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21
“드디어 때가 왔도다!”
찬란한 은빛 검광 아래, 오러로 증폭된 여왕의 외침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비열한 침략자들에게 그대들의 분노를 보여 주어라!”
부우우웅!
전장의 뿔피리가 소리 높여 울기 시작했다.
☆ ☆ ☆
진격하는 안타레스군의 선두에 선 것은 세 부대였다.
아스레일 경이 이끄는 인간의 군세, 실베릭 나이츠와 안타레스 기사단.
스탈라가 이끄는 오크의 군세, 푸른 곰 부족과 강인한 오크 전사들.
그리고 그들보다도 앞장선 이천의 트롤병.
“으아아아!”
“와아아아!”
달려가는 트롤병들이 일제히 손에 쥔 단검으로 자해를 시도한다.
피가 튀고, 그 피가 도로 상처로 스며들고, 상처가 사라지며 대신 흉악한 이천의 거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지축을 뒤흔들며 무자비한 기세로 돌진하는 이천의 광전사들, 그 선두에 혈신 아틸카와 그 후계자 티티마, 그리고 스물의 트롤 구루가 있었다.
“흑암을 떠도는 가슴속에 한 줌 씨앗 있어 대지를 떠받들 거목의 시작을 노래하리라…….”
아틸카의 주술가에 리듬을 맞춰 티티마와 다른 구루들도 소리 높여 노래 부른다. 이천의 트롤병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크라라라!”
“크아아!”
트롤병을 카탈란 가드의 제국군으로 이끌며 아틸카는 상대 진영을 살펴보았다. 강력한 주술력을 지닌 그는 수많은 제국군의 감정이 허공 위로 어우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긴장과 공포.
두려움과 흥분.
다가올 죽음과 삶 사이의 갈등.
전투를 앞둔 병사들의 다양한 감정이 혼탁한 기류가 되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틸카는 잠시 표정을 굳혔다.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제국군은 그리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틸카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들을 믿는 것인가.’
포진한 제국군의 선두, 그곳에 천 명에 달하는 중장보병의 대군이 길게 대열을 짜고 있었다. 아마도 트롤 광전사의 돌격력에 대응하기 위한 편제로 보였다.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기사의 것 못지않은 훌륭한 풀 플레이트 아머다. 아무리 중장보병이라지만, 기사도 아닌 병사에게 입히기엔 지나치게 좋은 무장이다.
새삼 바슈탈론 제국의 저력이 느껴져 아틸카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제국은 제국이로군.’
괜히 기사가 귀한 존재가 아니다. 원래 전신을 감싸는 금속 갑옷과 전마戰馬 한 마리는 일반 평민이 수십 년을 벌어도 사기 힘든 고가의 물건이다.
인류가 드워프를 노예로 부려 채광 밑 주물 산업이 월등히 발달한 현 시대는 예전만큼 갑옷의 가격이 높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천 명이 넘는 병사에게 전원 풀 플레이트 아머를 제공하는 것은 어지간한 대국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아무리 무리한 일처럼 보여도 주저 않고 행한다. 역시 천년이란 세월은 무시할 것이 못 돼.’
감탄하면서도 아틸카는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친 천 명의 중장보병은 어지간한 돌격 부대쯤은 쉽게 격퇴할 굳건한 성벽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정도로 우리의 저주스러운 힘을 막을 수는 없다!”
순식간에 들판을 가로지른 이천의 트롤병이 제국군과 충돌했다. 거대한 망치가 방패를 두들기듯 전장 곳곳에 요란한 금속음이 울린다.
탕! 타탕! 타타탕!
선두에 선 아틸카도 짧은 기합성과 함께 자신의 애병, ‘어머니 은혜’를 휘둘렀다.
“헙!”
둔탁한 나무 몽둥이지만 그 어떤 명검보다도 굳건한 주술적 병기가 한 중장보병의 머리를 노리고 내려찍혔다.
그때였다.
중장보병이 늘어뜨리고 있던 거대한, 2미터에 달하는 대검을 휘둘러 아틸카의 공격을 막은 것은.
“타앗!”
콰앙!
나무 몽둥이와 2미터짜리 거검이 부딪혀 폭음을 냈다. 중장보병이 비틀거리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쓰러지진 않았다.
아틸카가 놀라 신음을 흘렸다.
