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20
‘멍청했지! 젠장! 내가 그 생각을 못 하다니? 마법사 간판 너무 오래 내려놨나?’
정신없이 비행하며 레펜하르트는 스스로를 타박했다. 이미 드레자의 존재는 마력 감지가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 버렸는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순간 마력량이 낮으니 속력에서 못 따라잡는군.’
마법사는 마력을 근원의 힘으로 삼아 마법을 사역해 기적을 일궈 낸다. 그리고 그 마법의 사역 시, 마법사가 자신 모든 마력을 일시에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거운 돌을 든다고 쳐 보자.
한 개인이 젖 먹던 힘까지 총동원해 몇십 킬로그램짜리 돌을 든다. 이는 그가 들 수 있는 최대한의 무게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했다 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그 돌을 들고 난 이가 과연 전신에 한 올의 근력도 남지 않는가?
그건 아니다. 힘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조금 팔을 풀어 주면 다시 같은 무게의 돌을 들 수 있다.
마력 역시 비슷하다.
순간적으로 끌어내는 마력의 최대량, 이를 마학에서는 순간 마력량이라 부른다. 그가 지닌 모든 마력을 뜻하는 총 마력량과는 별개의 개념이다.
비행 마법 플라이의 속력은 순간 마력량에 비례하고 지속 시간은 총 마력량에 비례한다.
보통 순간 마력량은 총 마력량에 비례해 함께 오르기 마련, 현재의 레펜하르트보다 총 마력량이 많은 드레자는 그만큼 순간 마력량도 높다. 비행 마법의 속도 역시 훨씬 빠른 것이다.
하필 시간도 딱 안타레스군과 신성군이 전투를 시작할 시기였다. 재수 없으면 드레자에 의해 막대한 피해가 일어난다.
‘젠장, 최대한 따라잡아야 해!’
정신을 집중하며 레펜하르트는 점점 속력을 높였다.
총 마력량에서는 밀리지만 순간 마력량이라면 편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레펜하르트는 지닌 경지에 비해서는 마력이 낮은 상태, 마력의 출력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술식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타아아앗!”
기합까지 떨치며 레펜하르트는 점점 속도를 붙여 허공을 갈랐다. 그렇게 가공할 속도로 동쪽 고원에 도착해 보니 과연 전투가 한창, 이니야가 막 당하기 직전이었다.
정신없이 끼어들어 사방에 권격을 뿌리며 주위를 살폈는데 이게 웬걸?
‘어라?’
당황스럽게도 드레자가 없었던 것이다. 순간 어이가 없었던 레펜하르트는 이내 자신이 무엇을 간과했는지 깨달았다.
‘아, 맞다! 그 영감은 그냥 일반인 몸뚱어리지?’
☆ ☆ ☆
먼저 출발했고, 훨씬 빠른 드레자가 나중에야 도착한 이유는 간단했다.
분명 드레자의 마력이라면 비행 마법 플라이쯤은 하루 종일 시전해도 버틸 수 있다.
그렇지만 드레자의 체력은 그 비행을 하루 종일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비행 마법은 그저 허공에 둥실둥실 뜬 채 침대에 누운 것처럼 편하게 날아가는 것이 아니다. 계속 마법에 집중도 해야 하고 자세 제어도 해야 하며 나름 전신 근육도 쓰는 노동이다.
아무리 궁극의 대마도사, 9서클의 마스터 드레자라도 육체는 일반인, 아니 그 이하로 다 늙어 빠진 노인의 몸이다. 그래서 드레자는 20분 정도 날다가 10분 정도 내려서 숨 좀 돌리고, 또다시 날아오르는 것을 반복하며 비행했다.
그에 비해 레펜하르트의 육체는 더 말이 필요 없는 경지, 그렇다 보니 당연히 그가 먼저 도착해 버렸다.
“이런 몸이 되고 나서 평범한 마법사의 체력을 자꾸 간과하게 되더라고.”
허공에 뜬 채 레펜하르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전생 때는 드레자처럼 30분쯤 비행하면 체력 고갈로 허덕였던 주제에 이 몸에 들어오고 나서 싹 잊어버리다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릴 하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드레자가 인상을 썼다.
“무슨 소리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기에 레펜하르트가 대충 대꾸했다.
“몸 허약해서 고맙단 소리지, 영감.”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모욕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드레자가 바드득 이를 갈았다.
“흥! 알아들을 수 없는 헛소리 지껄이는 건 제 사부랑 똑같군!”
두 눈에 명료한 분노를 담은 채 드레자가 양손을 들었다. 가공할 마력이 양손에 머금어져 빛을 발한다.
