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92
“……역시 모르겠다.”
이미 세이어는 아카식 드라이브의 전지 영역에 질문을 던졌다. 이번엔 실수를 반복치 않고 확실하게 질문을 입력했다.
-모든 상황에서, 절대 방어 결계를 깰 방법을 찾으라.
대답은 바로 나왔다.
-3억 8천만 amw의 에너지가 동원된다면 결계 파괴가 가능함.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설사 세이어 자신이더라도, 제어 권한 코드를 지닌 그라도 저 절대 방어 결계를 해제하거나 부술 순 없었다. 그저 일부를 열고 닫아 드나들 수만 있을 뿐이다. 해제 시스템이 망가져 있기 때문에 권한 코드가 있어도 해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보다 확실한 질문을 더 던졌다.
-그만한 에너지가 동원될 요소를 나열하라.
-상전이 마력 폭축로 라그나로크, 시공융합포 니르바나, 공간전이탄 발할라, 차원 붕괴 시스템 제우스의 천둥…….
순식간에 몇십 개나 되는 고대의 파괴 병기가 줄줄이 나열되었다. 아무리 절대 방어 결계라지만 고대 기준에선 부술 수 있는 병기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래서 한 번 거르기로 했다.
-개중 현 시점에서 가능한 모든 조합을 나열하라.
-시공융합포 니르바나, 위성 궤도 티아논 시스템 하강 및 자폭, 아토믹 버스터 열네 발 동시 발동, 미티어 스물아홉 발 동시 발동, 프로미넌스 템페스트 이만 삼천 발 동시 발동…….
‘응?’
잠시 세이어는 눈을 깜빡였다. 티아논 시스템이라면 아카식이 주입된 채 이 행성 북쪽을 돌고 있는 무인 위성 스테이션이다. 인간들로부터 사방의 수호신으로 섬김받으며 얼어붙은 티아논이라 불리는 무인격武人格의 신성神聖.
‘그 티아논 시스템 자폭으로도 이 결계가 부서지던가?’
뭐,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아득한 외공간 너머에서 떠돌고 있는 무인 위성 시스템을 레펜하르트가 무슨 수로 조작하겠는가? 그냥 스테이션도 아니고 아카식이 주입되어 완전히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지.’
잽싸게 전지 영역으로 티아논 시스템의 상태를 파악했다. 예상대로였다. 외부의 어떤 접근도 거부한 채 여전히 이 항성 주위를 고고하게 돌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티아논 시스템 자폭은 아니고.’
남은 건 아토믹 버스터 열네 발 동시 발동이니 미티어 스물아홉 발 동시 발동이니 하는 말도 안 되는 것밖에 없다.
그래, 이번에는 확실하다. 레펜하르트에겐 이 절대 방어 결계를 뚫을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이.
“하지만…….”
그럼에도 세이어는 세렐라인에게 모르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공간 왜곡 결계를 파훼한 자가, 설마 절대 방어 결계에 대해 아무런 대책 없이 이 자리에 나타났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레펜하르트가 뭔 짓을 했는지 들은 세렐라인이 추측을 내놓았다.
“혹시 제어 플랜트의 파편을 조작해 공간 왜곡 결계와 절대 방어 결계를 한꺼번에 무효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 정도로 마학에 무지한 자는 아니다.”
고개를 저으며 세이어가 흥미어린 눈동자를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난 저자가 절대 방어 결계를 부수었으면 하는 기대도 좀 있구나.”
“예?”
황당해하며 세렐라인이 세이어를 올려다보았다. 눈빛이 어째 진심이었다.
“궁금하구나. 대체 무슨 수를 쓸지.”
눈앞의 대적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인간을 벗어난 저자는 계속 그의 예상을 벗어나왔다. 분노할 법도 하지만 그보단 호기심이 먼저 일어난다.
이윽고 영상 속 알의 파편에서 한 무리의 일행이 걸어 나왔다.
예상대로 그들은 레펜하르트와 그 수하들이었다. 온갖 이종족이 모여 있는데다 하나같이 개성이 확실하니 척 보기만 해도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맨 앞에 선 거구의 사내, 레펜하르트가 하늘을 바라보더니 뭐라 말을 했다. 워낙 눈폭풍이 거세게 불고 거리가 멀어 음성까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의 명령에 따라 일행이 뭔가를 준비하는 것이 보인다.
