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91
플로팅 디스크를 탄 채 복도를 달리며 세렐라인은 치를 떨었다. 저 거대한 알의 파편이 무엇인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디스크가 제어실 앞에 도달했다. 그녀가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렸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있는 이곳, 세이어 템플에선 사람이 스스로 문을 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제어실 안을 뛰어들며 세렐라인이 소리쳤다.
“세이어시여!”
“알고 있다.”
이미 세이어도 굳은 얼굴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바깥 상황을 투사한 그 영상에 직경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광경을 비친다.
세렐라인이 물었다.
“이건 설마?”
세이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이 옳다.”
그자다.
대륙 전체를 혼돈으로 밀어 넣은 자.
기존의 질서를 모두 파괴하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자.
“마왕 레펜하르트!”
은의 현자들은 더 이상 레펜하르트를 권왕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가 보인 놀라운 이적, 그가 지닌 무시무시한 마법적 권능을 보면 도저히 그를 권왕이란 단순 무식한 칭호로 부를 수가 없었다. 레펜하르트의 전생에 대해 아는 세이어가 무심코 마왕이라 부른 이후, 모든 은의 현자도 자연스레 마왕이라 칭하게 되었다.
세렐라인의 외침을 뒤로한 채 세이어는 계속 영상을 바라보았다. 굳은 그의 표정은 내심을 읽기가 힘들었다. 분노한 것처럼도, 혹은 감탄한 것처럼도 보인다.
“……그렇군. 이런 방법이 있었어.”
깨진 알의 파편, 아카식 드라이브 제어 플랜트의 공간 일부였던 저 구조물을 보자마자 세이어는 바로 레펜하르트가 한 짓을 깨달았다.
‘확실히 이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법이군.’
세이어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했다. 아카식의 전지 영역이라면 저 상황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이었으니까.
‘질문이 틀렸어.’
그는 아카식의 전지 영역에 ‘모든 상황’에서 공간 왜곡 결계가 파훼되는 상황을 묻지 않았다. 그저 ‘레펜하르트’가 공간 왜곡 결계를 파훼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물었다.
그 답은 ‘없다.’였다.
‘그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자가 고대에서부터 살아온 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저 시대의 지식과 정보를…….’
여기까지 생각하던 세이어가 갑자기 인상을 썼다. 세렐라인이 의아해했다.
“……세이어시여?”
다음 순간, 세이어는 어둠의 공간 안에 서 있었다. 그의 의식 속, 온갖 고대의 정보와 상념이 혼탁하게 뒤섞인 꿈의 세계다.
어둠을 향해 세이어가 물었다.
“네놈 짓이더냐?”
어둠이 한 청년이 되었다. 세이어와 쌍둥이처럼 닮은, 그러나 세이어에 비해 월등히 굴강한 육체를 지닌 청년이었다.
테스론이 히죽 웃었다.
“물어볼 필요가 있나?”
“그렇지. 네놈 짓이군.”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세이어는 단정을 내렸다. 이 의식 세계 안에서 그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궁금해하는 것만으로 모든 해답이 떠오른다.
레펜하르트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 세이어는 테스론의 존재를 무시했다. 아예 존재 자체를 잊고 지냈다. 그 망각의 무의식 속에서 테스론이 한 짓, 레펜하르트가 한 짓, 그가 전한 모든 지식에 대한 정보가 순식간에 뇌리에 틀어박힌다.
세이어의 표정에 분노가 떠올랐다.
“……이런…….”
그것은 테스론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도록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다.
테스론이 비실거리며 웃었다.
“대단하더군, 그대는. 과연 신이라 칭할 만해. 오만해도 보통 오만한 게 아니야.”
육신을 빼앗기고 영혼의 죄수가 된 테스론은 세이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소멸되는 정신적 기생충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속에서 세이어의 기억을 뒤진다는 것은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목숨을, 아니 영혼을 걸고 도박을 행했다. 세이어의 기억을,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항시 공포에 떨었다. 이미 한번 들통 나기까지 한 일이었다. 그 당시는 정보를 수집한다기보단 엿봤다 수준이라 그냥 넘어갔지만 두 번은 용납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한 번도 그대는 발밑을 내려다보지 않더군?”
잠시, 아주 잠시만이라도 세이어가 테스론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돌아본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갈 일이었다.
“한 번만 내 존재를 의식했다면 모든 것이 날아갔을 위태로운 짓이었는데도 말이지.”
통쾌한 듯 테스론이 광소를 터트린다.
“크크큭! 크하하하!”
굳은 세이어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도리어 희미한 미소마저 떠오른다.
“제법이로구나, 테스론.”
여유를 보이는 세이어의 모습에도 테스론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래, 아직도 신답게 굴겠다 이거지? 그 오만함이 결국 너를 죽일 것이다, 세이어!”
“그럴지도 모르지.”
의외로 세이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오만함이 일만 이천 년 동안 나를 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만 이천 년을 더 살게 해 주겠지.”
세이어의 얼굴에 분노가 사라졌다. 너무도 빠른 변화라 테스론이 되레 당황할 지경이었다.
세이어가 손을 들었다.
“벌을 내리진 않겠다. 하지만 다른 정보가 또 빠져나가는 건 탐탁지 않구나.”
