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87
하지만 저 힘은 그렇지 않았다.
세계를 뒤트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쓰는 힘. 세계의 법칙을 우회하거나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부로 화하는 힘.
세계가 세계이도록 하는 권능이 세이어의 전신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레펜하르트는 저 권능을 알고 있었다.
전생의 성녀 엘린조차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구사했던 바로 그 권능.
알 포트의 지상 대리자인 마켈린도 접근은 고사하고 존재조차 의심했던 바로 그 힘.
“……신성!”
진정한 신의 권능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시공 회귀자여.”
세이어가 부드럽게 입을 놀렸다.
“역시 그 육체는 그대의 족쇄일 뿐이로구나.”
☆ ☆ ☆
“타아아앗!”
기합을 터트리며 레펜하르트가 전신의 오러를 폭발시켰다. 황금의 오러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낸 뒤 남은 마력을 총동원해 양손에 깃들인다.
“플레임 스트레이트 캐논!”
불꽃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라이트닝 스트레이트 캐논!”
천둥의 주먹이 눈앞의 과녁에 꽂혔다.
콰콰콰쾅!
무시무시한 연타가 너무도 미약한 한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굉음이 대기를 뒤흔들며 가공할 폭격이 세이어의 주위를 가득 메운다.
“권마합신! 캘러미티 혼!”
마력과 오러를 융합해, 일곱 파문을 끌어낸 뒤 한 점에 응축해 모든 것을 멸할 권격으로 화한다. 필살의 일격, 거대한 황금의 빛무리가 상대의 모든 것을 뒤덮으며 또다시 하늘을 반으로 가른다.
세이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소용없도다.”
그 가공할 폭격, 심지어 캘러미티 혼에도 세이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모든 폭격은 공간 고정 결계에 가로막혔으며 공간조차 일그러뜨리는 캘러미티 혼은 또 다른 10서클 마법에 의해 무효화되었다.
“대이적 마법, 암천 이계.”
가벼운 시동어와 함께 세이어의 정면에 거대한 검은 구멍이 열린다. 세이어에게 쏟아진 캘러미티 혼을 마치 살아 있는 생물이라도 되는 양 검은 구멍이 게걸스레 집어 삼켰다. 완전히 소멸한 캘러미티 혼을 보며 레펜하르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젠장, 저거…….’
술식도 다르고 명칭도 다르지만, 자신의 인피니티 게이트였다. 전생 때 테스론의 공격을 막아 냈던 그 수법 그대로 당한 셈이다.
“자, 그럼 이번에도 막을 수 있겠느냐?”
세이어가 손가락을 튀겼다. 온갖 강력한 9서클의 마법이 그의 주위에서 형성되어 레펜하르트에게 날아들었다. 레펜하르트가 기겁해 두 팔로 정면을 막았다.
“아케인 스파이럴 가드!”
수십 줄기의 마법이 레펜하르트를 강타했다. 폭음과 함께 레펜하르트가 피를 흩뿌리며 뒤로 날려 갔다.
“크으윽!”
날려 간 레펜하르트가 유성이라도 된 것처럼 대지에 처박혀 폭발을 일궈 냈다. 흙먼지 속에서 애써 몸을 일으키며 레펜하르트는 입가의 피를 닦았다.
“빌어먹을…….”
아까와 달리 아케인 스파이럴 가드가 간단히 깨져 버렸다. 현재 세이어의 마력 패턴이 완전히 달라진 탓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이어의 마력은 완벽히 레펜하르트의 육체에 구속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레펜하르트도 패턴을 파악하고 반발 효과를 노려 대응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신성을 두른 세이어의 마법은 더 이상 레펜하르트와는 무관한 무엇인가가 되어 있었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정말 신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초월적인 무엇인가가!
“빌어먹을!”
터진 욕설 위로 또다시 세이어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폭음과 함께 레펜하르트가 허공으로 날려 갔다. 수십 차례나 마법을 피하고 또 얻어맞으며 피를 뿌리고 또 뿌린다.
더 이상 레펜하르트의 공격은 세이어에게 통하지 않았다.
더 이상 레펜하르트는 세이어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도저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을까?
“크윽, 크으으…….”
피투성이가 되어 신음하는 레펜하르트를 향해 세이어가 천천히 다가왔다.
“이대로 몰아붙여도 결과는 같겠지만…….”
갑자기 세이어가 자잘하게 날려 대던 마법을 거두었다. 말이 좋아 자잘이지, 하나하나가 세상에서는 궁극이라 불리는 마법뿐이다. 붉은 시야 속에서 레펜하르트가 힘겹게 의문을 띄웠다.
‘무슨 수작이지?’
세이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신의 힘을 보여 주겠다 했으니 허언을 할 수는 없지.”
세이어의 주변 공간이 왜곡되며 세상을 뒤트는 기운이 흘러나온다. 레펜하르트가 순간 눈을 빛냈다.
‘저건?’
10서클 마법이었다.
“신의 발언은 절대적이어야 한다.”
세이어는 레펜하르트에게, 신의 힘으로 죽여 주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을 지키려는 것이다.
“델 제스트 라 파라나드…….”
가공할 마력으로 세이어가 술식을 짜기 시작한다. 레펜하르트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떠올랐다.
저 멍청한 놈이 한번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다시 10서클을 쓰려는 것이다.
‘기회다!’
레펜하르트는 긴장하며 정신을 집중했다. 인피니티 게이트와 룰 브레이커를 한 번씩 썼으니 이제 10서클을 구사할 기회는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상대의 마법을 파악하고, 완벽하게 받아쳐야만 한다!
