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06
“그럼 도로 불겠지.”
“……어머? 뭔가 더 이상해지고 있는데?”
배고픈 다른 기사들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여자라고, 여기사들에게 취사 준비를 시켜 놨는데 결과가 저 모양이다.
“어휴, 차라리 생으로 먹는 게 나을지도.”
애초에 성기사쯤 되는 이들이다 보니 다들 이런 허드렛일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진지는 하룻밤 자고 나면 아랫것들이 뚝딱 지어 놓는 것이고 식사란 배고플 때쯤 되면 시종이 뚝딱 만들어 놓는 것이란 게 이들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 ‘아랫것’들이 없으니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부관이 한숨을 쉬었다.
“총체적 난국이군요.”
다행인 것은 다들 단련된 이들이다 보니 솜씨는 없어도 근력 자체는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병사 열댓 명이 달려들어야 할 목재도 서너 명이면 들고, 수십 분 동안 파야 할 구덩이도 금방 팔 수 있다. 덕분에 허술할지언정 요새 외부 형태만큼은 빠르게 잡히고 있었다.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계속 작업 중인 성기사들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문득 부관이 중얼거렸다.
“요새야 어찌 되겠는데, 성기사들의 사기가 문제군요. 저들의 지위에 이런 천한 일을 하게 되었으니 심기가 좋지는 않을 터인데…….”
크리스틴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것 같군. 도저히 모를 일이야.”
진지하게, 정말 모르겠다며 말을 잇는다.
“우리는 세이어께 모든 것을 바친 성기사, 그리고 이 임무는 이 성전을 끝마칠 가장 위대한 영광의 전투로 우릴 이끌어 줄 터. 대체 왜 저리들 불만인 거지?”
“…….”
순간 부관은 기가 막혀 크리스틴을 바라보았다.
‘얘가 제정신인가? 정말 몰라서 저러나?’
뭐, 크리스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그에 대한 대가가 크면 불만을 안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세이어께 모든 것을 바친 성기사, 그분이 명하신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천한 일이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 그렇기는 한데…….
‘당신도 성기사잖아! 우리와 똑같이 세이어께 모든 것을 바친!’
정작 저따위 말을 하는 크리스틴 본인은 지난 사흘 내내 손발 하나 꼼짝 안 하고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다. 지휘관이랍시고 부관이 챙겨 주는 밥 먹고 챙겨 주는 잠자리에서 그냥 자기만 했다. 부관인 말튼 경은 시종처럼 크리스틴 챙기면서도 틈틈이 다른 기사들 도와 나무 베고 요새 구축하는 데 손을 보탰거늘!
‘가식이라도 좋으니 앞장서서 하는 모습 조금만 보여 줬어 봐라! 그럼 이렇게까지 불만이 생겼겠나!’
속으로 치를 떨면서도 부관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가 크리스틴과 함께 싸운 것은 이번 전쟁이 처음이 아니었다. 1차 제국 침공 전쟁 때부터 함께 한 인연,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는 충분히 봐 왔다.
세상 만물을 자기 기준으로만 해석하는 저 거구의 여인에게 타인의 말 따위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는다!
‘말해서 무엇하리? 내 임무에나 충실할 수밖에.’
부관이 크리스틴을 막사로 안내했다.
“벌써 사흘, 안타레스 측에서 움직임이 있을 시기입니다. 작전 회의를 하시지요.”
“알겠다, 말튼 경.”
순순히 크리스틴은 부관의 의견에 따랐다. 그리고 부관 말튼은 안도했다.
어쨌든, 이걸로 기사들 눈에서 크리스틴을 잠시 치우는 데는 성공했다.
‘눈앞에서 꼴 보기 싫은 것만 사라져도 좀 낫겠지, 뭐.’
☆ ☆ ☆
막사 안, 전략 테이블.
“사흘 뒤면 요새가 완성됩니다. 현 요새에서 트로리아드까지의 거리는 채 하루도 되지 않으니, 아침 먹고 출발해 전투를 벌인 뒤 다시 요새로 돌아와 늦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도를 가리키며 부관이 보고했다. 크리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직후에 트로리아드로 진군하면 되겠구나. 분명 현재 트로이아드엔 방어 전력이 없다고 했지, 말튼 경?”
“예, 제국의 첩보부는 이미 안타레스 잔당의 전력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들의 본진에는 최소한의 병력조차 없습니다. 민간인과 행정 인력, 그리고 부상자를 치유하기 위한 신관단이 전부입니다.”
전쟁이 진행된 지 벌써 반년째, 제국의 첩보부도 슬슬 안타레스군에 대해 상당히 파악했다. 비록 신출귀몰한 안타레스 유격대의 행적은 여전히 알아낼 순 없지만, 적들의 출몰 시기와 규모를 보고받아 조합하면 총 전력이나 포진 위치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마법 전령을 사용한 실시간 통신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 작전도 가능해진 것이지요.”
현재 안타레스는 거의 모든 전력을 글로텐 산맥 서부 방어선에 집결하고 총력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트로리아드나 엘븐 포레스트에 남겨 둘 전력이 있을 리 없었다.
