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30
무슨 명화나 예술품 감정하는 듯한 말투다. 갑자기 숨을 뱉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그녀가 당황해 물었다.
“왜 그러세요? 호흡에 곤란이라도?”
잠깐 기묘한 기분이었던 것이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레펜하르트는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의아해하다 이니야도 그냥 넘어갔다. 참으로 핀트 안 맞는 두 사람이었다.
“이 정도는 금방 나을 겁니다. 그런데 이니야…….”
“네?”
부상에서 눈을 돌리며 레펜하르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이니야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사랑하는 이를 걱정하는 여인에서, 한 부대를 책임지는 사령관의 얼굴이 되어 그녀가 ‘보고’를 시작했다.
“신성군은 가란 분지 남쪽까지 후퇴했습니다. 정확히 추산되진 않았지만 삼천 정도의 피해를 보았으리라 예상되고 있고요. 황금기사를 잃었으니 전력상으로는 그 이상 약화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측은 아스레일 경과 카루가 하다툼이 인솔해 모두 타운가드로 돌아갔습니다.”
타운가드는 고원 안쪽에 만든 안타레스군의 임시 진지였다. 임시 진지라고는 하나 목책을 두껍게 세우고 오크들의 이동 가옥으로 숙소를 꾸렸으니, 방어력이나 주거 여건이나 어지간한 요새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이니야가 말을 이었다.
“사로잡히거나 부상을 입은 신성군 포로들은 아스레일 경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레펜하르트 님이 붙잡은 황금기사도 함께 관리되고 있지요.”
신성군이 먼저 후퇴했기에 안타레스 쪽 부상자는 아군에 의해 수거되었다. 반면 신성군의 부상자들은 전부 전장에 남겨진 것이다.
“그렇군요. 우리 측 피해는 어떻습니까?”
그러자 이니야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안타레스 기사단과 경장기병대가 백, 오크 라이더가 백에 오크 보병이 삼백, 엘프 쪽이 백여 명 정도 피해를 보았습니다.”
인간이나 오크도 물론 소중하지만, 특히나 엘프들은 그 수가 적다. 죽어 간 백 명의 엘프는 모두 일족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잃은 이니야의 표정이 밝을 수가 없었다.
“으음, 피해가 크군.”
레펜하르트도 잠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전장에 죽어 간 이를 일일이 신경 쓰다간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알 정도로 노회한 자였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냉정하게 말했다.
“슬픈 소식이지만, 그래도 전쟁 중의 피해로는 나쁘진 않습니다.”
오천 대 일만의 대결에서 적군 삼천을 베고 이쪽 피해가 육백이라면, 이는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대승이라 해도 좋다.
“카를의 작전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군요.”
살짝 이니야가 당황했다.
실제로는, 카를의 작전은 반만 성공했다. 레펜하르트가 도중에 난입해 주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이쪽이 패할 수도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던 전장이었다.
그런데도 신성군의 피해가 저토록 큰 것은 모두 이니야의 공이었다.
화려한 마법을 난사하던 유서스나, 화끈하게 사방을 갈아엎던 레펜하르트의 무위가 겉보기엔 더 대단해 보인다. 그러나 일반병들은 저 두 초인을 상대로 정면 대결을 하지 않고 어떻게든 피하거나 도주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의외로 저 둘의 손에 죽은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반면 신성군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인해전술을 펼쳐 오러 유저인 이니야를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몰았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이니야 하나를 해치우기 위해 엄청난 피해를 감수했다는 소리도 된다.
실은 이니야 혼자서 거의 오백 정도의 신성군을 베어 넘겼던 것이다.
“으음…… 그게…….”
왠지 솔직히 말하자니 잘난 척하는 것 같아 꺼려진다. 그리고 그리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아무리 상대가 적대적인 인간들이라지만, 그토록 많은 피를 손에 묻혔으니 그녀의 심기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니야는 대충 대답했다.
“네, 덕분에 승리했어요.”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그런 그녀의 노고를 몰라주지 않았다.
“그대도 고생이 많았군요, 이니야. 상처가 심해 보입니다.”
전신을 뒤덮은 부상은 그녀도 레펜하르트 못지않다. 이미 입은 옷이 붉게 물들어 원색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그토록 처참한 상태인데도 이니야는 자신은 돌보지도 않고 레펜하르트를 걱정해 이곳까지 달려왔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러고 보니 감사가 늦었네요.”
