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75
“물러가라.”
송구스러워하며 은의 현자들이 빠르게 홀을 떠난다. 어느새 홀 안에 세이어 혼자 남았다. 그는 자신의 오른손을 힐끔 보았다. 방금 손가락을 튀긴 그 손이다. 손등이며 손가락 여기저기가 갈라져 피를 흘리고 있다.
“고작 그 정도 힘을 쓴 것만으로도 이 모양인가? 이 육체도 슬슬 한계로군.”
아카식을 사용해 세이어는 바로 상처를 수복했다. 하지만 손등의 주름은 여전했다. 노화를 역순시킬 정도로 강력한 신성을 그의 육체가 더 이상 감당치 못하는 탓이다.
턱을 괸 채 세이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신체神體는 하나뿐. 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세상이 다시 한 번 바뀌었다. 순백의 홀이 사라지고 레펜하르트의 주위가 돌로 된 거대한 투기장으로 변했다. 요란한 소음과 외침 소리가 귀를 찔러 댔다.
“크아아아!”
“죽어라!”
“어림없다!”
무수한 사내들이 그 속에서 혼잡하게 뒤얽혀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하나같이 건장하고 단단한 육체의 소유자들이었다. 겉보기엔 전형적인 투기장 투사 같은 이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이 범상치 않았다.
“오러 웨이브!”
사내들이 전신에 각양각색의 오러를 끌어 올린 채 서로를 향해 가공할 파괴의 힘을 내던진다. 투기장 곳곳에서 강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놀랍게도 이들은 전원 오러 유저였던 것이다.
‘맙소사!’
놀라 레펜하르트는 입을 쩍 벌렸다. 세상 어딜 가도 귀족처럼 대접받을 오러 유저가 천한 검투사처럼 뒤엉켜 싸우고 있다니?
게다가 놀랄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밀리던 사내들 중 일부가 재빠르게 수인을 맺더니, 시동어를 외쳐 댄다.
“라이트닝 볼트!”
“아케인 블래스터!”
찬란한 마법의 섬광이 투기장 곳곳을 가로질렀다. 이들은 오러 유저인 동시에 고위 마법사이기도 한 것이다.
‘저 정도 강자들이 어째서 저런 꼴이?’
혼란해하면서 레펜하르트는 계속 투기장을 바라보았다.
보고 있자니, 저 사내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근육질의 사내들 중에서도 한층 탄탄해 보이는 거구의 청년이었다. 신장이 족히 2.2미터는 넘어 보이는데 전신이 그야말로 알차게 단련되어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타아아앗!”
사내가 우렁찬 기합과 함께 상대의 머리통을 박살 낸 뒤 바로 손바닥을 반전시켜 마법을 구사한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다른 투사 두 명이 피 떡과 한 줌의 재로 화했다. 그 압도적인 위력에 투사 몇몇이 서로 눈짓을 보낸다. 우선 저 거인부터 처리하자는 의미다.
“에잇!”
“죽어 버려!”
다섯 명의 투사가 오러와 마법을 동원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가공할 기세, 그러나 거구의 사내는 전혀 피할 기색이 없었다.
단지 싸늘하게 웃으며 근육질 가슴을 활짝 펼 뿐.
“스파이럴 가드!”
찬란한 황금빛 오러가 소용돌이치며 다섯의 투사를 모조리 갈아 버렸다!
“엉? 뭐, 뭐야, 지금?”
기겁해 레펜하르트가 눈을 크게 떴다. 낯익은 오러 스킬이었다. 사부 밑에서 죽도록 맞아 가며 익힌 바로 그, 짐 언브레이커블의 궁극 방어 기술이 아닌가!
‘진짜 스파이럴 가드다. 운용법도, 효과도 오러의 특성도 완전히 똑같아.’
멍한 레펜하르트의 곁을 하나의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다시 젊은 모습으로 돌아온 푸른 머리의 세이어였다.
관람석에서 투기장 아래를 내려다보며 인류의 신이 눈을 빛냈다.
“저자의 이름은?”
곁에 있던 은의 현자 하나가 공손히 대답했다.
“실험체 458번, 발켄슈트입니다.”
☆ ☆ ☆
일만 이천 년이란 긴 시간을 살아가며 세이어는 계속 영혼 전이술로 육체를 바꿨다. 이미 신의 힘을 지닌 그가 여전히 육체를 필요로 하는 것엔 절실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영혼 일부는 아카식 드라이브와 연결되어 있다. 한낱 개인의 영혼이 초월적 힘을 지닌 우주의 근원과 접속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한 인간의 영혼이 우주의 근원과 접해 무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주의 알, 아카식 드라이브 제어 시스템과 세이어 자신의 굳건한 의지가 그의 인격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비유하자면 거대한 댐의 구멍을 작은 조약돌로 막은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일단 막혀 있는 동안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만약 돌이 빠진다면? 혹은 마모되어 부스러진다면?
