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70
“거긴 너무 경쟁이 심해서 우리 실력으로는 좀…….”
이렇듯 시장은 온갖 종족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자 용 가죽 외투를 파는 오크 가죽 장인도, 인간 한 무리가 시장을 걸어가는 걸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거기 가는 인간 양반! 보아하니 여행자 같구먼!”
여행자 복장을 한 흑발의 청년과 인간 여성 둘, 그리고 엘프 여인이 함께 걷고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외투의 품질이 꽤 조악했다. 오크라면 가죽 외투를 저리 질 나쁘게 만들 리가 없었다. 인간의 것이 분명했다.
요즘 안타레스 공국에서 가죽 외투는 무조건 오크제가 최고다. 좋은 기회 잡았다 싶어 고객 유치에 나섰다.
“그 정도 옷으로 페틀랜드를 어찌 지나려 하는가! 여기서 하나 골라 보시게!”
흑발의 청년이 빤히 오크 가죽 장인을 바라본다. 장인의 딸이 아비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작게 말했다.
“아빠! 인간은 우리말 몰라요.”
“아, 그렇지.”
공용어로 바꿔 다시 오크 장인이 외쳤다.
“페틀랜드 빡세다! 좋은 옷 입어라! 이 옷 죽인다!”
외투를 흔드는 건장한 중년 오크를 보며 흑발의 사내, 세이어는 빙그레 웃었다.
“재미있는 곳이로구나.”
그가 기억하는 오크는 넓은 대지에서 천막을 치고 살며 유목 생활을 하는 종족이었다. 이런 거대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오크들이 정체성을 잃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이 도시는 분명 잘 짜여 있으면서도, 오크의 문화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자의 짓인지, 오크의 짓인지 모르겠군.”
턱을 매만지며 세이어가 렐시아에게 물었다.
“이곳을 다스리는 자가 칼켄과 스탈라라 하였더냐?”
“예, 위대하신 분이여.”
“그들이 보고 싶구나.”
필레나를 돌아보며 세이어가 손짓했다.
“필레나, 그들을 불러라.”
“어떻게 부를까요?”
필레나의 눈동자 위로 싸늘한 살기가 맴돌았다. 아무 어조의 변동 없이, 세이어가 대답했다.
“많은 피가 흐르면 저절로 오리라.”
☆ ☆ ☆
열풍이 불어 닥쳤다.
불길이 바람을 타고 휘몰아치며 거대한 폭발을 일군다. 잘 닦인 석조 포장도로가 녹아내리고 폭풍에 쓸리며 몇 겹이나 굽이쳐 식어 간다.
평화롭던 시장은 순식간에 지옥이 되었다. 비명이 아우성치고 수많은 인파가 사방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는 이들의 뒤를 불꽃의 파도가 뒤덮었다. 살이 익고 뼈가 타고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 참혹한 파괴의 중심에 한 여인이 있었다. 1미터 정도 되는 지팡이를 한 손에 든 채 그녀가 손가락을 허공에 돌리며 또다시 주문을 외웠다.
“세이그 제라핀 카바니에프, 연옥의 불길이여, 치솟아라, 뻗어 올라 드리워져 지상을 태우는 폭우가 되리! 레인 오브 플레어!”
수십, 수백 줄기의 화염 비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건물에 불길이 치솟고 천막들이 연달아 불이 붙었다. 사방이 자욱한 연기로 가득했다. 오크와 엘프, 드워프, 트롤과 인간 할 것 없이 모두 절규하며 죽어 갔다.
“으아악!”
“마법사다!”
“인간 마법사가 나타났다!”
잠시 후, 한 무리의 오크 전사들이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정신없이 뛰어왔는지 숨이 거칠었다. 오크라트의 시티 가드들이었다.
오크 경비대장이 검을 뽑아 들고 필레나를 겨누며 소리쳤다.
“전사들이여! 저 사악한 인간 마녀를 격살하라!”
