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6
‘함부로 치면 죽을 것 같아서 이거…….’
주먹으로 치면 반드시 죽을 테니, 그는 빼앗은 조악한 창 자루를 거꾸로 들어 몰려오는 병사들을 대충 후려갈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다들 여기저기가 퍽퍽 부러지며 비명을 내지르는데, 이러다 잘못해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거 아닌가 싶다.
이들은 진짜 아무 죄도 없는 이들이다. 게다가 검에 목숨을 건 이들도 아니니 마법사로서나 무인으로서나 이들의 목숨을 앗는 일은 그의 사고방식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도둑놈 잡아라!”
“잡아라!”
“우어어어!”
켈베른 자작이 꽤 인망이 좋았는지, 동료들이 퍽퍽 쓰러지는데도 도망치긴 커녕 다들 분노에 불타 레펜하르트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조심조심, 몽둥이질 하나에도 신경을 쓰며 레펜하르트는 계속 외성으로 후퇴했다. 어차피 원하던 엘류시온의 목소리는 손에 넣었으니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었다.
그때, 외성 쪽에서도 한 무리의 병력이 나타났다. 제대로 갑옷을 걸치고 무장을 한 기사들이었다. 테네스 기사단 중 외성 경비를 하고 있던 대기 병력이 곧바로 출동한 것이다.
역시 일반 병사와 달리 그들은 바로 포위망을 구축하고 레펜하르트를 에워쌌다. 진형이 촘촘해 레펜하르트도 일순 도주로를 찾지 못했다. 그가 주춤하는 사이, 기사단에서 한 중년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기사단장, 로트 경이었다.
“꼼짝 마라, 이 악적!”
검을 겨누며 로트 경이 중후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레펜하르트가 입술을 비틀었다.
‘아니, 그래도 아무도 안 죽이고 나름 인도적으로 잠입했는데 악적이라니!’
뭐, 도둑놈이 무슨 변명을 해 봐야 도둑놈이다. 복면 쓴 주제에 억울해할 것도 없지.
쓴웃음을 지으며 레펜하르트는 포위망을 살폈다. 기사들이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열 명의 마법사와 신관 여섯 명이 포진하고 있었다. 연계가 빠른 걸로 보아 엘류시온 유적 탐사대의 일원인 것 같았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는 이내 냉정을 되찾았다.
‘에잉, 어차피 이런 상황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잖아?’
어차피 그의 계획에는 도중에 들켜서 도주하는 상황도 상정했었다. 당황할 필요 없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좀 미안하지만 싹 때려눕히고 황금기사 뜨기 전에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다!
“하아아압!”
갑자기 레펜하르트가 우렁찬 기합을 내질렀다. 기합이라기보단 오히려 포효에 가까운 고함이었다. 순간적으로 기사들이 움찔하는 사이, 그가 땅을 박차고 포위망 한 쪽으로 달려갔다.
“이런!”
로트 경이 당혹 섞인 외침을 터트렸다. 어느새 레펜하르트가 포위망을 구축하는 두 명의 기사를 향해 연거푸 옆차기를 날리고 있었다. 둘 다 방패를 들어 제대로 방어했지만, 방어한 자세 그대로 허공으로 날려 가 버렸다. 무슨 공성추에라도 맞은 듯한 무지막지한 위력이었다. 기겁하며 로트 경이 소리쳤다.
“모두 자리를 지켜라! 마법사들이여! 원호를!”
안 그래도 마법사들은 이미 주문 영창에 들어가고 있었다. 저마다 전격이며 화염, 냉기의 화살을 구현해 레펜하르트에게 쏘아 댔다. 날아오는 각종 마법의 향연에 레펜하르트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곁의 기사를 노려보았다.
“정말 정말 미안하오!”
“응? 뭐가?”
순간 기사는 당황했다. 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건가? 하지만 그는 이내 해답을 깨달았다.
레펜하르트가 말을 마치자마자 불쑥 그에게 접근하더니 뒷목을 붙잡고 들어 버린 것이다. 짐 언브레이커블 전통의 사람 들기 수법, 일명 ‘새끼 고양이 물고 가는 어미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기사를 들더니 레펜하르트가 그대로 날아오는 마법을 향해 기사를 내밀었다. 갑옷 입은 기사를 그대로 방패로 써먹은 것이다.
