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00
이니야는 틀리지 않았다.
레펜하르트는 분명히, 이미 세상에 없었다.
그러나 시리스도 틀리지 않았다.
레펜하르트는 죽지 않았다.
☆ ☆ ☆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위도 아래도, 하늘도 땅도, 시간과 공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무의 세계.
그 무한의 암흑 속을 한 점의 미약한 빛이 떠다니고 있었다. 빛의 정체는 한 사람을 담을 정도의 광구였다. 그 속에 둥둥 뜬 근육질 거구의 사내가 혀를 내둘렀다.
“어휴, 겨우 살았네.”
사방의 어둠을 보며 사내, 레펜하르트는 인상을 썼다.
“거참, 내 이곳을 다시 오는 일이 생길 줄이야…….”
한 장의 종이에 선을 긋는다.
그 선 안쪽은 노란색, 바깥쪽은 빨간색이다. 그로 인해 종이는 두 ‘차원’으로 나뉜다.
그럼 그 선은? 색을 나누고 차원을 나누는 그 선은 무엇인가?
마법학에서는 그 선을 허차원이라 칭했다.
이곳은 허차원, 세계와 세계의 틈새였다. 수많은 차원과 세계 속에 혼재하는, 무無도 유有도 아닌 혼돈의 차원.
레펜하르트는 허차원을 표류하고 있었다.
“그것도 내 발로 이곳에 뛰어드는 미친 짓을 하게 되다니, 원.”
세이어의 아토믹 버스트를 마주했을 때였다.
폭염이 눈앞을 뒤덮는 순간, 레펜하르트는 인피니티 게이트를 발동했다. 물론 인피니티 게이트로는 도저히 그 어마어마한 범위의 아토믹 버스트를 막을 수 없다. 레펜하르트도 그건 잘 알고 있었다.
대신 레펜하르트는 인피니티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인피니티 게이트는 허차원과 현세를 연결해 문을 연 뒤, 허차원으로 적의 공격을 보내 버리는 수법이다. 즉, 레펜하르트 자신도 그 허차원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
‘용케 그 타이밍에 전생의 일이 떠오른 게 천만다행이지.’
전생 때 레펜하르트는 러스에게 공간계 10서클 마법을 썼다가 되려 허공검에 의해 반격당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그는 오히려 자신의 마법 역류에 휘말려 잠시 허차원으로 날려 가 버렸다. 마법사로서 참으로 치욕스러운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이 그를 살렸다.
자신을 내려다보며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도박이었는데…….”
실상 허차원으로 피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허차원이란 애당초 혼돈의 차원, 정상적인 물질계의 존재를 용납하는 곳이 아니다. 생물이 살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아예 물질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곳. 비유하자면 날아오는 화살 비를 피하기 위해 용암 속으로 뛰어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전생의 레펜하르트도 이미 한 번 경험이 있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어이없는 발상은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레펜하르트가 중얼거렸다.
“용케도 성공했군. 내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을 지경인데?”
전생 때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10서클 최강의 생존 주문, 모든 차원과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대이적 마법 ‘포터블 월드’를 펼쳤기에 겨우 살아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그는 10서클 마법을 구사할 여력이 없다. 대신 그때의 경험이 있고 또 허차원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그래서 9서클 생존 주문 서바이벌 홀로 전신을 빈틈없이 감싼 뒤 나머지는 짐 언브레이커블의 오러로 때웠다. 짐 언브레이커블은 세상 그 어떤 생명기보다도 자기 보호와 존재 구축에 특화된 힘, 허차원으로부터 밀려오는 존재 붕괴의 힘도 어찌어찌 막아 낼 수 있을 거라 추측한 것이다.
다행히 그의 계산은 틀리지 않았고, 덕분에 허차원 속에서도 간신히 소멸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실로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 어쩐다?”