“음?”
비록 가볍게 휘두른 일격이지만 그 속에 담긴 주술력은 범상치 않았다. 어지간한 기사조차도 한 방에 날릴 위력이었다. 적어도 일개 중장보병이 감당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막아 냈다?
게다가 고작 몇 발자국 물러서는 것에 그쳤다?
“어림없다! 이 더러운 악마의 종자들!”
중장보병이 재차 대검을 휘두르며 공격해 온다. 타시드가 사용하는 참마도만큼이나 거대한 검을 마치 종잇장처럼 가볍게 휘두른다. 도저히 평범한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당황하며 아틸카가 주술력을 끌어 올렸다.
“내 몸이 크게 자라 노간주 삼림을 발로 찼도다!”
신체 능력을 증폭시켜 다시금 아틸카가 공격을 시도했다. 예리하게 꺾여 파고드는 나무 몽둥이의 끝이 대검의 궤도를 피해 중장보병의 가슴을 강타했다.
“커어억!”
갑옷이 찌그러지며 중장보병이 나가떨어졌다. 한 방에 상대를 쓰러뜨렸음에도 아틸카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지금 날린 일격은 아틸카로서도 상당히 힘을 쓴 것이었다. 이 정도면 갑옷과 사람이 통째로 박살 나야 했다. 그런데 고작 찌그러지는 정도에 그쳤다?
한낱 중장보병이, 무슨 차탄의 마검사나 신성검을 익힌 성기사급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아틸카가 속으로 당황을 토했다.
‘이놈들, 그냥 보병이 아니야!’
과연, 나가떨어진 중장보병의 전신 갑옷 표면에 마법적 문양이 떠올라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 마치 미술적 무늬처럼도 보이는 저 기하학적인 문양이 왠지 눈에 익었다.
‘실베릭 나이츠가 쓰던 마갑?’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니, 아닌 놈을 찾기가 더 힘들었다.
아틸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건 천 명의 중장보병이 아니다!’
천 명의 가공할 마검사가, 마법적 문양을 빛내는 갑주를 걸친 채, 천 개의 대검을 휘두르며 매섭게 반격한다.
인간의 함성이 광포한 트롤의 포효를 묻으며 들판 가득 울려 퍼졌다.
“보아라! 이것이 인류의 힘이다!
“세이어께서 우리를 가호하신다!”
☆ ☆ ☆
돌진하던 트롤병의 기세는 완전히 꺾였다. 제국군의 진영 앞을 막은 천千의 방패 앞에서.
그저 방어용으로만 입혀 놓은 것이라 여겼던 천 개의 갑주, 그것이 전부 마법적 문양을 발하며 가공할 기운을 전장에 펼치고 있었다.
“폭염의 불꽃, 플레임 스트라이크!”
“뇌전의 혀, 내리꽂혀 적을 친다! 라이트닝 쇼크!”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수많은 마검사들이 강력한 마법을 트롤병에게 날려 댔다.
아무리 광폭화한 트롤이 오우거와 맞먹는 괴물이라지만, 저들의 마법은 오우거조차도 죽일 수 있는 강력함을 지니고 있었다. 전장 곳곳에서 수많은 트롤병들이 불타 쓰러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뒤를 따른 아스레일과 스탈라 입장에선 실로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작전대로라면 돌진한 트롤병이 적진을 뚫고 중앙 돌파를 노려야 했다.
아스레일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가로막히는 경우에 대해선 들은 적이 없는데?”
모든 상황을 고려하는 카를조차도, 설마 트롤병의 돌진 자체가 막힐 거란 예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를이 대비한 작전은 저들이 돌진을 피해 부대를 좌우로 갈라 포위 공격으로 전환하는 상황, 그때 아스레일과 스탈라가 그 양익을 담당해 적을 분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뚫리지 않으면 전혀 상황이 달라진다.
“으아아!”
“적을 쳐라!”
굳건한 마검사의 방어를 바탕으로 제국군이 역습을 취했다. 마검사들 뒤로 제국의 기사와 보병들이 안타레스 기사단과 오크 전사들을 덮쳐 갔다. 딱히 특이한 마갑을 쓴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들을 이끄는 지휘관들이 평범하지 않았다.
“대열을 넓혀라! 모조리 포위해 섬멸하는 것이다!”
