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31
그는 안타레스의 일곱 오크 투사 중 한 명, 갈색 바위 부족의 차기 부족장 프다칸이었다.
올해 스물다섯이 된 그는 타시드가 나타나기 전만 해도 오크 중 최연소로 카루가가 된 강력한 전사이며, 동시에 뛰어난 무기아비이기도 한 현명한 오크였다. 오크 중 몇 안 되는 ‘인간의 정치’를 이해하는 오크이기도 했다.
“형제들이여! 투지를 잃지 마시오! 조상들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니!”
현재 성벽 위는 드워프와 인간들이 자리 잡고 굳건히 방어 중이다. 하지만 농성이라고 해서 마냥 성 위에서만 버티고 있으면 언젠가는 뚫리기 마련, 빈틈이 생겼을 때 성 밑으로 출격해 후속 공세를 막아 주어야 한다.
프다칸이 이끄는 오크 라이더들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공성의 흐름이 늦추어질 때마다 쪽문을 통해 돌진해 치고 빠지기를 계속함으로써 성 위쪽이 숨 돌릴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원래 오크는 돌진에는 강하지만 이런 치고 빠지기에는 약한 면모를 보인다. 하지만 프다칸은 적어도 인간의 전략을 이해할 정도의 현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가자! 위대한 용사들이어!”
오크 라이더들을 이끌고 프다칸은 성벽 좌측에 포진한 제국군을 매섭게 몰아붙였다. 초반에는 거칠게 밀어붙이지만 이내 포위망이 구축되며 기세가 꺾였다.
또다시 슬슬 빠질 때, 프다칸이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형제들이여! 성벽의 아군을 보호하라!”
그냥 후퇴하라고 하면 용맹한 오크들에게는 그리 먹히지 않는다. 하지만 아스레일도 그랬듯, ‘돌진 상대’를 바꿔 주면 또 단순한 오크들은 잘 따르는 것이다.
“우오오!”
과연 계획대로 오크들이 용맹하게 ‘후퇴’했다. 뭐, 본인들은 후퇴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으니 용맹할 법도 했다.
그렇게 프다칸이 철수하는 오크 라이더의 뒤를 지키던 중이었다.
“오늘이야말로 베어 주마, 오크 놈!”
“저 늙은 인간, 또 왔네.”
제국군 쪽에서 군청색 블레이드 오러를 휘두르며 60대의 늙은 기사 하나가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제국 기사단의 그라타스 경이었다. 비록 제국의 오러 유저 중에서는 약한 편에 속하지만 수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맞붙은 상대가 나타나자 프다칸이 눈에 불을 켰다.
“늙은 인간! 갈색 바위 부족의 프다칸이 상대한다!”
흥분한 두 사람이 검을 마주했다. 젊고 힘이 넘치는 프다칸과 늙었지만 노련한 그라타스가 수십 차례의 검격을 주고받으며 파문을 뿌려 댔다.
칼켄 뒷담을 깐 주제에, 프다칸도 어쩔 수 없는 오크라 일단 필적할 상대를 만나니 눈이 돌아가 버렸다. 수하들이 후퇴를 하는지 마는지 신경 끈 채 전력으로 그라타스를 상대한다.
“죽어라, 늙은 인간!”
“그놈 말본새하고는! 과연 천한 오크 놈답구나!”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오크 라이더들은 용케 차분히 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어느새 성벽 위를 총괄하던 슬로이틀이 나타나 대신 지휘를 맡은 것이다.
“자기도 똑같은 주제에 뭐 칼켄 공 욕하고 그러나? 쯧쯧.”
칼켄과 똑같이 전장에 공터 만들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프다칸을 보며 슬로이틀은 혀를 찼다. 아무리 현명해 봤자 결국 오크는 오크랄까?
“자 자, 어서들 들어오라고, 오크 친구들! 아, 아니지? 성벽 쪽으로 돌진하라고!”
“슬로이틀 님! 동쪽에 마법사가!”
“어? 그새 떴어? 지금 간다!”
요새 서쪽과 남쪽에 정신 팔린 사이 제국의 마법사가 동쪽을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허겁지겁 짧은 다리로 점프해 가며 슬로이틀이 순식간에 동쪽 성벽으로 향했다.
