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61
이후, 인류는 자연스럽게 이종족을 노예 종족으로 인식했다. 천 년 전의 모든 역사는 잊히고 세이어 교단이 가르치는 대로 처음부터 그들은 노예로 태어났다 믿게 되었다.
인간만이 대륙의 유일한 지배자가 되고, 인간만이 만물을 다스릴 자격이 있다고 믿으며 트롤들의 위상도 변했다.
천 년 전에도 트롤들은 소규모 부족 상태로 대륙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자연과의 동화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트롤들은 인간이나 엘프, 드워프, 오크처럼 대규모로 무리 짓지 않고 숲 속에서 작은 마을만을 꾸린 채 은둔자적인 생활을 영유했다. 그런 트롤은 숲 속의 현자, 숲의 보호자로 여겨졌고 가끔 인류와 접촉하는 일도 있었지만 서로 적대하는 일은 그리 없었다.
이런 트롤의 처지가 바뀐 것은 바슈탈론 제국이 대륙을 통일한 후였다.
트롤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원래 인간은 엘프나 오크, 드워프처럼 트롤 역시 그들과는 다르지만 같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종족 노예들을 부리게 되며 트롤 역시 저들처럼 인간 이하의 야만스러운 종족으로 여기게 되었다.
인간에게 트롤을 노릴 실리적인 이유가 생겨났다.
마법사들이 대거 양성되며 각종 마법 시약도 점점 발달했다. 한때 마법사들의 몫이었던 시약 조제는 점점 세밀하고 전문화되어 연금술이라는 독립된 학문이 되었다. 그 마법 시약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이 부상을 낫게 해 주는 힐링 포션이었다.
힐링 포션은 그 효능만큼이나 들어가는 재료도 희귀하다. 그래서 한때는 일국의 왕족 정도나 쓸 수 있었던 귀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연금술사들이 트롤의 피에 대해 연구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그저 숲 속에서 살아가던 아무 상관없던 종족이 갑자기 황금과도 같은 가치를 갖게 되었다.
인식이 바뀐 인류에게 있어 트롤을 죽이고 피를 뽑는 행위는 더 이상 살인이 아니었다.
수백 년에 걸쳐 트롤 사냥의 빈도수가 점점 늘어났다. 공격받은 트롤들은 궁지에 몰리며 광폭화 상태로 맞서니, 그 흉폭한 모습에 트롤을 몬스터로 여기는 인식 역시 점점 깊어졌다.
천 년이 지난 후, 이제 트롤은 그저 몬스터의 일종으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변경에서는 아직도 숲의 현자라는 옛 트롤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지만 그마저도 애들이나 보는 동화라며 비웃음만 당했다.
그렇게 인간은 모든 경쟁자를 발밑에 놓았다. 이후 바슈탈론 제국의 권위가 흔들리며 휘하에 있던 대영주들이 하나둘 독립해 그라임, 할라인, 크로방스 왕가 등으로 분화되었을 때도 인간 자체를 위협하는 종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는 세상의 주인이 되었다.
☆ ☆ ☆
‘내가 알아낸 역사와 거의 차이가 없군.’
뇌리에 스며드는 역사적 정보를 추려 내며 레펜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의 이종족들로부터 들은 전승, 던전 곳곳에서 발견한 유물에 대한 고찰 등을 통해 전생의 그 역시 저런 추론을 내리고 있었다. 물론 모르는 부분도 있기는 했지만.
‘그랜드기어가 어디 위치했나 했더니 플룬탄이었나? 그럼 몰튼 모라스 던전도 그랜드기어의 일부였겠군.’
왜 그곳에 고대 드워프어가 적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쨌거나 큰 범위 내에선 그의 예상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중요한 건 그 이면의 부분이었다.
사실 전생 때 레펜하르트는 역사를 알아보면서도 내내 궁금해했다.
대체 왜 엘프와 드워프, 오크가 패배했는가?
당시의 인간들은 이종족들보다 그리 뛰어난 문명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유물과 유적을 살펴보면, 바슈탈론 제국 전의 인간들은 그렇게 이종족들에 비해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저리 압도적으로 세 종족을 지배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슈탈론 1세가 나타났고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 정상적인 문명 발달 속도를 갑자기 뛰어넘어, 대량의 마법사가 나오고 수많은 마도구와 아티팩트로 무장한 인간들이 삽시간에 이종족들을 쓸어버렸다.
거대한 세계수 엘븐하임이 불탔다는데, 레펜하르트가 세운 양산형 세계수만 하더라도 현재의 힘으로 불태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산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한 권능이 깃든 나무다. 단순히 불태우려고만 해도 최소 대마법사 십수 명은 달라붙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엘프들이 그 꼴을 가만 보고 있을 리가 있는가? 하물며 당시의 엘븐하임은 오리지널, 지금의 세계수와는 비교도 안 되는 권능을 지니고 있는 진정한 세계수다.
드워프 왕국 그랜드기어를 붕괴시키고 왕국의 코어를 부숴 그 여파로 대륙 최대의 화산을 분화시켰다는데, 현재 드워프 도시인 그랜드 포지만 해도 어지간한 연합 왕국의 합공을 견디기에 충분히 강인한 도시였다.
