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86
그리고, 세이어는 결코 그 여유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만 끝내야겠다.”
인류의 신이, 그 입술을 움직여 궁극의 힘을 발했다.
“대이적 마법, 필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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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공격 마법, 필멸 세계는 사실 그 개념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 마법의 효과는 극히 간단하다. 목표한 과녁을 꼼짝도 못하게 만들고, 거기에 마법을 날려 상대를 해하는 것뿐이다. 개념만 보면 사냥꾼이 덫을 놓고 잡힌 사냥감에 활을 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10서클에는 저 모든 개념에 ‘절대’라는 표현이 붙는다.
레펜하르트를 중심으로 사방 수 킬로미터의 ‘세계’.
그 세계의 모든 시간이 고정되었다.
그 세계의 모든 공간이 고정되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이 단 하나를 위해 움직였다. 바로 레펜하르트를 제자리에 얽매이게 하기 위해서.
세상 그 누구도, 설사 신이라 해도 ‘반드시’ 얽매일 수밖에 없는 시공의 덫이 놓였다.
그 후, 필멸의 빛이 따라붙었다. 세상 그 어떠한 것도, 설사 신이라 해도 ‘반드시’ 소멸할 수밖에 없는 소멸의 화살이다.
무조건 묶이고.
무조건 맞으며.
무조건 죽는.
저 단순한 개념을 절대화하기 위해 세상을 재구성하는 힘.
“그것이 10서클이지.”
온화하게 웃으며 세이어는 레펜하르트를 지켜보았다.
필멸의 빛은 상당히 느린 속도로 레펜하르트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고정된 세상, 그 세상의 법칙을 ‘소멸’시키며 날아가는 빛이기에 아무리 10서클이라지만 그 속도가 빠를 수는 없었다. 굳이 오러 유저가 아니더라도, 그냥 그 누구라도 보고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다.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피할 수 없었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이탈’을 금하고 있었기에.
죽음을 눈앞에 둔 상대를 보며 세이어가 느긋하게 뇌까렸다.
“흥겨운 시간이었다. 그대는 앞으로도 기억하게 될 것 같구나.”
그때였다.
갑자기 레펜하르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것은.
“그래, 네놈도 내가 했던 병신 짓을 할 줄 알았다.”
허공에 고정된 채 레펜하르트가 두 손을 어지럽게 놀렸다. 짐 언브레이커블의 체술 수인술이 아니었다. 그 무엇보다도 고도로 발달된 정통 마법의 수인술이었다.
빠르게 영창을 끝내며 레펜하르트가 양손을 떨쳤다.
“대이적 마법, 인피니티 게이트!”
모든 것에 ‘반드시’ 적중하는 필멸의 빛 앞에.
모든 것을 ‘무조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공간의 문이 열렸다.
☆ ☆ ☆
쿠우우우웅!
굉음과 함께 필멸의 빛이 인피니티 게이트 속으로 빨려들며 사방에 그 여파를 떨쳐 낸다. 이탈을 금함으로써 세상의 법칙을 뒤틀었던 강대한 10서클의 마력이 폭풍이 되어 사방으로 불어닥친다.
절대와 절대가 충돌하면 혼돈만을 낳을 뿐.
웅웅웅웅!
시야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일그러지며 마치 초현실주의 화풍의 그림처럼 괴상하게 변한다. 완벽했던 필멸 세계에 인피니티 게이트가 개입되며 모든 법칙이 혼돈화된 것이다.
시공이 뒤틀리고 가공할 마력 폭풍이 폭주해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 끔찍한 마력 폭주 속에서 세이어는 당황했다.
“이, 이런 수작을?”
평범한 마법이 아니라 10서클의 폭주였다. 이 정도면 아무리 세이어라 할지라도 마법 술식을 짤 수가 없었다. 세이어뿐 아니라 전생의 레펜하르트가 와도 결단코 무리다.
그러나, 현생의 레펜하르트는 전혀 문제없이 그 폭주 속을 돌진하고 있었다.
“타아아앗!”