“좋아.”
크리스틴은 요염하게 웃었다.
“호호, 이제 저 천한 것들에게 신벌을 내리는 일만 남았구나.”
오백의 세이어의 성기사, 신성검의 경지에 든 이가 백에 노련한 기사급 전력이 사백이었다. 이 정도면 방어 병력이 없는 도시 하나를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문득 크리스틴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 전력 차이면 그냥 가서 모조리 죽여 버려도 되는데 왜 굳이 요새를 지어야 하는 거지?”
‘……벌써 몇 번이나 설명했는데, 저거. 정말 남의 말은 귓전으로도 안 듣는구나.’
내심 한탄하면서도 부관은 착실하게 자신의 임무에 임했다.
“현재 우리들의 전력으로 트로리아드를 휩쓸어 버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병력의 숫자 자체가 부족하니 도시를 점거하는 건 무리입니다.”
“어째서? 저항하는 자를 모조리 베어 버리면 말 잘 듣는 순한 놈들만 남을 것 아닌가?”
“그야, 트로리아드를 점령하는 걸로 끝이라면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이후 돌아올 안타레스 군세와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오백의 병력으로 넓은 도시 전역을 방어할 순 없습니다.”
애초에 이 전략의 목적은 트로리아드를 함락시키는 것이 아니다.
트로리아드를 압박해 방어선으로부터 안타레스 군세를 돌려 전방에 구멍이 생기게 하는 것, 그리고 그 구멍으로 제국군 본대가 침공할 길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즉, 성기사단은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계속 돌아온 안타레스 군세와 맞서 버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산적들이 마을 점령할 힘이 없어서 굳이 산채 세우고 수시로 마을 오락가락하면서 약탈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마을에 눌러앉아 있으면 이후 닥칠 영지군의 본대를 당할 수 없으니, 후딱 챙길 것만 챙기고 대군을 상대할 수 있는 자신들의 산채로 돌아가는 것이지.
성기사가 아무리 강해도 그 숫자는 고작 오백, 이 숫자로 방어하려면 적국의 넓은 도시보다는 비록 허름하더라도 지형적으로 유리한 곳에 세운 어울리는 규모의 요새가 필요하다.
“음, 그렇군. 이해했노라.”
크리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래 놓고 내일 또 물어보겠지.’
하지만 어쩌랴? 누가 뭐래도 현재 그의 상관은 이 귓구멍 막힌 아가씨인데? 그저 맡은 바 임무나 열심히 할밖에.
“경험이 없어 진행이 더디긴 하지만 토대만큼은 튼튼한 요새입니다. 다들 힘 하나는 좋으니…… 완공되고 나면 충분히 본대가 진군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이후 복귀한 안타레스 군세가 요새로 덤벼오건 트로리아드 방어에 나서건 그건 상관없다. 전방에서 전력을 뺀다는 목표는 이미 달성한 후니까. 본진 코앞에 적의 전력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안타레스 방어선은 흔들리는 것이다.
‘참으로 절묘한 한 수란 말이지.’
새삼 부관 말튼 경이 제국 참모부의 작전에 감탄할 때였다. 갑자기 크리스틴이 인상을 썼다.
“가만, 그렇다는 건 요새가 완공되기 전이라면 위험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말튼 경, 지금 저들이 우리를 습격하면 어떻게 되지?”
말튼 경이 잠시 흠칫했다.
“그야, 현 상황에서 안타레스 유격군의 기습을 받게 되면 꽤 위험하겠지요. 우리 측은 방어진도 구축되기 전인 데다 해 보지 않은 막노동으로 상당히 체력도 사기도 떨어진 상태니…….”
“그렇다면 역습을 받기 전, 오히려 전력이 무사한 지금 당장 트로리아드로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칫하면 고립된 곳에서 원호도 없이 불리한 전투를 감행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지금 당장 트로리아드를 점거하는 쪽이…….”
새삼 말튼은 크리스틴을 다시 보았다.
저런 걸 보면 절대 머리가 나쁜 아가씨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요새 짓기에 대해서만은 자꾸 흰소리를 한다는 건…….
‘그냥 요새 짓는 게 싫다 이거지?’
세상만사를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 아무리 납득할 만한 소릴 들어도 뇌리에서 알아서 지우는 것이다. 그리고 불만, 불만, 불만.
‘이번 전쟁만 끝나면 반드시 전출 서류 낸다. 암, 반드시 내고말고.’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말튼이 애써 대꾸했다.
“그럴 걱정은 없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은 그만큼 은밀했으니까요. 아무리 안타레스라도 우리 위치를 파악했을 리가 없지요.”
애초에 안 들켰으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러나 크리스틴의 질문은 집요했다.
“그래도 혹시나 파악이 되었다면? 우리가 이곳에서 요새 건설에 착수한 지 벌써 사흘째다. 벌채도 꽤 했고 소음도 상당히 냈으니 파악되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이동 중에야 최대한 은밀히 움직일 수 있었지만 자리 잡고 짓 짓는 데 안 들키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분명 예리한 지적이었지만, 부관은 오히려 한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잖아?’
