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60
“1400년 만에 겨우 찾은 소중한 행성을 어쩌고 어째?”
그러나 저런 의견조차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가열된 것은 사실이었다.
드란칼 2세의 한숨 섞인 혼잣말이야말로 현 분위기를 명확히 보여 준다 하겠다.
“새로운 만남이 기쁘긴 개뿔!”
어전御殿의 과열된 분위기를 피해 뒤뜰을 산책하며 드란칼 2세가 허공에 뇌까렸다.
“알 포트.”
허공에서 빛이 응집하며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수북한 검은 수염에 짧고 탄탄한 체구, 모성의 전설이나 동화 속에서 나오는 환상의 종족 드워프의 모습이다. 엘디아와 마찬가지로 알하트란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자율성 중앙 관리 시스템의 메인 프레임, 알 포트였다.
입체 영상, 알 포트가 진중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하명하십시오, 폐하.”
엘디아처럼 알 포트 역시 원래는 모성의 유명한 영화 캐릭터 중 하나였다. 그리고 같은 영화의 두 캐릭터가 두 이민 선단의 마스코트가 된 것은 사실 우연이 아니었다.
이민 선단을 제작하던 당시 인류는 모두가 힘을 합쳐 마학과 기술, 과학의 힘을 총동원했고 그 와중에 많은 교류가 있었다. 그 와중에 남성 비율이 높던 서부의 시스템 엔지니어 측이 엘디아를 중앙 시스템의 마스코트로 삼자, 여성 비율이 높던 동부 쪽이 경쟁 심리로 영화 속 라이벌 캐릭터인 알 포트를 마스코트로 삼은 것이다.
비록 드워프긴 했지만 영화 속 알 포트는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제일 섹시한 난쟁이’라는 유쾌한 별명마저 있었을 정도다.
전형적인 이상형 타입인 엘디아에 비해 알 포트는 마니악한 인기가 많은 타입이었고,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은 원래 취향이 마니아에 가깝다. 별 고민도 없이 알 포트를 중앙 관리 시스템의 인격 형상체로 입력해 버렸다.
인류의 미래가 걸린 국책 사업의 마스코트를 제작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해 버리다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는 멸망을 코앞에 둔 시대, 그까짓 마스코트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었다.
괜히 트집 잡아서 개발 늦어지기라도 하면 수억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데? 드워프가 아니라 삼두육비의 괴물을 마스코트로 삼았어도 가동만 잘되면 문제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무사히 모성을 탈출한 후에도 중앙 시스템의 디자인은 변동이 없었다. 탈출 초기에는 개발자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감히 손을 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선 다들 너무 당연히 여겨 손댈 필요를 못 느꼈다. 그렇게 알 포트는 아득한 세월 동안 알하트란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알하트란의 모든 것이 집약된 눈앞의 입체 영상을 향해 드란칼 2세가 명령을 내렸다.
“이 사태에 대한 대처법을 분석하라.”
알 포트는 모성의 모든 것을 담은, 거기에 1400년 동안 알하트란의 신민들이 쌓아 온 정보까지 총 집약된 거대한 지식의 우물이다. 단지 그 지식 속에 지혜는 없다. 인공 지능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렇기에 어전에서 지금도 저리 토론을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참고할 가치는 충분하다.
알 포트가 대답했다.
“다섯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알하트란의 신민들이 원하는 것, 가장 이로운 것, 가장 현실적인 것, 가장 현명한 것, 가장 어리석은 것.”
“신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평화,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 양쪽 모두에게 공평한 해결책입니다.”
“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굳이 알 포트의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지 않아도, 이미 저게 불가능하다는 건 드란칼 2세도 예상했다. 똑같은 빵 두 개가 있고, 그걸 두 사람에게 나눠주면 양쪽 모두 공평하다고 느낄까? 천만의 말씀이다.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고 체형이 다르니 양쪽 모두 불공평하다고 느낄 뿐이다.
그럴 줄 알았다며 드란칼 2세가 말을 이었다.
“가장 이로운 대처법은 무엇인가?”
“전쟁입니다. 한쪽의 뚜렷한 우위가 결정되고 나서야 이 사태는 깔끔히 해결될 것이며, 전통적으로 가장 확실한 우위 결정 방식은 폭력, 곧 전쟁이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엘디아와 알 포트가 명확한 우선권을 설정한다면, 전쟁에 승리하건 패하건 그 결과는 알하트란의 안정적인 미래로 이어집니다.”
눈살을 찌푸리며 알하트란의 국왕이 재차 묻는다.
“가장 현실적인 대처법은 무엇인가?”
“전쟁입니다. 엘디아와 알 포트의 전력은 비등, 국지전에서의 승패는 갈려도 총괄적인 측면에서 양측은 비슷한 전황을 유지할 것입니다. 소모전이 계속되며 서로의 피해가 커지면 외교적 이득이 전쟁으로 인한 피해보다 적어지게 됩니다. 그리하면 양쪽 모두 합리적인 양보가 가능합니다.”