지금의 그에겐 마법 뿐 아니라 오러의 힘도 있었으니까.
순식간에 마법이 묶인 세이어에게 접근하며 레펜하르트가 차갑게 웃었다.
“애당초 10서클은 사람한테 쓰는 게 아니거든?”
소 잡는 칼로 닭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쓸데없이 힘을 낭비한다는 의미를 담은 속담이다.
그런데, 사실 소 잡는 칼로는 닭 못 잡는다.
소를 잡을 정도면 그 칼의 사이즈도 어마어마할 터, 그걸 휘둘러서 대체 무슨 수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닭 모가지를 맞출 건데?
10서클의 힘은 세상을 흔드는 힘, 그런 어마어마한 힘을 한 개인에게 집중시킨다는 것은 지나치게 정밀한 술식을 요구하게 된다. 조금만 어긋나도 깨져 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정밀한 술식을.
‘그걸 억지로 한 점에 집중하는데 부작용이 없을 리 없잖아?’
전생의 레펜하르트도 괜히 공간 왜곡으로 검성 사이러스 한 방에 보내려다가, 거꾸로 허공검에 반격당하고 마법 술식이 꼬여 허차원 관광 갔다 온 경험이 있었다. 이후 그는 굳이 개인을 상대로는 공격 용도로 10서클을 쓰지 않았다. 10서클의 힘으로 유리한 전황을 만들기만 하면 그 후로는 하위 서클로도 충분한 것이다.
순식간에 세이어의 코앞까지 들이닥치며 레펜하르트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네놈의 경지는 분명 대단하지만, 경험은 아직 멀었다!”
“허튼 수작!”
흥분하며 세이어도 순식간에 전신의 마력을 끌어올려 두꺼운 방어막을 형성했다. 마법을 쓸 수 없으니 마력 그 자체로 방어한 것이다. 제라드의 반격기, 캘러미티 혼 데스 카운터조차 막아 냈던 가공할 힘이 세이어의 전신을 감쌌다.
아무리 마법을 못 쓴다 해도 세이어의 힘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하다. 마력 자체를 거대한 에너지체로 구현하며 세이어가 소리쳤다.
“마법 따위 필요 없다! 이대로 짓눌러 죽여 주마!”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전투 중 뜬금없이 처웃을 때는 반드시 믿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그것도 예상 못 했을 것 같나?”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레펜하르트가 짓눌러 오는 거대한 마력을 향해 손날을 뻗어 갔다.
“대이적 마법, 룰 브레이커!”
미리 준비했던, 현재 기량으로는 일주일에 세 번이 한계인 또 다른 10서클 마법이 발동되었다.
세이어의 필멸 세계가 세상의 법칙을 새로 쓴다면, 룰 브레이커는 세상의 법칙을 부수어 버리는 것.
단숨에 그 방대한 마력에 깃든 ‘방어’의 법칙이 무시된다. 별조차 박살 낼 듯한 압도적인 힘의 망치가, 그냥 압도적이기만 하고 아무 물리력이 없는 공허한 외침으로 변해 버린다.
처음으로 세이어가 진정 경악해 눈을 부릅떴다.
“이, 이런 마법이?”
은의 시대조차도 없던, 상상을 초월하는 술식이 그의 모든 마력을 무효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일곱 오러 파동이 주먹에 맺혀 눈앞을 가득 메운다…….
“캘러미티 혼!”
신의 입술 사이로, 당혹한 인간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윽!”
황금의 섬광이 하늘을 반으로 쪼갰다.
☆ ☆ ☆
쿠르르릉!
뇌전이 용처럼 꿈틀대며 허공 가득 춤추며 노닐었다. 갈라진 암운 위로 푸른 하늘이 일그러져 연신 요동친다. 녹아내린 대지 위로 용암이 솟구쳐 끔찍한 열기를 사방에 흩뿌렸다.
한때 거친 황야였던 아라난 그라드의 동쪽 대지.
그곳은 이제 더 이상 광야도 황야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기암괴석이 가득한, 차라리 다른 세계라 칭해야 옳을 정도로 변질되어 버린 죽음의 땅이었다.
