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56
처음으로 세이어가, 진심으로 경악해 레펜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인류의 신이, 진심으로 공포에 질려 하찮은 인간을 바라보았다.
“안 되지?”
레펜하르트는 빙그레 웃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네놈들은 너무 정보를 노출했다.”
은의 현자가 부활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들은 진짜 세이어처럼, 세이어와 똑같이 모든 상처와 피로를 없애도 재차 부활했다.
그때 레펜하르트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은의 현자들은 그냥 인간이지. 그러니 인간의 육신으로 싸우다 신의 힘으로 그 지치고 부상당한 육신을 치료했지.’
의문이 생겼다.
‘그럼, 어째서 신인 세이어도 똑같은 방식으로 부활한 거지?’
세이어는 신이다. 신성이 신의 권능이라면, 그 힘은 언제나 세이어 속에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저 논리대로라면 모든 공격이 아예 먹히지 않아야 정상이지, 먹혔다가 없어지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세이어가 지닌 신의 힘과, 인간의 육신을 입은 세이어가 별개로 떨어져 있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사실은 신이 아니라 신의 힘을 제한 없이 얻어 쓰는 존재일까? 아니면 신인 건 맞지만 화신, 아바타 같은 상태라서 필요할 때마다 원래 힘과 연결해 써야 하는 걸까?’
어느 쪽이건 간에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
‘세이어는 필요할 때마다 신성과 연결해, 그 신성을 끌어다 쓰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방식은 은의 현자가 부활하는 방식과 비슷할 가능성이 높았다. 결과가 같다면 원인도 같다는 것이 타당한 사고방식이다. 여기에서 레펜하르트는 세이어의 부활을 막을 방법을 찾아냈다.
“신성, 그건 도무지 뭔지 모르겠더군. 감도 안 잡혀.”
부상 속에서도 레펜하르트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신성과 연결하는 방법은 좀 알겠더라고.”
은의 현자들이 사용했던 부활 방식, 그것은 변질된 신성력에 의한 것이었다. 신과 소통하는 힘을 이용해 자신의 상태를 보고하고, 그에 걸맞은 축복을 받는 것.
“신성을 막을 수는 없어도, 신성력을 막을 수는 있거든?”
신성력.
신과 소통하는 이 힘은 비유하자면 이것과 같다.
아이들이 작은 방에 모여 놀고 있다. 그러다 한 아이가 배고픔을 느낀다.
그 아이는 엄마를 부른다. 큰 목소리로, 익숙한 자식의 음성을 내며.
그러나 그 작은 방에 엄마는 직접 들어갈 수 없다. 창문을 통해 먹을 것을 넣어 줄 수도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그래서 그 엄마는 대답하는 대신 방을 관리하는 선생님을 움직인다.
-배고파하는 내 자식에게 빵 한 덩이를 주세요.
선생은 엄마의 요구대로 아이에게 빵을 주고, 아이는 배고픔을 이겨 낸다.
이것이 바로 신관이 신에게 기도해, 신성 주문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이다.
반면 세이어나 은의 현자의 그것은 좀 달랐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아이의 요구는 좀 달랐다.
-엄마! 쟤가 나 때렸어! 대신 혼내 줘!
엄마가 방 안에 들어가는 것은 규칙 위반이다. 엄마가 대신 다른 아이를 혼내 주는 것도 규칙 위반이다.
그런데 저쪽의 엄마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것이 바로 신성의 힘이다.
일단 어른이 나타나면, 아무리 아이가 용을 써 봐야 어른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신성과, 현세에 몸을 둔 레펜하르트 일행의 역량 차이다.
그러나…….
“엄마를 못 부르게 할 수는 있지.”
저쪽 엄마가 뭐가 다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아이가 불러야 나타나는 것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부르는 방식은 다른 아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큰 소리로, 자식의 음성을 이용한.
마켈린과 실란이 한 짓은, 저 아이가 울며 엄마를 부를 때 똑같이 울부짖으며 자기 엄마를 찾는 것과 비슷했다. 여러 아이의 울음이 혼선되며 아이 하나하나의 음성은 흐려지고, 엄마 입장에선 과연 어느 집 자식이 어느 엄마를 찾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물론 어지간히 크게 울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 그러니 다른 신을 모시는 이들끼리 모여 신성 주문을 써도 이런 일은 사실 일어나지 않고.”
그러나 마켈린과 실란 정도의 신성력을 지닌 이가 전력을 다해, 자신의 모든 신성력으로 오직 신과 여신에게 호소하기만 할 뿐이라면?
“저 정도 전달력과 전파력이라면 충분히 네놈의 연결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다행히 예상대로군.”