“으어억!”
전격이며 폭염, 얼음 화살에 정통으로 명중당한 기사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마법은 그의 갑옷에 닿자 스스로 소멸해 버렸다. 성직자들이 걸어 준 항마의 가호가 마법사들의 마법을 상대로 발동한 것이다.
로트 경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사람을 방패로 쓰다니, 이 무슨 패악 무도한 짓이냐!”
‘아니, 나도 갑옷에 가호 걸린 거 다 알고 한 짓인데.’
레펜하르트가 속으로 변명을 해 댔지만, 그래도 그가 생사람 붙잡아 방패로 썼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기사들이 분노에 차 돌격해 왔다. 방패를 앞세워 검을 찔러 오는 기사들의 공격에 레펜하르트는 연거푸 뒤로 후퇴했다.
로트 경이 재차 소리쳤다.
“화살을 쏘아라!”
어차피 화살 따윈 안 먹히는 몸이다. 그래서 레펜하르트는 날아오는 화살에 대해서는 싹 무시했다. 그런데 정작 화살을 맞아 보니 이게 보통 화살이 아니었다.
“윽! 뭐야, 이거?”
화살 끝에 쇠사슬이 달려 있고, 촉에는 끈적한 액체가 발려 있다. 접착력이 강한 칼리 나무의 수액을 화살 끝에 바르고 쇠사슬을 연결시킨 것이었다. 강력한 유적의 악마 중에는 어설픈 창칼이 통하지 않는 것들이 많으니 테네스 기사단은 이런 식의 무기도 구비하고 있었다.
십여 개의 사슬 화살이 레펜하르트의 전신에 적중했다. 끈끈한 액체가 화살을 고정시키고, 그에 매달린 쇠사슬을 기사들이 붙잡고 잡아당겼다. 일순 레펜하르트의 움직임이 묶여 버렸다.
그의 두 눈에 불길이 일었다.
“흥! 이까짓 거!”
레펜하르트가 거칠게 두 팔을 휘둘렀다. 아예 사슬을 든 기사 채로 휘둘러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시 기사들은 그것 또한 예상한 모양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사슬을 놓고 레펜하르트에게로 돌진하고 있었다. 이 사슬 화살은 그를 포박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잠시 움직임을 제한시키려는 것에 불과했다.
기사들이 다시 방패를 앞세워 접근해 온다. 레펜하르트도 방패 위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이번에는 아까처럼 시원하게 뒤로 날려 가지 않았다. 성직자들의 가호가 깃들어 있어 다들 신체 능력이 상당히 향상된 후였다.
“가하르 경! 앞으로!”
“조드! 원호를!”
로트 경의 명령에 따라 포위망을 구축한 채 기사들이 빙빙 돌며 공격을 가해 왔다. 사이사이 사슬 화살이 날아오고 쇠사슬로 팔다리를 묶으려는 시도도 있는가 하면, 간간히 커다란 그물도 날아오고 있었다. 물론 특유의 괴력으로 모두 부수고 찢어 버렸지만 그러다 보니 단련한 이 육체도 점차 피로에 좀 먹기 시작한다.
레펜하르트가 식은땀을 흘렸다.
‘이것들, 만만찮은데?’
이들은 팔톤 유적에서 만났던 알티온 후작가의 기사들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기사로서의 역량은 알티온 기사단이나 테네스 기사단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마검사인 유서스를 따르는 이들이다. 그래서 다른 기사들에 비해 도구의 힘을 빌리는 데 거부감도 적은 것이다. 귀한 마법 무기를 소지할 정도는 아니지만, 보통은 사냥꾼들이나 쓸 법한 그물이나 포박용 사슬 병기도 거리낌 없이 쓰고 있었다.
남의 일이었다면 융통성 있는 훌륭한 자세라며 칭찬했겠지. 하지만 막상 자기가 당하니 절로 이가 갈린다.
‘젠장! 기사 주제에!’
