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517
한창 전투 중임에도 불구하고 레펜하르트는 쓴웃음을 흘렸다.
‘태양도 없는데 가리긴 뭘…….’
지금 이 격납고는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럼에도 이토록 밝은 이유는 천장에 네모난 은의 시대 마력등이 무수히 설치되어 있기 때문, 저 언령은 말 그대로 관용구적인 표현일 뿐이다.
마력등을 힐끔대며 레펜하르트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위치가 그리 좋진 않군.”
지금 필레나의 저 엄청난 능력엔 지리상의 이점도 분명 있었다. 화염과 신성력 이상으로 언데드의 천적은 바로 태양광이다. 뙤약볕 아래 유령 나오는 거 본 적 있나? 흑마법사의 최대 금기가 바로 태양 아래 힘을 쓰는 것, 오죽하면 ‘벌건 대낮에 좀비 부르는 바보.’라는 관용구도 있을 정도였다. 너무 전문적이라 마법사가 아니면 별 모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문제지만.
아무리 강력한 언데드나 흑마법이라도 태양 아래선 그 위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 마련인 것이다. 워낙 밝아서 별로 못 느낄 뿐이지 이곳은 분명 지하다. 그러니 그녀의 흑마력도, 어둠의 권속들도 빛에 전혀 훼손을 입지 않는다.
“이곳은 수십 미터의 지하, 태양의 힘이 전혀 닿지 않는 무저갱이지. 마왕이여, 그대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거만한 어조로 필레나가 선언하듯 외쳤다. 그런데 오히려 그 소리를 들은 순간 레펜하르트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가만있자?”
뭔가 떠오른 듯 대뜸 주먹을 내지른다.
“스트레이트 캐논!”
화염 마법을 결합하지 않은, 순수한 오러의 일격이 렐시아에게 쏘아졌다. 그녀가 가볍게 두 팔로 머리를 감싸 간단히 공격을 버텨 냈다.
“타앗!”
갑자기 레펜하르트가 두 발을 박차며 뒤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육중한 거구가 격납고 외벽으로 향한다. 렐시아가 눈을 부라리며 뒤를 쫓았다.
“도망치지 못한다, 마왕!”
그런데 방향이 좀 이상했다. 지금 레펜하르트는 격납고의 통로 쪽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필레나는 의아해했다. 벽을 뚫고 달아날 셈일 리는 없었다. 저 벽 너머는 그냥 땅속일 뿐이니까.
‘뭐지? 왜 저기로 향하는 거지?’
렐시아보다 한발 먼저 레펜하르트가 벽에 도달했다. 그가 주먹을 들더니 대뜸 벽에 내리꽂았다.
“분명 테스론 녀석 정보에 의하면 여기였으렷다?”
콰앙!
레펜하르트의 주먹이 벽 안쪽 깊숙이 박힌다. 격납고 내 모든 마력등의 빛이 바뀌었다. 은은한, 마치 달빛에 가까운 광채에서 진짜 대낮처럼 열기를 띤 찬란한 빛으로.
파아아앗!
강렬한 빛이 격납고 전체를 내리쬐었다. 렐시아가 비명을 터트렸다.
“아아악!”
렐시아뿐만이 아니었다. 아스레일을 공격하던 데스 나이트들 또한 비슷한 상태가 되었다.
“아아아아!”
“크어어어!”
격납고 내를 뒤덮고 있던 어둠이 요동치며 눈에 띄게 그 기세를 잃는다. 필레나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은 어둠의 마력이 태양 아래 드러났을 때 일어나는 반응이었다.
“도대체 왜?”
벽에 팔을 꽂은 채 레펜하르트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되는구먼, 자연광 조명 모드.”
☆ ☆ ☆
“어둠이여, 장막을 드리워 태양을 가릴지니!”
필레나가 황급히 흑마법을 운용했다. 렐시아와 데스 나이츠들의 전신에 회색빛 기류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암흑과는 조금 다른 회색빛 장막, 이는 태양이나 성광의 빛을 가리는 또 다른 흑마법의 용법이었다.
빠르게 대응한 덕분에 렐시아와 데스 나이츠들의 상태는 다시 안정되었다. 하지만 필레나의 안색까지 안정되진 않았다.
“어째서?”
격납고 천장을 보며 그녀는 당황을 숨기지 않았다. 놀랍게도 천장에 가득 박힌 수많은 고대 마력등, 그곳에서 명백한 태양광이 내리 쬐이고 있었다.
“분명 마법으로 창조된 인공적인 조명에서 어떻게 태양의 빛이 나오는 거지?”
