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73
구릉 위에 올라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지켜보며, 네 사람은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오크들의 도시, 오크라트.
그곳이 참혹할 정도로 박살이 나 있었다.
☆ ☆ ☆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폐허였다. 굳건히 세워 올렸던 석탑과 가옥들은 걸레짝처럼 갈가리 찢겨 사방에 흩어져 있고, 그 사이로 무수한 시체가 끝없이 이어진다.
오크라트에 거하고 있던 수많은 이들이 처참한 육편이 되어 바닥을 나뒹군다. 심지어 그 강력한 재생력을 가진 트롤조차도 박살이 난 채 죽어 있었다.
곳곳에 흑연이 가득하고 피 웅덩이가 즐비하다. 그 속에서 끝없이 절규와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어머니! 어흐흐흑!”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사랑하던 이의 시신을 붙잡고 오열한다. 오크라트를 지키는 강인한 오크 전사들조차도 그 대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저 망연자실한 얼굴로 살아남은 이들을 챙기고 어떻게든 시체를 수습하려 할 뿐.
하늘의 별이 떨어진 지 하루째, 그토록 활기차고 생에 넘치던 오크라트는 죽음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언덕 위에서 오크라트를 내려다보면 러스와 시리스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마, 맙소사!”
“끔찍하네요…….”
멀쩡한 건물이 남아 있지를 않았다. 굳건한 성벽도 모조리 무너져 토대만 남아 있을 뿐이다. 대체 얼마나 가공할 파괴가 있었기에 그토록 거대하던 도시가 이리 참혹하게 무너졌단 말인가?
오크다 보니 이 도시에 남달리 애착이 있는 타시드의 심정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칼켄! 스탈라!”
존경하는 족장과 대모의 이름을 외치며 타시드가 한발 먼저 오크라트로 내달렸다. 사방을 살피며 러스가 레펜하르트에게 말했다.
“이거 대체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도 안 가는데요, 형님.”
온갖 전장을 보아 온 러스지만, 이토록 처참히 박살 난 광경을 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도시 인구의 절반 가까이 죽음을 당한 듯싶었다. 그 숫자를 생각하니 현기증이 올 지경이었다.
시리스도 질린 얼굴로 뇌까렸다.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요?”
레펜하르트 곁에서 여러 무지막지한 파괴 현장을 보아 왔던 그녀다. 하지만 그 기억 속에서도 이 정도 광경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차탄 공국에서 레펜하르트가 벌였던 엽기적인 파괴, ‘오러로 절벽 뭉개기’조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거의 그때 그…….’
그래, 제라드와 바나텔이 동시에 힘을 쓴 것이 아닌 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제라드 님은 아라난 그라드에 계신데 그럴 리는 없고.’
의아해하며 시리스는 레펜하르트를 올려보았다.
“어찌 된 일일까요, 레펜하르트 님?”
레펜하르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굳은 얼굴로 눈앞의 참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은 지극히 혼란스러워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건 분명…….’
알아볼 수 있었다.
보는 순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이 가공할 파괴의 흔적은 바로 레펜하르트 자신이 직접 창시한 10서클 대이적 주문, 하늘의 별을 떨어트리는 미티어 폴의 자취다!
‘하지만 난 그 마법을 타인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그때 레펜하르트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잘 보니, 자신의 주문과 지금 이 ‘미티어 폴’은 그 흔적이 좀 달랐다.
‘아니, 이건 내 마법이랑 술식이 틀려.’
워낙 엄청난 마법이다 보니 하루가 지났음에도 사방에 마법의 여파가 진하게 남아 있다. 대기에 맴도는 잔여 마력을 느끼며 레펜하르트는 술식을 역으로 탐지해 갔다. 확실하진 않지만 대충은 짐작이 갔다.
‘내 술식과는 다른 개념의 미티어 폴이군, 이쪽은.’
레펜하르트의 미티어 폴은 외공간에 떠다니는 운석을 마법으로 끌어당긴 뒤, 외공간과 대기권 사이에 순환하는 공간 통로를 만들어 떨어트리는 방식이다. 마법에 사로잡힌 운석은 공간 통로를 통해 순환하며 극가속이 붙은 후에 허공에 모습을 드러내고, 가공할 파괴의 별이 되어 대지를 강타하게 된다.
