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46
-……그게 작은 부작용이면 대체 큰 부작용은 뭐예요?
-생명이 더 태어나지 않게 된다거나, 공기가 오염되어 숨을 쉴 수 없게 된다거나…….
-당장 갈아엎어, 인간아! 이 작자가 세상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나!
☆ ☆ ☆
당시의 대화를 떠올리며 실란은 치를 떨었다.
“하여튼 그 양반은 엄청난 것 같으면서 가끔 해괴하게 멍청한 짓을 한다니까.”
카를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분인 건 사실이지요. 그 능력도, 머릿속도. 게다가 분명 쓸모는 있었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두 사람은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한때 레펜하르트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도 있었다.
그가 지닌 강력한 오러의 힘은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예라는 것만으로 모두 설명이 된다. 하지만 그가 지닌 강력한 마법의 힘이며 뛰어난 고대의 지식은 대체?
레펜하르트는 사부 친구 중에 마법사가 있어 배웠다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이젠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일단 그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라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이유도 없거니와, 남 몰래 제라드에게 물어본 바로는 그에겐 마법사 친구도 없었던 것이다.
-친하게 지낸 마법사? 허약하고 입만 산 마법사 따위와 왜 친하게 지내?
괜히 드레자가 ‘권왕 대 마법사 관련 전투 자료’를 잔뜩 모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대 권왕치고 때려잡은 마법사가 세 자릿수 미만인 이가 없었고, 제라드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를 가는 마법사라면 군대 단위로 있지만 친하게 지낸 마법사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느냐?
-아, 혹시 레펜하르트 님이 그분께 마법을 배웠나 해서.
-아닌데? 나중에 배웠나 보지. 원체 똑똑한 놈이잖냐?
이젠 제라드도 레펜하르트가 마법 또한 구사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레펜하르트야 어떻게든 숨기려 했지만, 그가 마법사란 사실은 측근뿐 아니라 어지간한 이종족들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짐 언브레이커블에 대한 편견이 깊은 인간들만이 아직 믿지 않을 뿐.
심심하면 오크 어루만지며 가르침을 주던 제라드가 그 이야기를 못 들을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불같이 화를 내며 레펜하르트를 찾았었다.
-네 이노오옴! 레펜하르트! 마법이라니 어찌 된 거냐아아!
흥분한 사부를 보고 레펜하르트가 권마합신까지 준비해 가며 전투태세를 갖춘 것은 딱히 그를 탓할 일이 아닐 것이다.
‘아, 결국 걸렸구나. 저 양반 흥분 가라앉을 때까지 버틸 수 있으려나?’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려칠 것 같은 표정으로 제라드가 버럭 성을 냈다.
-위대한 짐 언브레이커블의 가르침을 잊었느냐! 도구를 쓰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을 극복하지 못한 자의 치졸한 도피다! 그런데 아티팩트의 힘을 빌리다니!
예상대로였다. 속으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레펜하르트가 대꾸했다.
-마법을 쓴 건 맞지만 그래도 아티팩트를 쓴 건 아닙니다.
-아티팩트가 아니면 어떻게 네놈이 마법을 쓰는데?
-저, 마법사이기도 합니다, 사부님.
일단 레펜하르트는 사실대로 털어놨다. 그리고 전신의 오러를 끌어 올려 방어 태세를 갖췄다. 무인이 마법 따위의 힘을 빌렸으니 그 분노가 장난이 아닐 터였다.
그렇게 각오를 굳히고 있던 차였는데…….
-엥? 아티팩트가 아니라고? 네가 마법을 쓴다고?
-예, 사부님.
개가 알을 낳았다는 소릴 들은 표정이 되어 제라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참 후에야 쇼크에서 벗어난 제라드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써 봐.
-쓰는 건 좋지만, 사부님께서 그 마법이 아티팩트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는 있으십니까?
천하의 9서클 마스터, 드레자조차도 확신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무식한 제라드가 과연?
의외로 제라드가 호쾌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아주 쉽다!
