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37
‘진짜 악랄한 놈들이군. 대체 정체가 뭐지?’
기절한 암살자를 든 채 카를은 안색을 폈다.
‘뭐, 이자를 심문하면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 ☆ ☆
카를 암살 시도 사건은 아라난 그라드를 발칵 뒤집었다. 배후는 밝혀진 바 없었지만, 그렇다 해도 누가 배후일지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 거대한 제국이 치사하게 암살까지 시도하다니, 참으로 무도하고 비열한 작태라며 시민들은 입을 모았다.
“우리 재상님이 아니었다면 분명 목숨을 잃으셨을 게야.”
“그러게, 재상님이었으니 망정이지.”
카를의 무력에 대해서는 안타레스 공국 내에서도 그렇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래서 다들 의외로 강한 카를에 대해 깜짝 놀랐다. 단, 그것은 그냥 놀란 것으로 그쳤다.
“재상님도 강하셨구먼.”
“그야, 우리나라 재상님인데.”
“하긴, 우리나라 재상님이잖아?”
어차피 안타레스의 재상이 고릴라와 친척뻘이란 소리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과연 군사 국가답게 문관인 재상조차도 살벌하게 생겼다며 혀도 찼다. 보나 마나 맨손으로 벽돌 정도는 부술 수 있을 거라 시민들도 짐작하고 있었다.
단지, 예상보다 카를 재상이 너무 강했달까?
그래서 이제까진 ‘우리나라는 문관인 재상도 무에 소양이 있다.’ 정도였는데 이제는 ‘우리나라는 문관인 재상도 초강자 중 하나다!’로 바뀌었다.
덕분에 카를은 ‘이단의 현자’ 외에 또 하나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바로 ‘안타레스의 황금재상’이라는 명칭을!
왕궁 가이라크의 외곽.
정원과 연결된 회랑을 걸어가며 틸라가 혀를 찼다.
“황금재상이라니,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보아하니 황금기사의 칭호를 살짝 바꿔서 부르는 것이 확실한데, 저게 재상이 되어 놓으니 강자란 느낌보다는 돈독 올랐다는 듯한 느낌이 더 강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명성 높아서 손해 볼 건 없잖아요? 게다가 카를 님이 명성 연연할 분도 아니고.”
틸라와 함께 걸어가며 카를의 비서인 엘프 여인, 플로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그 암살자가 결국 죽어 버린 게 아쉽네요.”
카를이 붙잡은 암살자는 정보를 불게 하기 위해 바로 감옥으로 이송했다. 제대로 심문을 하려면 몸 상태가 멀쩡해야 하니 특별히 알 포트의 신관을 하나 불러 치료까지 시켰다.
하지만 암살자는 그날 밤에 바로 자살해 버렸다. 현재 안타레스 공국에 아무래도 전문 심문 기술자가 없다 보니, 잠깐 한눈 판 사이에 혀를 깨문 것이다.
“그나마 자백제를 써서 얻은 정보가 몇 있는 모양인데, 카를도 그건 안 가르쳐 주고…….”
“공과 사를 확실히 구별하는 것이 재상님의 미덕이죠.”
불만스러운 틸라의 혼잣말에 플로라가 웃으며 그녀를 달랬다.
어쨌거나, 카를은 암살자로부터 얻은 정보를 통해 내부 협조자가 있을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래서 지금 틸라와 플로라는 왕궁 내부 인물들을 만나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심문은 매우 쉬웠다. 진실의 소리를 듣는 틸라 앞에서 거짓을 말할 순 없으니까.
그냥 묻기만 하면 된다.
-이번 암살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요?
이제껏 만난 모든 이는 아는 것이 없다고 대답했고, 틸라는 그 말이 진실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제 내성이 아닌 외성 쪽 인물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조금 걷다 보니 외성에서 시녀로 일하며 간밤의 난리를 정리 중이던 한 무리의 엘프 여인들이 보였다. 그들의 우두머리 격인 한 엘프 여인에게 다가가며 플로라가 눈을 빛냈다.
의심이란 걸 할 줄 모르는 드워프와 달리 카를과 플로라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집고 있는 여인, 그녀가 틸라와 플로라를 보더니 인사를 했다.
“어머나, 틸라 님! 어젯밤의 일은 들었어요.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렐시아 씨.”
인사를 받으며 플로라가 틸라에게 눈짓을 했다. 틸라가 렐시아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혹시 어젯밤의 암살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나요, 렐시아?”
렐시아가 눈을 깜박이더니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네? 제가 아는 것이 있을 리 없잖아요?”
틸라가 표정을 풀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수고하세요, 렐시아 씨.”
자리를 떠나며 플로라가 속삭였다.
‘진실이었나요?’
‘네, 진실이었습니다만, 왜요?’
목소리 속 진실을 확인한 틸라가 되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플로라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겉보기엔 확실히 태연해 보이지만, 사실 이제까지 만난 이들은 저런 식으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보통, 아무 관련 없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에, 어젯밤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만. 혹시 이쪽으로 지나갔었습니까?
‘수상한데…….’
하지만 드워프의 ‘진실의 소리’가 있는 이상 더 이상 의심을 할 수도 없다. 잠깐 고민하다 플로라는 결정을 내렸다.
‘재상님께 말씀드리면 알아서 하시겠지.’
두 사람은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도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 자리를 떠났다. 멀어지는 틸라와 플로라를 보며 렐시아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리고 태연하게 다른 엘프 여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죄송해요, 잠깐 자리 좀 비울게요.”
용변 보러 간다며 자리를 비운 뒤 렐시아는 아무도 없는 외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외성의 온갖 쓰레기가 모이는 쓰레기장까지 온 뒤, 그녀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맹렬히 피를 토했다.