겨우 살아남긴 했지만 이 상태가 길 리 없다. 허차원의 존재 붕괴력은 아토믹 버스트 못지않다. 아토믹 버스트처럼 일격에 모든 파괴력이 밀려오는 게 아닐 뿐.
“이거 장난 아니게 힘든데.”
지금도 그의 오러와 마력은 조금씩 소실되고 있었다.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가공할 압력이 전신을 짓누른다. 마치 인간이 맨몸으로 심해 수천 미터로 들어간 느낌이랄까? 짐 언브레이커블의 육체가 아니었다면 죽어도 진작 죽었을 것이다.
이대로 계속 허차원을 떠돌면 결국 소멸의 운명을 맞게 된다. 그전에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예전처럼 할 수는 없겠고…….”
전생 땐 대륙 곳곳에 자신의 마력 시스템을 갖춘 상태였다. 일곱 그루의 세계수가 그것이다. 그 강력한 마력 중추를 차원 좌표로 삼아 며칠에 걸쳐 연산한 끝에 겨우 돌아갈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수는 고작 세 그루뿐이다. 좌표로 삼기엔 너무 미약한 것이다. 설사 세계수가 좌표로 삼을 만큼 허차원까지 영향을 준다 해도 현재 두뇌에는 돌아갈 길을 찾을 연산력이 없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허차원과 원 세계를 잇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아주 작은 실마리, 아주 작은 흐름이기만 해도 상관없었다. 일단 그 길을 찾는다면 이후엔 그 흐름을 증폭해 좌표를 지정하고 인피니티 게이트를 열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대체 무슨 수로 허차원과 그의 세계를 연결할 수 있단 말인가?
“미치겠군.”
고민 속에서 레펜하르트는 계속 표류했다.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육체와 마력의 손상으로 대략 사흘 정도 지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잠조차 자지 못한 채 버티는 사흘.
“으으으…….”
제아무리 레펜하르트라도 점점 힘에 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아무리 짐 언브레이커블의 육체라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었다.
점차 의식이 흐려지며 죽음의 공포가 밀려온다.
“제기랄…….”
끝없는 암흑 속에서 레펜하르트는 신음을 흘렸다.
“겨우 살아난 말로가 고작 이것이었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존재조차 소멸당하는 것?”
주먹을 쥔 채 다시금 오러를 불태운다.
“웃기지 마! 죽어도 이렇게는 못 죽는다!”
마지막 생명기가 화려하게 불탔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일어난다는 생기가 최후로 그의 육체를 보호해 밀려오는 죽음으로부터 보호한다.
그러나, 여전히 답은 없다.
이곳에서 벗어날 답 따위는.
“으아아!”
레펜하르트가 분노해 외칠 때였다.
“크윽!”
극심한 두통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마를 짚으며 레펜하르트는 절망했다.
‘드디어 이 육체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건가?’
그건 아니었다. 이 두통은 보다 익숙했다. 예전에 여러 번 겪어 본, 하지만 이 허차원에 들어서니 확실히 근원을 느낄 수 있는 두통이었다.
“이건…….”
이 통증은 다른 곳에서 오고 있었다.
너무나도 가까우면서 너무나도 먼 곳. 자신의 내면이자 아득히 먼 차원 너머에서 느껴지는 고통.
이마를 짚은 채 레펜하르트가 눈을 빛냈다.
“이거다!”
희망이 보였다.
17권
제63장 기억의 도시
1
심장이 거칠게 맥동한다.
통증이 뇌리를 두들긴다.
그것은 상당한 고통이었다.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이 두통만으로도 집중력이 흩어져 감히 마법을 쓸 엄두를 못 낼 정도로.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어지간한 마법사가 아니다.
‘일단 두통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고.’
이 정도 통증으로 집중력이 흩어지는 경지는 이미 스무 살 때 넘어섰다.
‘게다가 이 정도 아픈 거야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니니까.’