확고한 증오를 담은 채 드레자가 레펜하르트에게 소리쳤다.
“마침 잘 만났다, 당대의 권왕! 저승에서 네놈의 사부를 원망하거라!”
2
드레자가 대마법사가 된 것은 꽤나 이른, 나이 40대 중반의 일이었다. 당시 8서클에 든 드레자는 당당히 마라그랑드 학회로부터 대마법사의 위계를 인정받고 그 명성을 대륙에 떨쳤다.
이후 그는 강력한 마법사가 대부분 그렇듯, 던전을 탐사하며 부와 고대의 지식을 축적해 자신의 기량을 높이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러는 와중 테이칸 왕국 중부에 위치한 고대 유적 크로소드에서 드레자의 탐사대는 우연히 같이 던전에 진입한 다른 탐사대를 만났다.
이럴 경우 보통 대륙의 상식은 먼저 던전에 진입한 이에게 우선권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꼬였다. 서로 다른 입구로 진입한 데다가 날짜마저 같아 어느 쪽이 우선권이 있는지 가리기가 애매했던 것이다.
당시 드레자는 대마법사의 위계를 받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던 차였다. 그가 이끄는 탐사대 역시 라스틸 공국의 후원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반면 상대 탐사대는 이제 갓 구성된 신흥 기사단, 그것도 남작가 출신의 하위 귀족들이었다.
오만하게 드레자가 말했다.
-나는 마라그랑드의 드레자, 이 던전은 내가 먼저 손댔노라! 위대한 마법의 힘을 맛보고 싶지 않다면 당장 물러서라!
그런데 별것 없어 뵈는 상대 탐사대가 감히 드레자의 명성에도 꼬리를 말지 않았다.
-흥! 비록 날짜는 같으나 우리는 오전에 진입했고 그쪽은 오후에 오지 않았소? 그러고도 어찌 우선권을 주장한단 말이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불과 몇 시간 차이긴 하지만 분명 상대 탐사대가 먼저 진입하긴 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아, 그렇군요. 그럼 수고하세요.’ 하고 물러날 정도면 오만하단 소리도 안 나왔으리라.
당연히 드레자는 분노했다.
-이것들이 뭘 믿고 내 앞을 막는 것이냐!
과연 그들은 믿는 것이 있었다. 그들 뒤에 말없이 서 있던 철탑 같은 체구의 중년인을.
상업을 통해 새로이 귀족이 된 이들은 거액을 들여 처음 나서는 던전 탐사에 믿을 만한 외부인을 초빙해 왔던 것이다.
그 외부인을 향해 탐사대장이 고개를 숙였다.
-부탁합니다!
문제는 저 믿을 만한 외부인이 영 탐탁찮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거 대마법사를 상대한다는 소린 없었는데? 계약에 어긋나잖소?
-크으! 계약한 금액의 두 배를 주겠소!
-에이, 그래도 두 배 가지고 대마법사를 상대하는 건 좀…….
-세 배! 아니, 네 배를 주겠소!
네 배란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시큰둥하던 중년인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금방 끝내리다.
이후 드레자는 말로만 듣던 당대의 권왕 제라드와 사투를 벌이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사투도 아니었다. 그냥 적절히 어루만짐당했을 뿐.
이미 6중첩 캘러미티 혼을 터득한 제라드에 비해 갓 대마법사가 된 당시의 드레자는 아무래도 수준이 좀 낮았다. 나이도 몇 살 어린 처지라 그만큼 수행 시간도 적었다.
다행히 드레자가 다른 무인들과 달리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법사였기 때문이다.
제라드도 마법사란 종자가 다른 인간에 비해 각별히 신체가 허약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성인 장정이라면 부담 없이 패 버리는 짐 언브레이커블이지만 허약한 아녀자에게까지 그런 손속을 드밀진 않는다. 그리고 제라드 기준에서 마법사는 ‘아녀자’에 속하는 종자들이었다.
날아오는 마법, 죄다 스파이럴 가드로 갈아 내며 그냥 드레자의 전신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문제는 그 손가락이 드레자에게 닿을 때마다 멍이 들고 근육이 풀리고 뼈가 부러지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커억! 으악! 으갸갹! 사람 살려!
잠시 후, 걸레 쪼가리가 된 드레자를 탐사대에 인계한 뒤 제라드가 정중히 말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요. 잘 보살피시오.
우연히 맞붙었을 뿐 전혀 드레자에게 악감정이 없는 제라드였기에 말투도 참 정중했다.
-저주한다! 짐 언브레이커블! 네놈을 저주한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제라드!
악감정이 철철 넘치는 드레자의 외침을 무시한 채 제라드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한 사흘 잘 요양하면 나을 것이오.
