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40
“예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아니지, 스탈라. 악마치곤 너무 선하잖소?”
“예전에도 말했지만 아틸카, 사람치곤 너무 괴상하잖아요?”
“그래도 이계異界의 초월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내 추측이 좀 더 그럴듯하지.”
아틸카의 말에 샤일렌도 끼어들었다.
“전 인간으로 변신한 드래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드래곤 같은 전설 속의 존재처럼 느껴졌으니까.”
“난 되게 진지하게 알 포트의 화신일 거라 믿었는데. 일단 떡대가…….”
이게 틸라의 추측이었다.
그렇다. 레펜하르트의 정체를 두고 궁금해한 이들은 한둘이 아닌 것이다. 다들 이제껏 앞에서 티만 내지 않았다 뿐이다.
사정을 이미 아는 마켈린과 시리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이미 저희들끼리 의논까지 해 가며 열심히 레펜하르트의 정체에 대해 이런저런 추측을 하고 있었다.
워낙 자기들끼리 망상의 나래를 열심히 펼친 탓에 정작 진실을 듣고 나서도 다들 놀라기보다는 실망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냥 시간 돌이키기?”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예상했던 것보단 훨씬 이해 범주 안이라…….”
“어째 좀 맥 빠진달까…….”
황당해하며 레펜하르트가 뇌까렸다.
“사실은 시간을 되돌리는 게 이제껏 나열한 것보다 훨씬 엄청난 일이거든?”
어쨌거나 전혀 기대했던 반응들이 아니다.
‘뭐? 악마에 고대인? 드래곤? 신의 화신? 마신 패 죽인 놈은 또 뭐래?’
어이가 없어 레펜하르트가 구시렁댔다.
“아니, 다들 사람을 뭘로 본 거야, 도대체?”
실란이 핀잔을 던졌다.
“어쨌거나 인간 같진 않았잖아요? 레펜 씨가 여신의 기적 사기 칠 때 내가 얼마나 놀랐었는지 알기나 해요?”
“내, 내가 그렇게 괴상한 놈이었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시죠?”
곁에 앉아 있던 이니야가 빙긋 웃었다.
“때가 된 게 아니라, 때가 많이 지난 모양이네요. 레펜하르트 님.”
하긴, 이제껏 레펜하르트가 저지른 짓이 한둘인가?
이제 와서 불신하기엔 그가 보인 기적이 너무 크다. 천지창조까지 본 마당이니, 시간을 거슬러 왔다고 해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문득 궁금해져 레펜하르트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추측했습니까, 이니야?”
그녀가 단언했다.
“엘디아의 화신. 왜 남성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거야 여신의 섭리려니 하고 넘겼죠.”
실란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난 이니야 씨라면 ‘전 레펜하르트 님의 존재 자체로 충분해요. 다른 추측 같은 것은 필요 없어요.’ 같은 식으로 말할 줄 알았는데…….”
‘앗? 그럴걸!’
아깝게 점수 딸 기회를 놓친 이니야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는 동안, 레펜하르트는 허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다들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냥 몰라도 상관없는 일이긴 했지만 알게 되니 속은 시원하네 정도?
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타시드가 손을 들고 물었다.
“에, 얘기 다 끝났으면 이제 술 마셔도 됩니까?”
☆ ☆ ☆
술판이 벌어졌다. 심각한 분위기 따윈 내다 버리고 다들 신 나게 요리와 술을 먹고 마셨다.
포도주 잔을 든 채 러스가 레펜하르트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형님.”
“응?”
“그럼 제가 검성이 되긴 되나 보네요?”
레펜하르트의 정체는 예상보다 실망이었지만, 시간을 되돌아왔다는 그 이야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누구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긴 한데, 너랑 나랑 원래 적이었다는 부분은 별로 신경 안 쓰이냐?”
“뭘 이제 와서…….”
러스는 머리를 긁었다. 몇 년 전이라면 조금 고민할 법도 했겠다만 이쯤 돼서는 진짜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형님 처음 만났을 때, 묘하게 절 잘 아는 눈치였던 이유가 있었군요.”
“그래, 사실은 그때 일찌감치 싹을 뽑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군.”
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그때 그는 레펜하르트에게 맞아 죽을 뻔했다.
“운명이란 재미있군요.”
고깃덩이 하나를 들고서 타시드도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럼 은인이여, 러스 녀석이랑 저랑 원래 적이었다 이거죠?”
“그랬지. 그것도 숙적 중의 숙적.”
타시드가 눈을 빛냈다.
“누가 더 셉니까?”
“그, 글쎄? 그게 중요한가?”
하기야 오크한테 뭐 달리 중요한 게 있겠나? 누가 더 세냐, 누가 제일 최강이냐가 삶의 모토인 종족인데.
러스도 그 부분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누가 이겼습니까?”
레펜하르트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검성 사이러스와 오크 대전사 타시드는 항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무승부였을걸?”
“그래도 마지막에 이긴 놈이 있을 거 아닙니까?”
