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23
오른손의 장갑을 겨누며 제이드가 흥분해 소리쳤다.
“그자만 없었다면 네년이 살아 있을 것 같으냐? 단절의 검!”
시리스가 엘리멘트 소드를 휘둘러 단절의 검을 살짝 쳐 냈다. 정면으로 막기엔 여전히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빛이었다. 그러나 빛의 정령을 이용해 궤도를 흘리는 정도는 그녀도 간신히 가능하다.
겨우 공세를 피한 시리스의 눈동자도 더욱 일그러졌다.
“……그래, 네놈에겐 빚이 있었지?”
양쪽 모두 그날의 굴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시리스가 메사이어의 힘을 끌어내며 7대 정령을 모두 불렀다.
“빚을 갚아 주마!”
지, 수, 화, 풍, 명, 암, 뢰.
거대한 일곱 정령이 온갖 속성으로 무장해 제이드에게 쏟아진다. 아무리 제이드라도 동시에 일곱 개나 되는 속성 마법을 다룰 수는 없다.
제이드가 양손을 떨쳐 올렸다.
“포스 필드!”
강력한 마법 방어장이 정령들의 돌진을 모조리 가로막았다. 시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8서클에 들어섰나?”
“그렇다! 나도 이제 대마법사다!”
그날의 패배 이후, 제이드는 평소의 태만함을 버리고 용맹정진 마법에만 매달렸다. 원래부터 재능은 충분했고 은의 현자가 대거 지원해 주기도 했으니, 결국 몇 달 전 8서클의 벽을 깬 제이드였다.
“아케인 스트라이크!”
파괴의 섬광이 시리스를 향해 쏘아졌다. 위력 자체는 단절의 검만 못하지만 아케인 스트라이크는 빛이 아니라 순수한 마력의 응집체, 아까처럼 빛의 정령으로 흘릴 수가 없다.
시리스가 달리 대처했다.
“나와, 테라투스!”
거대한 흙거인이 전장의 대지를 헤치고 일어서 아케인 스트라이크를 대신 맞았다. 워낙 강력한 마법이라 일격에 흙거인이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 뒤를 바로 단절의 검이 쫓고 있었다. 제이드가 낄낄거렸다.
“숨은 칼이다!”
아케인 스트라이크가 막힐 거란 건 제이드도 예상했다. 그래서 시간 차를 두고 연속 공격을 날린 것이다.
과연, 미처 피할 틈이 없이 단절의 검이 시리스를 그대로 적중한다!
“블링크.”
그녀가 사라졌다.
‘속았지, 바보!’
어느새 제이드의 등 뒤로 돌아간 시리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제이드의 속셈은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에 속는 인간 참 많단 말이지.’
제이드의 가녀린 목을 성광검 메사이어의 칼날이 주저 없이 파고들려는 찰나였다.
“블링크.”
제이드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당황하며 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제이드가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노려다보고 있었다. 이 현상이 일어난 이유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가 신고 있는 부츠, 그곳에서 희미한 마력이 느껴진다. 바로 시리스, 자신이 지금 신고 있는 부츠와 동일한 파장의 마력이.
“뭐야? 블링크 부츠는 하나뿐인 것 아니었어?”
☆ ☆ ☆
세상에 로브를 주로 입는 직종은 둘이다.
마법사, 그리고 암살자.
마법사가 로브를 입는 이유는 일종의 상징이다.
지금은 마탑이며 마법학계가 발달했지만 예전에는 마법사라면 세상을 방랑하며 고대 유적으로부터 힘과 지식을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삶이었다. 통으로 이루어져 있고 자질구레한 촉매 등을 담기도 쉬우며 오랜 기간 여행 시 이불이나 침상의 대용도 되는 로브는 방랑 마법사에게 딱 맞는 의복이었다.
대부분의 마법사가 편의를 위해 로브를 입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그것이 어느새 전통이 되어 지금은 방랑하지 않는 마법사라도 일종의 유니폼처럼 로브를 걸친다.
암살자가 로브를 입는 이유는 철저히 편의성을 위해서다.
암살자는 무릇 도망갈 때 잽싸게 의복을 갈아입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야 쫒기는 도중에 사라지는 것처럼 모습을 감출 수 있으니까. 그리고 순식간에 입고 벗는 데 로브만큼 편한 옷도 별로 없다.