레펜하르트가 피식거리며 대꾸했다.
“고대인들은 인공적인 마법등에도 태양의 빛을 담는 방법을 알고 있더군.”
필레나가 눈을 깜빡였다. 은의 시대야 워낙 상식을 초월한 기물들이 많으니, 저런 아티팩트도 못 만들었을 리야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왜?
무엇하러 그냥 조명도 충분히 밝은데 굳이 태양광까지 재현한단 말인가?
“잘은 모르겠는데, 고대인들은 태양광을 정기적으로 쬐어 주지 않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믿은 모양이야. 뭐라더라? 햇볕을 쬐어야 비타 어쩌고가 생긴다던데 이건 뭔 소린지 모르겠고.”
“그건 무슨 헛소리냐? 태양 좀 안 쬐인다고 사람이 죽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고대인들이 그리 믿은 거란 소리지. 난들 그 작자들 속을 알 리가 있나?”
둘 다 제법 고대에 대해 많은 지식을 지녔지만, 역시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해하긴 힘든 것이다. 현 시대엔 워낙 위험한 것도 많고 병도 많고 죽을 일도 많다. 그까짓 태양 좀 덜 쬐인다고 문제 될 거란 개념 자체가 생길 수 없다. 저건 진짜 사람 죽을 일이 극히 드물어 아주 자잘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정도로 문명이 고도화된 곳에서나 나올 법한 상식이니까.
“뭐, 웰빙 조명이라고 이름 붙어 있던데…….”
레펜하르트가 벽에서 주먹을 뽑아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복잡한 마력선이 함께 딸려 나왔다. 더 이상 원격 조작이 불가능하게 제어 시스템 라인을 통째로 뽑아 버린 것이었다.
“산 사람 몸에 좋은 거면, 죽은 놈 몸에 나쁜 건 당연하지 않겠어?”
☆ ☆ ☆
원래 짐 언브레이커블은 연약한 아녀자에겐 그리 심하게 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레펜하르트는 그런 전통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스트리젠!”
굵직한 앞차기가 렐시아의 몸통으로 날아들었다. 중간 동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공할 스피드의 킥,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 그렇게까지 엄청난 속도는 아니다. 조금 전의 렐시아라면 충분히 피한 뒤 오히려 반격을 가할 수 있었겠지만…….
퍼억!
찔러 오는 킥이 그녀에게 정확히 적중했다. 태양광으로 인해 스피드가 대폭 낮아진 것이다. 간신히 두 팔을 모아 가드해 봤지만 충격이 몸통을 뚫고 등 뒤까지 퍼져 간다.
“으윽!”
뒤로 날려 가는 렐시아를 레펜하르트가 바로 따라잡았다. 양손에 불길을 머금은 채 정신없이 연타를 날린다.
“연환 폭염권!”
좌우 훅과 스트레이트가 쉴 새 없이 렐시아를 두들겼다. 그때마다 어둠이 사라지고 가녀린 엘프의 육체가 비명을 질러 댔다.
“이런! 렐시아!”
당황하며 필레나가 바로 마력을 운용했다. 암흑을 끌어내 무수한 창으로 만든 뒤 허공에 쏘아 낸다. 목표는 레펜하르트가 아닌 격납고 천장이었다. 태양광을 내뿜는 마력등을 부술 셈이었다.
물론 그녀의 의도는 통하지 않았다.
“누가 그리 내버려 둘 것 같나?”
렐시아를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레펜하르트는 필레나의 견제를 잊지 않았다.
“폭염기격포, 연환!”
수십 줄기의 섬광이 필레나의 암흑창을 부수며 허공을 갈랐다. 상대가 마력등을 노릴 거란 건 쉽게 예상할 수 있기에 충분히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렐시아에게 공세를 이어 간다.
“여자를 때리는 취미는 없지만…….”
무자비한 권격을 이어 가며 레펜하르트가 소리쳤다.
“명백한 적에게 자비를 베푸는 취미도 이젠 없다!”
‘이젠’이란 단서를 굳이 붙인 이유는 예전엔 그런 멍청한 짓도 자주 저질렀었기 때문이지. 그야말로 세상 무서울 게 없던 시절 이야기랄까?
하지만 더 이상 마왕도 아니고, 세상에 무서운 것도 참 많은 신세가 되어 버렸다. 눈앞의 강적을 봐주는 여유 따윈 부릴 생각 없다!
“골디언 어퍼!”
