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26
-아니면, 신이 내려 준 또 하나의 운명을 받아들이겠느냐?
결국 키린트는 굴복했다.
“시체 역시 성장 가능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서 네놈은 내 손에 죽는다, 배신의 기사여!”
아무리 러스의 실력이 우위라지만 상대는 죽지도, 상처 입지도 않는 자였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러스는 지치기 시작했다.
☆ ☆ ☆
다른 곳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미 전신이 상처투성이인 스탈라가 치를 떨며 열 두 비검을 허공에 놀린다.
“이 무슨 끔찍한 사술이냐!”
전신이 상처 투성이였던, 그러나 지금은 옷이 찢긴 자국만 있을 뿐인 걸포드가 매섭게 받아쳤다.
“세이어의 은총이노라. 신관의 치유술은 잘도 받으면서 어찌 이건 사술로 보느냐?”
폭풍처럼 몰아치며 아틸카가 괴성을 토했다.
“부자연스럽고 불길하도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삶의 어디에 생명이 있단 말이냐!”
이미 절반 이상 아티팩트가 부서진, 그럼에도 여전히 전신에 상처 하나 없는 현자 브렉티스가 비아냥을 던졌다.
“모가지가 잘려도 되살아나는 괴물이 할 소리냐!”
폭음 속에서 시리스의 왼팔이 불타올랐다.
“크으윽!”
지독한 고통 속에선 광기조차도 무사하지 못한다.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는 평소의 그것으로 돌아와 있었다. 화염 마법을 양손에 머금은 채 제이드가 연신 공간을 이동했다.
“하하하하! 꼴좋구나, 엘프 계집!”
조금 전 베어 넘긴 제이드의 왼팔은 그새 완전히 아물어 상처 입은 흔적조차 없었다. 제이드가 생기 넘치는 얼굴로 계속 마법을 퍼부었다.
시리스가 치를 떨었다.
체력이 약하다는 엘프의 약점은 비단 이니야만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해도 마법사와 비교하면 시리스가 월등히 체력이 좋을 터인데…….
“젠장, 부상은 그렇다 치고 체력조차 원래대로 돌아온다니…….”
마법사인 주제에 제이드는 막 전투를 시작한 것처럼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반면 자신은 이미 숨이 가빠 움직이기도 힘들다.
카를이 연신 욕설을 토했다.
“젠장! 빌어먹을! 제기랄! 이런 개 같은 일이 있나!”
강력함을 자랑하던 안타레스의 오러 유저들, 그들은 전부 비참하게 몰리고 있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죽지도 지치지도 쓰러지지도 않는 상대들 때문이었다.
보통 이런 상대를 관용구로 ‘좀비 같다’고들 하는데…….
‘차라리 좀비면 대가리라도 날리지!’
실력과 이성을 확실히 유지하고, 완벽하게 체력과 부상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생명기라는 오러를 마음껏 뿜어 대는 저들을 어찌 좀비 따위와 비교할까?
몰리고 있는 것은 안타레스의 수뇌부뿐이 아니었다.
현세에 보기 드문 초월적인 아티팩트가 저잣거리에서 파는 단검처럼 굴러다닌다.
인세에 보기 드문 가공할 화력의 마법이 일개 화살처럼 쏟아진다.
은의 현자와 그 협력자, 이들이 지닌 고대 문명의 기물 앞에 안타레스군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제국군이 사기가 올라 소리쳤다.
“더러운 노예 놈들아!”
“네놈들만 숨은 힘이 있는 줄 아느냐!”
비록 정체를 드러냈다지만, 은의 현자들은 자신들의 이름까지 알려 주진 않았다. 전장에서 싸우는데 굳이 모든 정체를 까발릴 필요는 없으니까.
이들은 지상에 강림한 진정한 신, 세이어의 사도들로 자신을 소개했다.
“세이어의 사도들을 따르자!”
상대가 은의 현자건 세이어의 사도건, 카를이 고민하는 건 하나뿐이다.
‘대체 저놈들을 어찌 막아야 하는가?’
상대의 힘은 그가 알고 있는 상식을 벗어났다. 상대의 존재 역시 그의 상식을 벗어났다.
아무리 천재적인 지략가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로 지략을 짤 순 없다. 최소한의 정보, 지식이라도 있어야 대처가 가능하다.
절망 속에 검을 휘두르며 카를은 중얼거렸다.
“폐하…….”
이니야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여왕다운 모습과 여왕다운 위엄으로 안타레스를 이끌고 있었다. 그녀에게 여왕의 자격이 있다는 점은 결코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여왕은 카를 자신과 똑같이 무지無知한 존재였다.
“폐하께서 계셨더라면…….”
그리웠다.
그들의 왕이.
인세를 벗어난 지식과 지혜를 지니고, 그 놀라운 정신과 불굴의 육체로 언제나 든든하게 앞을 지켜 주었던 그들의 진정한 왕이.
“레펜하르트 폐하라면 방법이 있었을지도…….”
