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59
레펜하르트가 투덜대는 이유는 다른 부분이었다.
“충성을 맹세한 주군을 길바닥에 재우고 뜨듯한 이불 덮고 있으니 잠이 잘 오던가, 카를 재상?”
그렇다. 카를이나 러스, 실란은 인간이다.
이 세 사람은 굳이 노숙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마을 나올 때마다 비싼 여관 잡고 좋은 방에서 푹신한 이불 덮으며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실란은 여장을 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 덕에 식사만큼은 제대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마을에서 꾸준히 음식을 조달하지 않았다면 내내 육포나 뜯고 계셨어야 할 텐데요?”
“그럼 그냥 음식만 사 오지 그랬소?”
주군의 따사로운 눈길이 참으로 부담스럽다. 카를과 러스, 실란이 은근슬쩍 시선을 피했다. 레펜하르트와 타시드, 티티마가 저 ‘일행 내 인류 제군’을 향해 불만을 토했다.
“지들만 따뜻한 밥 먹고.”
“지들만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실란 못됐어.”
물론 얌전한 시리스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다.
“쉴 수 있는 사람은 쉬어야지요, 허허.”
“전 레펜 씨처럼 튼튼하지 않다고요. 길바닥에서 계속 자다간 병나요.”
“형님, 전 그냥 재상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하여튼, 레펜하르트는 다시 아스티노플 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기감과 마법을 병행해 저택 내부의 인원은 대충 파악이 끝났다. 겉보기엔 평범한 귀족 별장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특이한 부분도 있긴 있었다.
“분명 여름 별장이라 들었는데, 겨울임에도 시종인의 숫자가 꽤 많은걸?”
상당히 높은 계급의 누군가가 이 별장에 계속 상주하고 있다는 증거다. 은의 현자란 자들이 평소엔 속세 신분으로 지낸다는 걸 감안하면 딱히 경비 수준이 높지 않은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러스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일단 잠입해 보지요, 형님. 아무나 하나 잡아서 정보를 캐내면 뭔가 나와도 나오겠지요.”
☆ ☆ ☆
빨래를 끝낸 하녀는 어깨를 매만지며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차피 에렌드 아가씨가 없을 때는 저택의 시중일도 그리 많지 않다. 오랜만에 만들던 자수 무늬를 완성해야겠다며 하녀가 총총 걸음을 옮길 때였다.
시꺼먼 그림자가 눈앞을 가렸다. 채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하녀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이 저택의 주인은 어디 있나?”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레펜하르트의 강력한 정신계 마법에 제압당한 하녀가 순순히 입을 열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이 저택에 뭔가 기이하게 느껴지는 일은 없는가?”
“에렌드 아가씨요. 그분은 정말 신기한 분이세요.”
“어째서 신기하다는 것이지?”
하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수시로 사라지는 에렌드 아가씨와, 그녀가 데리고 온 정체불명의 일당, 그리고 그 일당이 머무르고 있던 금역에 대해서까지.
딱!
레펜하르트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녀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가볍게 안에 벽에 기대게 한 뒤 레펜하르트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테스론 일당이 이곳에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아무래도 그 금역이란 곳을 가 봐야겠어.”
☆ ☆ ☆
금역이라 불린 곳은 저택 뒤쪽 오솔길을 따라 10여 분 정도 걸어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투박한 건물 몇 채로만 이루어진, 귀족의 저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전쟁터의 병영에 가까운 형태였다.
금역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문득 시리스가 인상을 썼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요, 레펜하르트 님?”
“건물 안의 아티팩트 때문에 그렇단다, 시리스. 저 희미한 마력을 느끼는 걸 보니 너도 꽤 경지에 올랐구나.”
저 정도면 슬슬 7서클에 입문할 수준이다. 역시 어린 시절부터 가르쳐서 그런지 전생의 시리스보다 진도가 빠르다. 내심 흐뭇해하며 레펜하르트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도 투박하긴 마찬가지였다. 장식 따위는 없는 석벽에 테이블과 침상이 몇 개 놓인 것이 전부였다. 건너 방을 살피던 티티마가 일행에게 손짓했다.
“여기 뭔가 있어요.”
방 안에 놓인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수조였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투명한 유리통이 방 중앙에 세워져 있었고, 그 밑을 복잡한 형태의 구조물이 받치고 있었다.
실란이 의아해하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죠? 물고기라도 키웠나?”
“저수통이 아닐까요?”
시리스의 말에 실란이 말도 안 된다며 반박했다.
“에이, 그냥 물 담는데 이 비싼 유리를 이렇게 통으로 썼을 리가 없잖아요?”
“하긴…… 심지어 유리도 아닌 것 같네요.”
레펜하르트가 수조 근처로 다가갔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희미한 마력파는 이 수조로부터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수조 여기저기를 만져 보며 그가 말했다.
“뭔가 아티팩트임은 분명하다. 사용법은…… 당장은 모르겠군.”
주저앉아 계속 연구하다 보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것도 같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카를이 물었다.
“이거 어찌하시겠습니까, 폐하?”
타시드가 눈을 빛냈다.
“뭔지는 몰라도 아티팩트라면 비싼 거죠? 챙길 깝쇼?”
러스가 실소를 흘렸다.
“뭔 수로 그걸 챙기게? 짊어지고 가게?”
