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49
저런 수법은 설사 달인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도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세이어를 감싼 수십 개의 마법을 모두 완전히 알고 있고, 그 순환 방식을 모조리 파악할 정도로 가공할 마력 감지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마법사라면, 저걸 모두 파악한다 해도 저 방어를 깨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마법이라면 어쩔 수 없이 속성이 깃들기에 하나는 깨도 다른 하나가 남으니까.
반면 오러, 단순한 물리력이라면 그런 제약이 전혀 없다.
“타아아앗!”
광분한 황소처럼 달려들며 레펜하르트는 계속 돌진했다. 방어장이 생성되고, 깨지고, 또 생성되는 것을 반복한다. 연거푸 물러나며 세이어가 고개를 저었다.
“둘이 하나가 되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물러서던 세이어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보고 싶어 하던 것은 아니다. 아케인 배리어.”
세이어가 순환 마력 방어를 거두고 순수한 마력의 장벽만을 쳤다. 레펜하르트의 돌진이 이내 가로막혔다. 쉴 새 없이 날리던 펀치와 킥, 폭풍 같던 공세가 거암에 가로막힌 것처럼 모조리 튕겨 나간다. 단 하나의 장벽, 그것을 레펜하르트의 오러 이상의 강도로 생성한 것이다.
공세가 가로막혔음에도 레펜하르트는 당황하지 않았다.
‘슬슬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 생각했지.’
몸을 틀어 길게 주먹을 뻗으며 마법을 발동한다.
“앱솔루트 디스펠 펀치!”
미리 예상하고 아까부터 준비해 두었던 술식이다. 계속 순환되는 마력장 상대론 하나 해제해 봐야 바로 다음 놈이 자리 차지하니 의미가 없는 수법이지만, 이 경우라면 충분히 먹힌다.
디스펠 펀치가 이내 아케인의 장벽을 무효화하며 그대로 파고들었다. 세이어의 코앞까지 들이닥치며 레펜하르트가 머리 위에서 수도를 내리쳤다.
“타아앗!”
세이어가 가볍게 오른손을 들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레펜하르트의 안색이 굳었다.
“윽?”
세이어의 빈약한 오른손이 두꺼운 그의 오른팔을 간단히 막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오른손에 깃든 마법의 힘에 가로막혔다.
레펜하르트의 거구를 올려다보며 세이어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렸다.
“마법 해제 수준은 이 정도인가?”
인상을 쓰며 레펜하르트가 뒤로 물러섰다.
“쳇, 어쩐지 방어장이 쉽게도 깨진다 했더니…….”
이제껏 세이어는 적당히, 레펜하르트도 감당할 만큼의 마력만을 부여해 방어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생각해 보면 권황 제라드의 일격도 충분히 감당했던 세이어의 방어장이었다. 순환 마력 방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쉽게 박살 날 수준일 리가 없었다.
‘제대로 마력을 쓰면 저 정도라 이거지.’
이번엔 세이어가 움직였다.
“일어나라, 서리의 돌풍이여…….”
강렬한 냉기의 바람이 얼음 파편을 동반한 채 불어닥쳤다. 저기에 휘말리면 피해는 둘째 치고 몸이 얼어붙어 움직임이 둔해진다. 뭐, 레펜하르트야 스파이럴 가드도 있고 마법도 있으니 얼마든지 상대할 방법이 있지만…….
“흠.”
그는 상대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 몸을 피했다.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이니야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백야의 눈보라!”
은빛의 오러를 휘날리며 이니야가 같은 냉기의 오러로 서리 돌풍을 상대했다. 오러를 정밀히 제어해 돌풍의 흐름 곳곳의 맥을 끊어 놓으니 저 강력하던 마법이 이내 사그라진다. 아무래도 냉기 쪽은 이니야가 전문이라, 레펜하르트보다 그녀가 막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이니야의 활약에 세이어가 인상을 썼다.
“그대를 보고자 함이 아니다.”
시큰둥하게 그가 손을 뻗었다. 시동어도, 아무런 마력 발동도 없이 일곱 줄기 파괴의 섬광이 이니야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시리스가 끼어들어 정령을 불렀다.
“나와! 테라투스!”
대지의 거인이 파괴의 섬광 앞을 가로막았다. 시리스가 오른손을 내밀며 대지의 정령에 검을 꽂았다.
“엘리멘트!”
순수한 정령력이 대지의 거인에 깃들며 방호력을 높인다. 섬광이 대지의 정령에게 적중해 폭음을 일궜다. 정령이 박살 나 사라지며 흙먼지가 풀풀 일어났다.