정말 쉬운 방법이었다. 그리고 레펜하르트는 그 말을 한 걸 후회했다.
-홀랑 벗겨 놓으면 되지!
그렇다. 전신에 실 한 오라기 안 남겨 놓으면 아티팩트도 당연히 못 지니고 있는 것이다.
-…….
순간 기가 막혔지만, 여기서 흥분한 제라드를 상대하느니 그냥 잠시 탈의하는 게 나았다. 레펜하르트가 주위의 시종을 물리고 나체가 된 뒤 몇 가지 마법을 시전했다.
-매직 애로우, 라이트, 플레임 피스트…….
일국의 왕이 자신의 궁성에서 알궁둥이를 드러낸 채 마법을 시전하는, 진귀하고 해괴하며 서글픈 광경이 벌어졌다. 몇 가지 마법을 시전한 뒤 후딱 바지를 입는 제자를 보며 제라드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진짜네?
-하, 하여튼 도구는 안 썼습니다, 사부님.
사방신의 유물 이야기는 쏙 뺀 채 레펜하르트가 자신 없이 말했다. 그래도 도구 쓴 게 아니면 사부의 분노도 조금은 누그러지겠지.
그런데, 웬일로 제라드의 표정이 활짝 밝아졌다.
-그렇구나! 역시 나의 제자다! 암,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예가 도구 따위를 써서 전투에 임하는 쪽팔린 짓을 할 리가 없지!
-그럼 마법을 쓰는 건 괜찮습니까?
-응? 마법은 자기 머리로 쓰는 것이잖냐?
-에, 뭐 그렇죠?
-그럼 괜찮지. 나도 머리로 박치기 잘하는데?
박치기와 마법 연산을 과연 같은 ‘머리 사용’이라 할 수 있을까? 기가 막혔지만 레펜하르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용케 넘어갔는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지.
-그, 그럼 우리 무문도 마법 익히는 것은 금기가 아니군요?
-내 사부님께서도 마법 익히지 말라고 한 적은 없느니라.
그냥 역대 짐 언브레이커블의 계승자치고 마법 익힐 만큼 똑똑한 인간이 없었을 뿐이다.
-실제로 초대 권왕께서는 마법도 쓰셨다고 하던걸?
-어, 진짭니까?
-일단 전승은 그런데, 솔직히 믿을 순 없지. 원래 어떤 무문이건 시초는 각종 전설 다 갖다 붙이지 않느냐?
하긴 각국의 초대 왕이나 무문의 창시자에게 특이한 전설이 붙는 일은 희귀하지 않다. 모래를 밀가루로 바꿨다느니, 다섯 마리 생선으로 천 명을 먹였다느니, 이파리 한 장 타고 강을 건넜다느니.
-하여튼 네놈 재주도 용하구나. 나라 세운 거 봐서 똑똑한 줄은 알았다만 마법은 또 언제 배웠느냐?
-아, 하산한 뒤에 이래저래…….
사실을 말할 수 없기에 레펜하르트는 말문을 흐렸다. 그의 마법 수준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제라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뭐,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역시 내 제자다. 재주도 좋구나.
제자가 도구를 쓴 게 아니란 걸 안 순간 바로 관심을 끊었던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제라드는 매우 대범한 성품이었다.
하여튼, 제라드 덕에 레펜하르트의 거짓말은 이미 들통 난 지 오래였다. 그래서 그 이후 실란이 대놓고 물어보기도 했다.
대체, 그 엄청난 마법은 어디서 배운 것이냐고.
그때 레펜하르트는 대답했다.
-지금은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약속하마. 이 나라가 반석에 오르고, 내가 없어도 이종족들이 사람답게 사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 나를 믿어 다오.
“이제 안타레스 공국도 거의 자리를 잡았으니까, 곧 알려 주지 않을까요?”
생글생글 웃는 실란을 보며 카를은 표정을 굳혔다. 실란은 상당히 태평하게 저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믿어 달라고는 하지만, 폐하의 힘은 강해도 너무 강하단 말이지…….’
