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51
문득 의문이 들었다.
-저기, 위니스.
-왜, 꼬맹아?
잠시 주저하다 레펜이 조심스레 물었다.
-……위니스는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는 거야?
대수롭잖다는 듯 그녀가 대꾸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니? 난 마침 묵을 곳이 필요했고, 마침 그곳에 귀엽고 불쌍한 아이가 있었고, 마침 돈도 있었고 애가 똘망똘망해서 같이 사는 게 귀찮지도 않았고.
-그게 전부야?
-그럼 뭐가 더 필요한데? 왜? 혹시 내가 꼬맹이 너한테 무슨 흑심이 있어서 잘해 주는 줄 알았니?
부끄러워하며 레펜이 고개를 움츠렸다.
사실은 그런 생각도 좀 했다. 자신은 평범한 아이가 아니니까, 저주받은 자신을 이용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도 했었다.
위니스는 깔깔 웃었다.
-꼬맹아, 네 입장에선 세상이 뒤바뀔 정도로 큰 도움이겠지만, 사실 난 금전 몇 푼을 더 썼을 뿐이란다. 널 책임지겠다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겨울 날 동안 같이 있는 것뿐이라고.
레펜의 말랑말랑한 뺨을 주욱 당기며 그녀가 장난스레 말했다.
-네가 특별해서가 아냐. 내가 특별해서 널 잠시 돌봐 주는 거지. 사실 나같이 착한 사람도 흔치 않거든?
언뜻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레펜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러니 안심하고 이 행운을 즐기렴. 잠깐의 겨울이 주는 짧은 행운일 테니까.
오히려 기뻤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에헤헤.
헤실거리는 레펜을 향해 위니스가 핀잔을 던졌다.
-이제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밥이나 마저 먹어. 사내애가 그렇게 삐쩍 말라서야 어디 쓰겠니? 모름지기 남자라면 듬직해야 하는 법이야.
☆ ☆ ☆
식사를 마친 뒤 설거지를 하던 중이었다. 문득 생각나 레펜이 말했다.
-아, 위니스? 슬슬 식재료 떨어졌어. 사러 가야 돼.
현재 마을에서 식재료를 구입하는 일은 어린 레펜이 맡고 있었다. 사고를 친―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위니스가 되도록 마을 사람들 눈앞에 나서는 걸 꺼려한 탓이었다.
열 살짜리 아이가 오르내리기엔 좀 험한 산길이었지만, 레펜은 예전 헐벗고 굶주렸을 때도 매주 그 길을 오갔었다. 지금은 살도 붙고 체력도 예전과 비교가 안 되니 전혀 오가는 데 지장이 없었다.
위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를 뒤져 은화 몇 닢을 건네주었다.
-자, 대충 사오고 남은 건 너 갖고 싶은 거 사렴.
말은 이렇게 해도 위니스는 레펜이 저 은화를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영리하고 계산도 빠른 아이다. 받은 은화를 확실히 계산해 필요한 물품을 전부 구입함으로써 받은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는다.
식사를 마친 뒤 레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마을 갔다 올게!
반나절 뒤, 마을의 한 잡화점 앞.
-빵이랑 치즈랑, 순무랑 마른 야채도 좀 주세요.
레펜의 주문에 따라 잡화점 주인이 빠른 손놀림으로 물건을 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후딱 바구니를 내밀었다.
-자! 여기 있다!
위니스가 온 이후 레펜은 다시 마을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레펜의 저주는 여전히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만큼이나 그가 쥔 은화의 유혹도 컸던 것이다. 과연 돈의 힘은 위대해서 은화 몇 줌으로 충분한 식재료를 구하며 동시에 몇몇 레시피도 얻을 수 있었다.
-자, 여기 돈요.
-다 받았다. 그럼 어서 꺼져!
돈을 받자마자 잡화점 주인은 레펜를 쫓아내듯 밖으로 몰아냈다. 비록 은화가 탐나 거래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 귀신 붙은 아이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까.
뭐, 하루 이틀 당했던 일도 아니다. 레펜은 태연하게 바구니를 들고 잡화점을 나섰다. 필요한 걸 전부 샀고 딱히 이 마을에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서 오두막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오늘 저녁은 뭘 하지? 탕을 끓여 볼까?
그렇게 저녁 메뉴를 고심하며 발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귀신 붙은 레펜이다!
-그 악마 새끼야!
마을 아이들이었다. 언제나처럼 레펜을 보고 놀리는 것이었다. 이 역시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지라 가볍게 무시하며 지나치려던 차였다.
-저 괴물 새끼가 무시하네?
마을 아이 중 덩치가 큰 놈이 돌멩이를 하나 집어 던진 것이다. 어른조차 두려워하는 레펜에게 돌을 던짐으로써 다른 아이들에게 위엄을 보이겠다는, 참으로 아이다운 치기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휘익!
평소 같으면 당연히 빗나갔을 것인데, 하필 운이 나빴는지 돌멩이가 레펜의 뒤통수를 때렸다.
-윽!