감동한 레펜하르트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맙습니다, 이니야. 덕분에 살았어요.”
따듯한 레펜하르트의 목소리에 이니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단순히 전장의 공적을 치하하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절로 가슴 한쪽이 두근거린다.
“레, 레펜하르트 님…….”
“여하튼 대충 상황은 알겠군. 그럼 이니야, 죄송한 말인데…….”
“네?”
레펜하르트가 정색을 하며 손가락 하나를 펴 들었다.
“딱 10분만 기절해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침몰해 버렸다. 거구의 사내가 연약한 엘프 여인의 상체를 그대로 덮쳤다. 이니야가 놀라 그를 안았다.
“어머나!”
이미 레펜하르트의 육체는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 그저 정신력만으로 지금까지 버텼던 것이다. 상황도 끝났고 전쟁 이긴 것도 확인했으니 간신히 버티고 있던 레펜하르트의 정신줄도 끊겨 버렸다.
워낙 거구다 보니 이니야가 부축하고 있음에도 마치 품 안에 폭 안겨 있는 듯한 모습이다. 레펜하르트의 맨가슴이 그대로 이니야의 얼굴에 닿아 뜨거운 열기를 풍긴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 저리가라 할 정도로 새빨개졌다.
“아니, 저기 이건…….”
평소 그토록 유혹해 댄 주제에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몸 둘 바 모르는 이니야였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지만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처녀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 봤자 상대는 이미 혼절 중.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이니야도 도로 침착해졌다.
“어휴, 이 사람 좀 봐…….”
그녀는 레펜하르트를 부축해 조심스레 땅 위에 눕혔다. 마냥 맨땅에 눕히자니 좀 기분이 안 좋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레펜하르트의 머리를 들어 괴였다.
그러고 있자니 묘하게 기분이 들뜬다.
“의외로 머리가 크네.”
그야, 비율상으론 작다 해도 워낙 덩치가 크니 머리도 클 수밖에.
“커도 멋있기만 하다, 뭐.”
이니야가 부끄러운 듯 웃었다.
무릎베개 상태로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는다. 섬세한 손가락이 부드럽게 갈색 머리칼 사이를 휘젓는다.
‘열이 좀 있나?’
당연했다. 그토록 온갖 마법에 이리저리 채였는데 아무리 짐 언브레이커블의 육체라지만 이상이 생겼겠지.
기절한 레펜하르트가 인상을 쓰며 낑낑대기 시작했다.
“음, 으음…….”
눈을 감은 채 깽깽대는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이니야가 오른손을 들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와 줘요, 내 친구 로이나, 샤이드.”
물과 어둠의 정령을 불러 합일하니 이내 서늘한 냉기가 그녀의 손에 맴돈다. 냉기를 머금은 채 이니야가 레펜하르트의 이마며 가슴, 복부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품에 안겼을 때는 그토록 호들갑 떤 주제에 남정네의 맨살은 서슴없이 어루만지고 있다. 하지만 카루지안 유술 연습 때 이미 신 나게 했던 짓이라, 이건 또 별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이니야였다.
‘좀 기분이 나아지실까?’
과연, 레펜하르트의 신음이 줄어들며 호흡이 편해진다.
“수고하셨어요, 레펜하르트 님.”
안도하며 이니야가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앞으로도 많은 일이 있고, 많은 고난이 닥치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잠든 모습―정확히는 혼절한 모습이지만―을 바라보며 그녀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지금은 푹 쉬세요…….”
제51장 전장의 북소리여, 볼륨을 높여라!
1
성전 개시 사흘째.
크로방스 서부 국경은 여전히 팽팽한 국면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네 군단으로 나뉜 바슈탈론 제국군은 뛰어난 장비와 고도의 훈련을 통해 단련된 정예병을 투입해 끊임없이 크로방스의 네 요새를 공격해 댔다. 대륙 최강의 국력을 가진 바슈탈론 제국에서도 전문적으로 전투만을 수행하는 이들의 힘은 실로 강력했다. 어지간한 국가라면 이들 중 한 개 군단의 힘만으로도 나라가 멸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로방스는 용케도 버티고 있었다.