반면, 이쪽 미티어 폴은 좀 달랐다.
‘외공간에 떠다니는 운석을 이용하는 건 같은데, 끌어당기는 방식이 달라. 공간 통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대기권 위쪽에 공간 포털을 열고 바로 운석을 이동시키는 거다. 그리해서 중력에 의해 가속도를 붙여 지면을 강타하는 방식이야.’
양쪽 모두 장단점이 있다.
레펜하르트의 미티어 폴은 시전하고 나서 파괴력을 낼 때까지 거의 딜레이가 없었다. 공간 통로를 통해 충분히 가속한 뒤 현세에 운석이 구현되는 방식이라 시간 소모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파괴력이 어마어마한 대신 파괴력 대비 마력 소모가 많다.
반면 이 오크라트의 미티어 폴은 시전 후 실제 파괴를 낼 때까지의 딜레이가 훨씬 길었다. 대기권 위에서 중력 낙하하는 방식이다 보니 시전 후 실제로 지면에 충돌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모된다.
대신 필요 마력은 몇 배로 적다. 오직 운석을 붙잡아 이동시키는 데만 마력이 소모되고 그 후엔 자연 중력을 이용하니 상대적으로 마력 소모가 적은 것이다. 덕분에 파괴력도 레펜하르트의 미티어 폴만 못하다.
“어쩐지 피해가 너무 적더라니…….”
턱을 매만지며 레펜하르트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시리스가 기가 막혀 반문했다.
“네? 피해가 적다고요?”
“응…….”
시리스는 이 참상을 보며 제라드와 바나텔의 충돌을 떠올렸을지 모르겠는데, 당시 두 사람의 충돌은 크레이터만도 200미터 가까이에 충격파는 수십 킬로미터에까지 달했다. 파괴력으로만 놓고 보면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다.
“게다가 그걸 감안해도 너무 약하고…….”
무심히 뇌까리는 레펜하르트의 모습에 시리스의 안색이 굳었다. 이 지독한 참상이 약하다고?
“그럼 이보다 더 끔찍하게 파괴되었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시리스가 분노하며 레펜하르트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마법에만 심취해 있던 레펜하르트가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무심코 대꾸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함부로 할 말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야. 말 그대로 미티어 폴치고는 너무 약하다는 의미였어.”
땀을 뻘뻘 흘리며 레펜하르트는 손사래를 쳤다.
전생의 레펜하르트는 미티어 폴 한 방으로 차탄 왕궁을 소멸시키고 제플린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제 갓 생겨난 신생 도시 오크라트와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국의 수도 제플린은 그 규모가 차원이 다르다. 차탄 왕궁과 인근 거리만으로도 면적이 오크라트 전역과 비슷할 정도다.
그런데 같은 미티어 폴이 떨어진 이 오크라트는…….
“그럼 대체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인 건가요? 도시의 인구가 절반이나 죽었는데!”
……절반이나 살아남지 않았는가?
씩씩거리는 시리스를 보며 레펜하르트는 오해를 풀어 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 참상을 대수롭잖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시리스. 시전된 마법의 위력에 비해 파괴 흔적이 너무 작다는 의미야.”
아무리 레펜하르트와 술식 개념이 다르다곤 해도 미티어 폴은 미티어 폴이었다. 그 가공할 마법이 직격했는데 오크라트가 이렇게 흔적이나마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정상적이라면 아예 이 근처가 모조리 거대한 구덩이가 되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리고 레펜하르트는 그 이유를 금방 찾아냈다. 잔여 마력의 흐름이 아니라, 그냥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유는 명확했다.
애초에 하늘의 별, 미티어 폴은 오크라트를 직격하지 않았다.
오크라트 동부 성벽 외곽 몇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파여 있었던 것이다. 도시의 참상이며 대기를 떠도는 마력에 정신이 팔려 미처 못 알아챘을 뿐.
어떻게 저렇게 거대한 흔적을 미처 못 보냐 싶겠지만, 그것이 바로 왕의 입장이자 지고의 마법사다운 관점인 법이다.
‘저러니 오크라트가 이 정도 피해로 끝난 거였군.’
저 위치라면 이 정도 피해 상황이 이해가 갔다. 물론 그 충격파만으로도 오크라트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무수한 인명 피해가 일어나 수많은 이들이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저 미티어가 만약 오크라트 중심에 떨어졌다면 슬퍼할 이조차도 남지 않았을 거다.”
