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497
다른 이들과 달리 제라드에겐 명령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뭐, 어차피 별문제는 없겠지만.
“내가 싸움 마다하는 것 보았느냐?”
안 그래도 아까 잠깐 밀린 게 영 자존심이 상했던 터다. 으르렁대며 제라드가 주먹을 매만진다. 오스만트가 인상을 썼다.
“우리를 상대로 그대들만 나설 셈이냐?”
뭐, 투구에 가려져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러스가 일루미네이터의 자루를 쥐며 손가락을 살기를 피웠다.
“흥! 그까짓 고철덩어리가 무서워서 가만있었던 줄 아는가?”
양쪽의 살기와 투지가 점점 피어올라 아지랑이처럼 공간을 일그러뜨린다.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합을 터트렸다.
“타아아앗!”
수십 줄기의 광채가 호선을 그리며 중앙에서 맞붙기 시작했다.
2
용의 갑옷을 걸친 오스만트가 대검을 휘두르며 포효했다.
“울어라! 바하무트!”
드래고닉 아머에 맞춰 제작된 은의 시대 아티팩트, 전설 속 용의 이름을 딴 2미터의 대검이 블레이드 오러를 내뿜으며 허공을 갈랐다. 오스만트가 평소 애용하던 검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이 대검은 더더욱 상식을 초월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블레이드 오러와 함께 새하얀 냉기와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동반해 날아들었다.
제라드는 코웃음을 쳤다.
“가소롭구나! 스파이럴 가드!”
오러의 소용돌이로 상대의 공세를 그냥 뭉개 버리며 압도적인 거구가 포탄처럼 쏘아진다. 순식간에 블레이드 오러를 깨부수며 황금빛 일권을 뻗는다.
“네놈이나 울어라!”
쾅!
묵직한 타격이 오스만트의 명치를 정확히 찔렀다. 진철 아다만티움의 강도를 지니고 마력 금속을 구조적으로 짜 넣어 외부 충격의 관통조차 차단하는 절세 무구가 일격에 우그러지며 오스만트에게까지 충격을 준다.
“크윽!”
신음을 흘리며 오스만트가 뒤로 물러섰다. 울지는 않았지만 울고 싶을 만큼 아프긴 했다. 짐 언브레이커블은 사소한 손짓 몸짓조차도 일격 필살이라더니 정녕 명성이 허언이 아니다.
움푹 들어간 드래고닉 아머의 가슴께를 내려다보며 오스만트가 혀를 내둘렀다.
“과연 권황…… 단순히 지른 일격조차도 이 정도란 말인가?”
제라드도 혀를 내두르긴 마찬가지였다.
“진짜 단단하긴 하네.”
주먹이 욱신거릴 정도로 강하게 날린 일격이었는데 고작 조금 구겨지고 만 것이다. 다른 두 명의 은의 협력자들이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권황 제라드여, 그대의 강함은 분명 독보적!”
“그러나 신의 위엄 앞에선 하찮은 인간의 강함일 뿐이다!”
적갈색과 남색의 블레이드 오러가 교차하며 제라드의 좌우를 압박한다. 스피드나 궤도는 평범하지만 그 안에 실린 위력은 제라드조차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저 찬란한 오러에는 스파이럴 가드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실려 있다.
그러나 제라드는 오히려 크게 웃었다.
“그래! 워낙 허약한 놈들이니 그런 거라도 걸쳐야 싸울 맛이 나겠지!”
두 은의 협력자와 제라드가 허공에서 충돌했다. 두 팔을 놀려 블레이드 오러의 방향을 뒤틀며 제라드는 연거푸 발차기를 날렸다. 킥의 회오리가 아다만드릴 슈트를 걸친 두 오러 유저의 전신을 두들겨 댄다. 그러나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큭, 이, 이 정도로는…….”
“세이어의 가호를 뚫을 수 없다!”
충격이 쌓이긴 해도 저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우그러지긴 해도 저들의 슈트 역시 부서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슈트가 우그러진 만큼 제라드의 전신에도 상처가 생겼다. 상처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붉은 선, 그저 회초리로 스친 듯한 가벼운 흔적에 불과했지만 은의 협력자들에겐 실로 놀라운 결과다.
순식간에 몇 십 번의 공방이 오갔다. 조금씩 은의 협력자들, 그들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역시 세이어의 가호는 굉장했다. 역시 신의 위엄은 엄청났다.
“흐흐, 아무리 짐 언브레이커블이더라도 결국 인간의 자식일 뿐이로구나.”
제라드를 삼면으로 포위하며 오스만트가 기고만장하게 외쳤다.
“오늘 그 전설을 끝내 주마!”
☆ ☆ ☆
“고작 이 정도인가, 이름 높은 눈의 여왕이여?”