렐시아의 코앞까지 파고들어 무릎을 굽히고 그대로 주먹을 뻗어 올린다. 강렬한 어퍼컷이 황금빛 기둥을 동반하며 렐시아의 전신을 강타했다.
“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렐시아의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녀에게 깃든 어둠이 싹 날아가고 전신의 뼈와 근육이 뒤틀려 흉측한 몰골이 드러났다.
“크으…….”
비틀거리며 렐시아는 눈을 부라렸다. 레펜하르트를 향한 그 눈빛은 그야말로 한 자루 칼날 같아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눈빛이 매서워도 사람은 눈빛만으로 죽지 않는다.
“끝을 내겠다.”
양 주먹을 가슴 위로 부딪히며 레펜하르트가 인상을 썼다.
쾅! 쾅! 쾅!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황금빛 파문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하이브리드 캘러미티 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순수한 캘러미티 혼은 기력 소모가 심해 함부로 쓸 수 없지만, 지금의 그녀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렐시아가 한탄을 흘렸다.
“아아, 스테반 님…….”
끝없는 증오가 아직 그녀를 일으켜 세우곤 있었지만 단지 그뿐.
“결국 제 힘이 모자라 당신의 복수를 하지 못하는군요…….”
결국 그녀의 칼날은 마왕에게 닿지 못했다.
“미안하다.”
다가오며 레펜하르트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테반을 죽인 것에 대한 사과는 아니었다. 그는 죽을 만했고, 그래서 죽였다. 그 사실에는 한 점의 회한도 없다.
“네 눈을 뜨게 해 주지 못해서.”
여섯 빛의 고리가 그의 오른팔에 휘감겼다. 레펜하르트가 주먹을 뻗었다.
“하이브리드 캘러미티 혼!”
☆ ☆ ☆
렐시아는 시체조차 남지 않고 소멸해 버렸다. 레펜하르트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원래부터 시체였다. 필레나의 사령술로 현세에 묶여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이대로 필레나에게 사역되는 걸 막기 위해선 그 육체를 남길 수가 없다. 또한 육체가 소멸할 정도의 충격이면 그 영혼도 그리 무사하진 못한다. 한동안 영자 정보체가 헝클어질 테니 아무리 필레나라도 그 증오 어린 영혼을 바로 사역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할 짓이 아니군, 이거…….”
입맛이 쓰다.
레펜하르트가 차가운 눈으로 필레나를 노려보았다.
“이제 네 차례다, 필레나.”
그녀가 비웃음을 보였다.
“흥, 그 아이를 처리했다고 승리한 기분이라도 내는 모양이지?”
주먹을 고쳐 쥐며 레펜하르트가 질문을 던졌다.
“네게 남은 카드가 뭐가 있지? 사령인? 데스 나이츠?”
레펜하르트가 발동시킨 태양광에 영향 받은 것은 렐시아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소환한 어둠의 기사들, 그들의 힘도 대폭 약화되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데스 나이트가 아스레일의 검에 쓰러지고 있었다.
“어떤 흑마법이 있다 해도 렐시아, 그 아이만은 못할 텐데?”
물론 필레나의 마력은 아직도 여유가 넘친다. 아카식 드라이브로부터 힘을 부여받은 그녀는 여전히 무수한 어둠의 힘을 사역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힘으로 무엇을 사역하건, 레펜하르트에게 상처를 주지 못한다면 물량 공세는 의미가 없다. 그는 마왕이며 짐 언브레이커블, 대륙에서 가장 다대일에 익숙한 무문의 후계자다.
“그리고, 저 정도 증오와 원한을 가진 영혼은 쉽게 나오지 않지.”
뭐, 레펜하르트 자신도 그동안 여기저기 원한 산 데가 많다는 것은 인정한다. 워낙 저지른 짓이 많지 않은가? 온갖 전쟁은 다 일으킨 판인데. 그에게 원한 품은 인명 리스트를 작성해 보면 족히 수십 미터는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여인의 한보다 더 깊은 증오는 세상이 아무리 넓다 해도 결코 흔치 않은 법.
“남은 건 너 하나뿐이다, 필레나!”
살기어린 목소리로 레펜하르트가 말했다. 필레나가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호호호, 확실히 그건 그래. 그 아이 정도로 널 증오하는 영혼은 드물지, 마왕. 그런데 말이야…….”
그녀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그 아이 말고는 당신을 증오할 이들이 없을 거라 생각해, 권왕?”
‘권왕?’
흠칫해 레펜하르트는 걸음을 멈췄다. 묘하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권왕? 갑자기 마왕이 아니라 권왕이라고?
“너무 자신의 무문을 무시하는 것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