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44
공간을 희롱하는 러스만의 비기, 키린트에게 기술을 빼앗길까 두려워 이제껏 쓰지 못한 진정한 필살기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키린트 역시 전신의 오러를 특유의 흐름으로 변화시켰다.
‘저 녹색 오크 놈 때문에 세 명의 발이 묶여 있어! 나라도 이자를 처리하지 않으면 정말 요새 공략은 물 건너가 버린다!’
키린트 역시 다급한 처지이긴 마찬가지였다. 중력을 조작하는 그만의 비기가 찬란한 은청색 오러의 빛으로 화했다.
‘중압뢰!’
그렇게 두 천재 검사가 그렇게 자신만의 비기를 꺼내 들며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이제까지와 달리, 둘 다 서로의 기술을 베낄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비기다. 이 비기가 날아가는 순간 둘 중 한 명의 목숨은 확실하게 세상을 떠나리라.
“끝을 보겠소! 키린트 경!”
“내가 할 소리다, 러스 경!”
살의를 불태우며 두 사람이 막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던 찰나였다.
부우우우웅!
갑자기 뿔피리 소리가 제국과 크로방스, 양측 모두에서 길게 울려 퍼졌다.
짧게 두 번, 길게 세 번 울리는 저 뿔피리 소리는 대륙 모든 국가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신호였다.
바로, 전투를 멈추라는 의미.
“뭐지?”
러스도 키린트도 의아해하며 주위를 살폈다. 그때 바슈탈론 제국군 진지에서 확성 마법을 통해 우렁찬, 하지만 왠지 침울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대한 황제 폐하의 칙령에 따라, 정전이 선포되었음을 알리노라!”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황당함을 공유했다.
“뭐?”
“뭐라고?”
☆ ☆ ☆
사만의 바실리 왕국군은 바로 귀국했다.
그냥 귀국한 정도가 아니라, 안타레스 공국에 대해 철저한 사과와 무조건적인 항복의 뜻을 건네며 본국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바실리 국왕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 기적을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한 이로서 당연한 태도였다.
하지만 현명한 이라면 자기 눈으로 보지 못해도 귀로 듣고 머리로 생각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하물며 레펜하르트는 은근슬쩍 영상 녹화 수정을 통해 천지창조를 기록한 뒤 바실리 궁성에 보내는 친절함도 아끼지 않았다.
바실리 국왕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치냐며 무시했지만 신하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안타레스 공국에 사신을 보내고 무도한 전쟁을 일으킨 것을 사죄하고 필라넨스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바실리 국왕은 그래도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바실리의 제1왕자가 그 말을 들었다.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왕권이 이양되었다.
아무리 왕권이 강해도 지상에 강림한 여신의 신위에 비하면 한낱 인간의 권력이다. 바실리의 앞날을 위해, 여신의 뜻을 거역하는 국왕을 폐위하고 새로운 왕이 되겠다는 제1왕자 제이룬의 뜻에 모든 신하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새롭게 바실리의 국왕이 된 제이룬 3세가 바실리 전역에 선포했다.
-필라넨스의 뜻이 안타레스에 강림하였으니, 이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는 여신의 자애로다. 여신의 뜻에 따라 바실리의 모든 엘프와 드워프, 오크와 트롤은 자유로운 바실리 국민임을 천명하노라!
필라넨스 교단의 위세가 강한 바실리답게 여신의 신위도 가장 잘 먹힌 것이다. 이종족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바실리 왕국은 바로 안타레스 공국과 우방을 맺었다.
그렇게 하여 크로방스, 바실리 양국이 안타레스 공국과 뜻을 함께하니 이로써 대륙 동쪽 전역이 레펜하르트의 뜻에 따라 이종족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바슈탈론 제국이며 그라임이나 할라인 왕국 등 대륙 서부 국가들은 그래도 이종족 노예 제도 폐지만큼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동부에서 세력을 떨치는 교단은 세이어나 에어리어스 교단 쪽이라 아무래도 필라넨스의 위세 앞에 마냥 무릎 꿇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보인 여신의 기적이 너무도 대단하니 감히 계속 안타레스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제국 황제, 레어폴 1세가 대륙 서부를 대표해 직접 칙령을 발표했다.
