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55
“신의 분노인 게야…….”
숨은 병사들이 공포 속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 그럼에도 흔들리는 대지와 가공할 파공음은 여전히 전신을 때리고 심장을 움켜쥔다.
함께 대피소에 피신해 병력을 지키던 아스레일이 저 멀리, 전장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폐하…….”
저 하늘 아래 자신의 왕이, 선택받은 여덟 명과 함께 인류의 신을 대항하고 있을 터였다.
곁에서 한 오크 여인이 중얼거렸다.
“나도 저기로 달려가고 싶군.”
아스레일이 오크 여인을 부드럽게 달랬다.
“안 된다는 걸 알잖습니까, 스탈라?”
“그야 그렇지만…….”
불만스러운 얼굴로 스탈라는 저 멀리, 뇌성이 터져 나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카탈란 가드를 박차고 나서고 싶다.
‘저기에 그놈이…… 남편을 죽인 그놈이…….’
하지만 그녀는 선택받지 못했다.
안타레스엔 많은 강자들이 있다. 지금 싸우는 여덟 말고도 스탈라며 하다툼, 유스테아 등 오러 유저는 충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레펜하르트는 이들까지 세이어와 싸우게 하진 않았다.
-잔혹한 말이 되겠지만, 그들은 도움이 안 돼.
단순히 이들이 약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스탈라가 시리스나 카를보다는 더 강하다.
그러나 레펜하르트의 전술엔 반드시 강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따지면 마켈린이나 실란도 필요 없지.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상황에 필요한 기술을 지닌 자여야 했다. 시리스는 총 전력은 스탈라보다 낮지만 정령술과 마법, 검술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다양한 상황 대응력이 있는 것이다. 카를은 다른 건 몰라도 방어력만큼은 아틸카나 레펜하르트급이다.
더구나 숫자가 많다면 오히려 연계를 해칠 위험이 컸다. 모든 것을 고려해 저 여덟이 뽑혔다.
“알아, 알고는 있지만…… 으으으…….”
머리론 이해해도, 눈앞에 원수가 있으니 몸이 달아오른다. 흥분한 스탈라를 아스레일이 다시 달랬다.
“진정하세요, 당장이라도 왕께 달려가고 싶은 건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 출격했지만 카탈란 가드엔 상당수의 실베릭 나이츠와 브론즈 나이츠가 상주 중이다. 트롤 구루 중에서도 강한 이들이 꽤 있다. 경지에 오른 엘프 정령사도 그 강함은 무시 못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세이어와의 전투에서 쓸모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설프게 숫자로 밀어붙여 봐야 피해만 커질 뿐이다.
일격에 다수를 쓸어버릴 수 있는 세이어에게 수적인 물량 공세는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레펜하르트는 다른 걱정도 하고 있었다.
-내가 했던 짓을 저놈이 못하리란 법도 없고.
브론즈 나이츠의 저 강력한 마갑은 레펜하르트의 마법으로 몽땅 기능 정지시키고 빼앗은 것이다. 만약 세이어가 비슷한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기껏 빼앗은 수백의 무구를 도로 뺏길 수도 있다.
카를의 엘드릴 기간투스는 너무도 월등한 방어력 때문에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 연계에 끼웠지만 나머지는 요새에 대기시켰다. 사실 세이어는 A.M.P 쇼크웨이브 보고 경악하고 있었으니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레펜하르트로서는 당연한 대응이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현재 요새에 남은 이들이 임무였다. 머리론 납득했지만 역시 울분이 끓는다.
“제기랄!”
욕설을 내뱉는 스탈라를 아스레일은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이 자리에 남은 것에 별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
‘어차피 내 실력으로 저기 끼긴 무리지.’
오러 유저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월적인 마갑을 받지도 않았다. 그저 뛰어난 기량을 지닌, 그러나 엄연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현재의 자신이다. 그런데도 함께 싸우게 해 달라고 설칠 만큼 아스레일은 주제 파악 못 하는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따로 그에게 주어진 임무만큼은 역시 불만이었다.
‘아, 폐하는 대체…….’
오크의 호전성은 익히 알려진 것, 아무리 명령을 내렸다 해도 언제 거역하고 제 성질대로 뛰쳐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레펜하르트는 따로 아스레일을 불러 특명을 내렸다.
-자네가 오크들의 움직임을 억제해 주게! 쟤들 제때 설득할 수 있는 이가 자네밖에 없어!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적어도 오크 대하는 방식은 스스로도 나름 자신이 있는 아스레일이었다. 이 임무가 막중하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일국의 기사단장이 맡을 임무는 아니잖아.’
어쩌면 폐하는 자신의 검보다 자신의 혀에 더 기대를 걸고 있는 게 아닐까? 무인으로서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기량이 별 볼 일 없으니 불만을 터트릴 자격도 없고.
“휴우…….”
한숨을 쉬며 아스레일은 검 자루를 꾹 쥐었다.
‘아직은 모자라지만 반드시…….’
아직은 약하다. 아직은 왕의 곁에 설 수 없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러진 않을 것이다.
기필코 힘을 길러 저분의 곁에 서겠다!