한번 분출된 물줄기는 순식간에 거세져 댐 자체를 허물어 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세이어는 반드시 육신이 필요했다. 심, 기, 체가 합일되어 굳건한 존재로 자리 잡을 때만이 그는 튼튼한 돌멩이가 되어 댐의 구멍을 막을 수 있었다. 아니면 예전처럼 아카식의 제어 라인을 차단하고 자신의 시간을 동결시키는 수법뿐인데, 이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별로 고려할 선택지가 아니었다.
메테우스 박사가 했던 것처럼 세이어는 자신의 클론을 무수히 만들고 그 클론에 불로화 시술을 행했다. 그리고 육체가 한계에 다다를 때마다 계속 갈아타며 불로불사의 삶을 살았다.
그렇게 일만 년이 넘게 되자, 슬슬 문제가 생겼다.
복제에 복제를 거듭한 세이어의 클론 육체 인자가 열화되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냥 원래 육체 인자를 계속 보존하고 필요할 때마다 원본에서 클로닝을 시도하면 열화할 일도 없겠지만, 아쉽게도 영혼 전이술은 그런 식으로 가동되는 게 아니다.
원육체에서 500년을 산다. 이후 원육체에서 클로닝한 새 육체에서 또 500년을 산다. 그럼 천 년 뒤, 과연 원육체는 원래 상태대로 저 영혼을 담을 수 있을까?
아니다.
육체가 영혼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영혼 역시 육체의 영향을 받는다. 이미 클론 육체에 적응한 영혼 입장에선 저 원육체 역시 ‘새로운 육체’일 뿐이다. 그렇기에 변질을 막으려면 2차 클론에서 3차 클론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일만 년 넘게 수십 번을 계속 복제하고 또 복제하다 보니 슬슬 육신의 변질을 영혼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른 것이다.
“곤란하군.”
아카식의 전지 영역을 검색하며 세이어는 고민에 빠졌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은의 시대 고대인들은 1, 2년씩 최적화 작업을 거치며 세밀하게 육체를 조정해 영혼 전이술을 시전했었다.
“하지만 내겐 그럴 재주가 없고.”
현 시대에 사령술, 네크로맨시로 전해지는 계열의 마법은 원래 생명마학, 영자학으로 고대에 존재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마학은 단순히 지식과 지혜만으로 할 수 있는 학문이 아니었다.
근사한 명화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 명화를 똑같이 복사한다고 치자.
지식과 지혜만으로도 명화를 똑같이 옮길 수는 있다. 그냥 사진을 찍으면 된다.
하지만 그 찍힌 사진이 과연 명화 원본과 동일한 것인가? 분명 똑같이 생겼고 똑같은 그림이지만 과연 그 사진에 명화가 지닌 감동이 있는가?
그러나 가끔 위작 중엔 원본 이상의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화가의 예술혼, 화가의 감정과 영혼이 담겨 있는 경우다.
이렇듯 생명마학은 학문이면서 동시에 예술의 영역이었다. 도저히 정보와 지식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예술혼이라는 분명 존재하면서도 정의 내릴 수 없는 제3의 ‘무엇인가’가 있어야 비로소 완벽한 클론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는 세이어가 가장 취약한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아무 몸이나 차지할 수도 없는 신세니…….”
영혼 전이술에 저렇게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완벽하게’ 변화 없는 삶을 이어 가려 해서다. 육체가 전혀 다르다고 영혼 전이가 안 일어나진 않는다. 그랬다면 애초에 세상이 이 모양이 되지도 않았게?
10서클의 경지에 든 강력한 영혼이라도 무지렁이의 육신에 들어가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한두 번 영혼 전이한 걸로 심각한 인격 오염이 일어나거나 마법의 지식을 모두 잃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뭐, 좀 손해는 보겠지만.
그러나 세이어는 그럴 수가 없는 처지였다.
그의 영혼과 연결된 아카식 드라이브는 철저하게 세이어의 심기체에 적응해 있었다. 여기서 아무 몸하고 바꿨다 기량이 저하되기라도 하면 바로 댐은 붕괴한다. 적어도 세이어 자신과 동급의, 혹은 그 이상의 재능을 지닌 육체여야 겨우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한 종족의 궁극 진화체인 그와 비견될 만한 재능이 쉽게 나올 리가 없다.
“200년을 찾았지만 그런 자는 보지 못했으니…….”
아카식 드라이브의 검색을 끝내며 세이어는 인상을 썼다. 도박 같은 확률에 목숨을 거느니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나았다.
“나와 비등한 재능의 소유자가 없다면,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수밖에.”
☆ ☆ ☆
강철의 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
공간 가득 나란히 놓인 수십 개의 원통형 수조가 혼탁한 액체 속으로 기포를 끝없이 피워 올린다. 많은 ‘사람’의 육체가 그 수조에 떠 있었다.
수조 사이를 걸으며 세이어가 좌우를 둘러보았다.
좌측 수조에 떠 있는, 알몸의 잘생긴 금발 청년이 보인다.
“결국 R.X 시리즈는 실패로군.”
고대의 초인병 프로젝트를 토대로 재현한 마력, 신성력, 오러를 모두 구사하는 R.X 시리즈는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주는 삼위일체 형태로 만들겠다는 게 목적이었는데, 결과는 그냥 세 분야 다 모자란 수준이 되어 버렸다.