-자애로운 필라넨스가 미천한 이들에게까지 그 사랑으로 돌보니 이는 과연 여신다운 자비로우심이로다. 세이어께서 뜻하신 바 있으니 필라넨스의 뜻을 따를 수는 없도다. 하나 여신의 권위를 존중해 이상의 전쟁 행위는 멈추도록 하겠노라.
쉽게 말해서 세이어 시키는 대로 하자니 필라넨스가 너무 무섭다, 그렇다고 세이어 뜻을 거스르고 필라넨스를 섬길 팔자도 못 된다,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이대로 각자 살자는 소리였다.
세이어 교단 입장에서는 분통을 터트릴 칙령이라 하겠다. 하지만 의외로 세이어 교단에서는 그리 반응이 없었다. 침묵을 지키며 아무런 공식 발표 없이, 그저 황제의 뜻에 따르겠다는 움직임만 보일 뿐이었다.
대륙의 모든 국가가 뜻한 대로 반응해 주는 걸 보며 레펜하르트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핫!”
드디어, 드디어 그가 원한 진정한 이종족의 국가가 성립된 것이다.
“이제 대륙의 절반이 이종족을 사람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머지 대륙 절반마저 강제로 이종족 노예 제도를 폐지시키겠다고 움직이면 그땐 진짜 마왕이 될 뿐이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레펜하르트는 이것이 최선임을 알고 있었다.
“기틀을 마련했으니 이제부터는 이종족 각자가 계속 움직이며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 가겠지.”
앞으로의 일은 이제 엘프와 드워프, 오크와 트롤들이 각자 힘쓸 일이었다. 물론 레펜하르트도 열심히 돕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처럼 모든 것을 홀로 고민하고, 전부 나설 필요는 없다.
전생과 현생, 두 생애에 걸쳐 꿈꾼 세상이 드디어 왔다.
그리고 더 이상 그 꿈을 깨부술 이도 남지 않았다.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레펜하르트가 흐뭇하게 웃었다.
“비로소…… 모두 이루었구나.”
☆ ☆ ☆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공간.
그 중앙에 위치한 새하얀 신전에서 백색 로브 차림의 13인이 모였다. 인류의 수호자, 은의 현자 중에서도 최고위의 위계를 지닌 은의 수호자들이었다.
언제나 침착하고 냉철하던 그들은 지금 당혹과 경악을 서로에게 토하고 있었다.
“……정말 필라넨스의 기적일까?”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 수호자 쉬툴란이 의문을 표하자 50대의 사내, 수호자 루디움이 바로 반박을 던졌다.
“그럼 저게 인간의 짓이겠소? 은의 현자가 가진 아티팩트를 모조리 동원해도 저런 짓은 불가능하오!”
“그, 그렇긴 하지만…….”
안타레스 공국에 강림한 필라넨스의 신위 앞에 당황하는 것은 대륙의 일반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자신들만이 진정 신의 뜻을 행한다 믿었던 은의 현자, 그들은 지금 발밑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근엄한 노인, 수호자 다오스가 수호자 타세랄, 속세에선 세이어의 교황직을 맡고 있는 다른 노인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대륙 전체가 동요하고 있소. 아무래도 뭔가 수를 써야 하지 않겠소? 신탁을 내린다든가…… 아니면 이쪽도 뭔가 기적을 보여야…….”
은의 현자가 지닌 고대의 금기 물품 중에는 현세 인류에게는 실로 ‘기적’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성능을 지닌 것들도 많다. 당장 전 인류 감시 시스템 ‘세이어의 눈’과 의사 분류 시스템 ‘세이어의 율법’만 하더라도 충분히 신위에 합당할 기적에 가까운 성능이다.
하지만 타세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짓을 해도 되겠소? 어쩌니 저쩌니 해도 저쪽은 ‘진짜’요!”
현 대륙에서 ‘신탁’을 받고 ‘신의 기적’을 실제로 행하는 인류의 교단은 오직 세이어 교단뿐이었다. 다른 교단은 그저 징조로 섬기는 이의 뜻을 헤아리며 신성 주문으로써 섬기는 이의 권능을 간접적으로 증거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세이어 교단이 가장 융성한 이유였다. 인류 전체를 보살피는 세이어가 주신으로 여겨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실상은 좀 달랐다.
