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395
카드놀이로 따지면 조금만 불리한 패가 나와도 바로 죽고 강한 패를 잡았을 때만 돈을 거는 식이다. 덕분에 압도적인 병력 차에도 불구하고 안타레스군은 용케 대다수의 병력을 보전한 채 동쪽으로 후퇴할 수 있었다.
저 수법을 결국 제국군 8연대도 똑같이 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잠시 흥분한 라마스 경이지만, 이내 그는 침착을 되찾았다.
“덕분에 현재 아군의 피해는 거의 없지. 과연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제국군의 제도는 세련되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정석적이고 보수적이다. 언제나 원칙에서 벗어남이 없으니 변칙적이고 자유로운 전술가에게 농락당하기 딱 좋은 방식이기도 하다. 실제로 다른 나라는 제국군의 전술을 ‘앞뒤 꽉 막힌 책상물림 전술’이라며 비웃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제도로 제국은 여태 전투에선 패할지언정 전쟁에서 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직 안전한 것에만 돈을 거는 카드놀이. 이는 얼핏 보기에 쓸데없이 판돈을 날리는 어리석은 행위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쪽의 판돈이 월등히 많다면?
그리고 저쪽에 비해 몇 배나 많은 강력한 패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면?
많이 가진 자는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진 것을 최대한 유지하며 물량으로 압도하기만 해도 상대는 말라 죽어 버리는 것이다.
최강인 국가가 최강을 유지하기에 가장 적합한, 대륙 최대의 인구와 국력을 가진 제국이기에 유용한 제도였다. 1차 제국 침공 때도 필라넨스의 기적이 없었다면 결국 제국은 크로방스를 점령하고 안타레스를 지도에서 지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라마스 경은 더 이상 피난민 대열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어차피 지금 같은 상황에서 피난민을 놓쳤다 해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제때 척후를 보낸 그 판단을 칭찬받았으면 받았지. 실제로 오러 유저에 의해 발이 묶였던 다른 제국군 연대도 처벌 따윈 받지 않았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은 제국에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저건 골치 아프겠군…….”
현재 라마스 경은 협곡 입구로 말을 몰고 있었다. 죽은 키린트의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뒤따르던 부관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 진노하시겠군요.”
강력한 바슈탈론 제국이라지만 오러 유저는 실로 희귀한 존재, 하나하나가 제국의 보물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키린트 경은 젊은 나이에도 대륙 내에서 손꼽히는 강자 중의 강자, 차기 검성 후보로 제국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이이기도 했다.
그런 자가 이런 변경에서 목이 잘렸으니…….
“그 진노가 우리에게까지 떨어지지 않기를 빌 수밖에…….”
아무리 제국의 제도가 세련되고 합리적이라지만, 그래도 인간이 하는 일이었다.
사실 키린트의 죽음에 제국군 8연대는 책임이 없지만 어디 인간 마음이란 것이 그런가? 오천이나 되는 군세가 있었음에도 소중한 제국의 보물을 지키지 못했으니 과연 어떤 처벌이 떨어질지 알 수가 없다.
근심 어린 얼굴로 라마스 경이 데려온 병사들에게 손짓했다.
“키린트 경의 시신을 수습하게.”
이미 몇몇 병사들이 시체를 염하기 위해 관이며 깨끗한 물수건, 상처 봉합용 실 등을 챙겨 온 후였다. 잠시 투신 아레스에게 기도를 올린 뒤 병사들이 키린트의 시체로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관은 필요없다.”
순간 라마스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키린트의 목소리였다.
“나는 세이어의 은총을 받고 있으니…….”
다들 석상처럼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떨어진 목에서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잘린 머리가 두 눈을 생생히 뜨고 있었다.
“아직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다.”
몸이 움직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다시 일어서, 잘린 머리를 향해 걸어온다. 머리 없는 육체가 대지를 걷는 그 모습은 실로 공포 그 자체였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한밤처럼 섬뜩한 한기가 전신을 스쳐 지나간다.