‘무슨 마법이냐?’
세이어조차도 감탄했던 레펜하르트의 마력 감지 능력이 모든 정신을 집중한다. 고도로 발달한 마력 감지력이 삽시간에 세이어가 어떤 술식을 쓰려는지 파악해 냈다.
순간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가차없이 구겨졌다.
‘……이런…….’
세이어가 천천히 뇌까렸다.
“아까처럼은 되지 않을 것이다.”
짙은 절망이 레펜하르트의 눈동자에 떠올랐다.
‘젠장! 저것도 내 오리지널이 아니었나?’
보통 동물을 잡는다는 것은 그 동물의 고기를 먹기 위해 도축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수는 없다. 도저히 그 큰 칼로 정교하게 닭의 모가지만을 잘라 낼 수는 없기에.
그러나, 소 잡는 칼로 닭을 죽일 수는 있는 것이다. 고기를 포기하고 닭을 박살 낼 각오로 소 잡는 칼을 휘두른다면.
10서클에는 그런 술식이 하나 있었다.
정교하게 한 점에 힘을 집약하는 방식이 아니라 광포하게 모든 파괴를 떨쳐 버리는 술식.
너무도 강력하고 너무도 제어가 안 되어 레펜하르트조차도 한 번 시도해 보고 두 번 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궁극의 파괴 마법.
시전되는 순간, 피하지도 막지도 살아남지도 못하는 절대적인 죽음.
‘……뉴클리어 버스트!’
전생의 레펜하르트조차도 준비에만 한 달이 걸렸던 마법, 그러나 세이어는 순식간에 술식을 끝내 버렸다. 미소 지으며 세이어가 손바닥을 밀어냈다.
“소멸할지어다. 어리석고 현명한 이여.”
나직한 목소리로 소멸의 이름을 뱉는다.
“아토믹 버스트.”
지상에 두 번째 태양이 떠올랐다.
3
빛이 세상을 덮었다.
소리가 세상을 메웠다.
드넓은 창공에 오로지 빛과 소리만 존재하게 되었다.
“맙소사!”
기겁하며 카를은 아라난 그라드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야의 모든 것이 불길로 뒤덮여 있었다. 아니, 저걸 불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압도적인 빛과 압도적인 소리, 그야말로 신의 이름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권능 그 자체!
곧이어 거대한 폭풍이 아라난 그라드 전역을 쓸어 갔다.
흙먼지가 해일이 되어 도시를 덮친다. 드워프들이 피땀 흘려 세운 성벽과 건축물, 탑이 일제히 해일에 휩쓸려 모래성처럼 스러져 간다.
부서진다거나 붕괴된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마치 빗자루로 앞마당을 쓰는 것처럼, 천년을 버틸 견고한 도시가 사금파리처럼 쓸려 간다.
“으아아악!”
“크라라라!”
“사람 살려!”
“카아아악!”
도시 전역에서 비명과 절규가 터졌다. 더 이상 악마와 인간의 구별은 없었다. 저 압도적인 힘 앞에선 아무리 강력한 악마라도 한낱 부평초일 뿐이다.
수많은 악마들이 폭풍에 휘말려 사라졌다. 어느 곳에도 피신처 따윈 없었다. 건물 속으로 숨으려 해도, 그 건물 자체가 뿌리째 뽑혀 날아가는 판이다. 수많은 악마들이 허무하게 폭풍에 휩싸여 먼지 속에 파묻혔다.
그나마 본능뿐인 악마에 비해 인간들의 처지는 좀 나았다. 안타레스 공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병사들은 폭풍에 아무 대책 없이 휘말렸지만, 백국 시절부터 복무한 이들을 그 와중에도 빠르게 움직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마!”
“지하실! 지하실을 찾아라!”
제라드와 바나텔의 대결을 한번 겪어 본 이들은 그 와중에도 거의 본능적으로 살길을 찾았다. 안타레스 기사들의 지휘 아래 병사들이 건물 지하실로 몸을 던진다. 실베릭 나이츠가 폭풍을 가로막고 검풍을 날려 어떻게든 기세를 줄인다.
“막을 수는 없지만……!”
“기세를 약화시킬 수는 있어!”
“이 틈에 한 명이라도 더 피하시오!”
정신없이 검풍을 날리며 실베릭 나이츠, 질타렌 경은 부르르 떨었다. 도대체 도시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한없이 두렵고 또 두려울 뿐이다. 아무리 절세의 마도구를 받았다 한들 그는 한낱 인간일 뿐이니까.
문득 질타렌이 옆을 돌아보았다.
“……러스 경!”
폭풍 속에서 러스가 넋이 나간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오러 유저라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 걸까?
“정신 차리십시오! 아직 피하지 못한 병력이 남았습니다!”
러스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질타렌 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서?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데?’
한낱 인간인 자신도 그럭저럭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데, 초인인 오러 유저가 왜 저 정도 충격을 받았단 말인가?
질타렌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 순간 심각한 충격을 받은 것은 러스뿐만이 아니었다. 도시 반대편에 있던 타시드와 겨우 의식이 돌아온 제라드 역시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낱 인간이 아니기에, 오러의 경지에 든 초인이기에 그들은 눈이 아니라 기감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그 기감이 알려 준 사실은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허공을 응시하며 타시드가 벌벌 떨며 뇌까렸다.
“이럴 수가…….”
창백한 얼굴로 러스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형님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