그렇게 레펜하르트는 테네스 기사단을 상대로 계속 전투를 벌였다. 아무리 전술적으로 우위에 있다곤 해도 레펜하르트는 오러 유저, 테네스 기사단으로서도 뚜렷하게 결정타를 먹일 수가 없었다. 그저 포위망을 유지한 채 시간을 끄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사실 이것이 테네스 기사단의 대표적 전술이기도 했다. 유적의 강력한 악마를 상대할 경우 되도록 시간을 끌며 인명 피해를 줄인 채 유서스에게 필살의 기회를 안기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레펜하르트를 무슨 유적의 악마 대하듯이 상대하고 있었다.
시간 끄는 데 도가 튼 놈들을 상대하니 레펜하르트도 영 몸을 빼낼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한참 그가 초조해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포위망 한쪽에서 웬 청년 기사 하나가 방패를 버리더니 검만 들고 달려오는 것이다.
“이 악적! 테네스의 검을 받아라!”
‘응? 뭐야, 저 병신은?’
멀쩡한 포위망을 일부러 흐트러트리며 돌진해 오다니? 순간 레펜하르트조차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의 입장에선 참 반가운 사태다. 잽싸게 그가 청년 기사를 향해 마주 달렸다.
그러던 중이었다. 청년 기사의 얼굴을 본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어라? 왠지 낯이 익은 녀석인데?’
묘하게 낯은 익은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저 멀리서 로트 경의 분통 가득한 외침이 들려왔다.
“러스! 대형을 유지해라!”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냥 기분 탓인가? 그렇게 잠깐 의아해하는 찰나였다. 청년 기사, 러스가 그를 노리고 검을 내려 베었다.
“타아앗!”
순간 안이하게 생각하던 레펜하르트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헉!’
움직임도 호흡도 스텝도 평범하던 기사였다. 그런데 그 순간의 내려 베기만큼은 보통이 아니었다. 오러 유저인 란타스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움직임이다!
번쩍!
세상을 통째로 가를 듯한 기세로 검광이 허공을 갈랐다.
표현은 뭔가 그럴듯했지만 결국은 빗맞혔단 소리다. 제대로 맞혔으면 허공이 아니라 레펜하르트를 갈랐어야지.
몸을 트는 것만으로 간단히 공격을 피하며 레펜하르트는 바로 러스의 옆구리에 미들 킥을 가했다. 물론 레펜하르트는 견제를 위해 날린 일격이었다. 방금 전의 검격을 볼 때 설마 이 정도 공격이 맞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커어억!”
정통으로 공격이 들어가 버렸다.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러스의 모습에 레펜하르트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야, 이 자식?’
분명 내려 베기만큼은 완벽했다. 그래서 내심 경각심을 가지고 상대했다. 그런데 어째 그 이후의 동작은 다시 별것 없었다.
‘참 언밸런스한 놈일세.’
하여튼 덕분에 포위망에서 빠져나왔다. 레펜하르트는 화색이 되어 성벽 쪽으로 달려갔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자, 그럼 탈출을!’
그렇게 막 그가 몸을 날려 성벽을 뛰어넘으려던 차였다.
“창공의 칼날, 허공을 찢노라!”
우렁찬 외침과 함께 강렬한 바람의 칼날이 날아와 그를 직격했다. 그 위력은 레펜하르트에게 상처를 주기엔 모자랐지만, 막 날아오르던 기세를 꺾기에는 충분했다. 허공에서 적중당하니 채 힘을 줄 방편이 없다. 다시 성벽 안쪽으로 추락하며 레펜하르트가 자세를 잡고 착지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며 이를 갈았다.
“젠장!”
이 마법을 날린 이가 누구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러 유저의 감각권은 눈보다도 확실하게 상대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라임의 황금기사…….”
전신이 금빛으로 빛나는 갑주를 걸친 기사, 유서스 테네스가 마갑 엘드라드를 걸친 채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 ☆ ☆
검을 들어 자세를 갖춘 채, 유서스는 곁눈질로 내성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태풍이라도 휘몰아친 듯 여기저기 박살 난 흔적과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켈베른 자작가의 병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테네스 기사단도 그리 사정이 다르진 않았다. 반쯤 무너진 포위진 사이로 피 흘리는 소중한 부하들의 모습이 보였다.