하지만 러스는 지금, 눈앞의 저 로브 차림 인간들이 대체 뭐 하는 작자들인지 통 확신할 수가 없었다.
“섬광의 검!”
한 명의 외침에 따라 다른 이들도 똑같은 단어를 반복해 외친다. 그에 따라 수십 줄기의 빛이 전장 곳곳에 내리꽂힌다.
콰콰콰쾅!
폭음 속에서 러스가 이끄는 이종족 연합군도 반격을 한다. 동료의 죽음을 뒤로하고 저돌적으로 뛰어가 거리를 좁히며 검을 휘두른다. 일단 마법사라면 거리가 좁아진 상태에선 승산이 없을 터.
“입만 놀리는 비열한 놈들!”
“마법 따위 쓰기도 전에 죽여 버리겠어!”
그런데 저들은 오히려 덤벼 오며 근접전을 자청했다. 마주 돌격하며 품속에서 두 자루 대거를 꺼내 맹렬히 맞서는데 그 솜씨가 어지간한 전사를 능가한다. 최정예인 이종족 전사들과도 맞먹을 실력이었다.
황당과 당황 속에서 러스가 중얼거렸다.
“대체 저놈들은 뭐야?”
하는 짓만 보면 딱 암살자다. 그런데 좀 전에 날아온 것은 마법이다. 뭐, 마법이야 무슨 마도구의 힘이라 쳐도…….
‘뭔 놈의 암살자가 보란 듯이 새하얀 로브로 전신을 덮었냐?’
저들은 전원 백색 로브 차림이었다. 암살자라는 단어부터가 암살暗殺, 어두울 때 죽이는 작자란 의미다. 야밤에 흰옷 입고 돌아다니면 얼마나 눈에 잘 띄겠는가?
설사 야밤이 아니더라도 평소 습관상 흰 로브를 걸치는 암살자 따윈 있을 수 없다.
“대체 어디서 이런 것들이…….”
황당해하며 러스가 롱 소드를 휘둘렀다. 아직 휘두를 기량이 안 되는 일루미네이터 대신 드워프들에게 받은 명검이었다. 창공의 블레이드 오러가 채찍처럼 길게 늘어져 저들을 후려갈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들이 모조리 공세를 피했다.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전원 공간을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시리스의 부츠 덕에 저 수법에 대해 익히 아는 러스가 안색을 굳혔다. 그리고 이번엔 보다 집중해 전력으로 검을 떨쳤다.
“허공검, 호라이즌!”
공간을 뛰어넘는 참격이 작렬했다. 그러나 효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두 명은 목이 잘렸지만 대부분은 다시 공간 이동으로 공격을 피해 버린다.
러스가 혀를 찼다.
‘타시드 녀석이라면 이런 놈들 쉽게 상대할 텐데…….’
전투 예지를 지닌 타시드라면 저들이 이동하는 도착점을 파악해 베어 버릴 테니 별로 상대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러스라도 타시드의 전투 예지만큼은 훔치지 못했다. 아니, 아예 파악도 못 할 정도였다.
타시드가 예전에 ‘내 기술이 전투 예지라더라? 제국 애들이 그러던데?’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정도로 고도의 오러 스킬이었다.
‘그걸 보면 진짜 천재는 타시드 녀석이지. 그런 괴물 같은 놈이 왜 그리 궁상을 떤대?’
☆ ☆ ☆
친우의 예상대로, 타시드는 궁상을 떨고 있었다.
‘아, 러스 녀석이라면 이거 되게 쉽게 해치웠을 텐데!’
그런 타시드 앞에 한 무리의 창병이 도열해 있었다.
창병의 지휘관이 명령을 내린다.
“전원 준비!”
두 줄의 창병들이 일제히 명에 따른다. 첫 줄의 창병이 무릎 꿇고 창을 겨눈다. 둘째 줄 창병이 선 채 창을 겨눈다.
기이한 일이었다. 황당한 광경이기도 했다.
지금 저들과 타시드의 부대 사이엔 수십 미터의 거리가 있는 것이다. 거기서 저런 괴상한 포즈를 취해서 어쩌라고?
이들이 이내 답을 주었다.
“전원, 마탄 발사!”
콰콰콰콰콰쾅!