드래고닉 아머를 걸친 할라인의 세르네스가 흥분해 소리친다. 냉정하게 검을 휘둘러 상대의 공세를 흘리며 이니야가 입을 삐죽였다.
“그런 소린 한 방이라도 제대로 먹인 다음에 하시지?”
그녀는 두 명의 은의 협력자를 상대하고 있었다. 좌우로 밀려오는 블레이드 오러의 해일 속에서 화려한 검술로 응수한다. 베고 찌르고 밀고 당기고 쳐 내고 흘리는 모든 것이 하나의 동작, 하나의 흐름이 되어 눈보라처럼 몰아친다.
실로 극의에 다다른 움직임이었다. 두 사람이 덤볐음에도 그들은 아직 이니야의 머리칼 하나 건드려 보지 못할 정도로.
문제는 이니야도 저들을 ‘건드려 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백야의 눈보라!”
어지러운 검화 속에서 이니야가 은빛 블레이드 오러를 연달아 쏘아 냈다.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든 것이라 채 세르네스도 대응하지 못했다. 냉기의 칼날이 갑옷에 적중해 눈꽃을 피우며 굉음을 흘렸다.
콰앙!
“크윽, 이 정도쯤이야…….”
그러나 세르네스는 잠시 흔들렸을 뿐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반격에 나섰다. 공세를 피하며 이니야가 재차 검을 떨쳤다.
“동토의 칼날!”
이번엔 세르네스도 경시하지 않았다. 검을 들고 마주 블레이드 오러를 뿜으며 혼신을 다한다.
“타앗!”
오러와 오러가 충돌해 서로 상쇄되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이니야가 중얼거렸다.
“제법 잘하네.”
환검에 속하는 백야의 눈보라는 연타라는 특성상 일격의 위력이 낮다. 그 정도론 이들이 걸친 아다만드릴 슈트나 드래고닉 아머를 뚫고 충격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보통은 동토의 칼날을 쓰기 전 우세를 점하는 데 쓰는 기술인데…….
‘역시 갑옷에 익숙한 기사들다워.’
이들은 결코 동토의 칼날만큼은 좌시하지 않는다. 자잘한 백야의 눈보라는 무시해도 동토의 칼날쯤 되면 바로 경계한다. 그리고 슈트의 힘으로 증폭된 저들의 블레이드 오러는 동토의 칼날을 부수고 오히려 반격할 정도의 위력이 있다. 그 공방이 굉장히 세련되어서 아무리 이니야라도 사이의 허점을 찌르기가 힘들다.
세르네스와 함께 그녀를 상대하던 오러 유저, 그라임의 체이스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방어력을 이용하는 전법은 짐 언브레이커블만의 전유물이 아니지! 자신의 갑옷도 사용하지 못하는 기사가 과연 있을까?”
비록 오러 유저가 된 뒤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이들은 여전히 기사였다.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기마에 올라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전장의 전사들, 갑옷의 방어도를 믿고 상대의 공격을 골라 무시할 건 무시하고 위력적인 건 받아치는 방식은 원래 갑옷 입은 기사들의 기본적인 전투 스타일이다.
솔직히 튼튼한 몸 믿고 때리건 말건 밀어붙이는 게 무슨 획기적인 전법은 아니지 않은가? 뒷산 멧돼지도 저러고 사는데? 짐 언브레이커블이 획기적인 건 맨몸으로 저 방법을 가능케 하는 무식한 육체 쪽이지 전술 쪽은 아니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고대의 아티팩트 걸친 이 은의 협력자들은 꽤나 자연스럽게 슈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현재 브렉티스처럼 온갖 마법이며 술식을 통해 슈트의 성능을 100퍼센트 끌어내진 못하지만 대신 평소 전장에 나설 때처럼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감각으로 싸움에 임한다.
이니야가 중얼거렸다.
“역시, 익숙함도 강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네.”
광신의 외침을 터트리며 세르네스가 연신 공세를 퍼부었다.
“이단자여, 세이어의 이름으로 피를 흘려라!”
☆ ☆ ☆
다른 쪽에선 러스와 타시드, 시리스도 저마다 은의 협력자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보인 러스와 타시드는 이제 고대 슈트를 걸친 은의 협력자를 상대로도 각자 둘씩 상대하며 분투하는 중, 시리스도 한 명을 상대로 용맹을 떨치고 있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고대 아티팩트의 힘 앞에서도 레펜하르트 일행은 용케 쓰러지지 않고 차분히 전투를 벌였다.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자 그란디아드 경이 의문을 느꼈다.
‘왜지? 왜 아직도 이자들을 해치우지 못하는 거지?’
저들의 실력과 기량이 자신들보다 위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들 역시 결코 약자는 아니다.
하나하나가 대륙에서 명성을 떨치던 경험 많은 오러 유저, 거기에 초월적인 무구인 아다만드릴 슈트며 드래고닉 아머까지 걸쳤다. 게다가 숫자도 두 배나 많다.
