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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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으!”
갑자기 오한이 닥쳐와 실란은 부르르 떨었다. 곁을 걷던 시리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요, 실란?”
“가, 갑자기 불길한 느낌이…….”
“……응?”
바들바들 떠는 실란을 보며 트롤 구루, 티티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가 길 잘 걷다 말고 왜 이러나?
실란이 정색을 하고 중얼거렸다.
“이 떨림은…… 크리스틴이 헛소리할 때의 떨림이로구나!”
오한도 자주 닥치면 패턴이 생기는 법이다. 슬슬 실란은 오한만으로도 그것이 기온 변화에 의한 것인지 여인의 한(?)에 의한 것인지 구별하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참으로 슬픈 능력이었다.
“크리스틴? 아, 그때 제플리에서 만난 떡대 여자?”
티티마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무섭긴 했지. 실력이 아니라 성격이.”
실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 참, 살다 살다 내가 크리스틴에게 먼저 가까이 가는 일이 생길 줄이야.”
이미 상대 병력이 세이어의 성기사라는 것은 확인했다. 갑옷만으로도 알아보기 참 쉬운 놈들이었으니까.
그 지휘관이 크리스틴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성기사 갑옷을 입었고, 놀라운 미녀인데, 무식하게 키만 큰 여자가 세상에 둘씩이나 있지는 않다.
평생 도망만 다닌 상대를 이쪽에서 찾아가야 하다니, 참으로 운명을 원망하고 싶은 실란이었다.
시리스가 나직하게 실란을 달랬다.
“어쩔 수 없잖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그건 그렇지.”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실란도 상념을 지우며 계속 짙은 밤의 숲 속을 헤치고 나아갔다. 슬슬 목적지가 보이고 있었다.
가파른 절벽 아래 굳건히 세워진 목책 요새.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 몇몇 불빛이 요새 내를 비추고 있다. 하나같이 화려한 갑주를 걸친 강해 보이는 기사들, 세이어의 오백 성기사단이었다.
엘프의 야간 시야를 써 지형을 살피며 시리스가 인상을 썼다.
“확실히 저 지형이면 배후로 기습하는 건 무리겠네요.”
엘프 정도는 아니지만 트롤 역시 상당히 밤눈이 밝은 편이다. 티티마도 요새 방어 형태를 살피며 말했다.
“이제까지의 인간들 요새와는 달라. 정말 인간은 빨리 배우네.”
티티마가 혀를 내둘렀다. 유격전 시작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인간 군대는 자신들의 요새 취약점을 파악하고 보완해 버렸다.
실란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아직 완성되진 않았어. 정면으로 침공할 루트가 상당히 남아 있다. 카를 씨 예상대로야.”
크리스틴의 걱정대로, 트로리아드는 이미 성기사들의 침투를 파악하고 있었다.
현재 안타레스는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트로리아드의 시민들도 모자라는 식량을 메우기 위해 인근 숲과 산을 뒤져 사냥과 채집에 열중하는 중이다. 그 와중에 저 요새가 발견되는 것은 필연이다.
이 보고는 바로 실란에게 들어갔다.
-끄응, 하필 카를 씨도 없을 때…….
보고를 받은 실란은 당혹했다.
현재 카를은 엘븐 포레스트 쪽 행정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트로리아드를 비운 상태였다. 윗대가리 다 없어진 현 트로리아드의 최고위 명령권자는 바로 실란, 그리고 비록 아틸카의 후계자지만 아직 어려 본진에 남아 있던 티티마 정도였다.
실란은 급히 마법 전령을 날려 카를에게 연락을 취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카를도 바로 대책을 세웠다.
-아직 요새가 완공되지 않았을 때 격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제국 참모부의 수작쯤은 한눈에 꿰뚫은 카를이었다. 만사 제쳐 놓고 기습 작전부터 세워 실란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리 카를이라도 한 가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카를 씨, 대체 무슨 병력으로 기습을 해요?
카를의 작전은 훌륭했다. 세이어의 오백 성기사단을 상대로 해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그 작전을 시행할 병력만 있었다면.