제국군 진지 쪽에서 남색 로브를 휘날리며 노인 하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번 전쟁에 참전한 태양탑 4대 대마법사 중 한 명, 8서클 후반에 종사하고 있는 키란트였다. 천재 오러 유저 키린트의 숙부이기도 한 그가 양손을 올리며 소리쳤다.
“난쟁이 놈! 신의 뜻 아래 네놈을 벌하겠다!”
마법이 발동되며 불의 비가 동쪽 성벽 전체에 흩뿌려진다. 슬로이틀도 블레이드 오러를 뿌려 대며 맞섰다.
“그놈의 신 타령 지겹다! 닥치고 덤벼!”
드워프답게 슬로이틀은 칼켄이나 프다간처럼 일대일 양상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 드워프 전사들의 투창 공격과 연계해 블레이드 오러를 뿌리며 어디까지나 성벽 사수에 중점을 둔다.
자신이 날린 불의 비가 슬로이틀의 오러 장막에 가로막혀 모조리 허공에서 소멸된다. 대마법사 키란트가 불만스러운 듯 혀를 찼다.
“저 난쟁이 놈은 오러 유저 주제에 계속 거북이처럼만 구는군.”
전사답지 않게 냉정한 슬로이틀은 강자가 나타나도 일대일 양상으로 빠져들기보다는 전황에 더더욱 신경 쓰고 있었다. 딱히 상대가 마법사여서가 아니다. 지난 사흘 동안, 걸포드 경이나 그라타스 경을 상대할 때도 슬로이틀은 계속 저런 전법을 유지했다.
연이은 키란트의 마법을 계속 오러로 쳐 내며 슬로이틀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어림없다, 이놈들! 한 발자국이라도 내줄 성 싶으냐!”
☆ ☆ ☆
제스턴 요새가 한창 농성 중이던 그 시각.
다른 요새들 역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크로방스 서부 방어 요새 라카스.
그곳에서 한 묘령의 소녀가 황토색 블레이드 오러를 휘두르며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겉보기엔 잘해 봐야 십대 중후반에 불과한 소녀, 하지만 가슴만큼은 풍만하기 그지없어 배틀 액스를 휘두를 때마다 출렁거림이 갑주 위에까지 티가 난다.
“인간들아! 드워프의 진정한 힘을 보여 주마!”
그랜드 포지의 새로운 오러 유저, 유스테아였다. 수많은 적병들 앞에서 유스테아가 두 다리로 대지를 굳게 디뎠다.
“대지 공명!”
대지의 힘을 빌어 전신의 힘을 끌어낸다. 그리고 손에 든 도끼 창을 제국병을 향해 맹렬하게 내던진다.
“가라, 할트론!”
카다마이트가 애지중지하던 애병, 이제는 그의 유품이 된 거대한 도끼 창이 황톳빛 블레이드 오러를 머금은 채 적진을 누볐다.
유스테아가 눈에 불을 키며 소리쳤다.
“카다마이트의 몫까지 싸워 주마!”
카다마이트와 동기였던 유스테아는 예전부터 오러 유저를 제외하곤 드워프 전사 중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카다마이트의 죽음을 접하고 그의 시체를 앞에 두며 오열하던 그 순간, 마지막 벽이 허물어지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그녀는 당당히 그랜드 포지의 새로운 오러 유저가 되었다.
“타아아앗!”
드워프답지 않게 농성이 아닌 정면 돌격을 가행하며 유스테아는 적진을 돌파했다. 오크 라이더와도 비견될 정도의 돌진력, 몇몇 드워프 전사들이 뒤를 따르다 헉헉거렸다.
“아이고, 유스테아 님. 우린 다리가 짧단 말입니다.”
“그러게, 우째 쫓아가라고.”
젊은 드워프들이 투덜거리자, 나이 든 중년 전사들이 혀를 차며 말을 받았다.
“그런데 다리는 쟤도 짧잖아?”
“저분은 대신 멀리 뛰잖아요!”
“그냥 좀 닥치고 쫓아가! 하여튼 요새 젊은 것들은 빠져 가지고…….”
