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518
요사스러운 웃음과 함께 필레나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오라! 억겁의 시간 속에 방황하는 자들이여, 어둠에 이끌려 이곳에 강림하라!”
검은 장막이 바닥을 달리며 격납고 안을 가득 메웠다. 어둠속에서부터 음습한 목소리가 하나 둘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아아아아…….”
하나 둘, 악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2미터가 넘는 체구에 바위 같은 근육질의 거인들이다. 얼마나 가공할 사기와 원한이 응축되었는지, 악령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물질적 존재감이 느껴진다.
“맙소사!”
레펜하르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으악! 저, 저거!”
실란도 비명을 질렀다.
“왜요? 왜들 그럽니까?”
뭣 모르는 아스레일만 당황해 의아할 뿐.
하지만 레펜하르트도 실란도 그의 의문을 풀어 주지 않았다. 지금 둘에겐 아스레일에게 신경 쓸 심적 여유 따윈 없었다. 둘 다 저 악령의 정체를 잘 아는 것이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레펜 씨? 저거, 그때 그거 맞죠?”
“당연하지! 착각할 수가 없는 놈들이잖냐!”
모습을 드러낸 수십의 거인 악령들이 저마다 눈을 부라린다. 지독한 투지와 살기가 그 넓은 격납고를 가득 메운다.
“권왕…….”
“짐 언브레이커블…….”
“부르다 저주받을 그 이름이여!”
“우리의 한을 풀겠다!”
3
“플레임 가스트리젠!”
불꽃을 휘감은 레펜하르트의 앞차기가 눈앞의 악령 거인에게 쏘아졌다. 강렬한 일격이 거인의 명치를 정확히 찔렀다.
그러나 거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암흑 마력을 파해하는 불꽃도, 강철을 꿰뚫는 오러도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다. 거인이 두 팔로 레펜하르트의 발목을 붙잡았다.
“짐 언브레이커블!”
“이런!”
놀라 레펜하르트는 발목을 빼려 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질 않는다. 급한 김에 다른 발로 연신 킥을 날려 보았지만 그 역시 소용없다. 쏟아지는 킥을 온몸으로 버텨 내며 오히려 레펜하르트를 크게 돌린다.
“저주받을 권왕이여!”
악령 거인에게 붙잡힌 채 레펜하르트는 제 자리에서 몇 바퀴나 빙빙 돌았다. 곧이어 거인이 레펜하르트를 그대로 내던졌다. 한 줄기 유성처럼 레펜하르트의 거구가 격납고 벽으로 날아가 버렸다.
“래리어트 스윙!”
콰쾅!
끔찍한 충격에 레펜하르트가 피를 토했다.
“커어억!”
뒤이어 다른 악령 거인이 몸을 날린다. 전신 근육을 꿈틀대며 오른팔을 길게 뻗어 낸다.
“기격탄!”
쓰러진 레펜하르트를 향해 거대한 기격탄이 날아들었다. 족히 직경이 5미터는 되어 보이는 사이즈였다.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기겁하며 레펜하르트가 옆으로 몸을 굴렀다.
“으에엑!”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며 격납고 전체가 흔들린다. 아슬아슬하게 피한 레펜하르트가 기가 차 중얼거렸다.
“뭐, 뭔 놈의 기격탄 위력이…….”
레펜하르트조차도 저 정도 기격탄을 구사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었다. 저 거인 악령 하나하나가 6중첩의 경지에 도달한 권왕으로서의 그와 맞먹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공격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의 한을 풀겠다!”
폭연을 가르며 거인 하나가 돌진해 온다. 파공음이 일어날 정도로 빠른 돌진이었다. 그 상태로 거인이 킥을 휘둘렀다.
“타이푼 킥!”
어둠의 소용돌이가 단숨에 코앞까지 닥쳤다. 피할 틈이 없어 레펜하르트는 두 팔로 몸을 감쌌다.
“파이어 스파이럴 가드!”
두 줄기 소용돌이가 충돌했다. 레펜하르트가 피를 흘리며 또다시 뒤로 날아갔다. 제때 방어했음에도 워낙 상대의 공격이 강해 제대로 막아 낼 수가 없다.