워낙 답답하다 보니 살짝 언성이 올라간다.
“그러니까, 현재 트로리아드엔 우릴 습격하고 싶어도 그럴 힘이 없다니까요? 현재 트로리아드에 남은 전력은 기껏해야 이단의 현자나 광기의 발렌시아 정도입니다.”
유능한 제국 참모부는 이미 저 상황에 대해서도 파악해 두었다. 크리스틴 따위도 파악할 수 있는 문제를 저들이 모를 리가 있나?
“눈의 여왕 이니야를 비롯한 혈신血神 아틸카며 오크 대모 스탈라, 배신의 기사 사이러스나 오크 대전사 타시드는 전부 수하 오러 유저며 정예들을 이끌고 최전방에서 유격전 중입니다. 그렇기에 삼국 동맹이 압도적인 전력 우세에도 불구하고 어찌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덕분에 현재 트로리아드 방어 전력은 재상으로서 행정에 임하고 있지만 마갑 덕에 어지간한 오러 유저에 육박하는 무위를 지닌 카를과, 전선과 본진을 오가며 부상자를 운송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시리스의 호송부대 정도가 전부였다. 그나마 시리스가 운 좋게 이 시기에 트로리아드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전제하에 저 정도다.
“부상자 호송부대는 전력이라기엔 미흡한 신병들, 이단의 현자와 광기의 발렌시아는 분명 위협적인 존재지만 이끌 병력이 없으니 큰 문제는 아니지요.”
그 외엔 전부 민간인. 부상자 치유를 위해 프리스트들이 대거 머무르고는 있지만 프리스트는 그 특성상 병력의 보조 역할이지 전력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이단의 현자나 광기의 발렌시아가 어설픈 병력을 이끌고 우릴 기습한다면 오히려 환영할 일입니다. 손쉽게 그 목을 벨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까지 몰래 도달하는 것이 힘들었지, 일단 도착해 요새 건설에 착수한 이상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설명하면서도 말튼 경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정말이지 절묘한 한 수야.’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적의 약점을 교묘히 찔러 아군의 피해를 가장 최소화하며 적의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역시 천년제국 바슈탈론다운 저력이란 생각이 새삼 들었다.
뭐, 크리스틴은 이번에도 자기 기준으로만 받아들였지만.
“그렇군, 그럼 요새는 계속 지어야겠네.”
귀찮아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여전히 어떻게든 귀찮은 요새 건설 따위 때려치우고 얼른 싸우러 나갈 궁리만 찾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인다.
‘거참…….’
속으로 혀를 차다 말고 문득 말튼 경은 의아해했다.
이번 임무의 후보는 여럿 있었다. 제국의 강력한 기사단이나 그라임, 할라인의 여러 기사들도 궂은일을 각오하며 이번 임무를 원했다. 그만큼 영광도 대가도 큰 임무니까.
그런데도 세이어의 성기사단이 이 영광을 얻은 것은 크리스틴이 워낙 강력하게 의지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저런 성격의 여자가 어째서 이 일을 자원한 거지?’
의아해하며 말튼은 목례를 한 뒤 막사를 나섰다. 요새 건설 진행 사항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의문은 의문이고 어쨌거나 할 일을 해야 하니까.
“쳇!”
부관이 막사를 나서자 크리스틴은 신경질적으로 테이블을 퍽 걷어찼다.
퍽!
가벼운 일격에 테이블 다리가 똑 하고 분질러졌다. 귀퉁이가 기운 테이블을 뒤로한 채 그녀가 툴툴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제 코앞인데…… 그이가 코앞에 있는데.”
원래 크리스틴은 이번 임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무리 영광이 크다지만 여인의 몸으로 더럽고 궂은일을 자처하고 싶은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생각이 바뀐 것은 현재 안타레스의 본진 상황을 들은 후였다.
현재 안타레스의 본진은 두 곳, 엘븐 포레스트과 트로리아드. 그곳에서 두 교단의 신관들이 각자 도시 하나씩을 맡아 밀려오는 부상자를 처리하고 있었다.
엘븐 포레스트는 알 포트 교단과 그 교황인 ‘악신의 사제’ 마켈린이.
그리고 트로리아드는 필라넨스 교단 안타레스 지부와 그곳의 대주교인 ‘타락 여신’ 실란이.
“아, 실란……!”
가슴에 손을 모으며 크리스틴이 얌전히 눈을 감았다.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말을 달리면 하루도 걸리지 않을 거리에 그이가 있다.
그이의 사랑을 빼앗았던 근육질 괴물(?)도 신벌을 받아 죽어 버렸으니 더 이상 방해물도 없다.
‘어서 저 천한 것들로부터 그이를 구해야 하는데!
마치 성녀의 그것처럼 다소곳하고 우아한 표정으로, 크리스틴은 오래도록 보지 못한 사랑하는 이를 떠올렸다.
“조금만 참아요, 내 사랑. 곧 제가 당신을 구하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