그 암천의 하늘 아래 황금의 거인이 떠 있었다. 깊게 심호흡하며 거인이 뻗어 낸 오른 주먹을 거두었다.
“후우우…….”
시야에 한 형체가 보였다. 한때는 인간의 육체였던, 그러나 하반신과 좌측 상반신이 통째로 사라져 이제는 고깃덩이일 뿐인 무엇인가가.
가공할 캘러미티 혼 7중첩의 위력에 세이어의 육체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아직 마력의 잔해가 남아 있어 그 부유력으로 시신이 떠 있긴 하지만 이내 저대로 대지로 추락해 흔적도 없이 파묻히리라.
한때 자신의 것이었던 저 육체의 비참한 몰골에 레펜하르트가 표정을 굳혔다.
“내 몸을 두 번이나 내 손으로 박살 내게 되다니, 참 살다 보니 별 해괴한 경험을 다 해 보네.”
고개를 저으며 레펜하르트는 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크으, 그나저나 사부는 무사하시려나? 도저히 여유가 없어 사부 신경 쓰면서 까지는 못 싸웠는데.’
제라드가 기절했던 그 자리는 이미 흔적도 남지 않았다. 들끓는 용암과 녹았다 다시 굳은 암석의 숲만이 기괴한 몰골을 드러낼 뿐이다. 상식적으로는 저 끔찍한 곳에서 사람이 살아 있을 리 없지만…….
‘……살아 계시네. 하여튼 진짜 튼튼한 영감이다. 정말.’
기감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다른 장소에서 제라드의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새 정신을 차리고 피신한 모양이었다. 그 심각한 중상으로, 그 무자비한 파괴 속에서도 버텨 내다니 역시 짐 언브레이커블은 짐 언브레이커블이었다.
‘그래도 얼른 모시지 않으면 정말 황천 가시겠지?’
힐끔 세이어의 시체를 본 뒤 레펜하르트는 몸을 돌렸다.
저 정도면 확실하다.
확실히 죽었다.
‘짐 언브레이커블도 아닌데 인간이 맨몸으로, 아무런 방어 없이 캘러미티 혼에 직격당했는데 살았을 리가 없지.’
그러던 중이었다.
“……가만?”
순간 레펜하르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무 방어 없이 캘러미티 혼을 맞았는데, 아직도 저만큼이나 육체가 남아 있다고?’
뭔가 잘못되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레펜하르트가 다시 오러를 끌어 올리는 순간이었다.
번쩍.
시체의 눈이 뜨였다.
평온한 표정으로 시체가 눈동자를 굴려 레펜하르트를 응시했다.
입술이 열리며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끄럽구나.”
육체의 손상 따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얼굴로, 세이어가 근엄한 음성을 흘렸다.
“신의 의지는 흔들림이 없거늘, 순간 인간의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아들이로구나.”
남은 오른손을 들어 세이어가 가슴을 쓸었다.
순식간에 육체가 복원되었다.
그냥 육체만 복원된 것이 아니었다. 그가 걸치고 있던 옷가지는 물론, 흐트러져 있던 머리칼이나 몸에 묻은 자잘한 먼지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완벽한 모습의 세이어가 레펜하르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신과 여신, 나의 아름다운 피조물들에게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레펜하르트는 경악해 입을 쩍 벌렸다.
“무, 무슨…….”
지금의 세이어는 단순히 부상이 나은 정도가 아니었다. 제라드를 상대하고, 또 레펜하르트를 상대하며 소모되고 고갈되었던 마력, 그것조차 완벽히 복구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법칙을 무시하는 광경이었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 같은 이적…….
그리고 저 모든 기적의 뒤에 ‘그것’이 있었다.
‘저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며 레펜하르트는 세이어를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세이어가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서서히 흘러나오는 초월적인 기운을.
그것은 마력이 아니었다.
마력은 세계를 뒤틀고, 우회하고, 때로는 속이는 힘. 세계를 이용하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