-그, 그건…….
천하의 카를이라도 없는 병력을 만들 재주는 없었다. 고민하던 카를은 결국 책사로서 극히 수치스러운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든 만들어 보십시오, 실란 대주교. 어쨌거나 그 요새가 완성되면 안타레스는 끝장입니다.
-어떻게든 만들어 보라니 그 무슨…….
그나마 다행인 일은, 다음날 시리스가 부상자를 이끌고 트로리아드로 돌아왔다는 점이었다.
소식을 들은 시리스도 안색이 변했다. 실란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찌해야 할지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병력이 없었다.
현재 트로리아드 인구의 절대 다수는 민간인, 그것도 노약자와 아녀자들이었다. 병력이 될 만한 한창 나이의 사내들은 부상자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종족을 막론하고 현재 모든 안타레스의 사내들은 징집되어 전방에 투입된 것이다.
전투 자체는 여전히 이니야며 각 종족의 초인들이 이끄는 안타레스의 최정예들이 행한다. 하지만 직접 전투에 나서지 않아도 전장에서는 일손이 필요한 곳이 수두룩하다. 물자를 옮기거나 부상자를 호송하거나 거점을 짓거나 하는 등등.
저들의 보조가 없으면 아무리 안타레스의 최정예라도 이리 쉴 틈 없이 산맥을 오가며 전투를 벌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여기서 알아서 처리해야 하는데…….
-하지만 노약자들을 아무리 모아 봐야 전력이 될 리가 없잖아, 시리스.
-그건 그렇죠, 하아.
오백의 성기사라면 단순한 노약자 따위 몇 천이건 학살할 수 있는 전력이다. 그것도 피는 고사하고 땀조차도 흘리지 않은 채!
-최소 각 종족의 정예 정도는 되어야 승부가 날 텐데…….
-그 정예들을 전방에서 빼 오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쪽의 패배잖아요, 실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티티마가 한껏 굳은 얼굴로 의견을 낸 것은.
-실란, 사실은 방법이 있어. 하지만 그건…….
순간 시리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티티마의 의견은 실로 비인도적이고 비열하고 무도하고 참혹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잖아. 저들도 이해해 줄 거야. 물론 나도…….
절망의 미소를 지으며 내민 그 제안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실란은 받아들였다.
절망 대신 희망의 미소를 지으며.
-아니, 잠깐? 가능할 수 있을 것도 같아. 그래, 조금만 방식을 달리하면 말이지.
☆ ☆ ☆
조용한 밤하늘 위로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기습이다!”
막사에서 잠들어 있던 크리스틴이 매서운 기세로 몸을 일으켰다.
“뭣이?”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바깥은 소란스러웠다. 요새 너머로 요란한 소음이 들려온다. 상당한 수의 병력이 움직이는 소리다.
허겁지겁 무장하며 그녀는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절대 기습은 있을 수 없다며?’
메사이어를 쥔 채 크리스틴은 쏘아진 화살처럼 막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미 사방이 화광으로 충천해 있고, 나무로 만든 요새 곳곳에 불이 붙어 있었다.
“말튼 경!”
부관의 이름을 외쳐 보지만 답은 없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목책 위로 몸을 날렸다.
이미 수많은 성기사들이 어둠 속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팔백 정도로 보이는 병력이 횃불을 던지고 창칼을 휘두르며 성기사들과 맞서 싸우고 있다.
‘말도 안 돼! 지금 트로리아드에 저 정도 병력이 있을 리가!’
습격한 이들은 무장한 수백의 트롤들이었다.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갑옷을 걸친 수백의 트롤들이 창칼을 휘두르며 성기사에게 달려든다. 사방에서 트롤의 고함과 욕설이 들려왔다.
“죽어라, 비열한 인간 놈아!”
“찢어 죽여 주마! 이 썩을 것들!”
안타레스 제국이 생긴 지도 꽤 시간이 지난 덕인지 트롤이면서도 공용어 욕설을 잘도 구사한다. 그 모습에 크리스틴은 위화감을 느꼈다.