몸이 머리를 잡았다.
잘린 목에 머리를 얹었다.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다.
여전히 피투성이의, 그러나 완전히 되살아난 모습이 되어 키린트가 목을 좌우로 까닥였다.
“으음, 아직 조금 느낌이 어색하군. 그래도 이 정도면…….”
라마스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키, 키린트 경?”
쓴웃음을 지으며 키린트가 라마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드렸군요, 라마스 경.”
죽은 이가 되살아나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기적.
그러나 그 광경을 실제로 보는 것은 오직 공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 언데드라도 된 거요?”
경계심 어린 라마스의 태도에 키린트가 살짝 손가락을 들었다.
우우웅!
은청색 블레이드 오러가 손가락 위에 맺혀 빛을 발했다.
“오러 쓰는 언데드 본 적 있습니까?”
오러는 곧 생명기, 오러를 쓴다는 것은 키린트가 언데드 따위가 아니라 확실히 생을 얻어 다시 살아났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그럼 어찌?”
벌벌 떠는 라마스와 병사들을 향해 키린트가 온화하게 웃었다.
“세이어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키린트가 허공에 손짓했다. 저만치 떨어져 있던 그의 애검이 영기염동에 의해 날아와 손에 잡혔다. 검을 검집에 넣으며 겸허한 목소리로 키린트가 말을 이었다.
“그분의 뜻을 세상에 임하게 하기 위해, 미천한 저를 다시 이 땅에 세우셨습니다.”
동시에 키린트의 머리 뒤에 희미한 후광이 떠올랐다.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거룩함을 느끼게 하는 성광이었다. 비록 그 성광은 아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뿐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키린트가 세이어의 은총으로 부활했음을 확신한 병사들이 감동해 외쳤다.
“오, 신이시여!”
“세이어를 찬미할지어다.”
라마스도 감동한 얼굴로 키린트의 손을 잡았다.
“아아, 정녕 세이어께서는 저희를 굽어살피고 계시는군요.”
“물론입니다,”
키린트는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멀리 협곡으로 시선을 돌렸다.
라마스 일행으로부터 얼굴을 돌린 키린트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이번엔 내 패배를 인정하마, 사이러스. 하지만 세이어께선 모든 것을 살펴보고 계신다. 네놈들이 어찌 신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
제62장 새로운 이종족의 왕
1
전쟁 발발 한 달 후.
안타레스 공국은 글로텐 산맥 서쪽의 모든 영토를 빼앗겼다. 제국군뿐 아니라 그라임과 할라인 왕국군 역시 사기가 워낙 높아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세이어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이 전쟁에서 죽은 자, 세이어의 천국에서 영원토록 행복을 누리리라!”
신의 이름, 신의 기적은 엄청난 영향을 가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안타레스군은 끝없는 후퇴만을 계속할 뿐이었다. 임시 정부가 위치했던 카르작도 적의 손에 넘어가고, 수많은 피난민들이 험준한 글로텐 산맥 안쪽까지 내몰렸다.
대륙의 모든 시선이 이 전쟁에 쏠렸다. 모두가 삼국 동맹군의 위세를 보며 이번에야말로 안타레스가 멸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안타레스의 위기는 대륙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 ☆ ☆
“모두 죽이고, 모두 부수어라!”
“세이어께 영광을 바쳐라!”
온갖 석상과 탑, 건물이 즐비한 거대한 지저 도시에 살육의 외침이 울려 퍼진다. 수백에 가까운 은빛 경갑의 인간 전사들이 도시 곳곳을 누비며 강렬한 섬광을 연신 뿜어 댄다.
쾅! 쾅! 콰쾅!
섬광이 스칠 때마다 건물이 무너지고 탑이 붕괴된다. 파괴의 향연 속에서 수많은 드워프들이 벌벌 떨며 도망쳐 간다.
수백 년을 버텨 온 드워프들의 본산, 그랜드 포지.
이곳도 결국 인간의 공세를 피하진 못한 것이다.