제국의 양익, 그 좌측을 맡은 선두에서 블레이드 오러가 솟구쳤다. 제국의 오러 유저 중 하나인 휘스턴 경이었다. 그 가공할 힘 앞에선 달인의 경지에 든 안타레스 기사단의 랜스 차징도 무용지물이었다. 블레이드 오러가 공간을 가를 때마다 거창과 기마, 기사가 동시에 일도양단되어 피와 파편을 뿌려 댔다.
“크으윽!”
“으악!”
비명 속에서 휘스턴 경은 파죽지세로 안타레스 기사단의 진형을 갈라 버렸다. 순식간에 아스레일의 코앞까지 도달한 휘스턴이 차갑게 웃었다.
“배신의 기사를 기대했는데 고작 안타레스의 기사단장인가? 아쉽구나!”
가차 없이 날아오는 오러의 참격에 아스레일이 사색이 되어 몸을 틀었다. 아슬아슬하게 블레이드 오러가 그를 비껴 지나갔다. 휘스턴이 살짝 감탄사를 흘렸다.
“호? 이걸 피해? 젊은 녀석이 제법 경지에 올랐구나.”
저 정도면 오러 각성을 코앞에 두었다고 해도 좋을 실력이었다. 별일 없다면 몇 년 안에 각성을 이루리라.
“하지만 아직 틀을 벗지 못했다!”
코웃음을 치며 휘스턴이 후속타를 날렸다. 오러 각성을 코앞에 둔 것과 실제로 각성한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운 좋게 한 번 피할 순 있지만 두 번은 허용할 수 없다!
그때 아스레일 좌우의 은빛 갑주 기사들이 그 사이를 끼어들었다.
“막아!
“단장님을 지켜라!”
아스레일과 함께 출진한 실베릭 나이츠였다. 세 명의 실베릭 나이츠가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려 검에 실어 휘둘렀다. 한 줄기 블레이드 오러와 세 개의 대검이 허공에 충돌했다.
가공할 폭음과 함께 세 개의 대검이 동시에 박살 났다. 막아섰던 실베릭 나이츠 역시 일격에 나가떨어졌다.
“크윽!”
“으윽!”
역시 실베릭 아머와 진짜 오러 유저 사이엔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휘스턴 경은 오히려 감탄했다.
“이 일격을 막다니, 보통 마갑이 아니군!”
뒤이어 다른 실베릭 나이츠도 가세해 휘스턴 경을 공격했다. 제국 측도 아군의 장수가 홀로 싸우는 걸 두고 보지 않았다. 트롤병을 막던 천 명의 마검사, 그중 20기 정도가 떨어져 나와 합세했다.
실베릭 나이츠와 제국의 마검사들이 뒤섞여 전장 가운데서 사투를 시작했다.
유리한 건 제국 측이었다. 마검사들의 원호를 받으며 휘스턴 경이 절묘하게 실베릭 나이츠를 농락하기 시작했다. 숫자는 제국 측이 더 적었지만 피는 안타레스 쪽이 더 흘리고 있다.
뒤로 물러선 아스레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좋지 않은 흐름이었다.
적진을 유린해야 할 실베릭 나이츠 전원이 발이 묶여 버렸다. 선두가 막히며 흐름이 끊기니 안타레스 기사단이 자랑하는 랜스 차징을 쓸 ‘거리’가 나오질 않는다. 난전으로 돌입해 혼탁한 진흙탕 싸움이 되어 버렸다.
제국의 우익이 공격한 스탈라가 이끄는 오크 전사대 쪽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오크 대모 스탈라! 제국의 세랄이 그대를 상대한다!”
“죽여 주마, 이놈!”
스탈라와 푸른 곰 부족의 전사들이 제국의 오러 유저 세랄과 예의 그 ‘마검사’들에 가로막혀 버린 것이다. 이쪽 역시 난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초반 기세가 완전히 꺾인 안타레스군을 제국군은 무섭게 몰아쳤다. 예측했던 것과 전혀 다른 전개였다. 본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를로서는 실로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뭐지, 저 병력은? 어떻게 저런 병력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실베릭 나이츠와 맞상대하는 제국 마검사의 모습이 보인다. 적어도 저 마갑 역시 실베릭 아머급이란 소리다.
‘그런 마갑이 무려 천 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