세이어는 눈을 깜빡였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고통조차도 잊고 있었다.
“……그런 문제가 있었나?”
레펜하르트의 이론은 신인 자신조차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발상이었다. 아니, 은의 시대에서도 있을 수 없는 발상이었다.
‘아, 그건 당연하겠군. 그땐 신관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으니…….’
하여튼, 저대로라면 자신이 신성과의 연결이 끊어진 것도 당연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세이어는 웃었다.
“그렇군. 이해했다.”
‘웃어?’
레펜하르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분명 궁지에 몰았는데도 세이어는 오히려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이었다.
“그럼 그것에 대해선 네놈도 모르는 것이군. 이걸로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방식을 쓰지도 않았겠지.”
‘무슨 소리지?’
당황스러워 레펜하르트는 침을 삼켰다. 혹시 이걸로 끝이 아닌 건가? 뭔가 숨겨둔 수가 또 있었나?
‘그럼 이쪽은 진짜 대책 없는데?’
러스 일행도 당황하며 레펜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연습한, 예상한 부분은 여기까지였다. 여기서 뭔가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때부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갑자기 세이어가 희미한 빛을 거두었다.
“축하한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가 레펜하르트며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건넸다.
“이 전투는 그대들의 승리다.”
비아냥이라기엔 너무 진지한 음성, 이변은 직후에 일어났다.
파사삭!
세이어가 박살 났다.
간신히 마력으로 버티고 있던 남은 육신, 그것이 갑자기 땅으로 뚝 꺼진다. 동시에 사방으로 피를 뿌리며 조각난다. 캘러미티 혼을 맞은 평범한 인간의 육신이 응당 그리되듯, 그대로 가루가 되어 녹아내린 대지 위로 흩뿌려진다.
“…….”
레펜하르트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머릿속이 텅 빈 기분이었다.
세이어가 죽었다.
누가 봐도 확실하게 가루가 되었다.
“……뭐야, 이거?”
☆ ☆ ☆
인류의 신, 세이어는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음…….”
“……이긴 걸까요?”
“인류의 신이 죽은 겁니까?”
시리스와 이니야, 러스가 서로를 보며 허망한 음성을 흘렸다. 타시드가 버럭 성을 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틸카가 헛웃음을 흘렸다. 주위를 둘러보며 그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진짜로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분 있습니까?”
모두들 고개를 저었다.
다들 전투라면 이골이 난 이였다.
패배한 이,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의 표정과 태도 역시 익숙한 이들이다.
이니야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건 아니에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절대 아니야…….”
반면 카를은 조금 반응이 달랐다.
“뭐, 신이잖습니까? 신은 원래 저렇게 죽는 걸지도 모르잖습니까?”
레펜하르트가 핀잔을 던졌다.
“카를, 자네는 신이 죽었다고 판단하는 건가, 아니면 신이 죽었다고 믿고 싶은 건가?”
“부끄럽게도…… 후자임을 부정 못하겠군요.”
얼굴을 붉히며 카를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너무도 강력한 적이었다. 그렇기에 잠시라도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그런 어리석은 착각을 하기엔 너무 겪어 온 것이 많다.
“가루가 된 것부터가 이상해. 죽었으면 그냥 시체 상태로 뚝 떨어져야지, 왜 가루가 돼?”
“그렇죠?”
“하지만 어쨌거나 죽은 건 맞지 않나요? 혹시 세이어란 자는 육체가 여러 개인가요?”
확실히, 신화를 보면 신이 여러 화신의 모습으로 세상에 현현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니야의 질문에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 것 같소. 일단 저 육체는 원래 내 것이 맞는 듯하니.”
그러지 않고서야 허차원에서 드림 다이브를 시전했을 때, 자신이 테스론과 조우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또 본인 입으로도 육체 구하느라 힘들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었으니 그리 쉽게 육체를 옮겨 다닐 수 없다는 것도 맞을 거요.”
“그럼 뭐죠, 이건?”
시리스의 혼잣말은 여기 모인 모두의 심정이나 같았다. 레펜하르트는 이를 악물었다.
‘뭐냐…….’
또다. 그동안의 정보로 어떻게든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모르는 것이 나왔다.
모자라다.
지식이, 정보가 모자라!
“내가 모르는 뭐가 또 있는 거냐?”
4
강철의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
그 속에 수십 개의 원통형 수조가 나란히 놓여 있다. 수조마자 혼탁한 액체가 가득 차 기포를 끝없이 피워 올린다.
부글, 부글, 부글.
그 수조들 사이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너무 말라 광대뼈가 드러난 얼굴, 퀭해서 시체처럼 보이는 눈동자, 푸석푸석 윤기를 잃은 머리칼에 거친 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