투덜거리면서도 잘도 유스테아의 뒤를 쫓는 드워프 전사들이었다. 다른 요새와 달리 라카스 요새는 지형이 비교적 험하지 않아 성벽 위보다는 이렇게 요새 주위에 방어력을 집중해 공성의 흐름을 끊는 것이 중요했다. 일종의 이동 성벽이랄까?
유스테아가 돌진하자 제국군도 이내 반응했다. 제국 오러 유저가 말을 타고 달려오며 분노해 소리친다.
“시건방진 어린 계집 따위가!”
“어리긴? 네놈보다 백 살은 더 먹었다!”
50대 기사를 향해 소녀의 외모를 한 유스테아가 앙칼지게 대꾸쳤다.
겉보기엔 저래 보여도 유스테아는 드워프, 카다마이트와 동기인 중년의 나이인 것이다. 절대 나이가 아닌 종족 나이로 쳐도 저 기사와 크게 나이 차이가 안 난다.
달려오는 제국 오러 유저를 상대하기 위해 유스테아가 도끼 창을 마주 들었다. 뒤따른 드워프 전사들이 당황했다. 여기서 싸우면 포위망에 갇히는 형국이 되어 버린다. 일단 진을 뒤로 물려 성벽 밑에서 상대해야 했다.
드워프 주제에 성질이 폭급한 유스테아를 말리기 위해 수염이 수북한 드워프 하나가 그녀를 불렀다.
“어머니! 일단 후퇴해야 합니다!”
그러자 순간 주위의 제국병 모두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어머니?”
“누가 누구의?”
과연 드워프답게 수염이 덥수룩하긴 했지만, 사실 저 드워프 청년은 올해 고작 일흔다섯, 갓 성년이 된 이였다. 시리스와 비슷한 나이대랄까?
반면 올해 백쉰 살인 유스테아는 이미 아들도 둘이나 본 당당한 유부녀인 것이다. 아라난 그라드에 대장장이 일하는 남편도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인간이 보기엔 귀여운 인상의 10대 소녀로밖에 안 보인다. 제국병들이 숙덕거렸다.
“저, 저렇게 어린데 애까지 낳은 유부녀라고?”
“애가 저리 늙었는데?”
“화, 확실히 가슴은 큰데…….
저리 소녀스러운 외모의 유부녀라니…… 특이한 취향을 지닌 제국병 몇몇이 묘한 상상으로 얼굴을 붉힌다. 물론 저런 무도한 작자들은 이내 유스테아의 일격에 한 줌 고혼이 되었다.
“죽어라, 이 변태들! 하여튼 인간은 뭔 변태가 이리 많아?”
“어머니! 후퇴해야 한다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성질을 내면서도 유스테아가 병력을 이끌고 뒤로 물러섰다. 이내 오크 라이더와 합류하며 튼튼한 진형을 구축한다.
오크 라이더를 이끄는 지휘관은 놀랍게도 날씬한 체구의 오크 여인이었다.
“유스테아! 서쪽을 부탁해요!”
“알았어요, 아란타!”
그녀는 오크의 일곱 투사 중 한 명, 철사자 부족의 족장 아부타의 아내인 아란타였다. 유스테아의 드워프 전사들과 합류하며 그녀가 소리쳤다.
“철사자의 용사들이어! 전원 돌격!”
방어 위주인 드워프 전사들이 뒤를 받치고 오크 라이더들이 공세를 취하며 서로의 역할을 반전한다. 몇 번이나 해 온 전법이라 그 흐름이 노련하기 짝이 없다.
순식간에 성벽에서 뛰쳐나오는 돌격대가 된 오크 라이더들, 그를 이끄는 아란타를 보며 제국병들이 공포에 질려 소리쳤다.
“으, 괴물 오크녀다!”
아란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누구 보곤 침 흘리고, 누구 보곤 괴물이냐?”
껄떡대는 시선도 싫지만 무시당하는 것은 더 싫다! 아, 복잡한 여심이여…….
“가라, 나의 자매들아!”
아란타가 손을 뻗자 등에 달린 네 자루의 무기가 일제히 하늘로 날았다.