근거도 이유도 없는 맹목적인 믿음이었다. 평소 합리와 논리를 중시하는 카를에겐 있을 수 없는 감정이다.
그 심정은 다른 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절망 앞에서 러스가 중얼거렸다.
“형님…….”
무너져 가는 동족 앞에서 타시드가 한탄했다.
“아아, 은인이여…….”
죽음을 앞에 둔 이가 자기도 모르게 어미를 찾는 것처럼, 안타레스군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운명으로 이끌었던 이의 이름을 불렀다.
“레펜하르트 님…….”
“구원자여…….”
왕!
우리의 왕이여!
안타레스의 모든 이가 레펜하르트를 떠올렸다. 오직 한 명만을 제외하고.
“죽은 이에게 매달리지 마라!”
이라나드 공작의 검세를 흘리며 이니야가 목청을 높였다.
“그대들 앞에 선 적은 엄연한 현실이다! 눈앞의 검이 그대들을 꿰뚫을 때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를 것이냐?”
오직 그녀만은 여왕으로서, 여왕의 임무를 다한다.
“맞서 싸워라! 구원을 바라지 마라! 기도할 시간이 있다면 두 손으로 검을 휘둘러라!”
지칠 대로 지쳐, 이젠 블레이드 오러조차도 맺지 못하면서도 이니야는 놀라운 검술만으로 이라나드 공작을 막아서고 있었다.
진심으로 이라나드 공작은 감탄했다.
“훌륭하다, 눈의 여왕이여.”
하지만 이미 한계임이 뻔히 보인다.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며, 내 최고의 일격을 보여 주겠소!”
이라나드 공작의 제왕검이 이니야의 애검을 박살 내며 그녀를 통째로 후려갈겼다. 피를 뿌리며 이니야가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크으윽!”
☆ ☆ ☆
나가떨어진 이니야는 바로 절명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최후의 힘으로 공세를 흘려 부상을 최소로 막은 것이다. 그러나 두 팔이 부러지고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더 이상 싸울 힘조차 없는 것은 확실했다. 일어나지조차 못한 채 애써 흐릿해지는 정신만을 다잡고 있었다.
‘내가…… 내가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어…….’
이니야의 목숨을 거두기 위해 이라나드 공작이 가까이 다가갔다. 전장 반대편에서 드워프 여인과 오크 전사가 달려왔다. 드워프 오러 유저 유스테아와 오크 투사 하다툼이었다.
“폐하!”
“이놈이 감히 폐하를!”
지친 와중에도 하다툼이 맹렬히 이라나드 공작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공작의 발을 묶는 동안 유스테아가 허겁지겁 이니야를 부축했다.
“폐하! 정신 차리세요, 폐하!”
간신히 정신을 차린 이니야가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그대들이 자리를 비우면 병사들은 어찌하는가?”
유스테아와 하다툼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둘의 부대는 지리멸렬, 제국군에 의해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오세요!”
눈앞에서 여왕이 죽게 생겼는데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다. 유스테아는 허겁지겁 근처 병사들을 불렀다.
“폐하를 모셔라!”
이미 하다툼은 이라나드 공작에게 정신없이 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목이 떨어지기 직전이라 어서 그녀도 가세해야 했다.
“돕겠어, 하다툼!”
“크윽, 원래 협공은 전사의 도리에 어긋나는데…….”
“지금 도리 따지게 생겼수! 이 꽉 막힌 양반아!”
두 오러 유저의 사투로 인해 간신히 이니야를 후송할 공간이 생겼다. 엘프 병사들이 이니야를 짊어지고 허겁지겁 숲 속으로 향했다. 실란 대주교를 찾아야 했다.
여왕을 등에 업고 엘프 여병사는 눈물을 흘리며 달려갔다.
“아아, 레펜하르트 님만 계셨어도…….”
“……그는 죽었다. 죽은 자의 이름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
그 와중에도 이니야가 흐릿한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여병사의 눈물이 더욱 짙어졌다.
☆ ☆ ☆
콰앙!
현자 브렉티스의 일격이 두 자루 ‘어머니 은혜’와 충돌해 폭음을 일궜다. 아틸카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크윽!”
브렉티스가 아틸카에 의해 나가떨어진 것은 벌써 스무 번이 넘었다. 반면 아틸카가 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처음이 곧 마지막이다.
더 이상 아틸카에겐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트롤의 종족이 가지는 무한해 보이는 그 체력조차도, 정말 무한한 체력 앞에선 결국 소진된 것이다.
거리를 벌린 현자 브렉티스가 아틸카를 쫓는 대신 허공에 검을 들었다.
“그대들의 여왕은 쓰러졌다!”
안타레스군의 움직임이 더욱 둔해졌다. 제국군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그대들을 지켜 줄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이곳에 모인 안타레스군은 일국이 지닌 총전력이었다. 이들이 사라지면 안타레스란 나라도 사라진다. 모여들었던 천한 이종족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대륙은 다시 오롯이 인류의 것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