그리고 가볍게 손가락을 튀긴다.
“눈을 감고 귀를 닫아라. 입을 다물고 숨을 멈춰라.”
테스론의 영혼이 비명을 터트렸다.
“크아아아악!”
지독한 암흑, 끔찍한 고독, 절대적 무감각이 그를 덮쳤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조차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비명조차 서서히 사그러진다.
테스론은 치를 떨었다. 이 지독한 고통이 벌이 아니란 말인가?!
절대적 고요 속에서 세이어의 목소리가 소리가 아닌 의지로서 전달된다.
“그대를 소멸시키진 않는다. 필레나와 약속한 것이 있으니. 그 아이는 약속을 지킬 가치가 있는 존재지.”
순간 테스론은 의아해했다. 말투가 어째, 필레나를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잖아?
‘뭐지? 대체 그 애가 뭘 한 거야?’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어느새 어둠이 그의 의식마저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침묵하도록.”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테스론의 모든 것이 어둠 속에 파묻혀 버렸다.
☆ ☆ ☆
“세이어시여?”
세렐라인의 목소리에 세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의아해하던 그녀가 의문을 접었다.
의식 공간에서 일어난 모든 것, 그것은 현실에선 찰나에 불과한 순간이다. 세렐라인이 보기엔 그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걸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세이어가 다시 영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물 밖으로 나온 고래처럼 요동을 치던 거대한 구조물은 어느새 잠잠해진 상태였다. 끝없이 명멸을 거듭하던 공간 진동이 사라지고 어느새 세이어 템플로부터 수 킬로미터쯤 떨어진 설원 위에 착지해 있다.
세이어가 중얼거렸다.
“개별 공간의 확정화가 이루어졌나 보군.”
☆ ☆ ☆
“우에에엑!”
“점심 때 절인 청어를 드셨군요, 실란 대주교.”
“……같이 먹어 놓고 뭔 말이에요, 카를 재상님? 그나저나 이거 대체 뭐예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실란은 고개를 들었다.
현재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낯빛은 창백하고 곱던 붉은 머리칼은 엉망으로 뒤엉켜 산발이 되어 있다. 뱃속도 왕창 뒤집혀 이미 한바탕 토했는데도 또 구토기가 느껴질 정도다.
그만큼 괴상한 현상이었다. 분명 발밑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아무런 요동도 없었다.
그런데 천지가 요동친다. 굳이 느낌대로만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뒤틀리고 흔들리는 느낌?
“공간 고정이 불안정해서 그런 거야. 따지고 보면 존재가 흔들린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군.”
태연한 얼굴로 레펜하르트가 입을 열었다. 참으로 얄밉게도,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레펜하르트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실란 말고 다른 이들은 전부 멀쩡했다.
“……나만 이런 거야?”
억울해 실란은 일행을 돌아보았다. 하기야 여기 모인 이들치고 최소 오러 유저 아닌 이가 없다. 뭐, 카를은 아니지만 몸만 보면 오러 유저도 울고 갈 수준이고.
“아, 몸 약해서 서럽다. 그런데 마켈린 님은 같은 프리스트인데 왜?”
“나이 먹으면 인내심이 많아진다네, 실란 대주교.”
이게 인내심으로 버텨질 문제던가? 황당해하며 실란은 입가의 오물을 닦았다. 그러다 힐끔 일행 중 하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분명 오러 유저이긴 한데, 묘하게 인간미가 느껴지는 표정이 하나 보였다.
“시원하게 토하고 저랑 동지애를 느껴 보시는 건 어때요, 아스레일 경?”
“괘, 괜찮습니다. 이까짓 것쯤이야…… 우욱!”
“저런, 아스레일 경도 절인 청어를 드셨군요.”
“그야 점심 다 같이 모여 먹었으니 당연하지. 어쨌거나…….”
레펜하르트가 콘솔을 조작해 커다란 입체 영상을 허공에 띄웠다. 눈 덮인 설원과 그 너머의 녹음의 대지, 그리고 그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순백의 신전이 보인다.
이니야가 근심하며 물었다.
“……혹시 실패한 건가요?”
원래대로라면 저 순백의 신전과 이곳, 마스테라다 던전이 공간 결합을 통해 원상태로 돌아갔어야 한다. 하지만 역시 저 절대 방어 결계를 뚫진 못한 것이다.
레펜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모든 것이 예측대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행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럼, 밖으로 나가 볼까요?”
☆ ☆ ☆
“저들이 공간 왜곡 결계를 통과했습니다. 세이어시여.”
“그렇구나.”
담담하게 대꾸하는 세이어를 세렐라인이 살짝 흘겨보았다. 뭐래? 절대 못 온다며? 절대 뚫을 방법 없다며? 그럼 저기 떡하니 버티고 있는 수 킬로미터짜리 구조물은 대체 뭔데?
온갖 상념을 담은 세렐라인의 말없는 얼굴을 보며 세이어가 피식 웃었다.
“네가 나를 담았던 이가 아니라면 불경죄에 처해질 법한 표정이로구나.”
흠칫하며 세렐라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어찌하오리까?”
“모르겠구나.”
다시 세렐라인이 ‘불경죄에 처해질 법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제 와서 모르겠다니?
“혹시 절대 방어 결계도 위험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