‘트롤이 저런 모습을 보여?’
몇 번이나 트롤들과 맞서 싸운 경험이 있는 크리스틴이었다.
구루라 불리는 트롤 주술사들은 절대 쇠를 벼린 창칼을 쓰지 않았다. 쇠로 된 갑옷을 입는 일도 없다. 저토록 단순 무식하게 엉망진창으로 무기를 휘두르지도 않는다. 하물며 흥분해서 욕설 따위를 내뱉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트롤은 원래 사악하고 무심하여 감정을 모르는 존재가 아니었나?’
차분과 냉정, 무심과 무감은 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크리스틴도 평범한 인간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어쨌건 이들이 평소 보던 트롤과 전혀 다른 것만은 명백했다.
“죽어! 죽어! 죽어!”
“모조리 뒈져 버려!”
잘 보니 확실히 뭔가 달랐다.
‘뭐야? 제대로 된 사내놈은 하나도 없잖아?’
트롤은 남녀의 외모가 판이하게 다르다. 험상궂고 살벌하게 생긴 남성와 달리 트롤 여성은 푸른 피부색을 제외하곤 비교적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다. 인간이 봐도 쉽게 구별할 수 있다는 소리다.
쳐들어온 트롤의 절반은 여자였다. 뭐, 구루 중엔 강력한 여주술사도 흔하니 여성이라고 무시할 것은 사실 못 되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전투에 불리하다는 점은 트롤이라고 딱히 다르지 않다.
거기에 나머지 절반은 너무 늙어 뼈마디가 앙상한 노인 트롤이거나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이제 갓 재생력을 일깨운 어린 트롤들이었다.
척 봐도 전투를 수행할 법한 인원들이 아니다.
비록 부관의 속을 팍팍 썩이고 있지만, 그것은 크리스틴이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저 사고방식이 괴상하기 때문이다. 명색이 성기사답게 기본적인 전략, 전술은 당연히 익히고 있다.
바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멍청한 것들, 병력이 없으니 그냥 닥치는 대로 모아 기습을 해 왔구나!”
이들은 모두 주술사가 아닌 평범한 일반 트롤인 것이다. 전장에서 보아 왔던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그저 마을을 꾸리고 살아갈 뿐인 소시민 트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따위가 먹힐 거라 생각했나?”
일개 기사 하나를 상대하려 해도 일반 징집 병사 수십 명은 필요하다. 전문적으로 전투 기술을 익힌 자와 아닌 자의 차이는 그만큼 크다.
하물며 세이어의 성기사라면?
“죽어라! 인간 여자!”
마침 늙어 빠진 트롤 하나가 크리스틴을 발견하고 돌격해 왔다.
“크아아!”
험악한 고함과 함께 곡괭이질이라도 하듯 칼을 내리친다. 검술이라고 이름붙일 생각조차 안 들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가소롭다.”
가볍게 공격을 걷어 내며 크리스틴은 검격을 뿌렸다.
장난치듯 대충 휘둘렀을 뿐인데 단숨에 검 든 트롤의 팔이 날아가고 복부에 구멍이 뚫렸다. 늙은 트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으아아악!”
그래도 바로 절명하진 않았다. 아무리 늙었어도 트롤은 트롤, 강력한 재생력을 지닌 이 종족은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뒤로 구르면서 늙은 트롤이 허겁지겁 잘린 팔을 집어 도로 붙였다. 상처가 삽시간에 아물며 팔이 도로 움직인다. 내장을 헤집은 복부의 부상도 어느새 아물어 있다.
“어쭈?”
크리스틴이 혀를 찼다.
“하긴, 재생력이 있으니 그냥 민간인보단 좀 낫다 이거지.”
굳이 다른 이종족은 놔두고 트롤만으로 기습 부대를 꾸린 이유를 알겠다. 어차피 똑같이 힘없는 노약자라면 그나마 트롤이 엘프나 드워프, 오크보단 전투에 유리한 것이다. 칼 맞고 한 방에 죽진 않으니까.
“뭐, 그래 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