“크으으윽!”
신음을 토하며 레펜하르트가 애써 반격에 나섰다. 전신의 마력을 오러와 합일시켜 양 주먹에 담아 쏘아 낸다!
“폭염기격탄, 연환!”
악령에겐 상극 중의 상극인 폭염기격탄이 거인들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거인들은 피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가슴을 활짝 펴고 똑같은 외침을 터트릴 뿐.
“스파이럴 가드!”
어지간한 수호자 악마도 불태울 폭염의 오러가 공처럼 튕겨 격납고 사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타격은 고사하고 조금의 흠집조차 주지 못했다.
기겁한 레펜하르트의 코앞으로 거인 하나가 파고들며 주먹을 가져간다.
“당신을 믿었다!”
제로 임팩트가 레펜하르트의 복부를 관통했다. 내장이 진탕되며 레펜하르트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거인들은 그가 순순히 무릎 꿇도록 놔두질 않았다.
“당신을 따랐다!”
다른 거인 하나가 쓰러지는 레펜하르트의 턱을 올려 쳤다. 골디언 어퍼가 정타로 명중해 그의 육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두 거인이 땅을 박차며 따라 날아올랐다. 좌우에서 스트레이트 캐논과 타이푼 킥이 동시에 작렬했다.
“그 대가가 이것이냐!”
“이것이란 말이냐!”
육체 곳곳에서 피를 흘리며 레펜하르트가 비명을 터트렸다.
“으아아악!”
☆ ☆ ☆
초대 권왕에게 맞아 죽었던 수많은 초기 짐 언브레이커블의 제자들.
짐 언브레이커블에 대한 원한과 증오를 품은 채 지박령이 된 그들은 원래도 무식하게 강력한 유령들이었다. 러스며 타시드의 블레이드 오러를 거뜬히 막아 내고 레펜하르트의 공세도 버텨 내며, 심지어 실란의 풀 파워 턴 언데드 주문으로도 채 성불시킬 수 없었던 괴물들. 이들 때문에 레펜하르트는 다 잡은 테스론 일행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악령들은 당시의 필레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세이어에게 얻은 권능으로 이들의 주박을 풀었다. 강력한 흑마법으로 대지에 묶인 지박령을 자신의 권속으로 바꾸고, 몇 배나 강화시켜 지배하에 놓았다.
“호호호호…….”
정신없이 얻어터지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필레나는 웃었다. 이들이 나타난 이상 그에게 승산 따윈 없었다.
“이젠 끝이다, 마왕.”
한낱 일개 슬레이어일 뿐인 렐시아를 그 수준까지 끌어올린 필레나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렐시아가 지닌 원한과 증오 때문이었기에 다른 이에겐 그 정도의 권능을 부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령인이나 데스 나이츠는 렐시아만 한 힘은 가지질 못했다.
하지만 짐 언브레이커블의 악령들, 그들의 원한과 증오는 렐시아보다 더했음 더했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처음부터 어지간한 오러 유저급의 무시무시한 악령이다. 완벽하게 필레나의 어둠을 받아들여 그 힘을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무시무시했다.
“짐 언브레이커블!”
“저주받을 그 이름이여!”
무수한 공세 속에서 레펜하르트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나하나가 레펜하르트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괴물들이었다. 인공 태양광도 소용없었다. 저 악령 거인들은 태양광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니, 렐시아와 악령 거인의 원래 전력 차를 생각해 보면 그나마 약화돼서 저 정도일 것이다.
그런 괴물이 무려 수십이다. 한둘이었으면 어떻게든 마법으로 처리할 수 있겠는데…….
‘이건 너무하잖아!’
도무지 방법이 없어도 너무 없다. 수십 명의 권왕이 일제히 달려드는 셈인데 이걸 무슨 수로 막으라고?
“제기랄!”
치를 떨며 레펜하르트는 연신 도망쳤다. 반격 따윈 엄두도 나질 않았다.