절로 상대의 무위에 경탄이 나왔다.
‘……이쯤 되면 자작가의 경비를 탓할 수도 없겠군.’
흩어진 사슬 화살이며 찢어진 쇠 그물 등을 보면 사태는 명확했다. 테네스 기사단은 분명 제대로 진영을 갖추고 제 실력을 모두 발휘해 침입자를 상대했다. 그런데도 당해 내지 못했다. 그러니 평소 일반인일 뿐인 자작가의 병사들이 상대가 될 리가 없지.
‘대체 누구지?’
의구심 속에서 유서스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검은 복면을 쓴 흑의의 사내가 말없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였다. 어디 가서 키로 꿀리지 않았던 유서스지만 저 사내와 비교하면 주먹 두어 개는 더 작아 보였다. 게다가 단순히 덩치만 큰 것이 아니었다. 전신이 놀라울 정도로 단련되었음이 옷 위로도 확연히 느껴졌다.
저 정도 실력이면 이름 없는 자일 리가 없다. 본인이 상당한 명성을 지니고 있든가, 그게 아니더라도 상당히 명성 있는 자의 후예가 분명하다.
검을 겨누며 유서스가 입을 열었다.
“야밤에 남의 집 담 넘기엔 지나친 실력이군, 당신.”
레펜하르트가 씁쓸해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사정이 좀 있어서.”
유서스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목소리가 상당히 젊었다. 아무리 높게 쳐도 자신보다 윗줄은 아니다. 그럼 저런 젊은 나이로 이 정도 실력을 갖추고 있단 말인가?
더더욱 상대의 정체에 대한 경각심이 강해진다. 마검 엘드란을 고쳐 쥐며 유서스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 사정, 나중에 천천히 들어 봐야겠군.”
그래, 나중에. 두꺼운 사슬로 꽁꽁 묶어서 엄중한 감옥에 가두어 놓고 말이지.
레펜하르트의 등 뒤로도 보이지 않는 투기가 서서히 피어올랐다.
“미안하지만 담화는 좀 더 미루자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교차했다. 투기와 투기가 얽혀 강렬한 기운을 흘린다. 고요한 침묵 속에,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한 섬뜩한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모두가 숨을 멈추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그 순간.
“타압!”
“허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이 동시에 땅을 박차며 허공에서 격돌했다.
짐 언브레이커블의 가르침은 선수 필승, 애매하다 싶으면 일단 덤비고 보라는 식이다. 레펜하르트가 보기에 유서스의 실력은 충분히 애매했고, 그래서 그는 당연히 이번에도 먼저 몸을 날렸다.
그런데 문제는 테네스 백작가도 상당히 선수 필승을 신봉한다는 점이었다.
막 공격을 날리는 그 순간 상대도 함께 달려오니 유서스도 레펜하르트도 순간 당황해 버렸다. 찰나의 순간 참격과 스트레이트 펀치가 서로의 급소를 향해 날아가는데, 이건 완전히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무식한 공격이다.
‘윽!’
‘이런!’
레펜하르트가 허겁지겁 허공에서 몸을 틀어 펀치를 거두며 참격을 피했다. 유서스도 놀라며 검을 거두고 펀치의 궤도에서 몸을 빼냈다. 이것도 마치 서로 짠 듯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뭔가 웃기는 광경이 되어 버렸다. 막 죽일 듯이 달려들더니 코앞에서 갑자기 몸 사리며 뒤로 도망치는 것이다. 그것도 둘 다 동시에!
“……유서스 님이 뭐 하시는 거지?”
“……저 도둑놈은 또 왜 저러는 거야?”
검을 거둔 채 유서스는 다시 간격을 벌렸다. 등 뒤로 부하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오는데 이거 영 얼굴이 화끈거린다. 상대 역시 비슷한 기분이었나 보다. 복면 사이로 비치는 눈빛을 보니 쪽팔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둘 다 서로를 향해 실소를 흘렸다.
“꼬였군.”
“꼬였네.
하여튼 지금이 무슨 친선 대련도 아닌데 이런 훈훈한 눈빛 따위 나누고 있을 처지는 아니지. 유서스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