레펜하르트는 고민했다. 확실히 이 수조는 너무 컸다. 적어도 들고 갈 사이즈는 아니었다. 아무리 무한의 주머니가 있다지만 일단은 주머니 입구에 들어가야 옮기든 말든 하지.
‘그렇다고 두고 가자니 용도를 몰라 뒤가 찜찜하고.’
단순한 타시드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부숴 버릴까요?”
“부수기엔 또 아깝지. 고대의 유산이 흔한 것도 아닌데.”
고민하던 레펜하르트가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냥 락을 걸어 버리자. 뭔지는 몰라도 마력으로 발동되는 건 분명하니까, 그냥 마력 봉쇄를 걸어 두면 되겠지.”
수조 주위에 몇 가지 제어 마법을 시전한 뒤 레펜하르트가 싱긋 웃었다.
“이 정도면 대마법사 수준이 아닌 이상 풀기 힘들 거다.”
수조의 마력 발동을 봉쇄하니 희미하게 느껴지던 마력의 흐름도 딱 끊겼다. 그러고 나니 또 다른 마력이 감지된다. 워낙 희미해서, 수조의 마력장에 묻혀 채 느껴지지 않은 마력이었다.
‘이건 또 뭐지?’
레펜하르트가 마력 흐름을 따라 반대편 건물로 향했다. 그 흐름은 건물 외곽의 작은 방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뒤를 따르던 러스가 물었다.
“뭡니까, 형님?”
아무 대꾸도 않은 채 레펜하르트는 유심히 방 여기저기를 살폈다.
‘이거 아무래도…….’
방 전체에 희미한 공간 간섭 마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이만 터미널 같은 것인가? 아니, 조금 다르군.’
아무래도 이 방은 시간을 들여 조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아예 주저앉아 레펜하르트가 연신 마력의 실을 방 여기저기로 날렸다.
“다들 나가서 쉬고 있어. 아니면 주위를 탐색하든가. 이쪽은 한참 걸릴 것 같다.”
☆ ☆ ☆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었다.
한참 동안 방 여기저기를 탐색하던 레펜하르트가 문득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런 거구만.”
대충 감이 왔다. 이것은 분명 공간 이동을 위한 장치였다. 단지 다이만 터미널과는 좀 달랐다.
다이만 터미널은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방식, 불특정 다수를 이동시킬 수 있는 일종의 대중교통 수단이라는 느낌이다.
반면 이쪽은 오히려 그것에 가깝다.
‘그, 제이드가 썼던 괴상한 깃털 아티팩트…….’
공간을 접어 날리는 방식은 다이만 터미널에 비해 개인, 혹은 소수의 사람만이 옮길 수 있을 뿐이지만 그 대신 대규모 구조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깃털처럼 자체적으로 시스템이 독립된 아티팩트는 아닌 것 같고.’
마법적인 구조물과 시스템을 갖추고는 있지만 동력원이 없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간 지도랄까?
‘뭔가 열쇠가 되는 다른 아티팩트와 연동해, 그 아티팩트의 마력으로 공간 이동을 시키는 방식이야. 두 가지를 접목시켜 응용한 타입이군.’
정해진 사용자가 정해진 열쇠를 꽂으면 정해진 장소로 공간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레펜하르트가 천천히 마력을 모았다. 구조와 시스템을 이해하고 나니 임시로나마 1회용 열쇠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부우웅.
잠시 후, 레펜하르트의 손바닥 위로 새빨간 작은 보석 하나가 떠올랐다. 조심스레 그가 방 중앙에 보석을 박았다. 아무것도 없던 방바닥이 빛을 발하며 커다란 마법진을 그려 냈다.
“되는군.”
흡족해하며 레펜하르트가 일행을 불러 모았다.
“다들 모여 봐!”
안 그래도 밖에서 긴장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바로 방 안으로 집결했다. 변모한 방의 모습에 카를이 물었다.
“이건 뭡니까, 폐하?”
“공간 이동 마법진. 다이만 터미널 같은 거다.”
엄밀히 말하면 포털이 아니니 좀 다르지만, 하여튼 공간 이동을 시킨다는 점에선 별 차이가 없다. 이미 몇 번이나 다이만 터미널을 이용해 본 이들이었다. 다들 쉽게 레펜하르트의 말을 알아들었다.
실란이 마법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에 들어가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건데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하지만 은의 현자와 관련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겠지?”
러스와 타시드가 눈을 빛냈다.
“준비를 해야겠군요.”
저 공간 이동기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공간 이동과 동시에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러스와 타시드, 시리스가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실란도 성표를 꺼내 손에 쥐었고 티티마도 곁에 찰싹 달라붙어 단검 두 자루를 쥐고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카를이 등에 멘 거검을 꺼내 소리쳤다.
“와라! 엘드라드!”
순식간에 황금빛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뒤 카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되었습니다, 폐하.”
레펜하르트가 마법진에 손을 얹으며 외쳤다.
“전이轉移!”
제56장 잊힌 역사
1
사방이 새하얀 금속질 벽이었다. 신전이나 왕궁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홀, 그 가운데 서서 레펜하르트 일행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여긴?”
“제대로 온 건가?”
다이만 터미널 때도 그렇지만, 공간 이동 자체는 순식간이다. 잠깐 눈앞이 번쩍이더니 바로 서 있던 장소가 바뀌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