강철의 육체가 퉁퉁 붓고 터지고 피를 흘린다. 뼈 여기저기에도 금이 가고 어긋난다.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이토록 두들겨 맞아 본 적은 제라드 밑에서 수행한 이후 처음이다.
제라드나 바나텔, 아니 전생의 자신이라도 이 상황에선 답이 없어 보인다. 이들이라면 세이어라도 가볍게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뭐, 저 악령들의 힘 자체가 세이어에게서 나오는 것인 만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폐하!”
레펜하르트의 위기에 아스레일이 검을 들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실란을 보호해야 할 임무가 있는 그였지만,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 위험에 닥쳤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바포메트 슈트의 위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며 거대한 보랏빛 블레이드 오러를 휘두른다!
“타아아앗!”
블레이드 오러가 악령 거인 하나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아스레일의 충성심은 보답받지 못했다. 순간 악령의 전신에 검은 소용돌이가 일어나 검을 튕겨 낸 것이다.
“스파이럴 가드!”
악령 거인이 고개를 돌려 아스레일을 바라보았다. 투지를 터트리며 아스레일이 고함쳤다.
“와라! 사악한 존재여!”
무심한 눈으로 거인이 아스레일에게 주먹을 날렸다. 아스레일이 검을 뒤틀어 공격을 막았다. 비록 오러 유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세지만, 그가 걸친 바포메트 슈트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적인 기물이었다.
“네놈 하나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러자 악령 거인 넷이 더 끼어들었다. 이 자리에 있는 악령은 족히 수십이 넘는 것이다. 이들이 순번 정하고 차례대로 아스레일을 상대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다섯 명의 악령 거인이 아스레일의 사방에서 덤벼들었다. 가볍게 아스레일의 공세를 피해 넘어트리고 자근자근 밟기 시작한다.
퍽! 퍽! 퍼벅!
“큭! 컥! 크어어억!”
뭐 해 보지도 못하고 아스레일은 계속 두들겨 맞았다. 따지고 보면 다섯 명의 레펜하르트를 상대한 셈이니 당연한 이야기다. 그 튼튼한 바포메트 슈트가 반파되며 결국 혼절해 버렸다.
실란이 놀라 소리쳤다.
“아스레일 경!”
다행히 악령들이 그의 숨통을 끊진 않았다. 이들의 증오는 오직 레펜하르트에게만 향한 것, 공격했기에 반격했을 뿐이지 딱히 아스레일에겐 살의나 적의가 없다.
“크으, 이대로 있을 순 없는데!”
부들부들 떨면서도 실란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이 악령들을 한번 조우한 적이 있었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저들은 자신을 노리지 않는다. 그러니 함부로 신성력을 쓸 수는 없다. 쓸려면 크게, 최대한의 위력으로 거하게 한 방을 날려야 한다!
레펜하르트가 죽도록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실란은 애써 침착하게 신성력을 모았다. 마침내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신성 주문이 완성되었다.
“필라넨스시여! 믿슙니다아아아아!”
분홍빛 섬광이 숫제, 폭발하는 것처럼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격납고 전체가 성광에 휘감겨 찬란한 빛을 발했다. 숨을 헐떡이며 실란이 양손을 내렸다.
“머, 먹혔나?”
개뿔도 먹히지 않았다.
“…….”
사라진 악령 거인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멀뚱히 실란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실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공격받았다는 걸 인식한 이상, 이제 저들이 자신도 공격할 것 아닌가?
“아, 아으…….”
그렇게 공포에 질려 있는데, 거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2미터가 넘는 수십 명의 근육 괴수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무시무시하기도 하다. 거인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적인가?”
“아니, 그냥 여자다.”
“그것도 애다.”
“무시하자.”
자기들 나름대로 뭔가 결론을 내린 뒤 도로 실란을 무시하고 레펜하르트에게 몰려가 버린다. 얼마나 깃든 사기가 강력했던지, 실란의 성광이 이들에겐 공격인지 아닌지조차도 헷갈리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지만,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절망이 엄습한다.
“뭐야, 이게…….”
사색이 되어 실란이 중얼거렸다.
“아무런 대책이 없잖아…….”
☆ ☆ ☆