세이어가 재차 손을 내밀었다.
“귀찮게 구는구나!”
다시 예의 그, 파괴의 섬광이 쏟아져 두 사람에게 날아갔다. 서리 돌풍만을 해결한 뒤 이니야와 시리스는 섬광을 피하며 잽싸게 후퇴했다. 폭발 기둥 사이로 세이어를 노려보며 레펜하르트가 생각했다.
‘역시…….’
굳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공세를 피해 두 사람에게 맡긴 이유가 있었다.
자신을 상대할 때와 이니야, 시리스를 상대할 때는 세이어의 공격이 완전히 달랐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시험 수준, 그러나 두 여인에겐 절명하기에 충분한 위력의 공세를 펼쳤다.
‘뭔가 알아보려는 것임은 확실한데…….’
문제는 대체 뭘 알고 싶으냐다.
‘내 마법의 경지? 아니면 무인으로서의 전투력 수준? 어느 쪽이건 별로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건데?’
상대의 기량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물론 전투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건 어느 정도 대등한 관계에서나 필요한 법이다.
세이어는 이미 레펜하르트를 한 번 죽음 직전까지 몰았다. 이미 한 번 이긴 상대의 뭘 알고 싶어서 굳이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죽여 버리면 상대의 정보고 뭐고 알 필요도 없잖아?
‘물론 쉽게 죽어 줄 생각은 없지만.’
레펜하르트는 땅을 박찼다. 상대의 눈앞으로 돌진하며 동시에 준비한 마법을 발동시킨다.
“라이트닝 볼트! 파이어볼! 아쿠아 봄! 윈드 커터!”
지수화풍, 네 속성의 마법이 동시에 세이어의 방어장에 작렬했다. 뭐, 하나같이 하위 마법이라 작렬한다고 딱히 무슨 일이 생기진 않았다. 저 정도 하위 마법이니까 지금 레펜하르트의 연산력으로도 바로 발동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세이어가 당황했다.
“윽?”
속성을 섞어 터트리면 위력보다는 다른 쪽이 더 훼방이 된다. 마력 흐름이 난립해 감지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전투에서야 아무 짝에도 쓸모없지만 뭔가 파악하려는 놈 방해하기엔 딱이었다.
상대의 감각을 속이며 레펜하르트가 세이어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대지를 강하게 밟으며 큼직하게 일격을 날린다.
“아케인 제로 임팩트!”
충격을 관통시키는 짐 언브레이커블의 비기, 그것이 마력이 깃들어 방어장을 두들긴다. 아쉽게도 세이어를 두들길 수는 없었지만 대신 안쪽의 마력 방어가 흔들렸다. 그리고 방어 마력이 흔들리면 마법사 자신의 육체에도 영향이 간다.
“으음……”
처음으로 세이어가 신음 비슷한 것을 흘렸다. 아무래도 타격이 먹힌 모양이었다. 세이어가 다급하게 한 발로 땅을 찍었다.
쾅!
파문이 일며 빛의 장벽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닿는 모든 것이 백색 소금으로 변하며 장벽이 대지를 파헤쳤다. 감히 범접할 수 없어 레펜하르트와 이니야, 시리스가 뒤로 후퇴했다
셋을 물린 뒤 세이어가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좀 더 힘을 써야겠구나.”
다시 세이어의 등 뒤로 일곱 빛의 구슬이 형성되더니, 섬광이 되어 세 사람을 노렸다. 셋 모두 바로 공세를 피했다. 파괴의 빛이 대지를 두들기며 폭연의 기둥을 일궜다.
“어디, 맞서 보거라!”
흩날리는 먼지 사이로 세이어의 공격이 이어졌다.
불길이 거대한 칼이 되어 대지를 통째로 휩쓸고 전격의 폭풍이 사방으로 불어 뇌전을 떨어트린다. 뾰족한 얼음 기둥이 연신 솟아나 발밑을 노리고 그 사이로 파괴의 섬광이 화살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우아앗!”
“이런!”
시리스는 물론이고, 이니야조차도 사색이 되어 연신 공세를 피했다. 그야말로 고위 마법의 융단 폭격,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 모든 것이 불타고 부서지고 폭발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엘리멘트와 오러를 펼쳐 마법을 피하고, 튕기고, 흘리고, 일부는 막아 내며 두 여인이 바쁘게 움직였다.
반면 레펜하르트는 딱 하나만을 했다.