세월이 흐를수록 인류의 문명은 점차 발전해 갔다. 문화도 기술도 마법도 모두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 지금의 인류 문명을 기준으로 해도 당시의 이종족 문명은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천 년 전?
레펜하르트가 보기에 당시의 인류는 엘프와 드워프, 오크들을 억누를 힘이 없었다.
‘하지만 역사는 이종족들의 패배를 기록했고 현재 세상은 분명 인간의 것이지.’
저 이해 못 할 정보의 공백.
그 모든 것의 뒤에 바로 은의 현자가 있었다.
2
은의 시대가 멸망하며 그 시절의 문명, 그 일부를 물려받은 이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한 문명, 은의 시대.
그들은 그 힘을 두려워했다. 인류가 저 초월적인 문명을 손에 넣을 경우 어리석은 선택을 해 또다시 멸망의 길을 걸을지도 몰랐다. 분수에 맞지 않는 거대한 힘을 손에 넣은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당혹에 빠져 있었다.
그때 인류의 신, 세이어가 나타나 계시를 내리며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었다. 세이어의 가르침대로 그들은 인류를 위해, 손에 넣은 강대한 힘과 지혜를 올곧게 다루는 법을 익혔다.
세이어로부터 은의 현자로 지음받은 그들은 충실히 가르침에 따랐다.
수천여 년에 걸쳐 은의 현자는 인류를 지켜보았다. 인류의 문명이 발달할 때마다 그에 걸맞은 문명 수준의 지혜와 지식을 남몰래 전수하며 인류를 이상적인 발전의 길로 이끌었다.
세월이 흐르며 점점 인류의 숫자가 늘어났다. 인류의 영역이 당시 이미 문명을 누리고 있던 엘프와 드워프, 오크의 영역에까지 맞닿았다.
다툼이 일어났다.
전쟁이 벌어졌다.
은의 현자는 계속 인류를 지켜보았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호적수가 필요했다. 엘프와 드워프, 오크의 존재는 인류에게 있어 나쁜 것이 아니었다. 저들과 경쟁하며 인류는 더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 인류가 돌이킬 수 없을 때까지 밀리지 않도록 작은 조력은 주었으되, 대부분은 인간 스스로 저들과 맞서도록 관조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좀 더 세월이 흐른 후였다.
오랜 다툼과 전쟁 속에서, 점점 이종족을 대하는 생각을 바꾸는 인간들이 생겨났다.
늙지 않고 영원히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엘프들은 인간이 원하는 이상형 중 하나였다.
놀라운 손재주와 강인한 체력을 지닌 드워프들은 인간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았다.
타고난 전사의 종족, 오크들의 강인함과 그 뛰어난 육체를 경외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늙고 추레해져야 하고, 병에 걸리거나 부상을 입으면 쉽사리 약해지는 인간들에게 엘프와 드워프, 오크의 존재는 점점 대적자가 아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옳지 못한 일이었다.
인류는 저들과 맞서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했다. 결코 저들을 숭배하며 마음부터 꺾여서는 안 되었다.
세이어는 고민했다.
작은 불씨는 이내 거대한 불길로 화해 세상을 태운다. 아직은 몇몇 소수 인간들의 움직임일 뿐이지만 내버려 두면 언젠가 인류 전체의 인식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시기가 늦는다.
늦기 전에, 이종족들이 완전히 인간의 위에 서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하지만 당시 인류의 힘만으로는 엘프와 드워프, 오크를 당할 수 없었다.
은의 시대, 그 화려한 문명의 후계자인 엘프는 인간보다 몇 배나 앞선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은의 시대, 그 화려한 문명의 계승자인 드워프는 인간보다 몇 배나 뛰어난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다.
은의 시대, 그 화려한 문명의 후예인 오크는 인간보다 몇 배나 뛰어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을 인간이 앞서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관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 ☆ ☆
정보를 받아들이다 말고 레펜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런 거였군.’
은의 현자들은 분명 자신들의 은의 시대, 그 문명의 후계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곳의 아티팩트라든가 마학 수준을 보면 확실히 그럴 법했다.
오지의 이종족들도 자신들이 은의 시대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주장했다. 오크나 트롤의 전승을 보면, 한때 그들의 조상은 놀라운 문명을 구가했으나 탐욕을 버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엘프나 드워프 같은 경우엔 적게나마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유물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다섯 종족이 모두 은의 시대 정통 후계자다?
일견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역시 은의 시대는 여러 혼성 종족이 모여 구축한 문명이었나.’
그 시대를 살아가며 문명을 구가하던 이들이 인간과 엘프, 드워프며 오크, 트롤이었다고 보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었다.
지금 대륙도 여러 왕국이 있지 않은가? 저 종족명 대신 바슈탈론 제국인, 그라임 왕국인, 크로방스 왕국인 등을 대입하면 별 차이도 없다.
납득하며 레펜하르트는 계속 정보를 읽기 시작했다.
☆ ☆ ☆
세이어는 결단을 내렸다.