세이어가 눈을 빛냈다.
“뭔가 시작하려는가?”
어금니 큰 트롤이 주술력으로 불을 피운다. 세 개의 모닥불이 삼각 형태로 놓였다.
“트롤의 주술력이 가미되는 수법인가? 트롤 주술은 은의 시대에 없었으니 정보망에서 빠져나갈 수도 있겠군.”
그러자 오크 전사와 인간 전사가 불꽃 주위로 철제 삼각대를 설치한다. 세이어의 눈빛이 더더욱 심오해졌다.
“세로로 설치하다니, 3차원적인 마법진을 구축하는 건가?”
다른 이들도 빠르게 움직인다. 주머니에서 뭔가 꺼내 불꽃 주위에 둥글게 배치한다. 금속질의 둥근 원판이었다. 술식 구성을 위한 촉매인가 싶어 세이어는 더더욱 눈을 부라린다.
잠시 후 엘프 여인이 냄비를 꺼내 불 위에 올렸다. 뭔가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남방 군도의 마녀 주술 같은 건가? 하지만 저건 그냥 미신일 뿐인데?’
트롤 주술과 달리 남방 군도의 마녀들이 사용하는 수법은 진짜 주술이 아니다. 단순한 허세와 약학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점점 세이어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어째 보면 볼수록 뭔가 이상했다.
“으음…….”
그때 세렐라인이 현실을 꿰뚫었다.
“저거 그냥 밥 짓는 거 같은데요?”
☆ ☆ ☆
돼지고기 스튜가 고소한 냄새를 피우며 보글보글 끓는다. 질 좋은 돼지고기에 순무, 당근, 양파, 감자 등을 넣고 끓인 이 스튜는 시리스의 자신작 중 하나였다.
이미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만, 원래 그녀는 슬레이어로 교육받은 엘프 노예다. 주인을 섬기는 여검사 미녀라는 콘셉트상 슬레이어들은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고, 특히나 이렇게 길바닥에서 차리는 요리를 집중적으로 교육받는다. 어차피 슬레이어 구매할 정도 귀족이면 자기 집에는 따로 전용 요리사가 있기 마련이니까.
간을 본 시리스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식사하세요!”
사방에 설풍이 몰아치는 극한의 대지에서 뜨끈한 스튜 한 그릇은 실로 고마운 존재, 다들 감사하며 스튜를 뜨고 빵을 씹기 시작했다. 뭐, 일행이 자리 잡은 모닥불 주위엔 레펜하르트가 쳐 놓은 냉기 저항 결계가 있어 실제론 하나도 춥지 않지만 어쨌건 분위기란 게 있는 법이다.
그렇게 식사를 하다 말고 실란이 불안한 듯 물었다.
“적지를 눈앞에 두고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예요?”
화기애애한 캠핑 분위기긴 한데, 지금 그들은 인류의 신과 최후의 전투를 하러 가는 몸인 것이다. 목적지가 먼 것도 아니고 코 앞, 고개 들면 뻔히 적의 본거지가 보이는 판이다. 이런데 이렇게 느긋하게 밥이나 먹고 있어도 되나?
“배 속이 든든해야 제 힘을 내지.”
레펜하르트가 태연하게 대꾸해도 실란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저쪽에서 먼저 공격하는 거 아녜요?”
“그러려면 저 절대 방어 결계 일부를 열어야 하는데,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지.”
난공불락의 철옹성에 문 잠그고 들어가 있는데, 왜 굳이 성문을 열고 적이 침입할 위험을 감수하겠는가? 뭐, 명예욕에 불타는 장수라면 그런 바보짓을 할 수도 있겠다만…….
‘세이어가 그런 타입은 아니지.’
세이어의 성격이라면 절대 방어 결계 앞에서 온갖 짓 다 하다 좌절하고 돌아가는 레펜하르트 일행을 보고 음흉하게 웃을 것이다. 전생의 자신도 비슷한 종자였는지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어. 어차피 기다려야 한다고. 그러니 이참에 배도 채우고 기력도 회복해 놔야지.”