“스파이럴 가드!”
짐 언브레이커블이 자랑하고 전 대륙의 무인이 증오하는 전천후 신체 방어 수법, 스파이럴 가드.
이 수법의 가장 뛰어난 점은 속성 무시, 연타 무시, 집중된 파괴력은 알아서 흘려주는―내버려 둬도 팽이처럼 팽팽 도니까― 속 편한 방어법이란 거다. 그냥 펼치기만 하면 되고 딱히 머리 쓸 일이 없달까? 원체 머리 쓰는 데 약한 짐 언브레이커블다운 수법이다.
무시무시하게 쏟아지는 마법은 스파이럴 가드가 알아서 튕겨 준다. 덕분에 레펜하르트는 공세 중에도 마법을 준비할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양손을 좌우로 펼친 채 마법을 준비한다.
“이는 드리워지는 베일, 흐름을 막은 둑이자 기세를 꺾는 방패며…….”
세이어가 방금 보인 마법은 언령도, 시동어도 없었다.
물론 대마법사는 수준에 따라 하위 마법은 언령 없이, 심지어 초보적인 마법은 최소의 필수 연령이라는 시동어조차 생략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보인 마법의 위력은 적어도 7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이었다. 전생의 레펜하르트조차도 저런 마법을 시동어조차 없이 의지만으로 발현할 수는 없다.
‘그렇다는 건 저게 신성이거나, 아니면 아티팩트란 소리지.’
신성이면 몰라도 아티팩트라면 상대할 방법이 있다.
“은은히 날려 고요히 잠드는 소요의 이적이라…….”
강대한 10서클의 힘이 전신에 차오르며 스파이럴 가드가 사라진다. 아무리 권마합신이라도 10서클 마법을 오러와 융합할 수준까지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대신 10서클 특유의 마력장이 세이어의 공격을 막아 주었다.
이윽고, 레펜하르트가 양팔을 크게 떨쳤다.
“A.M.P 쇼크웨이브!”
4
파괴의 폭풍이 멈췄다.
모든 마법이 사라지고 모든 파괴 행위가 사그라졌다. 그저 폭연과 달구어진 공기만이 아까의 혼탁하던 광경을 증명할 뿐.
이니야와 시리스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레펜하르트 님이 하신 건가?”
레펜하르트는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저거, 저놈 마법이 아니었어.’
만약 이 파괴 행위가 세이어의 마법에 의한 것이었다면 이 A.M.P 쇼크웨이브는 쓸데없는 마력 낭비였겠지.
하지만 결과는 모든 마법의 정지. 적어도 열 개 이상의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었다는 의미다.
사방신의 유물을 체크하며 레펜하르트가 생각했다.
‘이걸로 10서클은 3번 남았나?’
주 3회 10서클 대마법사라는 칭호는 이미 버린 지 오래인 그다. 전생과 달리 지금 믿을 건 그저 사방신의 유물뿐, 그래서 레펜하르트도 시간 날 때마다 꾸준히 동조동기화를 통해 가용 마력을 높이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무려 주 4회 10서클 종사자인 것이다!
‘……이것도 뭐, 그리 자랑스러운 칭호는 아니다만.’
하여튼, 덕분에 세이어의 모든 아티팩트는 발동 불능이 되었다. 상당히 전력을 깎은 것이다.
그런데, 세이어는 오히려 만족한 듯 웃고 있었다.
“흐음, 이런 것이군.”
자신의 로브 자락을 내려다보며 세이어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원하던 것은 아니나, 이 또한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정보를 줘 버린 것 같다. 입맛이 쓰다.
레펜하르트가 도발하듯 물었다.
“그래, 좀 원하는 걸 얻으셨나?”
세이어가 쓰게 웃었다.
“아쉽게도, 그리 얻은 건 없군.”
겉보기와 달리, 사실 세이어는 지금 꽤 당황하고 있었다.
‘이 마법은 대체 뭐지? 대체 무슨 이론을 바탕으로 했기에 아티팩트가 죄다 정지되는 거야?’
전지全知의 영역와 연결해 고대의 지식을 총동원해 봤지만 이런 스타일의 마법은 찾을 수 없었다.
‘대체 뭔 이론인지 모르겠군.’
사실 세이어라고 레펜하르트의 10서클 마법을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레펜하르트의 마법 중엔 분명 은의 시대엔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룰 브레이커가 그것이다. 은의 시대에 존재하던 10서클 주문 중 저런 식의 마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적어도 이해는 가는 마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