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35
“에헤헤…….”
눈물범벅이 된 푸른 눈동자로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며 그녀가 답했다.
“네, 레펜하르트 님.”
☆ ☆ ☆
시리스는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왠지 한숨이 나왔다.
“하아…….”
깨달아 버렸다.
진정 레펜하르트를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그녀는 분명 레펜하르트를 사랑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이니야 씨처럼 사랑할 순 없어, 나는…….’
그녀의 사랑은 이니야와 달랐다. 저 눈물을 본 순간 시리스는 그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왜냐면 저 모습을 본 순간, 이니야의 진심이 드러난 순간…….
‘나는…… 기뻤으니까…….’
이니야가 레펜하르트를 저버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뻤다.
레펜하르트의 생환에 이니야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토록 도도하던 이니야가, 그토록 오만하던 그녀가 저토록 꼴불견이 되어서까지 레펜하르트에게 모든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에 자랑스러움마저 느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시리스, 자신이 레펜하르트를 사랑하는 여인이었다면 그 순간 기뻐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깨달을 수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나는 레펜하르트 님을…….’
시리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생각보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제68장 역습은 너희만 하는 것이 아니다!
1
카를과 마흔 명의 실베릭 나이츠는 사흘간 지옥을 노닐었다.
나흘째 되는 날, 그들은 비로소 천국의 문을 열었다.
“으어어어…….”
쾌감과 한탄과 신음과 열락(?)마저 뒤섞인 표정으로 카를은 볼일 끝난 천국의 문을 닫았다. 화장실 앞에 서서 기다리던 틸라가 안심하며 카를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좀 사람 같네요, 당신.”
솔직히 지난 사흘간은 땀 흘리는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카를이 희극 배우처럼 뇌까렸다.
“아아, 틸라. 폐하가 살아 돌아오신 것과 안타레스가 승리한 것을 다 합쳐도 지금 이 순간이 더 기쁘구려.”
“농담처럼 말하지만 진담이죠, 지금?”
피식거리는 틸라를 보며 카를은 이를 갈았다.
“하여튼 폐하는 정말 못 말리겠단 말이야. 아니, 미리 언급이라도 좀 해 주었으면 오죽 좋은가?”
지난 사흘은 실로 카를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인고의 시간이었다. 만약 A.M.P 쇼크웨이브의 효과가 하루만 더 지속되었다면 레펜하르트는 충성스러운 재상과 마흔 명의 기사 대신 분노에 불타는 마흔한 명의 반역자를 만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그리 힘들어? 잠깐 마갑 해제하라고 말해 주는 게 그리 힘드냐고?”
구시렁대는 연인의 등을 떠밀며 틸라가 말했다.
“자 자, 어쨌거나 다시 업무로 돌아가셔야죠, 재상 나리.”
“그래야지. 폐하께선 어디 계시오?”
“물론 폐하께선 오늘도 집무실에 계시죠.”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사랑하는 왕·비·님이랑.”
☆ ☆ ☆
누군가가 아티팩트 안에 갇혀 전전긍긍하는 동안, 이니야 역시 두문불출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무리 레펜하르트가 돌아왔다지만 현재 안타레스의 여왕은 분명 이니야다. 전후 처리며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이니야는 그 모든 책임을 방기한 채 사흘 내내 벽만 보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멍하니 주저앉아 넋 나간 목소리로 뇌까린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그러다가 정신없이 얼굴을 감싼다.
“아웅, 내가 거기서 왜 그런 짓을…….”
스무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백쉰 살 가까이 된 주제에 벌건 대낮에 주저앉아 사람들 앞에서 펑펑 울어 젖혀 버렸다.
“나잇살 처먹고 무슨 주책이래…….”
생각하면 할수록 낯 뜨거워 견딜 수가 없다.
“미쳤지, 미쳤어…….”
나오느니 한숨이요, 떠올리니 부끄러움뿐이다.
자기혐오라는 망망대해에 빠져 이니야는 사흘째 허우적대는 중이었다. 걱정이 된 플로라며 틸라가 어떻게든 그녀를 달래려 했지만 워낙 조난 구역이 깊어 쉽게 구조가 되질 않았다.
결국, 한때 그녀의 부관이었던 세르펠까지 나섰다.
“이니야 님.”
