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12
“우리가 이긴 건가요?”
“온몸이 아파…….”
정신을 차린 트롤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다! 정말 돌아왔어!”
“오오! 역시 여신의 현신!”
“실란 대주교님의 말이 옳았어!”
기쁨에 가득 찬 환호가 허물어진 요새를 떨쳐 울렸다.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우리 힘으로 트로리아드를 지켰어!”
“실란 님 만세!”
“여왕 폐하 만세!”
승리의 기쁨 속에서 트롤들은 마음껏 만세를 외쳤다. 시리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실란을 돌아보았다.
“축하해요, 실란. 이 승리는 모두 당신의 공이에요.”
“에이, 모두의 힘이지.”
겸연쩍어하며 실란이 손사래를 쳤다. 티티마가 고양이처럼 실란에게 달라붙어 뺨을 비비며 깔깔댔다.
“굉장해, 실란! 멋있어, 실란! 정말이지 이런 수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트롤들을 광폭화시켜 전력으로 쓰겠다는 의견.
이 의견을 냈을 때 티티마는 사실 지옥에 떨어질 것을 각오했다. 트롤들 사이에서도 이는 최후의 수단, 일족의 존망이 걸린 위기에만 사용하는 주술로 기껏해야 열 명 정도에게 쓰는 것이 최대였다. 그걸 수백 단위로 구사한다는 것은 트롤 입장에서 실로 끔찍한 죄악인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인 실란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광기를 가라앉힌다는 점만 보면 나도 꽤 경험이 있지.
실제로 실란은 저런 식의 신성 주문을 꽤 써 온 경험이 있었다.
바로 시리스를 통해서.
엘리멘트를 터득한 이후 그녀는 점점 광기에 젖어 갔다. 비록 전생과 달리 혹독한 경험을 겪지 않아 좀 더 오래 버티긴 했지만 그래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점점 심해지는 시리스의 광기를 걱정하는 이는 많았다. 그나마 ‘여신의 기적’ 이후 좀 가라앉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재발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드워프 신관들이 신성 가호로 어떻게든 증상을 완화시키려 했지만 전생 때나 현생 때나 그것은 미봉책일 뿐이었다.
하지만 전생과 달리 지금은 필라넨스 교단, 인간의 신관이 안타레스 측에 있는 것이다.
드워프의 신성 주문으론 불가능해도 인간의 신성 주문으로는 저 광기를 가라앉히는 것이 가능했다.
-필라넨스의 가호로 그동안 계속 시리스의 광기를 다스려 왔었어. 전혀 전례가 없어 미처 떠올리진 못했지만 광전사가 된 트롤도 가능할 것 같아. 실제로 사례도 있고.
-응? 그런 사례도 있다고?
-응, 한두 번 뿐이지만.
실란의 호언장담대로, 광폭화한 트롤은 모두 원래의 이성을 되찾았다. 티티마가 연신 웃으며 방방 날뛰었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실란! 이 소식을 들으면 아틸카 님도 크게 기뻐하실 거야!”
트로리아드를, 안타레스를 위기에 구한 것도 구한 것이지만 이는 트롤의 오랜 저주를 해소하는 엄청난 위업이다.
“그러게, 보고받을 땐 무심코 넘겼었지. 이게 트롤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못 느꼈거든. 알았다면 아틸카 씨한테도 미리 알려 줬을 텐데.”
기뻐 날뛰다 말고 문득 티티마가 물었다.
“그런데 실란. 이거 대체 무슨 주문이야? 인간에겐 광폭화의 저주도 없잖아? 그런데 왜 이런 신성 주문이 있는 거야? 대체 어디 써먹으려고?”
“이거?”
순간 실란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혼 조정 주문.”
“…….”
티티마는 말문을 잃었다. 황당해서였다.
“어, 황당한데 왠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갈 데까지 간 부부를 본 적이 있는가?
서로를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이혼 직전 부부는 쉽게 이성을 잃는다. 평소에도 다혈질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말도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정말 이지 잃은 짐승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날뛰는 이들도 흔하다.
“다른 교단도 정신 안정 주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만큼 발달하진 않았어. 별로 쓸 일이 없거든.”
세상 살며 멀쩡하던 사람이 이성 잃고 날뛰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기껏해야 목숨이 걸린 전쟁터 정도?