“가장 현명한 대처법은 무엇인가?”
“전쟁입니다. 외교적 불균형은 당장의 사태는 진압할 수 있을지 몰라도 대대로 문제점을 내재하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외교적 불균형에 따른 불만으로 야기되는 소규모 접전 및 냉전이 40년 이상 이어질 경우 실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능가할 것입니다. 한 번의 전쟁으로 확실한 결과를 낳는 쪽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더욱 현명합니다.”
드란칼 2세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래도 전쟁, 저래도 전쟁인가?”
이것이 알 포트의 판단을 그들이 따르지 않는 이유다.
분명 알 포트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완벽히 분석하고 가장 확률 높은 미래를 예지한다. 이민 선단 알 포트는 시공을 넘나들며 항행하던 선단, 시공을 항행하며 얻은 수많은 정보는 거의 근사치에 가까운 해답을 내놓을 수 있다. 아마도 이 역시 높은 확률로 실현되겠지.
하지만 그 결과를 누리는 것은 자신들이다.
눈앞의 희생과 미래의 행복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높은가? 알 포트는 통계를 통해 후자를 택한다. 그러나 인류에겐 때론 눈앞의 희생이 미래의 행복보다도 더 높은 가치를 지닐 수도 있다. 그 희생을 용납지 않음으로써 보다 힘겨운, 그러나 보다 떳떳한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도 있다.
분명 인류에게 그 미래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시스템의 메인 프레임일 뿐인 알 포트에겐 ‘보다’ 불행한 미래일 뿐이다.
인간의 가치는 오직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국 큰 이변은 없겠지.’
드란칼 2세는 어전 쪽을 힐끔 보았다. 분명 제도적으로 알하트란은 알 포트의 판단을 참조는 할지언정 결코 따르진 않는다. 하지만 인류는 그리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고, 언제나 미래는 과거의 답습인 법.
어전 쪽에서 한 중신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선전포고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동의의 박수 소리.
이번에도 알 포트의 판단과 관계없이, 결국은 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듯이…….
문득 궁금해졌다. 아직 알 포트는 다섯 가지 중 네 방안밖에 말하지 않았다.
“……그럼 가장 어리석은 대처법은 무엇인가?”
감정이 없는 인공 지능, 가상 인격체 알 포트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전쟁입니다.”
☆ ☆ ☆
신세계를 발견한지 반년 뒤, 결국 엘디아와 알 포트는 서로에게 선전포고를 날렸다.
새로운 희망은 서로의 피를 흘림으로써 시작되었다.
☆ ☆ ☆
전쟁은 4년에 걸쳐 진행됐다.
이미 엘드라스나 알하트란이나 물량에 의한 총력전을 벌이는 문명 수준은 벗어났다. 개인으로 군대를 상대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이들이 있다면 기실 군대는 크게 필요 없다. 그저 초인과, 그 초인을 지원할 군사적 시스템만이 필요할 뿐.
차원과 시공조차 초월하는 이들 문명에서 전쟁은 선택받은 특수층의 전유물이다. 모성의 역사 속에선 삼류 사기꾼에게나 붙던 것이지만 현재는 사회를 지탱하는 최고위층에게만 붙는 칭호, 마법사가 그들을 지칭한다.
양측의 마법사들이 새로운 세계의 하늘을 날아올랐다. 온갖 다양한 전함과 전투선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초월적인 성능을 지닌 강력한 병기가 초월적인 권능을 지닌 강력한 마법사들 손에 들려 끔찍한 파괴의 향연을 펼쳤다.
새로운 세계의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물론 모든 전쟁이 마법사들만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일반 군인의 존재가 필요한 소소한 전투도 제법 많았다.
그런 군인들을 위해 대륙 곳곳에, 훗날 던전이라 불리게 되는 다양한 전진기지가 세워졌다. 마법사들이 하늘을 부수는 동안 군인들은 마탄창을 쏘아 화력전을 벌이고 마검을 휘둘러 백병전을 펼치며 대지를 서로의 피로 물들였다.
엘디아의 이민 선단 중 넷이 폭파되고 셋이 시스템 파손으로 인해 차원 저편으로 유실되었다.
알 포트의 이민 선단 중 셋이 붕괴되고 넷이 시스템 파손으로 인해 시공 저편으로 유실되었다.
같은 고향에서 출발한 같은 인류의 후손, 엘드라스와 알하트란의 전쟁은 수천만의 사상자를 낸 후에야 겨우 끝났다. 알 포트의 예언대로,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행성 우선권으로 얻는 이득을 넘어서자 양쪽 모두 평화를 원하게 되었다 몇 달에 걸친 외교 끝에 정전 협정이 맺어졌다.
겨우 평화가 왔다.
방공호에 갇혀 있던 인류에게 새로운 미래가 펼쳐졌다.
새로운 대지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진다. 전쟁으로 소모되었던 국력이 모두 외부로 옮겨진다. 과학자와 탐험가, 마법사들을 앞세워 이 젊고 싱그러운 행성 곳곳을 조사한다.