각오를 다지며 아스레일은 투지를 불태웠다. 매서운 눈빛이 저 멀리, 전장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이제까지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수천 번의 우레가 동시에 떨어진 것 같은 가공할 폭음이었다. 기겁하며 아스레일이 스탈라를 돌아보았다.
“이건 뭐죠?”
스탈라가 납작코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뭔가…… 결판이 난 것 같군.”
☆ ☆ ☆
주먹을 뻗은 채, 레펜하르트는 신음을 흘렸다.
“크으윽!”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강철 같던 피부가 쩍쩍 갈라져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바위 같던 근육은 뒤틀려 형태가 일그러져 보일 정도다. 마치 거대한 통 안에 사람을 넣고 마구 뒤흔든 것 같은 참상이었다.
불굴의 육체, 언브레이커블이라고 불리는 육신이 저토록 망가진 것이다. 그것도 공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한 입장에서!
그가 날린 권마합신, 7중첩 캘러미티 혼의 반발력 때문이었다.
‘아, 역시 열두 배는 오버였나?’
이니야와 아틸카의 안개를 날리는 순간, 세이어는 마력을 크게 방출해 넓게 퍼트렸다. 그의 의식이 안개를 날리는 것에 완전히 쏠리며 유지하고 있던 방어장이 최대로 약화되었다.
그 순간야말로 레펜하르트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이었다.
캘러미티 혼에 깃든 오러의 힘은 당장 파괴력을 높이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에 깃든 마력 출력은 높일 수 있다.
바로 ‘초월자의 권세’를 발동시켰다. 평소 유지하던 여덟 배에서 한계인 열 배를 넘어, 육체 파괴를 각오하고 열두 배까지 폭주시켰다. 마법사이던 시절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 그러나 제라드의 가르침은 달랐다.
-반격당할까 봐 힘 남기고 때리느니, 기회 왔을 때 전력으로 날려서 한 방에 눕혀라. 깨작깨작 뒷생각하면서 싸워서야 싸움이 끝나겠냐? 뒤를 걱정하는 이에게 끝은 오지 않는 법이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크으, 역시 아파 죽겠네…….’
전신을 사로잡는 고통에 레펜하르트는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을 건 보람이 있었다.
“으으…….”
잔뜩 일그러진 세이어의 얼굴이 보였다. 그 아래 연결된 목과 가슴도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두 팔도 보였다.
그 이후는 보이지 않았다. 허리 아래쪽,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간 것이다.
“또 이런 꼴을 당하다니…….”
극심한 분노와 굴욕으로 세이어는 마치 악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육체의 절반을 잃고 대부분의 마력조차 사라졌다. 간신히 남은 마력으로 생명줄을 잇고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세이어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육체 통증 대부분을 차단해 고통을 대폭 완화시키고 있는 덕이었다. 물론, 그 완화시킨 고통조차도 전신을 칼로 쑤시는 격통이겠지만.
“크으으으…….”
신음 속에서 세이어가 러스 일행에게 눈을 돌렸다.
“잘도 이런 짓을 했구나, 고작 저따위 것들을 이용해서…….”
분명 자신과 비교도 안 되는 약한 이들이었다. 레펜하르트는 제법 인정할 만했지만 역시 세이어에 비하면 상당한 약자였다.
그런데 휘말리고 휘말리다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이 꼴이다…….
“……이건 방심했다고 할 수도 없겠군.”
갑자기 세이어가 레펜하르트를 빤히 보았다.
“그런데 궁금하구나. 그대는 이미 알 것이다.”
순간 그의 전신에 희미한 빛이 맴돌았다.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미 세이어는 레펜하르트에게 똑같은 꼴을 한 번 당했다. 그리고 당시 이미 레펜하르트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자신은 신. 불멸의 존재다.
세이어가 흉악하게 웃었다.
“이래 봤자, 처음부터 다시 시작일 뿐이거늘.”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다시 시작 따윈 없다.”
세이어의 눈에 의문의 빛이 맴돌았다. 레펜하르트가 고함을 터트렸다.
“마켈린! 실란!”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이 가공할 성광을 내뿜었다.
“알 포트시여! 권세를 내려 주소서! 축복을 내려 주소서! 앞날을 예비하시고 은혜의 가호를 내려 주소서!”
“필라넨스여!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소서! 그대에게 닿게 하소서! 우리의 미욱함을 돌보시며 우리 앞날을 밝히소서!”
쉴 새 없이 기도를 올리며 신성력의 빛을 사방에 퍼트린다. 가공할 성광이 세이어와 레펜하르트 일행을 모조리 덮으며 반경 수십 미터를 에워쌌다.
세이어가 눈을 깜빡였다.
‘뭘 하자는 거지?’
두 사람의 기도는…… 그냥 기도였다.
딱히 무슨 신성 주문을 골라 발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저 강렬한 신성력으로 자신이 믿는 신과 여신에게 끝없이, 계속 쉬지 않고 기도를 올리고 또 올린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
세이어는 무시하고 마저 신성을 끌어 올렸다. 뭔 짓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서 육체를 복구해야 한다.
그때였다.
‘응?’
세이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신성과 연결이 되질 않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