아무리 어지러운 세상이더라도 전쟁은 그리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어지간한 교단에서도 상대의 정신을 안정시킬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다.
반면 필라넨스 교단은 처지가 좀 달랐다.
세상 사람치고 결혼 안 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리고 결혼한 이들치고 평생 알콩달콩 즐겁게만 사는 이도 거의 없다.
진정한 사랑을 지고한 가치로 추구하는 필라넨스 교단은 이혼 역시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한 방편으로 인정한다. 그렇다 보니 이혼 조정에 대해서도 수백 년의 경험이 있다.
필라넨스의 신관들에겐, 미쳐 날뛰는 이혼 직전의 부부를 달래는 것이 평소 업무인 것이다!
“원래 신성 주문이건 뭐건, 자주 쓰면 쓸수록 발달하는 법인지라…….”
덕분에 필라넨스 교단은 한 분야에 관해서만은 독보적인 신성 주문을 보유하고 있었다.
바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게 하는 정신 안정 주문에 관해서.
“어쩌다 보니 이쪽으론 상당히 노하우가 많지.”
실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광폭화한 트롤을 원상태로 돌린 사례, 그 보고를 받은 것도 바로 산하의 필라넨스 신전에서였다.
부부 싸움한 트롤 부부가 중재를 위해 필라넨스 신전을 찾았는데, 거기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결국 난투극을 벌였다고 한다.
머리끄덩이 붙잡고 죽여 살려 하면서 싸우다 종국엔 광폭화까지 해 버렸다. 정말 서로를 죽일 작정으로 싸워 댔단 소리다. 과연 이혼 직전의 부부가 막장인 것은 모든 종족 공통이라 하겠다.
그때 우연히, 평소처럼 이혼 조정 주문으로 트롤 부부를 진정시키는 중이던 신관 하나가 그들의 광폭화를 해제해 버렸다. 트롤들의 오랜 숙원을 해소하는 위업이었지만 인간인 필라넨스의 신관은 자신이 행한 일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정신 차린 트롤들도 광폭화되었을 때의 기억이 없는지라 아무것도 모르고 넘어갔다. 애초에 이혼 직전이라 다른 데 신경 쓸 여력도 없었고.
그래서 그 사례는 평범한 보고 형식으로 실란에게 올라갔고, 역시 트롤이 아닌 실란도 다른 평범한 보고 사례처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티티마에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완전히 잊고 있었다.
“헤에…….”
황당과 감탄을 동시에 느끼며 티티마가 중얼거렸다.
“우연이긴 하지만 놀랍네. 그게 이런 식으로 효과가 있을 줄은.”
“필라넨스의 신도라면 특히 효과가 좋지.”
지금 요새를 점거한 트롤병들은 전원 필라넨스의 성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 트로리아드의 트롤 중에서도 신실한 필라넨스의 신도임을 증명하는 표식이다.
전생과 달리 현 안타레스에선 이종족도 인간의 신앙을 믿는 일이 흔하다. 실란이 레펜하르트에게 합류한 이유도 이것이 아닌가? 이종족에게도 필라넨스의 가르침을 설파하겠다는 것.
전생의 안타레스 제국 시기엔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
당시 안타레스 제국의 교단이라곤 드워프의 알 포트 교단뿐, 드워프의 종족신인 알 포트를 다른 종족이 믿을 이유가 없다. 엘프나 드워프가 인류의 신인 세이어를 믿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그러나 세이어를 믿는 인간들은 다른 신도 믿는다.
세이어의 신도이면서도 밭을 갈 땐 대지의 여신 레단티에게 기도를 올리고, 항해 중엔 바다의 여신 넵퓨리아스의 가호를 빌며, 결혼식을 올릴 땐 필라넨스의 신전에서 행복을 기원한다. 다신교 문화에서 이런 식의 신앙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현 안타레스의 이종족들은 저마다 각자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필라넨스나 레단티의 가르침 역시 수용하고 있었다.
그 차이가 이 결과를 낳은 것이다.
전생의 레페하르트조차도 해결하지 못한, 트롤의 광폭화를 다스리는 결과를.
“엄밀히 말하면 완전히 다스리는 것은 아니야. 광폭화 전에 미리 신성 주문을 걸어 두지 않으면 효과가 나오질 않거든.”