허락도 받지 않고 대뜸 방안으로 들어온 저 엘프 사내를 향해 이니야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나가, 세르펠.”
눈빛만으로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살벌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세르펠은 태연했다.
“나갈 겁니다. 할 말만 하면요.”
“듣기 싫어, 나가.”
“별로 길지도 않습니다. 그냥 흘려들으세요.”
맹수의 살기를 풀풀 풍기는 이니야를 눈앞에 두고도 세르펠은 천연덕스럽게 서 있었다. 미간을 찡그리다 이니야는 도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옛 부관은 원래 저런 놈이었다. 분명 충성스럽긴 충성스러운데 기어오르기도 잘 기어오르는…….
‘그렇게 패고 또 패도 안 바뀌던 놈이 이제 와서 바뀔 리가 없지.’
포기하고 이니야가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 말해. 그리고 나가.”
세르펠이 어깨를 으쓱였다.
“대체 뭐가 문제인 겁니까?”
“뭐가 문제냐니!”
독 오른 고양이처럼 이니야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질질 짜는 창피한 모습을 동네방네 대놓고 보여 버렸는데?
회상하고 나니 또다시 눈앞이 암담해진다.
“아우, 이제 무슨 낯으로 레펜하르트 님을 뵙지…….”
한숨을 푹푹 내쉬는 일족의 수장을 보며 세르펠은 온화하게 웃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
“괜찮습니다, 이니야 님.”
“괜찮다고?”
“네, 아무 문제 없어요.”
“아무 문제가 없어? 그렇게 부끄러운 꼴을 보였는데도?”
세르펠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니야 님은 원래 부끄러웠어요. 예전 폐하 쫓아다닐 때부터 이미 스티리아 일족은 남들 보기 창피해서 머리도 못 들고 살았습니다. 뭘 이제 와서…….”
“…….”
이니야는 부관을 노려보았다. 평소에도 세르펠이 말을 고르지 않는 버릇이 있긴 했지만 오늘은 좀 도가 지나치다.
하지만 세르펠이 저따위 말투로도 수십 년간 이니야를 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남들 보기엔 부끄러워도 이니야 님은 솔직하게 레펜하르트 님을 대했지요. 레펜하르트 님도 그런 순수한 이니야 님의 모습을 계속 봐 왔습니다. 그런 폐하께서 이제 와서 이니야 님을 창피하게 여길 리가 없지 않습니까?”
세르펠이 단언했다.
“폐하의 눈엔, 이니야 님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을 텐데요.”
“…….”
이니야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듣고 보니 묘하게 그럴듯했다.
“아니면, 지난 반년간의 모습을 보이는 쪽이 나았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차가운 피가 흐르는 철혈의 여왕이라 불리시던 그 모습을요?”
이니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솔직히 그녀도 그런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해야 할 일이니 했을 뿐이지.
세르펠이 부드럽게 웃었다.
“자, 일어나세요. 그리고 폐하를 뵈러 가세요.”
이니야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세르펠이 오빠처럼 그녀를 다독였다.
“사실은 그분이 보고 싶지요?”
“……응.”
못 이기는 척 이니야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본인 딴에 천천히지, 세르펠이 보기엔 참으로 오러 유저다운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그, 그럼 나 레펜하르트 님 뵙고 올게.”
“예, 다녀오세요.”
어느새 환한 표정이 된 이니야가 방을 나섰다. 그 뒷모습에 세르펠은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문득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멀쩡하던 분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을까, 쯔쯔.”
그러나, 한숨과 동시에 아빠 같은 미소도 지어 보인다.
“그래도 저게 더 낫지? 예전의 모습보다는…….”
☆ ☆ ☆
반년 전, 여왕이 된 이니야를 보며 카를은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돌변할 수가?’
반년 후, 카를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대사를 읊고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돌변할 수가!”
카탈란 가드를 되찾은 뒤, 안타레스의 수뇌부 대부분은 요새에 기거한 채 전후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레펜하르트 역시 지난 사흘간 자신의 집무실에서 먹고 자며 이런저런 업무에 열중이었다. 반년이나 자리를 비운 데다 이니야가 공국 행정을 한차례 싹 개편한 터라 파악해 두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흘간 방에 틀어박혀 있던 이니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녀가 레펜하르트 곁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도우니 한결 일이 편해졌다.
뭐, 그것까진 좋은데…….
“레펜하르트 님, 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