과연 오크답게, 누구냐고 묻거나 왜 이런 일을 하느냐 등의 쓸데없는 대화 따윈 시도하지도 않았다. 일단 쑤시고 나서 시체를 바라보며 ‘이 자식이 누굴까?’라고 의아해하는 것이 오크 전사의 덕목인 것이다.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 명의 오크 전사들이 검을 들고 용맹하게 돌격해 갔다.
“크아아!”
“타아앗!”
필레나가 우아한 손동작으로 지팡이를 허공에 휘저었다.
“그라운드 데스!”
검은 기운이 퍼져 오크 병사들을 일제히 뒤덮었다. 강렬한 죽음의 공포를 안겨 상대를 미치게 만드는 정신계 마법이었다. 어지간한 전사라면 버텨 낼 수 있겠지만, 항마력이 없는 오크에겐 이토록 무서운 마법도 없다.
그런데, 검은 기운 속에서도 오크 전사들이 힘겹게 버텨 냈다.
“크윽!”
“크으윽!”
그들의 가슴에 걸린 트롤 부적 덕이었다. 사용자의 정신력과 비례해 항마력을 부여하는 이 부적이 있으면 오크라도 정신력으로 마법을 버텨 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모든 오크 전사들이 그라운드 데스를 이겨 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경비대장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흥! 마법은 통하지 않는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남들만큼 버틸 수 있게 되었을 뿐이야, 멍청한 놈들.”
필레나가 차갑게 뇌까렸다. 어차피 그라운드 데스는 그리 고위 마법이 아닌지라 그녀도 대충 예상한 결과였다.
긴장한 경비대장이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화살을 쏘아라!”
상대의 마법이 예사롭지 않으니 무작정 돌진하기가 꺼려진 것이다. 화살로 집중력을 흩은 뒤 처리할 셈이었다. 수십 대의 화살이 필레나와 세이어 일행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화살 비는 곧바로 필레나의 마력 방어장에 모조리 막혔다. 그리고 그녀는 날아온 화살들을 그냥 땅에 버리지 않았다.
“에어 웨이브.”
시동어가 울리며 바람이 불어 사방의 화살들을 허공으로 떠올린다.
“매스 웹.”
다량의 마법 거미줄이 형성되어 떠오른 화살들을 뒤덮었다.
“파이어.”
가연성 물질인 마법 거미줄에 얽힌 화살들에 일제히 불이 붙었다.
“거스트 오브 윈드.”
저 모든 마법을 필레나는 거의 한순간에 처리해 버렸다. 전부 3서클 이하의 하위 주문인 만큼 시간이 들 이유가 없었다.
폭풍이 불었다. 불화살들이 폭풍에 실려 무자비한 기세로 반전해 날아갔다. 화살을 쏘았던 오크 병사들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불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크악!”
“컥!”
“앗 뜨거!”
사지 여기저기에 불화살이 박혀 오크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필레나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스톤 블록.”
땅위에 작은 돌기둥을 솟아오르게 하는 1서클 주문, 스톤 블록은 원래 상대의 발밑에 걸림돌을 생성해 추적자를 넘어지게 하거나 군마의 진격을 막는 식의 보조 주문이다.
그러나 필레나는 스톤 블록을 그런 식으로 쓰지 않았다.
그녀는 저 오크 병사들의 좌우에 위치한, 불타는 건물의 지지대에 스톤 블록을 걸었다.
불화살을 날리며 썼던 화염과 풍계 마법, 그 와중에 온도 차를 감지해 건물의 지지대 강도를 파악하고 대기의 흐름을 파악해 미세하게 흔들리는 건물들의 취약점을 순식간에 파악한다. 그리고 그 취약점에 아주 간단한, 작은 땅의 뒤틀림을 만드는 마법을 날려 준 것이다.
그 결과는…….
우르릉!
불타던 좌우의 건물이 일제히 붕괴되어 오크 시티 가드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불에 타고 파편이 뒤덮여 생매장되며 오크들이 비명 속에 죽어 갔다.
“으아아아악!”