모든 것이 싹 쓸려 버렸을 테니까.
레펜하르트는 고민했다. 정체불명의 적이 어째서 일부러 직격을 피했을까?
자비를 베푼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자비를 베풀 거면 굳이 이런 어마어마한 마법을 쓸 이유도 없겠지.
마법사가 아닌 왕으로서의 레펜하르트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섬멸이 아니라 공포의 확산을 노리는 것이군.’
자신이 한 짓과 별 다를 것이 없다. 천지창조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었던 것처럼, 이 정체불명의 적 역시 모두 죽이는 것보다는 압도적인 힘으로 공포를 전파시키는 것에 주목적을 두었다. 그러려면 그날의 공포를 기억할 이가 어느 정도는 살아 있어야 하겠지.
“우리도 일단 내려가자.”
“네, 형님.”
“예, 레펜하르트 님.”
레펜하르트는 러스와 시리스를 대동하고 오크라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황은 파악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대체 어떤 놈이지? 어떤 놈이 이런 짓을?’
애초에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10서클의 경지에 오른 것은 레펜하르트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10서클 종사자, 고금 제일의 마법사라 불리며 칭송받았던 것이 아닌가?
‘어떻게 나 말고 다른 10서클 종사자가 있을 수 있지?’
그때 레펜하르트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아!’
그가 분명 인류 역사상 최초이긴 하지만, 그 역사 이전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레펜하르트가 10서클이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 역시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많은 지식을 필요로 했다.
바로, 인류 역사 이전의 고도 문명 시대, 은의 시대에 대한 수많은 지식을.
그래, 비록 레펜하르트와 궤는 다르지만 은의 시대 역시 10서클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펜하르트 역시 그 자취를 따르며 결국 저 경지에 오른 것이고.
예전 같으면 여기까지 추리한다 해도 여전히 적에 대해 짐작조차 못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짐작 가는 놈들이 있다.
‘역시 은의 현자란 놈들이 관련된 것인가?’
고대 문명의 힘을 독점하고 있다는 은의 현자, 그들이 지닌 고대의 힘 중에 이런 파괴를 보이는 기물이 없으리란 법도 없다.
‘아냐, 이건 아티팩트가 아니라 분명 마법이 직접 시전된 흔적이다.’
다시 의문이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그렇게 레펜하르트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였다.
“은인이여!”
한발 먼저 달려갔던 타시드가 누군가를 짊어진 채 허겁지겁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전신이 피투성이인 오크 여인이었다. 그녀를 본 순간 레펜하르트 일행이 기겁해 외쳤다.
“스탈라 씨!”
☆ ☆ ☆
스탈라의 부상은 끔찍한 수준이었다. 그토록 강인한 전사인 그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중상인 것이다.
실란이 없기에 치유술을 쓸 수는 없다. 대신 레펜하르트가 짐 언브레이커블의 오러와 치유 마법을 병행해 스탈라의 부상을 다스렸다. 이제는 그 역시 9서클의 마스터, 성직자만은 못해도 어느 정도 힐링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겨우 스탈라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칼켄은 죽었소.”
타시드가 눈시울을 붉혔다. 레펜하르트가 빠르게 물었다.
“누구의 짓입니까?”
“그자는 자신을 신이라 칭했소.”
“신?”
“인류의 신, 세이어.”
모두가 충격을 받은 얼굴이 되었다. 스탈라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신일 리 없겠지만, 그자의 힘을 보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오. 칼켄과 내가 상대조차 되지 않더군.”
이후 스탈라는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세이어와 그를 따르던 세 여인이 오크라트에 나타나 어떤 일을 했는지를.
렐시아에 대해 듣는 순간 시리스의 어깨 위로 살기가 피어올랐다.
“렐시아!”
천지창조에 의해 소모되었던 세계수의 정이 보완되며 그녀의 심성 역시 다시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러스가 흠칫 놀라 시리스를 달랬다.
“조심해요, 부상자 앞입니다.”
과도한 살기는 부상을 입은 스탈라에게 좋지 않다. 하지만 시리스의 살기는 누그러질 줄을 몰랐다. 아무런 대꾸 없이 싸늘한 눈동자만을 빛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