과연, 식사 다 끝내고 설거지까지 하고 짐 정리까지 다 마친 후에도 세이어 템플 쪽은 고요하기만 했다. 슬슬 출발하려나 싶어 러스가 물었다.
“그럼 이제 움직입니까, 형님?”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본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좀 더 기다려야 한다.”
다들 몸을 풀고 기력을 충전하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오러 유저나 주술사나 마법사나 성직자나, 심지어 엘리멘트를 사용하는 정령사라 할지라도 힘을 충전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바로 명상이다.
저마다 정신을 집중하고 전투에 앞서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게 40여 분 정도가 또 흘러갔다.
그런데도 레펜하르트의 대답은 같았다.
“아직이다. 좀 더 기다려야 해.”
답답해진 실란이 기가 차 중얼거렸다.
“아직도요?”
이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실제로 세이어와 세렐라인도 똑같은 소릴 하고 있었다.
“아직인가? 저놈들 대체 무슨 수작이지?”
“그러게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요?”
순백의 신전을 바라보며 이니야가 슬그머니 레펜하르트에게 물었다.
“슬슬 움직이셔야 하지 않나요? 아무리 시간이 남았다 해도 미리 준비는 해 두시는 게…….”
“필요 없습니다. 전 아무 짓도 안 하니까요.”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이니야가 살짝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레펜하르트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그녀였지만, 저 성격에는 역시 불만이 있었다. 뭔가를 준비하면 주변에 절대 말 안 해 주고 혼자만 알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펑펑 터트린다.
‘마법사라 그런가? 꼭 저렇게 연출을 하려고 한다니까?’
얼마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문득 레펜하르트가 차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군!”
2
어느새 폭풍이 가라앉았다.
공간 폭주를 일으키던 마스테라다 던전이 지표에 내려앉은 지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당연히 그 여파로 일어난 대기의 흔들림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눈꽃이 흩날리는 고요한 설원의 하늘, 레펜하르트가 미소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두가 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레펜하르트의 일행은 물론이고, 세이어 템플에서 영상으로 지켜보던 세렐라인과 세이어 역시.
문득 레펜하르트가 뇌까렸다.
“열려라, 공허의 문이여.”
그것은 마법의 발동어가 아니었다. 어떠한 마력도, 언령의 힘도 담겨 있지 않은 평범한 혼잣말이었다.
그런데 하늘이 열렸다.
우르릉!
희미한 굉음과 함께 푸른 하늘에 검은 구멍이 뚫린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기다렸다는 듯 하늘 곳곳에서 검은 구멍이 생성되고 또 생성된다.
“……이건?”
“뭐야? 뭔가가 온다?”
기감을 느낀 러스와 타시드가 흠칫 놀랐다. 아득한 상공에 생성된 검은 구멍은 대략 2, 3미터 정도의 직경을 지니고 있었다. 드넓은 하늘에 비하면 점이나 다름없는 작은 구멍들.
그 너머로 거대한 공간이 느껴진다. 그 공간을 통해 강렬한 기운이 설원의 대지에까지 손을 뻗친다.
이윽고, 구멍이 불길을 토했다. 그리고 하늘이 깨졌다.
불타는 구멍을 중심으로 상공에 금이 생기며 이내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박살 나 직경 수십 미터의 거대한 공허를 연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불길에 휩싸인 거대한 구체, 한때는 외공간을 떠돌아다닐 뿐이던 차갑게 식은 암석 덩어리였지만 이 항성의 대기권에 접한 지금은 가공할 마찰열로 인해 지옥보다도 더 뜨겁게 타오르는 존재.
“미티어?”
이글거리는 파멸의 불덩이가 지표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 ☆ ☆
콰아아아아아!
대기를 찢으며 운석이 낙하한다. 가공할 파괴의 철퇴가 순백의 설원을 향해 성난 황소처럼 돌진한다.
이니야가 기겁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아직 허공에 떠오른 다른 검은 구멍을 향해 있었다.
“……설마?”
지금 설원의 하늘에 열린 검은 구멍은 하나가 아니었다. 모두 서른 개였다.
콰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