야의 참전으로 아스레일이 이끄는 경장기병의 사기가 크게 올라 오히려 기사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한창 사기가 오른 그들의 실력은 오크 라이더와 비교해도 오히려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니, 오히려 신성군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대항하는 오크 라이더보다 오히려 더 전공을 세우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역시 전황은 밀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날뛰고 있는 누리끼리한 마법 기사 한 놈 때문에!
‘검 든 놈이 치졸하게 마법을 쓰다니! 저러고도 부끄럽지도 않단 말인가!’
황금기사 유서스는 여전히 파죽지세, 걸리적거릴 것 없이 적진을 마음껏 누비며 마법을 난사하고 참격을 뿌려 대고 있다.
사기 오른 경장기병도, 용맹한 오크 라이더도 저자의 검에 걸리면 한 줌의 고혼이 될 뿐이었다. 불굴의 용기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을 만큼 실력 차가 너무 컸다.
‘아, 큰일났네! 이러다 애들 다 죽겠네!’
하지만 저자와 맞설 유일한 강자인 자신은 이 요상한 덫에 갇혀 허둥대고 있을 뿐.
울화통이 터져 하다툼이 분노를 터트렸다.
“네놈들도 전사라면 당당하게 싸워라! 이 무슨 쪼잔한 짓이냐!”
당연히 기사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