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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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레스의 오러 유저들이 유독 눈에 띄긴 하지만, 그렇다고 크로방스 왕국이 그저 원군의 힘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부의 철벽, 제클릭 경이 양성한 원래의 크로방스 서부 국경군은 제국군 못지않은 정예다. 이들이 뒤를 받쳐 주지 않고서는 아무리 이종족들의 힘이 강하다 한들 제국군의 공세를 버티지 못했으리라.
초반엔 피해가 컸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신병들과도 제대로 어우러져 필사적으로 요새를 보호하고 있었다.
덕분에 제국군 측에서는 상당히 골머리를 썩는 중이었다.
“생각보다 크로방스의 저항이 거세군.”
전황을 보고받으며 제국군 총사령관 길리우스 황태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참모장이 그를 달래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전하. 저들의 방어는 요새끼리의 연계에 의한 것, 하나만 함락되어도 둑 터진 제방처럼 일제히 무너질 것이옵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 하나가 안 무너지지 않나?”
길리우스 황태자는 신경질을 내며 막사에서 나섰다. 밖으로 나온 그의 눈에 높게 솟은 검은 성이 보였다. 크로방스 서부 최강의 요새, 파루간이었다.
참모장이 뒤따르며 아부하듯 말했다.
“각 요새들이 아무리 버텨 봐야 본진이 무너지면 의미가 없습니다. 파루간이 함락되는 순간 모두 실 끊어진 연이 될 것이옵니다.”
“파루간 요새가 무너질 경우의 이야기지, 그건.”
“전하의 위엄 앞에 저따위 요새쯤은 사흘도 못 버틸 것이옵니다.”
“으음…….”
아부인 줄은 알지만 길리우스는 굳이 참모장을 타박하지 않았다.
세상은 아부를 멀리 하는 왕이 좋은 왕이라고만 알고 있지만 제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길리우스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원래 인간은 호의가 계속 이어지면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줄 착각하는 종자들.
마냥 바른 소리만 하게 만들면 신하들이 건방져지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황권의 약화로 이어진다. 신하들이 바른 말을 하는 건 좋지만 그 말을 건방지게 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공손하게, 황권을 두려워하며 바른 말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통치란 어디까지나 조화로워야 하는 법.’
참모장의 아부를 대충 흘려 넘기며 길리우스는 파루간 요새를 노려보았다. 이틀째 공격 중이지만 저 철벽의 요새는 요지부동, 조금도 넘어갈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길리우스 황태자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 정도 요새쯤, 바나텔 공이 제대로 힘을 쓰면 간단할 것을…….”
바나텔의 비기, 참성검 아틀라스의 기둥은 막으려 한다고 막아지는 물건이 아니다. 그 기술이라면 아무리 거대한 요새라도 일격에 붕괴시킬 수 있다.
참모장이 정색을 하고 대꾸했다.
“그랬다간 권황도 제대로 힘을 씁니다. 오히려 다행이지요.”
☆ ☆ ☆
이틀 전, 파루간 요새의 중앙 홀.
유벨 2세는 길리우스가 보낸 사신을 알현하고 있었다.
이미 선전포고는 했지만, 이곳 파루간 요새는 제국 황태자와 일국의 국왕이 함께한 전장이다. 양국의 우두머리가 만났으니 그에 걸맞은 격식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마지막 경고요, 크로방스의 군주여. 바슈탈론 제국의 힘은 강력하고 세이어의 권세는 세상을 뒤덮으니 이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만용일 뿐!”
시건방진 사신의 말투에 알현실 좌우의 기사들이 흥분해 눈을 부라렸다.
“아무리 제국이라 하나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감히 폐하께 무슨 망발을!”
“그 더러운 입을 도려내 주마!”
개중에는 당장이라도 칼을 뽑을 듯 자루로 손을 가져가는 이도 있었다.
슬쩍 주위를 보며 재빨리 사신이 말을 이었다.
“현 크로방스의 군주께서는 젊은 나이임에도 놀라운 영명함을 지니어 그 칭송이 드높다 들었소.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바라오!”
오만한 가운데서도 은근슬쩍 유벨 2세를 띄워 주니 기사들도 차마 칼을 못 뽑고 씩씩대기만 한다. 제국의 사신이 슬그머니 유벨 2세의 눈치를 보았다.