☆ ☆ ☆
아라난 그라드의 남쪽 성벽.
다시 황야로 돌아가는 성 주위의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마켈린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참 좋을 텐데, 아쉽긴 아쉽군요.”
“부작용을 감수하느니 그냥 손발을 더 놀리는 게 낫지 않소? 시민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쓸데없이 노역거리 늘어난 아라난 그라드 시민들을 보며 레펜하르트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기서 레펜하르트가 직접 마법을 써 천지창조를 도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하루아침에 도로 세상이 황야로 변한다면 시민들은 필라넨스 여신이 분노해 은총을 거두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괜찮겠지요. 어차피 목표는 달성했잖습니까.”
마켈린은 천천히 영역을 줄여가는 푸른 숲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많이 갈아엎었지만, 그래도 상당한 숲이 남아 있었다.
“레펜하르트 님의 전생에 대해선 들었지만, 그래도 눈으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군요.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도 실패하셨었다니…….”
“그때의 난 이런 식으로 마법을 쓰지 않았었소.”
레펜하르트의 눈빛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래, 쓰지 않았었다.
전생의 자신은.
천지창조는 그때도 쓸 수 있던 마법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는 이 천지창조 마법을 이런 식으로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너무 위험한 마법이었으니까. 사실 실패한 마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마법사에게 있어 마법이란, 마나를 움직여 세상을 뒤튼 뒤 ‘필요한’ 뭔가를 재창조하는 작업이다. 그것이 불꽃이 되었건 냉기가 되었건 전격이 되었건 간에.
그 기준에서 천지창조는 쓸데가 없는 마법이었다. 기껏 옥토로 바꿔 놓고 부작용 때문에 도로 갈아엎어야 한다니, 괜히 힘만 들고 남는 것은 없지 않은가?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이런 부작용 심한 마법은 쓸 생각도 하지 않는 법이지.”
부작용이라는 측면으로만 보면 차라리 뉴클리어 버스트가 더 안전할 정도였다. 뉴클리어 버스트는 고작 산 하나 증발하고, 산맥 두어 개 싹 쓸리고 나라 절반 정도 오염되어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수준이니까.
“……그게 고작입니까?”
“대륙 전체에 영향을 주는 천지창조에 비하면.”
“그런데 용케 지금은 쓸 생각을 하셨군요?”
“난 더 이상 순수한 마법사가 아니니까.”
빙그레 웃으며 레펜하르트가 마켈린을 돌아보았다.
“마법사의 딜레마라는 이야기를 아시오?”
마법사의 딜레마.
이것은 마법사 사이에서 오가는 일종의 뼈 있는 농담이다.
견습 마법사에게 사람을 겁에 질리게 하라고 하면 그는 이글거리는 불길이나 파괴적인 마법을 선보여 상대의 목숨을 위협해 공포를 유도한다.
정규 마법사에게 사람을 겁에 질리게 하라고 하면 그는 무시무시한 환상을 보여 상대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한다.
그렇다면 대마법사는?
“그냥 공포 주문을 걸지.”
마법사는 파이어볼 발사기가 아니다. 제대로 된 마법사라면 위력적인 마법보다는 가장 적절할 때, 가장 적절한 마법을 쓰는 응용력이 제일 중요하다. 마법사라면 누구나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경지를 벗어나 버리면 오히려 단순해진다. 대마법사 정도 되면 목적을 위한 가장 직접적인 힘을 써 버릴 수 있으니까. 돌아 돌아 가다 보니 결국 도로 단순함으로 회귀하는 원칙이랄까?
“당시의 나는 마법사였소, 순수한 마법사.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마법사다웠던 마법사.”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지 않고, 세인의 인식도 중요시 여기지 않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걷던 구도자 중의 구도자.
“그래서 몰랐지. 인간들의 생각을, 인간들의 마음을. 그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오묘한지를.”
레펜하르트가 중얼거렸다.
“당시의 난…….”
회한에 찬 목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세계가 돌아가는 이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