그래서 실란은 미리 사전 작업으로 트롤병들에게 신성 가호를 깔아 두었다. 이것이 필라넨스의 신관이 득실거리는 안타레스에서도 트롤의 광폭화를 해제한 사례가 극히 드문 이유였다. 저런 밑 작업 없이도 효능이 나왔다면 보다 많은 사례가 나왔을 것이고, 일찌감치 트롤들도 이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게다가 트롤 구루가 광폭화할 경우에는 전혀 통하지 않고.”
트롤 주술은 신성력과 충돌하기 때문에 사전에 신성 가호를 걸어도 광폭화를 해제할 수가 없다.
티티마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실마리가 생겼다는 건 여전히 의미가 커. 고마워, 실란.”
“아, 응.”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실란은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무릎 꿇은 채 신음하는 거구의 여인을 바라보며 실란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크리스틴…….”
☆ ☆ ☆
세이어의 성기사들은 전멸했다.
아무리 가혹한 전장이라도 패배한 측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현 상황은 좀 특수하다. 도망칠 곳이 전혀 없는 요새에 몰린 채 최소한의 인정조차 없는 광전사들에게 살육을 당한 처지다. 오히려 살아남은 이가 있는 쪽이 이상하다.
현재 성기사 중 유일한 생존자는 크리스틴뿐.
“실란…….”
분노와 슬픔 속에서 크리스틴이 실란의 이름을 흘린다. 시리스는 가라앉은 눈빛으로 메사이어를 움켜쥐었다.
이미 광기는 사라졌지만, 더 이상 살기를 느끼진 않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의 임무는 변하지 않는다.
시리스가 애써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여야 해요, 실란.”
실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좋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몇 년이나 봐 온 사이다. 몇 번이나 차라리 죽어 줬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죽이고 싶단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실란에게 크리스틴은 두려움과 짜증의 대상이었지, 증오나 분노의 대상은 아니다. 그녀가 죽는다고 딱히 슬퍼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죽는 걸 방치하는 것도 좀…….
“……포로로 잡으면 안 될까?”
역시 이 자리에서 죽이기엔 찜찜해 실란이 물었다.
시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포로로 거둔다면 민심이 흔들릴 거예요.”
현재 안타레스군은 적의 포로를 잡지 않는다. 포로를 먹일 식량도, 감시할 인력도 없으니까.
물론 크리스틴 한 명 정도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만 이는 원칙의 문제다. 자기들 먹기도 모자란 식량을 적을 위해 낭비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굶주린 백성들은 분노하는 법이다.
“안 그래도 위태로운 처지에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어요.”
그렇다고 그냥 풀어 줄 수도 없다.
전사의 긍지를 높이 여기는 몇몇 이종족 전사들은 비무장인 상대에게 칼을 꽂느니 차라리 도망가게 놔두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반강제로 끌려온 일반병에 한해서다.
반면 메사이어 없이도 원래 크리스틴은 세이어 교단 최강의 성기사였다. 한 팔을 잃어 좀 실력이 쇠퇴하긴 하겠지만 여전히 위협적인 적이다.
그런 강적을 놓아줄 순 없다.
“이미 안타레스는 그녀로 인해 많은 피를 흘렸어요.”
실란의 안색이 더더욱 굳어졌다.
“그건 알고 있지만…….”
머리론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결심을 내릴 수가 없다.
주저하는 그를 보며 시리스가 한숨과 함께 검을 거두었다.
“당신 뜻대로 하세요, 실란. 이 승리는 당신의 것, 이자의 목숨도 당신의 것입니다. 그대에겐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요.”
미안해하며 실란이 크리스틴에게 손짓을 했다. 이 자리를 떠나라는 의미다. 크리스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실란…….”
그때였다.
“미안해, 실란.”
티티마의 차가운 목소리가 끼어든 것은.
“네 심정은 이해해. 그러니까 이 여자를 차마 못 죽이겠는 것도 이해해. 실란은 착하니까.”
평소 장난기 가득한 음성과는 전혀 다른, 무거운 짐을 짊어진 목소리.
“그러니 너도 날 이해해 주길 바라.”
티티마의 오른손이 허공을 갈랐다. 강력한 주술력을 담은 단검이 쏜살같이 허공을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