으르렁대는 타시드를 보며 레펜하르트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타시드가 죽었지, 아마…….”
러스가 의기양양하게 친우를 바라보았다.
“훗!”
타시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쳇!”
사실은 레펜하르트도 사천왕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전생의 최종전 때, 한참 싸우던 도중 테스론이나 제이드가 떠든 말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땐 워낙 타시드가 지친 상태에서 벌어진 결투라 공정하진 않았다더군.”
도로 타시드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폈다.
“그럼 그렇지!”
의외로 러스도 납득하는 표정이었다.
“하긴, 저놈이 그리 쉽게 죽을 리가 없지.”
하여튼 사이좋은 두 사람이었다. 레펜하르트는 아련한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미래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명확히 보여 주는 사례가 눈앞에 있었다.
미래에 대해 묻는 것은 둘뿐이 아니었다.
일단 실란이 제일 궁금한 것을 질문했고…….
“저 남자답게 변해요? 근육 좀 생기나요?”
“몰라, 넌 이 시대 와서 처음 봤어.”
실란에게 성녀 엘린의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확신에 가깝긴 해도 어디까지나 추측이지 증명된 사실이 아니니까. 더구나 근육 문제야 정말 모르고.
“치잇.”
살짝 취한 상태로 카를도 열심히 이것저것 레펜하르트에게 묻고 있었다.
“그러니까 원래는 제가 크로방스 왕이 되는 거였다 이겁니까? 유벨 녀석이 아니라?”
“그, 그렇지. 그 건은 진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쩔쩔매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카를이 실소를 흘렸다.
“전 지금의 제 자신도 상당히 마음에 드니 그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폐하.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요.”
안 그래도 10서클 마법의 위력에 대해 이래저래 묻던 카를이다.
“……대체 당시의 제가 뭔 수로 폐하를 이긴 겁니까?”
“지금이랑 별 차이 없었지. 온갖 악랄한 방법으로 멀쩡한 사람 마왕으로 몰고 단합도 안 되는 인간 왕국 잘도 뭉쳐서 결국 내 목에까지 칼을 들이대던데?”
레펜하르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생각해 보면 당시의 카르사스 대왕의 수법은 진짜 악랄했다. 그것도 그나마 지금 옆에서 봐서 수법을 아는 것이지, 당시엔 자신이 왜 당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악랄했다.
“정신 차려 보니 이미 구석까지 몰려 있더만.”
카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솔직히 폐하 정도라면 대응법 따윈 차고 넘치도록 있었을 텐데…….”
전생의 자신이 대체 얼마나 똑똑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현재 카를로서는 아무리 이리저리 전략을 짜 보아도 당시의 마왕, 레페하르트를 이길 방법이 안 보였던 것이다.
200만 대군? 사방에서 다중 공격?
그 정도는 그냥 보급선 좀 불태우고 각 지휘부에 운석 떨어트린 뒤 외교적으로 협박만 했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류는 손 쓸 도리 없이 무조건 항복을 해야 했다. 적어도 카를이 보기엔 그랬다.
“대체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폐하는 무슨 수로 진 겁니까?”
기가 막혀 레펜하르트가 반문했다.
“진 것도 억울한데 왜 졌냐고 잔소리까지 들어야 하나? 그것도 당사자한테?”
“그, 그것도 그렇군요.”
이니야 역시 호기심은 이길 수 없었다.
“전생의 전 어땠었나요?”
이니야에 대해선 전생이나 현생이나 이래저래 죄 지은 것이 많다. 그걸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어 레펜하르트가 얼버무렸다.
“그게, 당시 이니야는 저를 굉장히 싫어했는지라…… 별로 친하지 않아 잘 모릅니다.”
“어머? 제가요?”
잠시 놀랬지만 이니야는 이내 이해했다.
‘하긴, 그 재수 없게 생긴 기생오라비라면…….’
예전에 만났던 테스론이 원래 레펜하르트의 모습이었다면 확실히 자신이 눈길 한번 안 주었을 법했다. (심지어 그 모습조차 실은 상당히 근육 빵빵해진 후고, 원본은 멸치와 호형호제할 수준이다.)
술잔을 기울이며 주변 사람들을 보다 말고 이니야가 중얼거렸다.
“의외로 이 자리에 몇 명 없네요?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듣고 보니 그렇군요.”
레펜하르트는 새삼스러운 기분이 되어 눈앞의 이들을 바라보았다.
한때 그의 측근은 사천왕이라 불리며 인류의 적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미 그에게 사천왕이란 존재는 없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족이 어우러진 소중한 동료들만 가득할 뿐이다.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군.”
레펜하르트의 혼잣말에 이니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머? 바뀐 것은 없지요.”
술을 따라 주며 그녀가 눈웃음을 쳤다.
“애초에 저희랑은 상관없는 다른 세상, 다른 사람 이야기일 뿐인데.”
“그렇군요.”
레펜하르트는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맞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