대국의 사신이 적진 한복판에서도 시건방진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무리 무도하게 굴어도 설마 자신을 건드리겠냐는 대책 없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국으로 향한 사신이 건방 떨다가 목만 본국 돌아간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바보가 아닌 이상, 흥분한 상대가 뒷생각 안 하고 기분대로 저질러 버릴 경우를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뭐, 역사 속의 외교관 중엔 정말 저런 바보라서 목 잘린 이들도 상당히 많지만 적어도 바슈탈론 제국은 그 정도로 멍청한 이를 사신으로 보내진 않는다.
그런데도 제국의 사신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외교를 담당하는 자는 일국의 얼굴이나 다름없다. 대제국 바슈탈론의 사신이라면 국위에 걸맞은 오만함 또한 보일 의무가 있는 것이다. 제국의 위엄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상대의 비위를 아슬아슬한 데까지 긁는 것, 이 또한 제국에서는 좋은 외교관의 덕목이었다.
현 제국의 사신은 유능한 이였고, 그래서 저 밀고 당기기를 절묘하게 하고 있었다. 덕분에 유벨 2세도 흥분했을지언정 크게 분노하진 않았다.
“크로방스의 정책은 우리의 사정일 뿐, 아무리 제국이 강대하다 하나 내정 간섭까지 받을 이유는 없다. 크로방스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뭐, 예상했던 대로다. 어차피 사신도 상대의 항복을 받아 내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니까.
“후회하실 겁니다, 크로방스의 군주여.”
눈치 보니 마지막 시건방 정도는 떨어도 되겠다 싶어 사신이 말을 이었다.
“설마 저것이 제국의 총 전력이라 생각하시진 않겠지요? 제국의 저력은 무한한 것, 황제께서 마음만 먹으면 백만 대군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유벨 2세가 손을 내저으며 마음대로 하라는 듯 대꾸했다.
“돌아가서 전하라. 그쪽에 백만 대군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짐 언브레이커블이 있다고!”
☆ ☆ ☆
사신이 돌아간 직후, 개전이 선포되었다.
길리우스가 이끄는 제국 제1군단이 공격을 시작했다. 무수한 병력이 해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대해 파루간 요새에서는, 단 한 명을 내세웠다.
요새 성벽 위에서 한 노인이 사뿐히 몸을 날려 뛰어내린다. 손을 들어 전방을 살펴보며 노인, 제라드가 히죽 웃었다.
“어따, 많이도 몰려오는구먼.”
그는 이미 겉옷을 벗고 우람한 상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양 주먹을 불끈 쥐니 전신 근육이 꿈틀거리며 약동했다.
“와아아아아!”
포효를 터트리며 달려오는 제국의 군세를 향해 제라드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제라드가 허허롭게 웃었다.
“어쩌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만 일반 병사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리? 자비를 베풀어 주마.”
콰앙!
내디딘 한 발이 폭음을 일구며 거대한 황금빛 파문이 되었다. 파문이 주위의 대지를 모조리 뒤집어엎으며 거대한 흙의 파도로 화한다.
달려오는 거대한 제국 군대의 해일을 향해, 더 거대한 흙의 해일이 밀려 갔다.
콰콰콰콰!
“으억?”
“뭐야, 저건?”
거대한 흙의 장벽이 어지간한 성벽 크기가 되어 밀려오며 머리부터 덮쳐 온다. 순식간에 선봉 부대 전부가 흙의 해일에 싹 휩쓸린다. 평지에서 산사태에 휩쓸리는 진귀한 경험을 하며 제국병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아아악!”
“권황이다!”
“권황 제라드다!”
확실히 공격에 살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것이 제라드가 빈말한 건 아닌 모양이었다. 언제 자연재해가 살기 피우는 것 봤나? 그냥 휩쓸리면 죽는 거다.
보고 있던 길리우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유벨 2세가 그랬다지? 자신들에겐 짐 언브레이커블이 있다고.”
자비를 베푼다면서 대지를 에이커 단위로 갈아엎는 스케일 큰 작자는 대륙에서도 몇 없다. 확실히 기겁할 위용이었다. 유벨 2세가 그런 자신만만함을 보일 만하다.
그러나 길리우스는 겁먹지 않았다.
“백만 대군 따윈 필요 없지. 그쪽에 권황이 있다면, 이쪽엔 검성이 있다!”
길리우스가 깃발을 올려 출격 신호를 보냈다.
“바나텔 공!”
곧이어 제국군 진지에서 선홍색 빛의 기둥이 솟구쳐 창공을 꿰뚫었다.