땀 한 방울 안 흘린 채 필레나는 그 모든 참상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쓴 주문은 대부분 3서클 이하 마법뿐이다. 마력 소모도 심력 소모도 거의 없었으니 태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어난 결과는 어지간한 고위 서클보다도 더 파괴력이 크다. 그녀의 소꿉친구가 창안한 마법적 상황 제어 이론은 이제, 엘류시온의 목소리로 한껏 연산력을 높인 필레나의 손에서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었다.
싹 쓸린 오크들의 시체를 보며 필레나가 물었다.
“세이어시여, 더 많은 피가 흘러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겠구나.”
파괴의 흔적 너머를 바라보며 세이어가 기분 좋게 웃었다.
“기다리던 이들이 왔다.
☆ ☆ ☆
칼켄과 스탈라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오크라트의 건물 지붕 위를 치달리고 있었다.
“이게 뭔 난리야?”
뻐드렁니를 드러낸 채 칼켄이 으르렁댔다.
그는 평소처럼 자신의 천막성에서 수하 부족의 전사들을 굴리며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크라트 서부 시장에서 폭음이 들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폭발 속에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칼켄은 바로 긴장했다. 그 많은 전쟁을 통해 그는 저 기운을 여러 본 맛본 바가 있었다. 익숙하디 익숙한, 마법사의 기운이었다.
“침입자!”
수하 부하들에게 출동 명령을 하달하며 본인도 무기를 들고 바로 천막성을 뛰쳐나갔다. 따로 업무를 보던 그의 아내, 스탈라도 잽싸게 합류했다.
서부 시장에 도착해 보니, 그곳엔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사방이 파괴의 흔적이요, 시체와 핏물, 육편으로 가득했다. 끓어오르는 분노 속에서 스탈라가 한 곳을 가리켰다.
“남편, 아무래도 저것들이 원흉인 것 같은데?”
핏발 선 눈으로 칼켄이 자신의 애도를 뽑아 들었다.
“감히 나의 도시를!”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검 위로, 그보다 더 거대한 녹색 블레이드 오러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죽여 버리겠다, 인간 마법사!”
가공할 기세가 오크 대족장 칼켄의 주위를 소용돌이친다. 필레나가 침을 꿀꺽 삼켰다. 2.3미터의 거대한 오크가 맹렬히 포효하니 그 압박감만으로도 숨이 멎는 듯했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그녀가 지팡이를 움켜쥘 무렵이었다.
“물러나라, 필레나.”
만류하며 세이어가 앞으로 나섰다.
“저들은 아직 네가 상대할 수 없겠구나. 다른 아이들을 지켜 주지 않으련?”
“뜻대로 하소서.”
물러난 필레나가 지팡이를 들고 세렐라인과 렐시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세이어가 칼켄을 보며 빙긋 웃었다.
“네 기운이 실로 강대하다. 네겐 내 분노를 받을 자격이 있구나.”
으르렁대며 칼켄이 눈을 부라렸다.
“네놈이 우두머리인가 보구나!”
하지만 칼켄은 바로 몸을 날리지 않았다. 평소 그의 성정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저 눈앞의 인간이 피우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경각심이 강하게 뇌리를 두들기고 있으니 도저히 흥분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눈싸움만 하고 있을 상황도 아니지.’
블레이드 오러를 길게 쏘아 내며 칼켄이 선공을 날렸다.
“타아앗!”
녹색의 오러가 빛의 기둥이 되어 세이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세이어는 피하지 않았다. 무심히 날아오는 블레이드 오러를 보고만 있었다.
‘뭐야, 저거? 겉멋뿐이었나?’
전혀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 세이어를 보며 칼켄이 의아해할 때였다.
“카오틱 실드.”
낭랑한 음성과 함께 암흑의 방패가 형성되어 녹색 오러 앞을 가로막았다. 방패와 충돌한 칼켄의 오러가 비명을 지르며 박살이 났다.
콰콰콰쾅!
폭음 속에서 칼켄이 도리어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