아무리 레펜하르트 일행이 저들에 비해 실력이 우위라지만 이 정도면 그 차이를 메우고도 남을 수준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쓰러지지 않는다. 아니, 쓰러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공방 속에서도 그리 위기에 처하질 않는다. 심지어 광기의 발렌시아조차도 슈트 사용 중인 은의 협력자와 일대일로 밀리지 않고 있다. 원래 그녀의 객관적 실력이라면 맨몸의 오러 유저보다 조금 나은 수준인데도.
‘어째서?’
이유는 알고 있다. 이들이 이 전투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은의 협력자들의 공격을 받아치고 반격한다. 굳이 갑옷을 부수고 강타를 넣으려 하지 않는다. 밀거나 중심을 흐트러트리는 수법을 노리고 화려한 연격으로 눈을 속인다. 이렇게 하면 상대에게 치명상을 먹이긴 어려우나 스스로의 몸을 지키긴 쉽다.
말은 쉽게 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늑대 사냥에 익숙하다고 호랑이 사냥도 익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다만드릴 슈트와 드래고닉 아머를 걸친 은의 협력자들은 기본적인 파워, 오러 위력, 방어력, 스피드며 기감 등이 월등하게 올라가며 그에 따라 상대하는 감각도 상당히 뒤틀린다. 단순히 노련해서, 갑옷 입은 상대와 싸워 본 경험이 많다고 익숙하게 대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은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전투에 임하고 있다.
그란디아드 경뿐 아니라 다른 은의 협력자들도 비슷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놈들은 왜 이리 이 싸움에 익숙한 거지?’
세르네스의 공격을 받아 흘리며 이니야가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역시, 익숙함도 강함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니까.”
실제로 그녀는 이 전투 상황이 익숙했다. 이니야뿐 아니라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그랬다.
이들은 바로 전날, 바포메트 슈트를 입은 아스레일과 하루 종일 신 나게 대련을 하고 온 것이다.
제라드가 피식 웃었다.
“아스레일 녀석 훈련시키려고 굴린 건데 엉뚱하게 우리들이 덕을 봤구나.”
고대의 전투용 슈트를 입은 자와 싸우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쯤은 아스레일 경을 상대하며 지겹게 익혔다. 물론 이들과 아스레일 경의 수준은 상당히 차이가 났지만, 대신 아다만드릴 슈트나 드래고닉 아머와 바포메트 슈트의 수준 차도 상당하다 보니 서로 상쇄가 되어 실제로 상대하는 감각은 별 차이가 없었다.
덕분에 열 명의 은의 협력자들은 고대 슈트까지 사용하고도 고작 다섯의 레펜하르트 일행을 상대로 승기를 잡지 못하고 장기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란디아드가 마갑의 투구 속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제길, 어서 이들을 처리하고 저자를 해치워야 하는데.’
안 그래도 아까부터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는 레펜하르트가 계속 거슬리던 차다. 분명 뭔가 준비하는 것 같으니 어서 방해해야 한다.
그때 러스가 일루미네이터를 휘두르며 그란디아드 경의 상념을 깼다.
“흩날리는 꽃잎!”
화려한 검술로 상대와의 거리를 벌린 뒤 레펜하르트를 돌아본다. 러스가 소리쳤다.
“그런데 형님? 아직 멀었습니까? 충분히 익숙해진 것 같은데요?”
레펜하르트가 눈을 떴다.
“안 그래도 슬슬 끝났다.”
가부좌를 풀고 거구를 일으킨다. 양손을 교묘히 움직여 수인을 맺더니 레펜하르트가 마법을 발동시켰다.
“재밍 아케인 채트!”
무수한 은색 빛의 파편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지붕을 뚫고 벽을 뚫고 주위의 모든 것을 무시하며 순수한 마력 형태로 흩어져간다.
기겁해 뒤로 물러서며 은의 협력자들이 방어 태세를 갖췄다.
“뭐지?”
“또 그 수법인가?”
A.M.P 쇼크웨이브는 현재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마법이었다. 아무리 슈트가 무제한 리필(?)된다 하더라도 소환과 장착 사이엔 꽤나 위험한 딜레이가 있는 것이다. 은의 현자들이 잽싸게 수동 조작을 준비하며 전투용 슈트의 상태를 살폈다.
슈트는 멀쩡했다.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수법은 아닌가?”
“그럼 뭔 짓을 한 거지?”
일루미네이터를 빙글 돌리며 러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형님께서, 네놈들의 눈과 귀를 막으셨지.”
☆ ☆ ☆
지지지직!
갑자기 영상 전체에 노이즈가 끼더니 이내 입체 영상이 일그러지며 온갖 복잡한 색채의 파편이 상황을 가렸다.
“이거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