통증을 느끼며 레펜이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묻어 나왔다.
아이들이 당황하며 떠들어 댔다.
-어, 맞았다?
-피, 피 나는 거 같은데?
-흥! 맞았으면 제까짓 놈이 어쩔 건데?
돌을 던진 아이가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가슴을 활짝 편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레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예전 같았으면 무시했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모른 척 넘어갔을 것이다.
자신은 저주받은 아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부정한 존재이니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위니스가 있었다. 그녀 덕분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가 있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예전에는 견딜 수 있었던 수모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아픔이 되었다.
분노가 일어났다.
-이이익!
물론 분노해 봤자, 레펜은 여전히 어린아이일 뿐이다.
흥분한 채 레펜이 떨어진 돌을 주웠다. 자신의 피 묻은 돌을 주워 도로 아이들에게 던졌다. 화가 난 아이다운 평범한 반응이었다.
-꺼져!
화르륵!
날아가는 돌 주위로 새까만 암흑이 피어올랐다. 어둠이 돌멩이를 순식간에 휘감으며 그대로 아이들의 발치에 떨어진다. 순간 폭음이 울렸다.
콰아앙!
새까만 회오리가 아이들을 뒤덮고 용솟음쳤다. 아이들이 회오리에 휘감겨 허공에 떠올라 발버둥 쳤다. 새까만 회오리 사이로 아이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엄마아아!
-앙앙앙!
눈물콧물을 흘려 가며 아이들이 방금 전까지 놀린 레펜에게 빌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 회오리는 맹렬하고, 또 무서웠다.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오오!
레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
레펜은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당연히 저 회오리를 도로 잠재울 방법 또한 모른다. 회오리는 계속 휘몰아쳐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이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져 갔다.
-으아아앙!
-엄마아아!
-아빠아아!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아무런 방도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머릿속이 새하얘질 뿐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레펜은 무릎을 꿇었다.
어리석었다. 잠시 꿈을 꾸다 보니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잊었다.
저주받은 아이. 가까이 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뿐인 부정한 존재!
그때였다.
-에잉, 결국 일 터졌네.
갑자기 마을 어귀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검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순식간에 레펜의 곁까지 달려온다. 그녀를 본 순간 레펜이 눈물범벅이 되어 소리쳤다.
-위니스!
허리의 검을 뽑으며 위니스가 혀를 찼다.
-쯧,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 같더라.
그녀의 검이 검은 회오리를 갈랐다. 눈부신 빛 때문에 레펜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다시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검은 회오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든 것처럼 바닥에 쓰러진 마을 아이들과, 도로 검을 검집에 넣는 위니스만 보일 뿐이었다.
-어, 위니스, 나, 나…….
공포와 자괴감 속에서 레펜은 울상을 하며 말을 더듬었다. 위니스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쉿, 사내자식이 질질 짜면 안 되지?
레펜을 달래며 위니스는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한 무리의 주민들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광경이 보였다. 그토록 큰 회오리였다.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으니 당연한 일이다.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겠네.
위니스가 레펜의 허리를 안아 들고 옆구리에 끼웠다.
-튀자, 꼬맹아.
☆ ☆ ☆
위니스는 분명 마을 사람들 앞에 자주 나타나는 걸 꺼려했다.
그러나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를 홀로 산길에 보내고 신경도 쓰지 않을 만큼 냉혈한도 아니었다. 시선을 꺼리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그래도 레펜이 마을로 가는 동안 혹여 무슨 일 당할까 싶어 몰래 뒤따르곤 했다.
게다가 그렇게라도 안 하면 어린 레펜은 정말 사람들과 관계를 끊고 살 테니 사회 경험도 시킬 겸 겸사겸사 한 일이었다.
‘덕분에 늦지 않았지.’
품에 안은 어린아이를 보며 위니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레펜은 그대로 기절해 있었다. 아무리 영악해 보여도 고작 열 살짜리 아이, 심적인 부담이 상당히 심했으리라.
레펜을 안은 채 위니스는 빠른 속도로 산길을 달렸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몇 미터씩 쑥쑥 달리니 그 속도가 산양도 울고 갈 지경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레펜이 다시 깨어난 것은 오두막에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위니스?
-정신 차렸냐, 꼬맹아?
주위를 둘러보더니 레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 애들은?
-다들 무사해. 뭐, 상당히 놀랐으니까 몇몇 애들은 경기 좀 일으키겠지만. 그래도 크게 다친 애들은 없어.
그제야 안심이 되어 레펜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아이를 달래려 위니스가 다가섰을 때였다.
-오지 마.
레펜이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위니스가 콧방귀를 켰다.
-얼씨구? 갑자기 분위기 잡니?
섬뜩한 눈동자를 빛내며 레펜이 고개를 저었다. 열 살짜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음산한 눈빛이었다.
-주제 파악을 못 했어. 위니스 때문에 내가 평범한 아이라고 착각해 버렸어.
그동안 너무 행복해서 잊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즐거워서 무시하고 있었다.
-난 저주받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