농성 사흘째의 제스턴 요새.
“날벼락 떨구기!”
우렁찬 기합과 함께 몰려오는 제국군의 머리 위로 녹색 벼락이 떨어졌다.
이내 거대한 오크가 녹색의 블레이드 오러를 사방으로 날린다. 두꺼운 갑주도 일격에 베는 저 파괴의 빛 앞에는 제국 정예병들도 어쩔 수 없다. 순식간에 정예 수십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다.
제국군들이 두려워하며 소리쳤다.
“칼켄이다!”
“오크 대족장, 칼켄이 나타났다!”
지난 사흘간 칼켄이 떨친 무용은 제국의 인간들에게도 충분히 뇌리에 박힐 정도로 가공한 것이었다. 이제 제국군도 더 이상 칼켄을 ‘괴물 오크’라거나 ‘오크의 탈을 쓴 마물’ 같은 칭호로 부르지 않았다. 크로방스 측에서 부르는 것처럼 제대로 대족장이란 칭호를 붙이고 있었다.
칼켄의 등장으로 제스턴 요새 서쪽 공성 부대의 기세가 일순 주춤해졌다. 그러나 이내 제국군에서도 블레이드 오러가 빛을 뿜었다.
“이번에야말로 그 목을 베어 주마, 오크 대족장!”
검붉은 오러를 전신에 감싼 50대의 중년 기사가 말도 타지 않은 채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 제국 기사단의 2인자, 걸포드 경이었다.
칼켄이 투지로 눈을 빛냈다.
“왔구나, 걸포드!”
두 오러 유저가 전장 한 가운데서 검투를 시작했다. 2.3미터의 거구인 칼켄이 패도적인 연격으로 밀어붙이면 걸포드 경도 놀라운 힘으로 공격을 막아 내며 도리어 반격을 한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칼켄!”
칼켄과 비교해 작아 보이긴 하지만 걸포드 경도 사실 신장이 2미터가 넘는 거구 중의 거구였다. 지닌 무술 역시 강검 계열이라 일격의 파괴력으로 성벽도 부술 수 있는 소유자였다.
칼켄이 신이 나 외쳤다.
“역시 좋구나! 나와 힘으로 맞먹는 인간이 또 있으니!”
걸포드 경이 비웃으며 되받아쳤다.
“흥! 세상에 그 정도 힘을 가진 이가 자신뿐인 줄 알았더냐?”
비록 검성 바나텔이라는 초인 중의 초인이 존재해 몇십 년째 제국의 2인자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걸포드 경 역시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오러 유저였다. 단순히 파괴력만으로는 족히 레펜하르트 수준이다.
“제국의 잠재력은 무궁무진! 우물 안 개구리에게 하늘 높다는 것을 알려 주마!”
제국의 자부심을 가득 안고 걸포드 경이 조롱을 던졌다. 그런데 의외로 칼켄이 납득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하늘 정말 높더라.”
“응?”
이미 칼켄은 제라드라는 ‘투신’을 상대해 본 바 있다.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전신으로 느낀 것이다.
“음, 그 양반은 그야말로 하늘이지…….”
중얼거리는 칼켄의 목소리에 걸포드 경이 공감의 빛을 띠었다. 그 역시 검성 바나텔을 통해 하늘 높은 줄 잘 아는 개구리(?)였다.
“그건 그렇지. 하늘 정말 높지…….”
“그렇지…… 높지…….”
싸우다 말고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버렸다.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피식 웃어 버렸다. 잘 싸우다 이 무슨 쓸데없는 짓인가?
“죽어라, 인간!”
“죽어라, 오크 놈!”
다시 투지를 끌어 올리며 칼켄과 걸포드 경이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둘 다 몇 번이나 맞붙은 처지라 쉽게 승패가 갈리지 않는다. 연달아 필살의 일격을 뿌려 대는 둘을 보며 남쪽의 방비를 맡고 있던 또 한 명의 오크 투사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대족장께서 또 주위 신경 안 쓰고 몰입해 버리셨네.”
칼켄과 걸포드의 대치가 길어지자 그 주위만 동그랗게 공터가 생긴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제국 측도 크로방스 측도 그쪽만 피해서 여전히 공성과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쯧쯧, 모름지기 수장 된 이라면 항시 수하들을 살펴야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