요란한 폭음이 수십, 수백 번 울렸다. 수많은 마탄이 창끝에서 쏘아져 타시드가 이끄는 오크 전사들을 휩쓴다. 수십 명의 전사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탄에 의해 죽어 간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
흥분해 타시드가 참마도를 크게 휘둘렀다.
“타아앗!”
청록색 오러의 장막이 넓게 퍼져 제국병과 오크 부대 사이를 가로막았다. 마탄이 장막에 부딪쳐 폭발했다. 장막이 이내 찢어지며 다시 오크 부대 위로 마탄이 쏘아졌다.
콰콰쾅!
“크으윽!”
“저 새끼들, 뭔 짓 하는 거야?”
“방패도 소용이 없잖아!”
예전과 달리 이젠 오크들도 방패 하나쯤은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영혼이 소통한 무기만을 사용하는 전통적인 오크 문화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시나 오크들 구슬리는 데는 달인이 된 아스레일 경의 업적이었다.
-이건 방패가 아닙니다. 방패처럼 생긴 칼집이에요. 여러분의 영혼의 친우는 가장 편한 곳에서 쉴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급하면 방패처럼 쓸 수도 있으니 편하기도 하고.
이쯤 되니 단순한 오크들도 뭔가 찜찜하단 기분 정도는 느꼈지만, 말발에서 인간을 당할 순 없었다.
-그리고 설사 방패면 어떻단 말입니까? 무기는 상대를 쓰러뜨리는 도구지요? 방패는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지요? 그럼 방패는 무기가 아니잖습니까? 그런 식이면 갑옷도 입지 말아야죠?
듣다 보니 그럴듯해 오크들도 전장에서 방패를 착용하는 것은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실제로 편하긴 했으니까.
하여튼, 그 칼집-이라 쓰고 방패라 읽는 물건으로 아까부터 저 마탄을 막고 있었는데, 도저히 방패가 버텨 주질 못한다. 위력이 너무 강한 것이다.
덕분에 타시드만 고역이었다.
쉴 새 없이 오러의 장막을 펼쳐 마탄의 위력을 약화시키지 않았다면 귀한 푸른 곰의 정예들이 칼질 한번 못 하고 죽어 나갈 판이었다.
“크으, 이것들이 진짜!”
흥분해 타시드가 검을 크게 휘둘러 오러탄으로 마주 응수했다. 청록색 오러탄이 제국군 마탄병대를 노리고 폭격을 가한다.
“전원 대피!”
그 순간 마탄병들이 흩어져 참호로 숨었다. 대부분의 위력이 땅거죽에 가로막혔다.
아까부터 이런 식이었다.
타시드가 아무리 원거리 공격을 해도 저들은 미리 마련된 참호로 피해를 최소화했다. 반면 저들이 쏜 마탄 앞에 푸른 곰 전사들은 속수무책, 타시드의 오러 방어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서 저놈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하지만 정작 타시드가 돌진하려 하면 저들은 잽싸게 창머리를 돌려 푸른 곰 부족을 노렸다. 타시드가 오러 방어를 무시하면, 저들은 모두 죽일 수 있겠지만 대신 귀한 일족의 전사도 전멸하는 것이다.
‘칼질 한번 못 하고 죽어 버리는 비참함을 일족의 전사들에게 안겨 줄 순 없지.’
덕분에 타시드 부대와 제국군은 계속 교착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오러탄을 쏘아도 참호 속에 숨어 피해 버리는 상대를 보며 타시드는 이를 갈았다.
‘아, 러스 녀석 허공검이면 저놈들이 땅속에 숨어 있건 말건 싹 벨 수 있었을 텐데!’
☆ ☆ ☆
엘프 정령사 샤일렌은 절망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대체 뭐야!’
렐하드가 죽은 이후 그녀는 단하임 일족을 이끄는 새로운 수장이 되었다. 그녀보다 나이도 경험도 많은 이가 꽤 있었지만 일족 누구도 그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명실공히 이니야와 시리스를 제외하곤 엘프 최강의 정령술사로 그 전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 최강의 정령술로 아까부터 샤일렌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나와 줘요, 샐러맨더!”
수십 마리의 불도마뱀이 그녀의 부름에 답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엘프들도 모두 정령을 불러 자신의 전투를 돕길 청한다. 우아한 목소리가 비명 가득한 전장 사이로 어색하게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