그는 마법사이면서 동시에 짐 언브레이커블의 당대 권왕. 세상에서 가장 고통에 익숙한 무문의 후계자다. 제라드 밑에서 하루 종일 처맞은 기간이 몇 년인데 이제 와서 두통 정도에 신경을 쓸까?
그래서 레펜하르트는 고통 속에서도 차분히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두통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건데.’
이 두통은 단순한 육체의 통증이 아니다. 그보다 오히려 영적인 통증, 그의 영혼이 무엇인가의 조건 탓에 육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쪽에 가깝다. 마법사로 살다 보면 의외로 흔하게 겪기도 하는 부류의 통증이다.
‘마력에 의해 영혼이 충격을 받으면 육체적인 고통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지.’
레펜하르트는 두통을 일으키는 영적 부위를 침착하게 감지해 나갔다. 방금 느꼈던 그 본능의 깨달음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분명 그는 무심코 깨달았다.
이 통증의 근원은 다른 곳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가까우면서 너무나도 먼 곳. 자신의 내면이자 아득히 먼 차원 너머에서 느껴지는 고통이라는 것을.
그렇다.
레펜하르트의 영혼은 그 순간 느꼈다. 이 두통은 저 머나먼 곳, 그가 원래 속했던 세계로부터 전해지고 있음을.
마법사의 본능은 의외로 무시할 것이 못 된다. 특히나 재능 하나는 흘러넘치도록 타고난 레펜하르트의 영혼, 그것이 가져온 본능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고.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이러다 알고 보니 착각이었다면 시간을 거스른 걸로 모자라 엉뚱한 차원 이동까지 하게 될 판이지? 서두를 필요는 없어.”
본능의 외침을 일단 무시하고 레펜하르트는 두통을 느끼는 자신의 영혼, 그 자체에 침잠해 관조하기 시작했다. 의식을 가라앉히고 마력의 흐름을 전신에 돌리며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다본다.
‘일단 착각은 아니다.’
분명 이 두통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발현되고 있었다. 이것은 확실했다.
‘마력에 의한 영혼의 흐름 족쇄, 그 영향에 의한 육체적 신경계 자극. 분명히 그냥 몸 어디가 안 좋아서 생긴 두통은 아냐.’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마력을 파악한다.
‘특수 마력의 링크 타입? 아니. 애초에 내 마력이 그런 식으로 어딘가와 연결되어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어.’
다른 것은 다 부실해졌어도 신의 경지에 다다른 마력 감지 능력만큼은 여전히 건재한 레펜하르트다.
확실했다.
이것은 ‘연결’이라기보다는 ‘공명’에 가까웠다. 동일한 특수 마력의 형태가 차원 저 너머에서 레펜하르트 자신의 영혼과 공명하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대체 차원 저 너머의 무엇이 레펜하르트의 영혼과 공명하고 있는 것일까?
‘……이 경우 답은 하나밖에 없다.’
레펜하르트가 원래 세계에서 구사한 마법의 잔재, 그것이 차원이 단절된 지금 원 주인의 영혼과 공명하고 있었다.
“마력 공명 현상이라면 설명이 돼.”
같은 세계, 같은 시공간에 존재할 땐 마력 공명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의 인식으로야 이 세계는 넓고 광활하겠지만 마력이란 에너지 기준으로 볼 때 이 세계는 그저 하나의 시공간, 거대한 백지에 점 하나 찍은 것에 불과하다.
저 기준으로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라 할지라도 찰싹 붙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공명을 할 일도 없다. 서로의 마력이 ‘멀어진’ 적이 없으니까.
같은 시공간에서 서로의 마력이 ‘멀어지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죽음, 혹은 소멸이라 불리는 ‘시공간을 떠나는 행위’만이 저 조건에 부합된다.
그래서 보통 마력 공명 현상은 상대가 소멸하는 아주 잠깐의 찰나 동안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난 허차원에 와 있단 말이지.’
분명 레펜하르트의 존재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시공간을 떠나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