선두에 선 중년 사내가 검을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더러운 난쟁이들!”
은의 암살자들을 이끌고 있는 현자 브렉티스였다. 연신 사방으로 블레이드 오러를 뿌리며 브렉티스가 흉흉한 살기를 피워 냈다.
“네놈들을 베어 그날의 수모를 갚으리라!”
레펜하르트에게 어이없이 사로잡혀 포로가 된 후, 현자 브렉티스는 내내 왕궁 가이라크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운 좋게 그가 살아난 이유였다.
세이어의 아토믹 버스트가 도시를 날려 버린 그날, 지하 깊숙이 갇혀 있던 브렉티스는 오히려 아토믹 버스트의 여파를 피할 수 있었다. 이후, 붕괴된 감옥에서 탈출해 은의 현자에게 돌아간 것이다.
은의 보관고를 잃고 레펜하르트에게 패하기까지 한 브렉티스를 은의 현자는 관대하게 다시 받아 주었다. 뭐, 관대하다기보다는 워낙 쓸모가 많으니 죽이기 아깝다는 것이 진짜 이유지만.
이후 근신하던 브렉티스는 세이어의 귀환으로 다시 현역에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은의 암살자들을 이끌고 그랜드 포지를 함락하는 중이었다.
“모두 죽여라! 이들의 피로 세이어께 영광을 돌리리라!”
광신도의 외침 아래 은의 암살자들은 그랜드 포지 곳곳을 누비며 파괴와 살육을 행했다. 강력한 아티팩트로 무장한 그들의 마법은 쉽게 탑을 부수고 건물을 무너트렸으며, 인간 기사 수 명을 상대할 수 있다는 드워프 전사조차 간단히 베어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모두! 모두 피신하시오!”
“우리가 막는 사이 신전으로 향하시오!”
목숨을 버려 가면서도 용맹한 드워프 전사들은 은의 암살자를 상대로 애써 시간을 벌었다. 이미 도시는 포기한 상황, 그러나 동족들은 살려야 했다.
그랜드 포지 외곽에 위치한 알 포트의 신전.
간신히 살아남은 그랜드 포지의 시민들이 마당에 모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사들이 은의 암살자들을 막는 사이 공간 포털을 타기 위해서였다.
“다들 질서를 지키게!”
“서두르면 모두가 죽을 뿐이야!”
시민들을 통솔하는 다른 신관들을 보며, 노신관 갈라트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수백 년 동안 살아온 도시가 불탄다. 거대한 지하 공동 가득 흑연이 진동하고 먼지의 회오리가 휘몰아친다.
인간의 마법은 너무도 강력해 이미 그랜드 포지의 절반 이상이 폐허나 다름없는 비참한 파괴의 현장으로 화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보이는 것은 동족의 비명과 인간의 살기뿐.
“크아아악!”
“이 난쟁이 놈들이 왜 이리 끈질기게 덤비는 거야?”
“다 죽여 버려!”
압도적인 전력 차 속에서도 드워프 전사들은 끈질기게 버텼다. 이미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이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싸우고 죽어 갈 뿐이었다.
덕분에 그랜드 포지의 시민들 대부분이 공간 너머로 피할 수 있었다. 어느새 마지막 시민 한 명이 공간 포털로 들어서고, 신관대도 대부분 포털로 향한다. 이제 남은 것은 갈라트와 두 노신관뿐.
“모두 피했는가?”
“그렇습니다, 갈라트. 물론 아직 도시 안에 남아 있는 이들은 있겠지만…….”
적어도 신전에 모인 이들은 모두 피했다. 그리고 적들은 이미 신전 코앞까지 몰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군!”
갈라트와 두 노신관이 삼각형으로 신전 중앙에 섰다. 막 달려오던 브렉티스가 그들을 보고 인상을 썼다.
“응?”
세 드워프 노신관이 동시에 기도를 올렸다.
“알 포트여! 그대의 신민들을 보우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