오러를 머금은 망치와 도끼, 단검과 사슬낫이 허공을 누비며 복잡한 궤적을 그린다. 단순히 네 개의 무기가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계해 커다란 진법을 형성한다.
아란타가 자랑하는 비기, ‘용잡이 덫’이었다.
남자 전사와 달리 오크 여전사들은 스피리츠 웨폰으로 단 하나의 큰 무기가 아니라 여러 자루의 다양한 무기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근력 문제는 아니었다. 어차피 전사가 될 정도의 오크 여성이라면 근력에서 남자에게 밀리진 않는다.
오크 남성과 여성의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다.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채집을 하는 것이 오크의 전통 문화.
사냥을 위해선 한 가지 목표물에 집중해야 한다. 반면 채집은 온갖 다양한 열매를 골라서 채취하는 작업이다. 한 가지에 열중하는 남자의 본능과 멀티태스킹이 되는 여성의 차이랄까?
물론 각자 개성이라는 것이 있으니 남녀의 성격이 뒤바뀌는 경우도 의외로 흔하지만, 일단 문화적으로 고정이 되면 아무래도 그에 걸맞은 상식이란 게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오크 여전사들은 남자와 달리 다양한 무기를 선호했다. 열두 개의 단검을 쓰는 스탈라처럼 아란타도 네 자루의 도끼와 망치, 단검과 사슬낫을 동시에 영혼의 자매로 여기고 있었다.
“죽어 버려, 이 변태만도 못한 것들!”
흥분한 아란타의 앞을 제국 오러 유저가 가로막고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후퇴한 유스테아의 방어진 쪽으로도 또 한 명의 제국 오러 유저가 투입되어 팽팽한 국면을 맡았다.
라카스 요새 성벽 역시 치열한 전투가 한창이었다.
“나의 친구 이그나시스, 나를 위해 나와 줘요.”
십여 명의 갈색 피부를 지닌 엘프 정령사들이 제국의 대마법사 바록을 상대로 강력한 불의 정령술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들을 지휘하는 이는 가녀려 보이는 청초한 미모를 지닌 미녀 엘프, 시리스와 친자매처럼 지내는 샤일렌이었다.
“이그나시스!”
강력한 불꽃의 정령이 바록의 냉기 마법과 충돌해 거친 폭풍우를 일궈 낸다. 자신의 마법이 계속 가로막히는 걸 보며 대마법사 바록이 혀를 찼다.
“거참, 엘프 따위가 어찌 저런 강력한 정령을…….”
8서클의 대마법사인 바록도 저리 강력한 정령을 불러낼 자신은 없었다. 마법으로 강제 이동시키며 정령의 힘을 소진하는 정령 소환 마법과 달리 엘프들은 전혀 힘의 감쇠 없는 정령 소환이 가능한 것이다. 아무래도 파워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샤일렌은 렐하드보다도 강력한, 현재 단하임 일족에서 두 번째로 뛰어난 정령사다. 첫 번째가 야매로 정령술 익힌 시리스임을 감안하면 제일 뛰어나다고 봐도 좋다. 그녀가 그 정도로 실력이 높기에 렐하드도 예전 샤일렌으로 하여금 시리스를 가르치게 한 것 아닌가?
세 여인이 전장 곳곳에서 힘을 쓰며 전투를 이끈다. 각 종족의 지휘층이 전원 여성으로 이루어진 것은 딱히 카를이 일부러 노린 것은 아니었다.
라카스 요새는 그 특성상 성벽 안쪽에서 농성하기보다는 성 안팎에서 유동적으로 연계해 농성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드워프치고는 돌격력 강한 유스테아가 필요했고, 오크치고는 방어에도 강한 아란타가 뽑혔다. 둘 다 여인이다 보니 종족 성격이 뚜렷한 남자들보다는 좀 더 융통성이 있었다.
여기에 가장 강력한 정령술사를 투입하다 보니 샤일렌이 걸렸다. 그냥, 어쩌다보니 이런 구성이 되었달까?
뭐, 여인이라 해도 결코 남자들보다 약하지 않다. 당당히 제국의 오러 유저를 상대하며 아란타가 호쾌하게 외쳤다.
“와라, 제국의 개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