“이놈, 제라드! 애꿎은 애들 괴롭히지 말고 둘이 붙자!”
“오냐, 바나텔! 그러게 일찌감치 나오지 그랬느냐? 엉덩이가 무거우니 애들이 고생하잖아?”
숙적을 만난 두 사람이 저마다 오러를 내뿜으며 격돌한다. 양쪽 모두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오오! 검성 바나텔!”
“권황 제라드시여! 제국 놈들을 박살 내 주소서!”
바나텔과 제라드가 전력을 다해 맞붙었다. 가공할 힘이 폭풍이 되어 전장을 뒤덮고 사방팔방에 오러의 파편을 유성처럼 뿌려 댄다. 무지막지한 폭발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점점, 환호하던 양쪽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
“어라……?”
미친 듯이 싸워 대는 두 괴수들, 그들이 흘리는 오러의 유성들은 적아를 가리지 않았다. 빗나간 황금빛 오러가 파루간 요새를 두들기고 엇나간 선홍색 오러가 제국군 본진을 강타했다.
쾅! 쾅! 콰쾅!
그제야 병사들이 사색이 되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안타레스 공국에서의 사례도 있듯, 저 두 괴물은 그저 맞붙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깡그리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역시 만만치 않구나, 제라드!”
“네놈이야말로, 바나텔!”
호적수를 만난 두 사람은 신바람을 내며 싸워 대지만, 두 고래의 싸움에 인근 새우 집단은 아주 죽을 맛이다. 기껏 설치한 요새 마법진이 ‘제라드’에 의해 박살 나고 힘들게 맞춘 제국군 본진이 ‘바나텔’에 의해 쑥대밭이 된다.
쾅! 쾅! 콰쾅!
두 사람이 맞붙은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유벨 2세와 길리우스 황태자가 공포에 떨며 같은 대사를 뇌까렸다.
“아으, 저 양반 괜히 내보냈다…….”
☆ ☆ ☆
첫 격돌 이후, 제라드와 바나텔은 경상만을 입은 채 서로의 본진으로 복귀했다. 크로방스와 바슈탈론 양측에서 합심해서 둘을 말린 것이다.
-그만! 거기까지! 이러다 제국군까지 다 죽겠소, 바나텔 공!
-멈춰 주시오, 권황이시여! 요새 다 무너지겠습니다!
일단 싸움 붙으면 주위에서 뭐라건 신경 끄는 두 사람이다. 그래서 아예 길리우스 황태자와 유벨 2세가 직접 나서서 말렸다. 일국의 지배자가 확성 마법까지 써 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니 천하의 바나텔과 제라드라도 차마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쳇, 아직 본격적으로 붙지도 않았는데.”
본진으로 돌아온 제라드의 그 한마디만큼 공포스러운 대사는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훗날 유벨 2세는 회상했다고 한다. (참고로 길리우스도 비슷한 회상을 했다.)
이후 제라드와 바나텔은 얌전히 서로의 본진에서 대기했다.
서로 최종병기를 꺼내면 어찌 되는지 너무도 실감한 길리우스와 유벨 2세가 감히 두 사람을 다시 내보내질 못한 것이다. 어차피 상대의 최종병기를 막았다는 점에서 이미 두 사람은 충분히 효용을 다한 셈이었다.
물론 바나텔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 그런 나 혼자 가서 크로방스 왕 노릴게! 그럼 제라드 놈도 나 쫓아오겠지. 그럼 여기서 안 싸울 것 아니오?”
확실히 바나텔이 대놓고 파루간 요새 안쪽으로 들어가 싸우면 제국군엔 피해가 없겠지. 하지만 길리우스라고 그걸 몰라서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 권황이 제 목 따러 오면요?”
아무리 황태자지만 바나텔은 인간을 초월한 검성, 제국의 권위로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황제조차도 감히 하대하지 않는 바나텔은 제국의 신하면서 동시에 황태자의 숙부 정도의 위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길리우스도 존대를 통해 그를 대했다.
“권황이 바나텔 공을 무시하고 제국군 본진으로 와 버리면 그걸 누가 막습니까?”
“마법사들도 많고 오러 유저도 많잖소?”
불만스러운 듯 뇌까렸지만 바나텔의 흥분은 그새 가라앉았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분명 현 제국 1군단에 소속된 마법병단이나 오러 유저가 총동원되면 아무리 권황 제라드라도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요새 공략할 인원이 하나도 안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