은의 현자로 하여금 금지된 비밀의 문을 열게 하여 은의 시대, 그 강대한 힘을 세상에 풀어놓았다. 은의 수호자, 바슈탈론을 중심으로 모든 인류를 통합하고 이종족들을 정복하도록 명했다.
순식간에 몇 배나 문명 레벨이 폭증한 인간은 오랜 전쟁 끝에 모든 종족을 발아래 둘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은의 현자는 신의 이름하에 인류에게 주어진 것을 다시 거두었다. 갑작스러운 문명 발달은 부작용을 낳으니, 고대의 힘이 아직 성장하지 않은 인류에게 남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미 한번 고대의 지혜를 접한 인류는 충분히 강해졌고 더 이상의 경쟁자도 존재치 않았다. 더 이상 은의 시대 유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번성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은의 현자가 인류로부터 완전히 손을 뗀 것도 아니었다.
엘프와 드워프, 오크를 노예로 삼았지만 그것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언제 다시 인류의 위에 설지 모를 이들이었다.
인류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했다. 인류가 자부심을 느끼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세이어 교단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전파했다. 신의 가르침에 따라 엘프와 드워프, 오크의 역사는 지워지고 노예로 지음받은 종족이 되었다.
그 와중에 트롤의 위상이 떨어진 것은 부수적인 효과였다.
사실 은의 현자는 딱히 트롤에게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트롤은 애당초 숲 속 깊숙이 살며 인간과 거의 접촉이 없는 종족이었다. 일종의 신령이나 산신 같은, 미신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그들이 인류에 영향을 끼치는 일은 전무했다.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인류의 인식이 바뀌고 탐욕의 대상이 되어 이후 몬스터로 불리게 되었을 뿐이다.
역사를 전파한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비천한 노예를 부러워하는 인간은 없었다. 스스로가 인간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게 되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었다.
멸망한 은의 시대, 그 강대한 힘은 현세에도 여전히 영향을 끼친다. 지금도 수많은 던전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나타나고, 또 사라진다. 그리고 그 던전들은 모두 은의 시대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 진실을 접한 인류가 현존하는 역사에 대해 모순을 느끼게 된다면 모든 일이 허사였다. 대책이 필요했다.
대륙 전체를 감시하며 은의 현자는 진실이 드러날지도 모르는 유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 그 와중에 죄 없는 이가 희생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인류 전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절대 알릴 수 없었다.
위대한 은의 시대, 그 주역이 인간이 아닌 고대 엘프와 고대 드워프라는 진실을.
결코 의문을 품게 할 수 없었다.
대체 그 시대에 인간들은 무엇을 했는지, 저 위대한 고대인이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면 인간은 대체 무엇을 조상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를.
아무리 은의 현자라도 세상에 흩어진 모든 문헌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는 허점을 막기 위해, 몇몇 역사는 은의 시대 진실에 뒷받침되어 만들어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은의 시대라는 명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고대인들을 인류의 조상인 것처럼 꾸몄다.
지금과 달리 은발에 귀가 둥근 고대 엘프들은 마치 장신의 인간처럼 보였다.
지금과 달리 키가 더 크고 흑발에 귀가 둥근 고대 드워프들은 마치 단신의 인간처럼 보였다.
진실을 기반으로 일부의 거짓을 섞으니, 인간들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반면 귀가 길고 몸이 가느다란 엘프나 귀가 뾰족하고 지나치게 짧고 굵은 드워프의 외모는 도저히 인간이라 우길 수 없었다. 오크와 트롤은 은의 시대와 무관하지만 그들의 모습이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으니 역시 관리 대상이었다.
그들의 존재를 담은 유물은 어쩔 수 없이 개입해 빼앗았다. 다행히 저런 유물은 극히 소수여서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진 않았다.
그렇게 인간의 인식을 가리고, 때로는 희생을 낳아 가며 수백 년에 걸쳐 은의 현자들은 역사를 조작했다.
☆ ☆ ☆
‘엥? 이게 뭔 소리야?’
레펜하르트는 눈을 껌벅였다. 어째 정보의 내용이 좀 이상했다.
‘오크와 트롤은 은의 시대와 무관하다고?’
다른 정보에서는 오크가 은의 시대의 후예라 하더니, 여기선 또 무관하다고 한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인들이 엘프와 드워프들이라고? 내가 뭘 잘못 읽었나?’
현재 그가 읽고 있는 정보는 한 사람이 쓴, 정리된 문장 같은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정보 수정구에 동시 접속해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마법으로 혼용해 정리하여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량의 책을 읽은 이가 그 내용을 따로 간략화해 하나의 이야기로 바꾸는 방식이랄까?
이 방법의 단점은 수집한 정보 중 빈 부분이 생기면 이야기가 꼬인다는 것이다. 혹시 그런 경우인가 싶어 레펜하르트는 데이터 리딩의 범위를 더욱 넓혔다.
다른 정보 수정구를 통해 비슷한 내용만을 검색한 뒤 추려 내 보았다. 그래도 결론은 같았다.
모든 정보 수정구는 한결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위대한 은의 시대, 그 주역인 고대인은 인간이 아닌 고대 엘프와 고대 드워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