그 와중에 이들은 중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전쟁 중에 조금씩 소문은 돌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은 되지 않았던 사실, 사람들 사이에서 도시 괴담처럼 오가던 이야기가 드디어 학자들에 의해 명확히 밝혀졌다.
이 행성은 빈집이 아니었다.
이곳엔 이미, 자리 잡고 살고 있는 원시 인류가 존재하고 있었다.
3
어둠 속에서 한 문장이 떠올랐다.
-우주력 1395년, 1월 20일. 메테우스 마학 연구소, 제9연구실 기록 영상을 재생합니다.
☆ ☆ ☆
-새로운 인류가 발견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이 넓은 우주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온갖 매체와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며 원시 인류의 발견을 공표했다. 확실히 이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시민들의 반응은 요약하면 ‘아, 역시?’ 쪽에 가까웠다.
4년 동안 많은 마법사와 군인들이 행성 곳곳을 누비며 전투를 벌였다. 비록 군사 기지를 세우기 위한 목적이지만, 그 와중에 행성 탐사도 꽤나 진행되었다. 당연히 군 내부에선 이미 몇 번이나 원시 인류며 이 행성 특유의 생물체와 조우한 바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저들이 사회로 복귀하며 그 이야기를 널리 퍼트렸으니, 이미 이 행성에 선주 종족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저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 지금일 뿐이지.
“그래도 이제부턴 공식적으로 연구를 하게 되었으니, 이건 좋군.”
화면을 보며 중년인, 메테우스 박사는 은빛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는 지금 수십 개의 거대한 유리창이 설치된 커다란 연구실에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유리창 안쪽에서 수십 명의 ‘사람’이 멍한 얼굴로 화면을 응시한다. 눈으로는 보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우우…….”
“아르르르…….”
“커헝!”
언어라기보다는 짐승의 울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이들은 메테우스 박사와 전혀 다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금은청록의 다양한 체모 색깔에 뾰족한 귓바퀴, 이목구비의 형태며 신체 골격 역시 꽤 차이가 난다.
바로 이 행성의 원시 인류, 선주 종족들이었다.
전쟁 중 전투에 휘말린 선주 종족은 대부분 메테우스 박사에게 인도되었다. 덕분에 정식으로 공표하기 몇 년 전부터 박사와 그의 연구원들은 이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많은 연구원들이 저마다 차트를 들고 각 우리를 관찰한다. 우리에 갇혀 있는 선주 종족은 모두 연구원이 제공한 의료용 가운을 걸친 차림이었다.
저래 놓으니 정말 문명인과 별 차이가 없는 외모다. 심지어 꽤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야만인은 야만인이었다. 우리를 들여다보면 여성 연구원 하나가 얼굴을 붉혔다.
“아우, 또 저러네.”
선주종 중 몇몇이 가운을 훌렁 젖히고 사타구니를 벅벅 긁고 있었다.
이들에겐 아직, 외부 환경으로부터 육체를 보호하는 목적 이상의 의복 개념은 없는 것이다. 부끄러운 부분을 드러냈다 해서 수치심을 느낄 만큼 사회적, 도덕적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참 연구원 하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할 수 없지. 문화가 다르잖아?”
“문화라 부를 정도의 뭔가도 없잖아요.”
여성 연구원이 인상을 썼다.
“그냥 짐승이지 저거…….”
실제로 다른 유리 우리에선 선주 종족 남성 하나가 성기를 빳빳하게 발기시키고 여성체를 덮치려는 중이었다. 강제로 여자의 다리를 벌리고 짐승 같은 신음을 내며 발버둥을 친다.
“카오오오!”
놀라지도 않고 연구원 하나가 손가락을 튀겼다.
“아쿠아 샤워.”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간단한 마법쯤은 누구나 쓰는 시대다. 이내 물의 공이 생겨나 남성체를 뒤덮었다. 물벼락을 맞은 남성체가 화들짝 놀라 우리 구석으로 달아나고 여성체가 안심한 표정으로 반대쪽으로 달려간다.
마법을 쓴 연구원이 피식 웃었다.
“이건 뭐, 흘레붙는 개들 떼어 놓는 것도 아니고…….”
가족 개념과 사회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을 넣은 것인데, 가족이고 사회고 간에 일단 덮치려고만 한다.
“지성 따윈 보이지도 않네. 역시 짐승인가?”
메테우스 박사가 혀를 찼다.
“우리라고 크게 다를 것 없지. 자네를 벌거벗겨 놓고 알몸의 미녀 앞에 던져놓으면 뭐, 다른 짓 할 것 같은가?”
“에이, 그래도 일단은 상황 파악부터 하겠죠. 어떻게 대뜸…….”
“그러니까 그 상황 파악을 해야 한다는 개연성 사고가 미발달된 것은 맞지. 그렇지만 미개하다는 이유로 짐승이라 매도할 수는 없을 걸세.”
“매도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어깨를 으쓱거리며 연구원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메테우스 박사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연구실 내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