“우리는 진정한 신의 의지를 모르오.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단 말이오.”
수호자 타세랄의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수호자 바슈탈, 바슈탈론 제국의 황제 레어폴 1세가 한숨을 쉬었다.
“이런 때야말로 세이어께서 진정한 신탁을 내려 주시면 좋으련만…….”
세이어의 신탁은 이미 130년째 끊겨 있었다. 아무리 은의 현자가 기도를 올리고 말씀을 갈구해도 세이어는 응답해 주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교단의 신들은 징조로나마, 간접적으로라도 뜻을 전하는데 세이어는 그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은의 현자는 모든 신탁과 기적을 스스로 행해야 했다. 다행히 그들에겐 세이어의 가르침이 남아 있었고, 그 가르침을 따를 충분한 고대의 힘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진짜 ‘신의 의지’가 대륙에 현현했다.
그것을 대항할 힘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 ‘의지’를 과연 피조물인 인간이 거슬러도 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이제 어쩌지요?”
“모르겠소…….”
“일단은 상황을 지켜봐야 하지 않을지…….”
은의 수호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기력한 음성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에 은발의 어린 소녀, 이제껏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침묵만을 지키던 수호자 세렐라인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으음…….”
세이어가 직접 허락하지 않는 한 감히 자신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녀는, 어째서 세이어께서 응답하지 않는지 알고 있었다.
고민하며 세렐라인이 중얼거렸다.
“최후의 수단을 써야 하는가…….”
☆ ☆ ☆
고대 아티팩트, 리커버리 캡슐.
이 거대한 강철의 수조가 오늘도 기포를 터트리며 천천히 움직인다.
부글, 부글…….
강철의 수조 속에는 한 사내의 육체가 담겨 있었다. 아니, 육체라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을지도 모른다. 저 흑발의 아름다운 청년은 온전한 몸이 아니었다. 간신히 상반신, 가슴께 위까지만 남은 채 시체처럼 수조 속에 떠 있었다.
그 앞에서, 퀭한 눈을 한 섬뜩한 인상의 여인이 수조를 매만지고 있었다.
“테스론…….”
눈 밑에 검은 기운이 가득하고 제대로 먹지도 않았는지 삐쩍 말라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처참한 몰골, 하지만 여인의 눈만큼은 무시무시한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여인, 필레나는 수조를 매만지고 또 매만졌다.
“기다려…… 테스론…… 살아날 수 있을 거야…… 꼭 살려 내고 말 거야…….”
은의 수호자, 세렐라인조차도 포기하라고 했다.
아무리 고대의 힘이 강력하다 해도 죽은 인간을 살리진 못한다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진정 신의 힘이라고.
그러나 필레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리커버리 캡슐을 연구하고 은의 현자로부터 각종 네크로맨시 마법을 전수 받아 매진하고 또 매진했다.
원래 천재였던 그녀다. 함께 지낸 소꿉친구가 천재를 아득히 능가하는 괴물이라 본인이 별로 의욕을 불태우지 않았을 뿐, 필레나도 실은 역사에 남을 대마법사가 될 자격이 충분한 이였다.
광기에 젖어 식음을 전폐하고 마법에 매진했다.
결국, 필레나는 놀랍게도 남은 테스론의 머리를 토대로 상반신 일부까지 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테스론…….”
수조에 떠 있는 사랑하는 이를 보며 필레나는 눈물지었다.
아무리 연구해 보아도 테스론의 영혼은 응답해 주지 않았다. 이미 연구는 벽에 부딪힌 지 오래였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에겐 ‘포기’라는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그저 출구 없는 미로를 끝없이 헤매며 그저 절망 속에서 허우적댈 뿐.
그런 그녀에게 목소리가 들렸다.
“필레나 양.”
“수호자 세렐라인?”
은발의 소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여기까지 이루어 낸 그대의 업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의미 없는 아집이라 생각했던 일, 하지만 이걸로 그대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필레나가 의아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세렐라인이 수조에 떠 있는 테스론의 육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너무 확률이 적어 이제껏 무시했던 일이지만, 이제 그 육체를 빌려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세렐라인의 전신에서 성스러운 광휘가 솟구쳤다. 두려워하며 필레나가 뒤로 물러섰다.
은발의 소녀, 그 붉은 입술 사이로 낭랑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