“우욱! 우우우욱!”
선혈이 대지를 붉게 물들인다. 안색이 창백해진 채 렐시아는 후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점점 전신의 고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입가를 꼼꼼히 닦으며 렐시아가 중얼거렸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죽지 않아…….”
남들 앞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입속을 청소한 뒤, 그녀는 품속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약병을 바라보며 렐시아는 잠시 떨었다.
은의 현자가 내준, 드워프의 진실의 소리조차 속일 수 있다는 약.
영혼의 진실을 듣는 드워프를 속이기 위해선 육체의 언어에 영혼의 소리를 담지 않으면 된다. 그래서 이 약은 영혼과 육체를 인위적으로 부조화스럽게 만드는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영혼이 육체와 떨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
이 약을 한 방울 마실 때마다 그녀는 점점 더 죽어 갈 뿐이다.
“하아…….”
잠시 갈등하던 렐시아가 눈을 꾹 감고 약을 마셨다.
독약답지 않게 맛은 그저 평범한 물과도 같았다.
약을 삼키며 렐시아가 창백한 얼굴로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죽음은 두렵지 않아. 스테반 님의 영혼을 달랠 수만 있다면…….”
제52장 신위 강림
1
안타레스 남부 최대의 관문 요새, 엘드릴 가드.
바실리 왕국과 안타레스 공국을 연결하는 광대한 분지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은 이 요새는 실로 안타레스뿐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도 손꼽힐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높이가 60여 미터에 달하고 좌우로 수백 미터를 뻗어 가는 거대한 성벽은 일국의 수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좌우의 분지 절벽과 연결되어 철통같은 수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진군한 바실리 왕국군이 기겁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맙소사, 어찌 1년 만에 저런 엄청난 건축물을!”
전쟁 전부터 안타레스 공국을 드나들던 상인을 통해 바실리 쪽도 엘드릴 요새에 대한 정보쯤은 갖추고 있었다. 분명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 저런 거대한 요새는 없었다. 새삼 드워프의 건축술이 얼마나 굉장한지 실감이 드는 광경이었다.
반면, 건축술에 조예가 좀 있는 이들은 다른 의미로 경악하고 있었다.
“맙소사, 저 요새가 어떻게 서 있는 거야?”
겉보기에 웅장한 저 엘드릴 가드는,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건축가가 보기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성벽이며 건물들 대부분이 잡석을 대충 끌어모아 쌓아 올리고 아슬아슬하게 무게 균형만을 맞춰 형태만 간신히 이루었을 뿐이다.
쉽게 말해서, 저 진금 엘드릴의 이름을 붙인 요새는 엄청나게 부실 공사였던 것이다!
☆ ☆ ☆
“……그러니까, 아무 짓도 안 해도 1년도 못 버티고 무너질 것이라 하지 않았나?”
개전을 실시한 지 열사흘째, 바실리 왕국군의 총사령관 에그라드 경이 불만스러운 눈으로 참모를 바라보았다.
건축학에 조예가 깊어 이 자리에 불린 참모가 고개를 숙였다.
“예, 각하. 분명 저 요새는 저대로라면 자체 하중을 못 이기고 무너질 게 뻔합니다.”
에그라드 경이 막사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엘드릴 가드가 보였다. 벌써 열사흘째 마법을 날리고 오러를 쏘며 붕괴를 노렸지만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대한 요새가!
“그럼 대체 그 부실한 요새가 어떻게 아직껏 버티고 있다는 건가?”
분노한 에그라드 경의 외침에 참모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 그것이…….”
이유는 알고 있었다.
분명 엘드릴 가드는 부실 공사의 표본이라 할 정도로 엉성한 재질로 만들어진 요새였다.
하지만 건축술 자체가 부실한 건 또 아니었다.
엉성한 잡석들이 서로 절묘하게 얽혀 무게 중심을 지탱하며 묘하게 튼튼한 구조를 이룬다. 게다가 어떤 식으로 계산한 것인지, 일부가 붕괴되면 붕괴된 지역에 허술한 옆의 잡석 성벽이 무너져 내리며 저절로 붕괴 자리를 메워 버린다.
요새를 지은 재료 자체는 개판이었지만, 그 재료를 이용한 기술력은 오히려 초일류였던 것이다. 과연 건축의 대가인 드워프답게, 그들은 부실 공사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분명 부실 공사는 부실 공사지만, 아예 그걸 감안해 세운 요새로 보입니다. 적어도 앞으로 반년은 틀림없이 요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것입니다.”
에그라드 경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충 만들어 내버려 둬도 무너질 요새가, 당장은 완벽하게 기능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재질적인 문제로 위태로운 하중을 복잡한 계산을 통해 분산시키며 오히려 하중 자체를 이용해 성벽의 강도를 높이는 방식입니다. 비유하자면 아치 형태의 다리를 가공할 때 쓰는 방식을 발달시킨 것인데…… 단지 그것만으로는 석재 사이의 접착력이 설명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이치는 저런 식인데…….”
건축학을 모르는 이에게 설명하자니 참으로 난해하다. 참모가 더듬거리며 설명을 이었다.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오니 못 알아들은 에그라드 경이 참모의 설명을 막고 재차 물었다.
“복잡한 이야기는 됐고. 그러니까 지금 저 요새는 튼튼한 건가, 아닌가?”
참모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당장은…… 대륙 어느 요새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내구도를 자랑할 겁니다. 당장은요.”
에그라드 경은 눈을 껌벅였다.
건축학은 모르는 그였지만, 하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전쟁에만 써먹으려고 급하게 만든 요새란 의미인가? 오래는 못 가지만 당분간은 어떤 요새와도 맞먹는 그런 방어력을 갖춘?”
“그렇습니다, 각하.”
에그라드 경이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