“역시 하나라도 확실하게 극의에 다다르는 쪽이 더 가능성이 있어.”
공간 우측 수조에는 푸른 머리의 젊은 선주종 육체들이 들어 있었다. 바로 세이어 자신의 클론, 마법의 극에 다다른 육체다.
이는 분명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지만, 아쉽게도 수명이 다 되었다. 은의 시대 생명마학자에 버금가는 천재적인 감각의 소유자가 있어 최적화 조정을 해 준다면 모를까, 그러지 않고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성배 프로젝트는 너무 지지부진하고.”
다른 편 수조에는 수십의 어린 소녀의 육체가 들어 있었다. 마력, 정신력처럼 심心에 속하는 신성력, 아카식과의 소통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걸 목표로 한 실험체다.
성배 프로젝트는 상당한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목표치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
세이어에겐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현재의 그는 또다시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열화된 육신을 버리고 영혼전이술을 시전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클론 인자의 열화가 진행되어도 너무 진행되었다. 이 육체의 시간이 끝나면 더 이상 클로닝할 인자가 남지 않는다.
“게다가 역시 여자가 되는 건 좀…….”
아름다운 소녀의 나신을 보며 세이어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성력이란 게 남성보단 여성 쪽이 월등히 재능이 높게 발현되는 분야라 어쩔 수 없이 여성체로 만들긴 했지만…….”
그도 남자였다. 저 아름다운 나신을 품는 거야 얼마든지 환영이겠다만 저 몸이 되는 건 영 탐탁찮다. 소멸하는 것보다야 나으니 일단 시도는 했다만 역시 이 방식은 최후까지 미뤄 두고 싶다.
“역시 제일 가능성이 있는 건 이쪽인가?”
세이어는 공간 가운데 위치한 거대한 수조 무리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근육질 소년들이 떠 있는 수조였다. 심, 기, 체 중 체體의 극한을 추구하는 육신을 제조하는 곳이다.
붕괴하는 육체를 보며 세이어는 계속 고심했다.
‘어떻게 해야 육체에 가해지는 신성의 압박을 줄일 수 있을까? 어찌해야 육체와 신성의 부조화를 최대한 지울 수 있을까?’
그러던 중, 문득 발상의 전환이 생긴 것이다.
‘압박을 줄일 게 아니라, 그 압박도 견딜 수 있는 육체가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바로 아카식 드라이브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해 봤고, 결과는 꽤 긍정적이었다.
그리하여 이 수조 무리가 탄생했다. 처음부터 육체 인자를 조작해 인공 자궁에서 탄생시키는 게 아니라, 대륙 전역에 존재하는 육체적 재능을 지닌 어린아이를 납치해 강제로 그 자질을 일깨운다. 불굴의 신체를 인위적으로 창조하는 이 계획은 언브레이커블 프로젝트라 명명되었다.
수조 사이로 걸음을 옮기며 세이어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지나간 뒷자리, 남겨진 수조에서 문득 갇힌 소년 하나가 꿈틀거렸다.
부글…….
의식도 움직임도 있을 수 없는 그 수조 속에서, 소년이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부그르르르…….
실험체 458번이었다.
☆ ☆ ☆
언브레이커블 프로젝트가 개시된 지 15년 뒤.
프로젝트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육당하던 맹수들이 은의 현자가 방심한 탐을 타 우리를 부수고 대규모로 탈주했던 것이다.
은의 현자는 대혼란에 빠졌다.
탈주한 수십 명의 ‘신의 육체’들. 그들은 하나같이 세이어의 육신이 되기 위해 고도의 마법과 무술을 익힌 이들이었다. 하나같이 대륙 어느 곳을 가건 명성을 떨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강자들이었다. 수많은 은의 현자가 죽음을 당하고 시설 곳곳이 파괴되었다.
그래도 역시 은의 현자는 강했다. 고대의 비의를 독점한 은의 현자는 많은 피해를 입고서도 결국 탈주한 실험체들을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거의 전원이 결국 세상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
살아남아 탈출한 이는 단 한 명.
가장 강하고 가장 튼튼하며 가장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있던 실험체 458번, 발켄슈트뿐이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세이어는 크게 분노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실험체의 행방을 찾았다.
아카식 드라이브의 전지 영역이 있으니 행방을 찾는 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금방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바로 발켄슈트를 거두려던 세이어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굳이 지금 거둘 필요는 없겠는데?”
우물 안 개구리보단 세상 밖 개구리가 더욱 멀리 뛰는 법.
세상을 나선 발켄슈트는 여러 사건 속에서, 여러 강자와 겨루며 더더욱 강해졌다. 기량뿐 아니라 그의 육체 역시 더더욱 단단해졌다.
그 결과는 세이어의 기대를 훨씬 초월한 것이었다. 시설 내에서 저희들끼리 싸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졌다. 심기체 중 체體의 극한만을 기대했을 뿐인데 심心에 속하는 마력과 정신력, 기氣에 속하는 오러의 경지도 무시무시하게 올라갔다.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성능 좋은 육체가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