완치되는 데 석 달 걸렸다…….
짐 언브레이커블이야 그 정도 중상이라도 사흘이면 낫겠지.
그러나 일반인이면 평생 침상에서 못 일어날 정도의 극심한 부상인 것이다. 라스틸 공국에서 특별히 산악의 거신, 아틀라스 교단의 교황까지 초빙해 그를 치유해 주지 않았다면 정말 불구의 몸이 될 뻔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인해 드레자는 라스틸 공국의 왕실 마법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의 수모를 갚기 위해 마법에 매진, 또 매진해 결국 대륙의 유일한 9서클 마스터까지 올랐다.
“제라드, 으, 그 빌어먹을 짐 언브레이커블……!”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 한 번 혈압이 솟구치는지 노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왠지 어디서 한번 본 표정이라 레펜하르트가 떨떠름해했다.
‘저 양반도 사부랑 원한 진 사이인가?’
딱 보니 제라드 대하는 바나텔 표정이다. 아주 골수까지 원한이 진 듯했다.
드레자가 레펜하르트를 향해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복수를 위해 평생을 매진했다…….”
아무리 8서클의 대마법사라도 권왕과 싸우기엔 아무래도 승산이 낮다. 그래서 드레자는 적어도 9서클에 진입할 때까지 함부로 제라드를 찾아 나서지 않았다.
기껏 9서클에 들어 자신이 붙고 나니 이번엔 제라드가 보이지 않았다. 당시 제라드는 어린 테스론을 가르치느라 심산유곡에 처박혀 있는 상태였으니까.
이대로 평생 수모를 갚지 못하나 싶어 초조하던 차였다.
“제자 소식은 들려도 막상 본인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 그런데 그놈이 기어 나왔더군.”
바나텔과 제라드의 대결을 듣고 드레자는 바로 안타레스 공국으로 날아가려 했다. 그때 라스틸 공왕이 그를 말렸다.
공왕 입장에서는, 공국의 가장 귀한 재산인 9서클의 마스터가 아무런 득도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건다는데 말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홀로 일국에 시비를 건다면 아무리 드레자라도 승산이 적을 것 아닌가?
-아니 되오! 드레자 공! 어찌 권황과 시비를 붙으려는 거요!
-보내 주십시오, 폐하! 개인적인 일일 뿐입니다!
-드레자 공은 이미 개인적인 몸이 아니지 않소! 라스틸 공국의 신민들을 생각해 주시오!
-아니, 공국이 저 없다고 망하기라도 한 댑니까? 좀 보내 주십시오!
-못 보내오!
-이거 놓으십시오, 로브 벗겨집니다.
-못 놓소!
위엄 있는 왕실에서 일국의 왕이 로브자락까지 붙잡고 매달리는데, 아무리 제멋대로인 드레자라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뜻을 굽혔다.
그런데 바슈탈론 제국이 또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역시 하늘은 무심치 않더군.”
세이어를 위해 나서겠다는 그의 주장에는 라스틸 공왕도 차마 뭐라 할 수 없었다. 그저 ‘평소 신전도 잘 안 나가던 양반이 참 뻔뻔하기도 하지…….’라고 구시렁댈 뿐.
제국의 일부로 참전하는 것이니 홀로 일국과 맞서는 상황도 아니게 되어, 결국 공왕도 허락을 한 것이다.
드레자가 희열에 차 웃었다.
“흐흐, 제라드 놈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어차피 똑같은 짐 언브레이커블. 그놈과 붙어 보기 전에 잠깐 예행연습을 해 보는 것도 좋겠지!”
자세한 사정이야 모르는 레펜하르트지만 드레자의 혼잣말만으로도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갔다.
‘어쩐지…… 세이어 신도도 아닌 드레자가 왜 참전을 했나 했더니…….’
아무리 라스틸 공국에 제국의 입김이 세긴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독립국이다. 드레자쯤 되는 대마법사가 제국의 압력에 눌려 참전할 리가 없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냥 개인적인 원한이었다 이 말이지?’
그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안타레스 공국은 현 대륙 최강의 마법사를 적으로 돌리게 되었다.
지금쯤 크로방스 서부 전선에 있을 사부를 떠올리며 레펜하르트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아니, 이 양반은 도대체 인생이 도움이 안 돼.’
진실을 알고 나니 절로 힘이 쭉 빠진다.
‘대륙의 강자란 강자한테는 죄다 시비만 걸고 다녔냐? 응? 좀 친하게 지낸 사이 없어? 보통 무인들은 서로의 강함을 비교하고 우정을 다지며 함께 술도 마시고 그런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